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우리는 정말 출근하라고 해서 화가 난 걸까?

재택근무 종료하는 회사 vs 계속하는 회사…차이는?

2023. 01. 18 (수) 18:00 | 최종 업데이트 2023. 08. 10 (목) 10:48
기업들이 구성원들을 회사로 부르고 있다. 재택근무 대표 주자로 불리던 IT기업들이 속속 재택근무 종료를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도 오히려 재택근무를 확대하는 곳들도 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니 그 이전에, 재택근무 폐지에 반발하는 구성원들은 정말 단순히 사무실에 나오라고 해서 화가 난 걸까? 
◇ 재택근무 종료하는 회사 "만나서 일해야 효율이 높아요" 


카카오는 올해 3월부터 재택근무를 폐지하고 사무실출근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근무 장소에 제한을 두지 않는 'WFA(Work from anywhere)'로 유명한 SK텔레콤 역시 자율적으로 운영되던 재택근무 횟수를 주1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주요 게임사인 엔씨소프트와 넥슨, 넷마블 등은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사무실 출근 중이다. 

사무실 복귀를 결정한 기업의 입장은 분명하다. 재택근무는 코로나19로 인한 비상 대응이었을 뿐, 이제 일상으로 복귀했으니, 원래대로 돌아갈 때라는 것. 이 결정에는 '재택근무는 업무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12월2일 진행한 타운홀 미팅에서 "(재택근무는)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때 가치(효율)가 높았다"며 "넥슨의 근무체제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모두 모여서 협업과 소통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무실 출근이 더 효율적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때문에 기존 제도를 유지한다는 얘기다. 

구성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지난해 6월 재택근무 종료를 선언한 넥슨코리아와 엔씨소프트, 넷마블의 잡플래닛 만족도를 분석한 결과, 세 회사 모두 워라밸과 사내문화 평점은 6월보다 7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만족도는 점차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리뷰에서는 '수직적 문화' '경직' 등의 키워드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리뷰를 들여다보면 "재택이어도 출근하던 사람인데 솔직히 지금 회사 너무 혼잡하다. 일부 재택이라도 돌려야 쾌적할 듯. 재택이 없다 하니 채용이 안됨" "재택이 어려우면 보상이라도…" "재택을 안 하는게 단점" 등의 평가가 나왔다. 
◇ 그래도 우리는 재택 한다 "높은 만족도, 생산성 문제 없는데?" 


주요 기업들이 사무실 출근으로 태세 전환하는 와중에도, 재택근무를 유지, 확대하는 곳들도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7월 도입한 '커넥티드 워크(Connected work)'에 따라 구성원들이 6개월마다 O타입(Office-based Work·주3일 이상 사무실 출근)과 R타입(Remote-based Work·전면원격근무)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네이버와 네이버파이낸셜 등 8개 법인 직원 7313명 중 56%는 R타입을, 44%는 O타입을 선택했다.  

글로벌 게임 데이터 플랫폼으로 지난해 '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한 '오피지지'는 '완전자율근무'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근무 장소와 시간에 제한이 없다. 덕분에 해외에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도 가능하다. 구성원들의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매주 전사 온라인 타운홀 미팅을 열고, 사내 게임 리그, 연말파티, 워크샵, 점심 회식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 진행 중이다. 온라인 업무 메신저에 맛집, 여행 등 주제별 채팅 채널을 만들어 관심사가 같은 구성원들간 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오피지지의 HR담당자는 "실제 미국 유럽 등에서 한달살기 로망을 실현한 구성원도 있고, 속초와 대만에서 거주 중인 구성원도 있다"며 "'자율적일 때 높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오늘 선택한 근무 방법이 제일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믿음이 있어, 세부적인 기준과 규칙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점에서 구성원 만족도가 높은 편인데, 코로나 이전부터 재택근무는 실행하고 있었고 생산성은 오히려 높은 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피지지의 잡플래닛 평점은 3.7점, 사내문화와 워라밸 만족도는 각각 3.9점, 4.4점에 달한다.
 
◇ 재택근무vs사무실…생산성 더 높은 근무 방식은? 


재택근무 여부는 결국 업무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한 논란으로 흐른다. 그래서 도대체 재택근무는 생산성이 좋을까 나쁠까? 

각종 조사들이 나왔지만, 조사 주체와 시기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5월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재택근무 시 체감업무 생산성 전체 평균은 정상 근무 대비 79%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3월 발표한 '비대면 시대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일.생활 균형'에 따르면, 재택근무 생산성에 대해 노동자의 31.4%, 사업체의 44.6%가 '생산성이 향성됐다'고 평가했다. 부정적인 평가(노동자의 29.3%, 사업체의 5.1%)보다 긍정적인 평가가 더 많았다. 오히려 사업체의 긍정적인 평가가 더 컸다. 의외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종결 후 재택근무 계속 시행 의사를 묻는 질문에서는 노동자의 72.8%가 활용의사가 있다고 답한 반면, 사업체의 59.7%가 축소 또는 중단하겠다고 답했다. 
◇ "회사 선택할 때 '근무 방식, 회사 위치' 중요" 


이러니, 어떤 근무 형태가 더 생산성을 높이는가에 대한 결론을 단번에 내리기는 어려운 상황. 아마도 업종과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 짐작할 뿐이다. 다만, 효율성 논란과는 별개로 분명한 것은 '근무 방식은 취업과 이직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잡플래닛이 헤드헌터와 채용담당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복수응답 가능)에서 채용담당자의 40.3%가, 헤드헌터의 20%가 '이직 시장에서 후보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로 자율적인 근무방식(재택, 하이브리드 등)을 꼽았다. 연봉, 회사의 비전, 회사의 네임벨류, 개인의 성장 가능성, 조직문화 등 다양한 요소 중 채용담당자는 연봉(58.3%) 다음으로 중요한 것으로 '자율적인 근무방식'을 선택했다. 
회사와 거주지와의 거리 역시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잡플래닛이 지난 3월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회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연봉(63.8%), 워라밸(52.8%) 다음으로 위치·집과의 거리(46%)를 선택한 이들이 많았다. 동료나 개인의 성장가능성보다 높다. 
 
이는 현실적인 문제로 연결된다. 수도권 직장인의 경우 집과 회사의 위치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하루에 길게는 3~4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출퇴근시간 교통체증까지 고려하면 물리적 거리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실제 최근 외국계 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30대 직장인 A씨는 "재택근무 하는 와중에 사무실이 이전하면서 출근 시간이 2시간 정도 걸리게 됐다"며 "재택근무로도 업무에 문제가 없었는데 회사가 일방적으로 사무실 출근 전환을 통보하는 것을 보고 이직을 결정하게 됐고,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재택근무 가능성과 회사의 위치였다"고 말했다. A씨는 이직하며 오히려 연봉은 소폭 낮아졌지만, 만족도는 높아졌다고 말한다.  

근무 방식에 따라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삶의 질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지난 3년 간 경험하면서, 직장인들이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 역시 달라졌다는 얘기다. 
 
◇ 무조건 재택만 좋아한다고? "대면 회의가 효율적, 사무실 근무가 마음 편해" 


그런데, 정말 직장인들은 재택'만' 좋아하는걸까? '직장인들은 무조건 재택근무를 좋아한다'는 당연한 명제처럼 쓰이지만, 사실 직장인들이 '무조건 재택만'을 외치는 것은 아니다. 

잡플래닛이 지난 8월 진행한 '일하는 방식과 직업가치관' 설문조사에서 '리모트 근무보다 사무실 출근이 더 마음이 편하다'는 이들이 전세대에 걸쳐 더 많았다. 회의 역시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전세대에 걸쳐 더 많았다.  
 
업무와 상황에 따라 직장인들 역시 사무실 출근과 대면 업무를 선호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실제 회사가 전면 재택근무 제도를 시행하는 와중에도 사무실이 일이 더 잘돼서 출근한다는 직장인들,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회사의 일방적인 사무실 출근 통보는 별로'라고 입을 모은다. 출근을 한다는 결과는 똑같더라도, 내가 원하고 필요하고 동의해서 하는 출근과 선택의 여지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출근은 다르다는 얘기다. 

재택근무를 통해 얻는 만족감의 핵심은 '집에서 일하니까 편하다'를 넘어, '내 업무와 필요에 의해 내가 일하는 방식을 내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 더해 회사가 근무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구성원들은 회사가 얼마나 구성원들을 배려하고 신뢰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재택 여부는 단순한 근무 방식이 아니라 회사의 '배려'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 "재택 종료 정말 생산성 때문이야? 못 믿어서 아니고?"


결국 핵심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얼마나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됐는지, 생산성이 문제라면 근거를 가지고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이 이뤄졌는지에 있는 것일 터. 결국 너무도 당연하게, 소통과 합의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똑같이 주 2회 재택근무를 해도 어느 회사 구성원들은 화를 내고, 어느 회사 구성원들은 만족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카카오가 재택 폐지를 발표한 뒤 카카오 노조(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소속)는 "문제는 단순 재택근무 폐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서승욱 지회장은 "2021년 11월부터 최근까지 근무제가 총 네 차례 바뀌었다"며 원칙 없는 근무제 변경, 새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구성원들과 꾸준히 논의하지 않은 채 최종안을 공유한 것, 노사협의회와 노조의 실질적인 논의 참여도 어려웠던 점, 정기적으로 열리던 오픈톡(타운홀 미팅) 횟수가 줄고 있는 점 등이 문제라고 했다. 

넥슨 노조 역시 지난해 12월 사측의 재택근무 종료 방침이 나온 직후 "재택근무 도입 관련 연구를 한다고 시간을 벌어 놓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 어떤 이해를 구하는 과정 없이 그냥 '못한다'라니 구성원들의 반감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타운홀 미팅인데 질문을 받고 경영진이 답하며 소통하지 않은 점도 유감스러운 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회사의 일방적인 통보'를 문제로 지적했다. 소통과 합의, 과정이 중요한 것은 다 안다. 그런데 왜 제대로 안되는 걸까? 혹시 재택근무 종료에 구성원들이 반발하는 이유를 '적당히 놀면서 대충 일하고 싶어서'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지는 않은가? '출근은 당연한건데, 이걸 설득을 해야 한다고?' '우리 회사 직원들은 안돼, 옆에서 지켜봐야 일을 하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경영진이 어떤 생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구성원들도 다 안다. 티가 나니까. '재택근무 종료' 이면에 이런 마음이 느껴지니 문제라는 얘기다. 경영진이 구성원을 동료로 인정하고 믿고 신뢰할 때, 구성원 역시 경영진을 믿고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가 망하길 바라는 구성원은 없다. 올해는 조금 더 섬세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우리의 답은 결국 우리 안에 있을 테니 말이다.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직장생활 이야기
뉴스레터로 받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