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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소장이 경비원에게 청소 지시를...이래도 되나요?

[혼돈의 직장생활] 채용공고와 다른 업무 지시는 '채용법 위반'에 해당

2023. 01. 11 (수) 17:29 | 최종 업데이트 2023. 01. 13 (금) 09:20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취업 후 처음 직무 교육을 받았을 때는 단지 내 위험구역 등을 순찰하여 보고하고, 주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살피는 것이 경비원의 업무라고 들었는데요. 취업한 지 5개월 차에 접어든 현재, 대부분의 업무시간에 미화원이 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관리소장이 청소나 분리수거 등의 업무를 제게 지시하는 건데요. 물론 해당 작업을 해주시는 미화원은 따로 있습니다. 저는 관리사무소 소속이 아니라 경비업체 소속인데, 관리소장이 경비원에게 마음대로 미화 업무를 지시해도 되는 건가요?” 
◇ 파견? 도급? 계약 형태에 따라 업무 지시 주체 달라
여기서 잠깐, 퀴즈! 기업은 근로자에게 무조건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있을까요? 정답은 ‘NO’입니다. 계약 형태에 따라 근로자에 대한 명령 및 지휘권을 갖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인데요. 근로자를 간접 고용하는 경우, ‘파견 계약’인지 ‘도급(용역) 계약’인지에 따라 업무 지시를 하는 주체가 달라져요. 

'파견'은 파견업체가 근로자를 고용한 뒤, 사용사업주에게 노동력(근로자)을 제공하는 대가로 보수를 받아요. 파견 근로자에게 업무 지시하는 권한은 파견업체가 아닌 사용사업주에 있습니다. 즉, 근로자는 파견 나간 '사업장의 관리자'에게 업무 지시를 받아 일하게 되죠. 

'도급'은 일을 의뢰하는 업체(도급업체)와 업무를 수행하는 용역업체(수급업체)가 '일의 결과물'을 제공 받기로 하고 이에 대한 보수 지급을 약속하는 계약인데요. 노동력이 아닌 노동의 결과물을 거래하는 것이라, 도급 계약 근로자에 대한 업무 지시 권한은 근로자를 고용해 사용하는 수급업체에 있습니다. 즉, 근로자는 수급업체에게 업무 지시를 받아서 일하고, 도급업체는 업무 지시 권한이 없는거죠. 

근로자파견등에관한법률과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1. 7. 1. 선고 2011두6097 판결) 등에서는, 도급을 “수급인이 도급받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근로자를 고용한 후 직접 지휘·명령을 하여 도급을 위한 근로에 종사하도록 하는 형태”로 정의하고 있어요. 이에 따라, 도급업체는 수급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릴 수 없습니다. 
다시 사연으로 돌아가 볼까요? 사연자님은 관리사무소 소속이 아니라, 경비업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했는데요. 만약 사연자님이 파견이 아닌 '도급'의 형태로 경비원 업무를 수행 중이라면, 관리소장이 사연자님께 업무 지시를 내릴 권한은 없는 거고요. 물론 반대로 '파견' 형태로 업무 수행 중이라면 관리소장의 업무 지시를 받아 일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거죠. 

어떤 계약 형태인지 사연만으로는 알수 없어 자세한 계약 내용은 따져봐야 하겠지만, 경비업체가 경비원을 고용하여 경비업무를 수행하도록 할 때는 대개 입주자대표회의 혹은 주택관리업자와 도급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 경우 직접적인 업무지시 권한은 경비업체에 있는 거고요. 

사연자님께서 파견이 아닌 ‘도급’의 형태로 업무 수행 중이라면, 관리소장이 사연자님께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은 위법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사연자님을 직접 고용한 경비업체 측에 위법한 업무 지시에 대한 상황을 공유하고 조정을 요청해보시기를 권해드려요.
◇ 채용공고와 다른 업무 지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연에서 한 가지 더 짚어볼 만한 부분은, 취업 당시 안내 받지 못했던 업무를 지시받았다는 내용인데요. 사연자님처럼 채용 과정에서 안내받은 것과 다른 업무에 배정돼 당황하게 되는 사례가 생각보다 빈번히  발생하는 듯합니다.

기업이 채용공고에서 제시한 업무와 다른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엄연한 위법입니다. 채용절차법 제4조 제3항에 따르면, 구인자는 구직자를 채용한 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공고에서 제시한 근로조건(업무 내용 등)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어기면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죠.

근로계약서에 담당할 업무의 내용을 특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다른 업무를 지시한다면, 근로자에게는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는데요.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계나 해고 등의 불이익을 가한다면 사업장 관할 지방노동관서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근로계약서상에 담당 업무를 포괄적으로 적어두었고 지시한 업무의 내용이 사회 통념상 계약서에 명시된 업무에 포함되는 내용이라고 판단될 때는 회사의 지시가 정당하다고 인정될 수 있어요.

회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공고와 다른 업무를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면  이는 ‘부당전직’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 경우에도 관할 지방노동관서에 3개월 이내 구제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부당전직으로 판명되면 회사는 인사명령을 취소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시, 3000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근로자가 부당한 지시를 받고도 상당 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근로조건 변경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건데요. 그러니, 회사가 근로계약과 다른 업무를 부당하게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최대한 신속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근로계약서에 서명할 땐 업무 내용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기재되어 있거나 채용공고와 다르게 적혀있지는 않은지 먼저 살펴봐야겠죠.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았을 때는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 자료들을 충분히 확보해둬야 하겠고요. 

채용공고와 다른 업무를 지시받았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아래 간단히 정리해봤어요. 예상치 못한 업무 지시로 곤혹스러울 사연자님과 독자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모든 근로자분들이 타당한 업무를 배정받고 보람찬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채용공고와 다른 업무를 지시했을 때 대처법

①근로계약서에 담당 업무가 명확히 적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다.
②채용공고와 다른 업무를 부당하게 지시받았을 땐, 최대한 신속히 이의를 제기한다.
③부당한 업무 지시가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확보한다.
④회사가 지속적으로 채용공고와 다른 업무를 요구하거나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가할 경우, 관할 지방노동관서에 구제신청을 한다.
박지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