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리엔 정답이 없어요 그래서 재밌어요…우리 인생같죠"

[한우물 파는 직장인] 이상균, 이민구 야마하뮤직코리아 피아노 테크니션

2023. 01. 12 (목) 11:39 | 최종 업데이트 2023. 01. 12 (목) 12:54

(위) 이민구 야마하뮤직코리아 피아노 테크니션 (아래) 이상균 야마하뮤직코리아 피아노 테크니션
"분해된 피아노를 봤어요. 멋있더라고요. 그 순간 이게 내 일이구나 싶었죠. 벌써 24년 전이네요. 그때부터 계속 조율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균 야마하뮤직코리아 피아노 테크니션, 24년 차) 

누구나 한 번쯤 '운명적'이라 할 순간을 맞기 마련이다. 야마하뮤직코리아의 피아노 조율사, 이상균 테크니션에게는 2000년 어느날, 피아노의 속 모습을 처음 본 날이 아닐까 싶다. 이때 시작된 피아노와의 인연으로 22년째, 피아노 조율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운명은 우연히 찾아오곤 한다. 지휘자를 꿈꾸며 음악을 전공하다 조율사가 된 이민구 테크니션 역시 그랬다. 

"유학을 준비 중이었어요. 학교 선배로부터 유학을 가기 전에 조율을 배워서 가라는 추천을 받고 배워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조율을 하기로 결정,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이민구 야마하뮤직코리아 피아노 테크니션, 9년 차)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들이 있고, 선택의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다. 선택의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직업을 선택한 이후의 선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 일을 계속 하거나, 다른 일을 찾거나. 어떤 선택이라도 정답은 없지만,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해, 오랜 시간 공들여 일하는 이들은 그 모습만으로 빛이 난다. 오랜 시간 한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대하고 있을까? 

야마하뮤직코리아에서 일하는 테크니션들에게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분 이야기를 듣고, 운명처럼 조율이라는 일을 만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율사는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쳐 조율사가 되셨는지 궁금해요. 

이상균/ 제가 시골에서 자랐어요. 교회에서 피아노를 처음 봤죠. 어른이 돼서 우연히 신문을 봤는데, 유망 직종으로 조율사가 나오더라고요. 어릴 적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자가 조율을 하고 난 뒤 정말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 났어요.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조율 학원을 가봤는데, 거기서 업라이트 피아노의 속을 본 거예요. 그날로 학원을 등록해 6개월간 배웠죠. 그런데 막상 현장에 나와보니, 학원에서 배운 건 그야말로 기본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조율 잘하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배웠어요. 그렇게 현장에서 배워 나갔죠. 

이민구/ 저는 상균님보다 10년 쯤 뒤에 조율을 배운 건데요. 그때도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학원에서 6개월쯤 배우고 사회에 나왔죠. 음악을 계속 할까, 조율을 할까 물론 많이 고민 했는데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고요. 클래식 음악가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조율 해보니 재미있는데? 고민을 하다가 조율을 해보자 생각했어요.  

학원을 졸업하고, 현장에 나가서 직접 조율을 해보니 정말 변수가 너무 많은 거예요. 피아노는 목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에 따라 목재가 팽창하기도 수축하기도 하면서 환경에 따라 소리가 계속 변해요. 그래서 살아있는 악기라고도 불려요. 잡소리가 나기도 하고 답답한 소리가 나기도 하고, 쨍쨍한 소리가 나기도 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기도 하고요. 직접 해보니,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저도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웠어요. 
-상균님은 조율사로 일 한지 24년이 되셨다고 들었어요. 민구님도 10년을 바라보고 계시고요. 긴 시간 일하게 된 조율의 매력은 뭔가요? 

상균/ 같은 피아노라도 연주자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요. 같은 피아노를 백 명의 연주자가 연주하면 백 가지 소리가 나죠. 백 명의 피아니스트가 있으면, 이들이 원하는 소리 역시 백 가지인 셈이고요. 

조율이라고 하면 '하나하나 정확한 음을 내는 것'으로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데 조율에서 중요한 건 화음이거든요. 피아노 건반 하나는 세 개의 줄이 함께 진동하며 하나의 소리를 내요. 이 세 개의 줄을 어떻게 맞추는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죠. 예전에 아시아지역 조율사모임에서 이 세 개의 줄을 조금씩 다르게 맞춰 테스트를 해 본 적이 있어요. 저마다 좋아하는 소리는 달랐지만, 세 개의 줄을 정확히 똑같이 맞춘 소리는 인기가 없었어요. 조금씩 변주를 준 소리들에 대한 평가가 더 좋았죠. 더 풍부한 소리를 내더라고요. 

특히 야마하는 지역의 환경 특성에 따라 피아노에 사용하는 목재 처리 기술이 달라요. 우리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 겨울이 긴 곳, 여름이 긴 곳, 습한 곳 등 각 나라의 환경 특성을 고려해 피아노를 만들죠. 여기에서 쌓인 다양한 데이터가 있는데요. 이렇게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축적된 기술적, 상황적 데이터들을 공유하며, 덕분에 지금도 계속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어요.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들을 많이 했죠.

소리에는 정답이 없어요. 건반 하나하나가 정확한 음을 내는 것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는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만큼 조율사의 역량에 따라 같은 피아노지만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재미있지 않나요? 

민구/ 연주의 시작은 조율이거든요. 내가 조율한 악기를 가지고, 연주자가 감동적인 연주를 했을 때, 조율이 잘 돼서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었다고 감사 인사를 받을 때, 뿌듯하고 재미있죠. 처음 조율했을 때와 지금, 많이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음 하나하나의 정확도를 맞추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면, 지금은 음들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데에 공을 많이 들여요. 조율은 할 때마다 새로워요. 그날의 날씨, 온도, 습도, 공간에 따라 다 달라지니까요. 이런 점이 조율의 매력인 것 같아요. 
-야마하에서는 조율사가 아니라 ‘테크니션’이라고 부른다고요. 다른 조율사와 ‘야마하의 테크니션’은 뭐가 다른가요? 

상균/ 테크니션은 기본적으로 피아노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기술전문가예요. 야먀하에서 만든 피아노가 주변 환경에 의해서 변화되면 설계대로 되돌리는 작업이죠. 여기에 더해서 피아니스트의 성향을 반영해 피아노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좀 더 넓게 보면 조율사의 역할에 더해서 아티스트와의 관계를 돈독히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 연주자에게 야마하 피아노의 더 나은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역할을 포함하는 개념이에요. 이런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서 야마하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교육도 받고 전세계 테크니션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방면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죠.


- 오랜 시간 일하시면서 다양한 연주자를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기억에 남는 일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상균/ 피아니스트 조지윈스턴의 공연을 준비할 때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공연 전 조율을 어떻게 해달라는 서면을 받았어요. 맞춰 조율을 했는데, 리허설 후 건반 하나하나에 체크가 돼있더라고요. 이 건반은 어떻다, 저 건반은 이런 소리가 나니 어떻게 해달라는 식으로요. 이건 이날 음악에 대해 피아니스트와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연주자가 원하는 소리는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맞췄던 기억이 나네요. 맞춰 나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민구/ 피아니스트마다 원하는 소리가 천차만별이에요. 예를 들어 '고요한 밤하늘에 작은 폭죽들이 터지는듯한 소리를 나게 해달라' 같은 요청을 받기도 해요. 이런 요청을 받으면 한참을 생각하게 되죠. 또 공연 장소마다 소리가 다르게 나니까 이런 점도 고려해야 하고요. 그래서 어렵지만, 지루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조율이라고 하면 건반 하나하나가 정해진 정답의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리에는 정답이 없다, 조화와 화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꼭 인생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좋은 조율사의 역량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상균/ 개인적으로 조율을 어떤 사람이 잘할까 생각하면 손재주 있는 사람이 잘 하는 것 같긴 해요. 음감도 중요하지만 절대음감이라고 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절대 음감이 없다고 못하는 것도 아니고요. 음감이 없으면 더 노력하면 돼요. 소리만 맞추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일 뿐이죠. 

피아노 소리는 건반이 눌리는 깊이, 10㎜에서 다 이뤄져요. 이 10㎜가 내려가면서 소리가 나는 거죠. 88개 건반의 10㎜를 피아니스트가 컨트롤해서 음악이 돼요. 단지 정확한 음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피아니스트가 본인이 가장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느낌까지 맞춰주는 것이 조율사의 역할이죠. 리허설을 하다 보면, 연주자가 뭔가 불편해 하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어요. 리허설을 할 때 이걸 빨리 캐치해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경험이 많이 필요하고요. 

환경에 따라, 피아니스트마다 다른 다양한 요구를 적절하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조율사 스스로 기준을 분명하게 잡아 두는 게 중요해요. 스스로 기준이 명확해야, 이를 기준으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죠. 

민구/ 조율사에게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인 것 같아요. 과거에는 내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연주자와 소통하며 연주에 가장 적합한 소리를 찾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연주자의 말을 잘 이해하고 만족시켜줄 수 있는 조율사가 훌륭한 조율사 아닐까요?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이 있고, 피아노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도 있었어요. 지금은 많은 것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피아노 역시 디지털로 바뀌는 추세인데요. 그렇다 보면 일의 전망이나 미래때문에 고민이 되기도 할 것 같거든요. 실제 조율사도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줄었잖아요.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는 모습도 보셨을 것 같고요. 계속 해야 할까 고민한 적은 없으세요? 

상균/ 처음 조율 학원에서 피아노를 본 순간, 끝까지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악기가 많이 다양해졌죠. 피아노만 해도, 어쿠스틱 피아노에 전자 장치가 붙기도 하고, 디지털 악기 시장이 커지고 있고요. 

그래도 어쿠스틱 피아노가 사라질 순 없을 겁니다. 어쿠스틱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거든요.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공기를 울려서 내는 소리를 대체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직접 줄을 울리고, 소리가 공간에 울려서 공명되는 그 소리가 주는 감동은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피아노 연주자가 사라질 순 없고, 이분들이 연주를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조율사는 분명 존재해야 하고요.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실까 궁금해집니다. 

상균/ 후배들에게 위를 보여주고 싶어요. 조율사로서 갈 수 있는 최고의 목표를 보여주고,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고요. 야마하에서 외국 콩쿨에도 참여해보고, 전세계 테크니션을 만나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고 배울 기회도 많았어요. 특히 야마하는 전세계에 현지법인이 있는 만큼,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축적된 기술적, 상황적 데이터들을 공유할 수 있거든요. 덕분에 지금도 계속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어요.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들을 많이 했죠. 전 이 일이 재미있어요. 언젠가 야마하를 떠나게 된다면, 글쎄요, 공연장이나 또 다른 어딘가에서 조율을 하고 있을 겁니다. 

민구/ 조율사는 피아노와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또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고민하면서 조율을 하는 시간이 가장 좋아요. 어제와 오늘, 내일의 조율은 달라요. 그만큼 저도 변하고 있는 거고요.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목표라면 세계 최고의 조율사가 되고 싶어요.  어느 나라에서 어떤 연주자에게나 인정받는 조율사가 되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