"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긴 하지만, 직원들도 사람이잖아요. 단순히 일하는 기계가 아니고요. 적어도 자기 삶과 회사 생활에 행복감을 느껴야 효율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이런 제도들을 만들었죠."
잡플래닛과 고용노동부가 뽑은 '2020 워라밸 실천 기업' 아이씨비의 이한용 대표는, '회사가 직원들의 워라밸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사람이 전부인 회사"라고 확언해 마지 않는 이 대표를 12월 9일 마포구 아이씨비 사옥에서 만났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씨비 직원들. 사진=아이씨비
금융업계에서 일하던 이한용 대표가 크로스보더 비즈니스를 꿈꾸며 결제·물류를 함께 다루는 아이씨비를 시작한 건 2013년. 결제와 물류를 함께 다룰 생각을 어떻게 했느냐는 기자의 말에 이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아마존이나 쿠팡은 이커머스 회사로 출발했지만 물류회사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커 왔잖아요. 이커머스와 물류, 둘의 결합이 시너지를 만든 거죠. 결제 수요가 있으면 당연히 물류 수요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국가 간 거래는 전문성도 필요하고요. 결제와 물류를 한번에 해결하는 일종의 통합 솔루션을 제공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자연스러운 거였죠."
직원 4명에서 시작해 지금은 상근자만 90명, 어엿한 강소기업이 됐다. 작년 기준 매출은 288억이고, 아이씨비를 통한 거래액만 1년에 1조 7천억 정도다. 서비스를 시작한 첫달, 통장에 들어온 결제 수수료는 '400원'이었다고. 좌절했지만 멈추지 않았고, 수수료는 5000원, 10만원을 넘어 현재는 10억이 넘게 들어오는 시장을 만들었다.
◇ 직원들 '워라밸'에 집중한 이유…"그들의 가치 인정해 주고 싶었다"
아이씨비의 직원들은 하루에 7시간 30분 근무하고 있다. 2주에 한 번 활용할 수 있는 '5시 조기 퇴근' 제도까지 따지면 일주일에 37시간 일하는 셈이다. 이 대표는 "오히려 야근하는 직원을 꾸짖기도 한다. 그래서 퇴사한 직원도 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도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씨비의 워라밸 관련 제도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육아·출산 관련 제도다.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들은 당연히 사용할 수 있다. 임신하고 출산하는 직원들을 배려하고, 육아휴직을 사용한 뒤에도 회사로 복귀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다.
"저희가 해외와 업무를 많이 하다 보니까 언어 능력이 필수적이에요. 특히 중국어를 하는 직원 중에는 여성이 많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이 낳으면 회사 다니지 말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해요. 능력이 출중한 데도요.
저희는 사람이 전부인 회사거든요. 제조 시설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회사가 아니라 테크핀 회사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이 직원들 능력이 충분하고, 호흡도 오래 맞춰 왔는데 그게 아까운 거예요. 결혼하고 나면 누군가의 엄마·아내이기도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주니어로 들어와서 결혼도 하고 지금까지 7~8년을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있어요. 그런 걸 보면 회사랑 같이 성장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이 대표는 회사 주변 상권에도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합정으로 회사를 옮긴 뒤에는 회사에서 점심을 직접 제공하려고 했다. 이내 점심 장사가 힘든 주변 상권이 마음에 걸렸다.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자는 생각에, 직원들에게 16만원 상당의 '복지 포인트'를 제공하기로 했다. 식당은 물론 미용·운동 등 회사 근처 다양한 곳과 제휴를 맺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교통비도 5만원 씩 지급한다. 이런 제도들은 "회사 다니면서 쓰는 돈은 회사가 제공해 주자"는 다짐에서 시작된 일이다.
오래 함께한 직원들에게 1년 당 '한 돈' 정도의 골드바를 지급하기도 했다. 금액의 차원보다는 그동안의 수고에 감사하는 의미를 담는다. 6개월에 한 번씩 포상 제도를 운영해, VIP로 선정된 직원은 해외·국내 여행을 보내 주기도 한다고.
아이씨비의 7가지 '일하는 방식'. 사진=아이씨비
◇ "토론은 계급 없이, 합의엔 이론 없이"…아이씨비의 일하는 방식
세네 명이서 시작한 회사지만, '동아리'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직원 한 명 한 명이 목적을 가진 프로라는 생각을 하며, '일하는 방식' 7가지를 만들었다. '자기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연봉 계약서보다 중요하다', '위대한 팀은 가장 위대한 목표이다', '우리는 오직 3가지 방식으로 일한다.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나' 등의 문구는 언뜻 과해 보이기도 한다.
"중국의 큰 회사 회의에 참석하면서 큰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어요. 가장 아래 있는 직원부터 대표까지 손가락질하면서 거의 싸우듯이 난상토론을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도출된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받아들이는 걸 봤어요. 단순히 '위에서 합의한 결과'라고 지시하면서 따르라고 하면 직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토론은 계급 없이 열정적으로 하되 결정되면 따르자는 의미에서 '토론에는 계급이 없고 합의된 결론에는 이론이 없다'는 문구도 넣었어요."
리뷰에서 종종 보이는 '경영진과 가까운 사람들만 이득을 본다'는 직원들의 호소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대표는 "새로운 사업에 집중하면서 특정 부서와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생기는 오해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새로 사업을 구상하다 보면, 제 머릿속의 그림과 직원들이 그리고 있는 게 처음엔 다르니까 시간을 많이 들여서 토론도 하고 컨센서스를 맞추는 과정을 가지는데요. 이 과정이 직원들이 보기에는 '저 부서만 신경쓴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잘하는 부서는 사사건건 관여할 필요가 없으니 담당자에게만 맡겨 놓는 거거든요. 잘하고 있는 거라는 의미죠. 물론 제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 수도 있죠. 제 행동이 오해를 샀을 수도 있고요. 직원들에게 최대한 공평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대표는 앞으로 '개인'과 '판매자'가 혼재되는 시장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개인사업자가 늘어갈 수록, 아이씨비의 역할도 확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 금융 핀테크에 초점을 맞춰, 개인과 기업에 꼭 필요한 '크로스보더 서비스'로 더 성장해 가는 게 아이씨비의 목표다.
"회사에 이름 대면 알 만한 대기업에서 온 친구들도 많아요. 안정적인 일 대신 비전을 품고 해보고 싶은 걸 이루고자 온 직원들이 많습니다. '의기투합'이라고 하잖아요. '의'와 '기'가 맞는 직원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어요. '크로스보더 비즈니스'는 매번 새로운 문을 열어 나가는 거예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함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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