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직장인 10명 중 4명은 물경력 위기...해답은?

[커리어 심폐소생 Q&A] 정구철 헤드헌터가 말하는 물경력 시그널

2023. 09. 25 (월) 17:13 | 최종 업데이트 2023. 09. 26 (화) 15:22
얼마 전 ‘물경력 자가진단 테스트’를 통해 내 커리어의 현주소를 진단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기억하고 계신가요? 

물경력은 커리어 성장이 정체됐거나 인재로서 매력도가 떨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업무 난이도, 전문성, 희소성 등 다양한 기준으로 물경력 여부를 판단할 수 있죠. 그렇다면 9월 12일부터 20일까지 9일간 물경력 자가진단 테스트에 참여한 3508명의 직장인들은 과연 어떤 결과를 받아들었는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볼까 합니다.

더불어, ⟪이직의 정석⟫ 저자인 정구철 헤드헌터와 함께 직장인들의 고민을 살펴보고 물경력 위기에 빠진 커리어를 심폐소생하는 방법에 관해 대화를 나눠봤어요. '혹시 나도  물경력인가?', '어떻게 이직하지?'라는 고민을 지닌 분들이라면 오늘의 이야기에 집중해주세요!
⭐잠깐! 아직 물경력 자가진단 테스트 전이라면?⭐
☞"설마 나도 물경력...?" 당신의 물경력 위험 레벨은
◇ 직장인 10명 중 4명 이상 ‘물경력 주의·위험군’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커리어로 인정받으려면 쉽게 대체되지 않는 역량을 지녀야 합니다. 업무의 퀄리티가 확실히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건데요. 이번 물경력 자가진단 테스트에는 ‘신입사원에게 일을 한두 달 가르쳐주면 나와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 같은지’를 묻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을수록 물경력에서 안전하다는 뜻이겠죠. 테스트 결과에서 '아니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40.1%로 절반이 채 되지 않았어요. ‘약간 그렇다’는 응답은 35.7%, ‘매우 그렇다’는 24.2%로 나타났습니다. 

늘 똑같은 업무를 반복해서 수행하는 경우, 성장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물경력으로 흘러가기 십상인데요. 자가진단 참여자 중 단 23.2%만이 똑같은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고 응답했습니다. 

물경력을 판단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은 '성과'입니다. 의미있고 임팩트가 큰 성과를 낼수록 커리어 매력도가 높아져요. 테스트 항목 중 ‘본인의 업무성과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라는 문항에서는 10명 중 6명이 ‘그렇다(56.9%)’고 답했어요.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건 물경력 위험성이 커졌다는 걸 의미해요. ‘아니다’라는 답변은 43.1%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커리어 강점이 없다면 이직 시장에서 나만의 포지션을 구축하기가 어려운데요. 다행히 '내 커리어 강점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항에서 63%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어요. 강점을 알고 있고 설명할 수 있다면 채용하려는 회사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인 한 가지가 더 늘어났다는 뜻이겠죠. 

그럼, 직장인들의 물경력 레벨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물경력 가능성이 가장 큰 '물경력 위험군'은 19.5%, 그 다음으로 '물경력 주의요망'은 26.7%으로 나타났어요. 괜찮은 경력을 쌓아온 '커리어 안전지대'는 36.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요. 23.2%는 물경력과 가장 거리가 먼 '파워불경력'으로 진단 받았어요. 
◇ '이럴 때' 본인의 커리어 점검해 보세요

테스트 결과 '물경력 위험군'과 '물경력 주의요망'이 나온 46.2%, 그러니까 직장인 10명 중 4명 이상은 물경력 위기에 처해있다는 건데요. 그럼에도 개개인의 커리어를 세심히 들여다보면 자신만의 경쟁력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결국 커리어를 어떻게 어필하는가 관건인데요. 대이직의 시대가 도래한 이때, 물경력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정구철 헤드헌터에게 물었습니다.


- 물경력을 걱정하는 직장인들이 무척 많은데요. 사람마다 단어의 정의가 다를 수 있으니,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헤드헌터님은 어떤 걸 '물경력'이라고 생각하세요? 

본인의 직무 전문성이나 이직 가능성을 고려해봤을 때 뾰족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경우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뾰족하지 않다는 것은 차별화 된 지점이나 특화된 역량이 없다는 의미이고요. 날카롭지 않다는 것은 경력에 비해 특별히 전문성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를 말해요.

현재와 동일한 직무로 이직을 하려고 할 때, 채용공고를 보면 JD(Job Description, 직무요강)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본인이 해당 직무로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JD에서 요구하는 경험을 수행하지 않아서 경력기술서에 적을 내용이 없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케이스를 물경력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직할 때 본인이 어떤 포지션으로 지원해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하는 케이스도 물경력에 해당할 수 있어요. 예컨대 한 회사에서 인사, 회계, 총무 등 다양한 일들을 해보긴 했지만 경험치가 애매해서 셋 중 어떤 직무에도 지원하기가 어려운 경우죠.


- 물경력 자가진단 테스트는 13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이 가운데 커리어에 가장 치명적인 것을 하나만 꼽아주신다면요?

‘신입사원에게 일을 한두 달 가르쳐주면 나와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본인의 커리어를 판단할 때 가장 크리티컬한 요소가 될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일은 숭고하고 가치가 있지만,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에 따라 커리어의 희소성과 전문성이 나뉘거든요. 

신입사원이 비교적 단기간 내에 나와 비슷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한다면, 커리어상으로는 물론이고 회사생활을 지속하시기에도 다소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례로,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수명업무와 단순 취합업무 등은 시간이 지나면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니까요. 연차 수준에서 기대되는 역량은 물론, 다른 이들과 구별될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과 차별성을 키워가야겠죠.


- 헤드헌터로서 공고에 적합한 인재를 찾을 때 어떤 케이스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시는지 궁금해요.

이직하시는 분들의 정답지는 결국 채용공고(JD)라고 생각해요. JD를 꼼꼼히 보시면 해당 포지션으로 입사 시 하게 될 업무가 적혀 있거든요. 지원자격과 우대사항도 적혀있고요. 그 내용에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질 때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껴지죠. 직무적합도가 높은 것이니까요. 최소 조건이 충족된 후에야 근속연수, 재직중인 회사의 네임밸류, 학력 등을 순차적으로 보게 됩니다. 


- 경력기술서에 경험한 업무 내용을 포괄적으로 두루뭉술하게 적는 분들이 있고, 아주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적는 분들도 있는데요. 후보자를 가려낼 때 어떤 유형이 좀 더 눈에 띄나요?

채용사이트나 헤드헌터를 통해 이직 제안을 받는 경우에는 포괄적인 경력기술서가 오히려 더 많은 기회(오퍼)를 얻을 수 있어요. 다양한 직무, 산업에 적용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제안을 넘어 특정 회사에 채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채용공고에 맞게 본인 경력을 카테고라이징하고 뾰족하게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매일 업무에 치이다보면 본인의 커리어를 되돌아 볼 여유가 없는데요. 물경력으로 접어들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챌 수 있는 시그널이 있을까요?

경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잦은 보직 변경은 좋지 않은 시그널이 될 수 있어요. 물론 회사에서 본인의 역할이 확장되는 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요. 문제는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경험을 쌓기도 전에 보직이 바뀌어버리는 상황이에요. 

사내에서 인정 받아서, 혹은 단순히 T.O가 안 메워져서 등 보직 변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인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커리어 방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다음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장없이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일만 계속해서 담당하게 된다면 물경력 시그널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사실, 중요한 업무도 반복적으로 수행하게 될 수 있거든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업무를 반복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회사생활은 다소 힘들 수도 있지만 발전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의미없는 업무를 반복하다보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뿐더러, 일의 의미를 찾을 수도 없습니다. 응당 이직할 때도 어필할 만한 경험이 쌓이지 않게 되겠죠. 


- 직장인 개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긴 하겠지만, 경력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보편적인 직장생활 팁이 있을까요?

이건 제가 대기업에서 일할 때의 경험에 비추어 답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직생활을 해보면 모두가 느끼시겠지만, 처음부터 비중이 있거나 중요한 업무를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되레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는 고되고 힘든 업무를 맡게 될 순 있죠. 

그런데 사소한 일, 혹은 힘든 일을 해야만 하는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주어지는 기회의 폭이 달라져요. 제가 신입사원 1년 차일 때, 해외 영업부서에서 일했는데요. 팀원 모두 해외에서 10년 이상 근무하셨던, 영어가 매우 유창한 분들이었어요. 저는 국내파였고, 2년 차까지는 일을 제대로 못해서 매일 같이 꾸지람을 듣고, 밤새 야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을 잘 버티니까, 그 이후에는 여러 기회들이 왔고, ‘배울 의지가 있네?’, ‘ 책임감이 있네?’하는 좋은 평판이 생겼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그 부서의 팀장, 선배들이 제 커리어의 고속도로가 되어주었어요.

저연차일 때 하찮게 느껴지고 하기 싫은 일들을 얼마나 성심껏 감당하느냐, 그리고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이성적으로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대응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기회도 손에 쥘 수 있는 거죠.


- 물경력 테스트에 참여한 분들이 가장 많이 질문해주신 내용인데요. 반복 업무로 인해 커리어 성장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땐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정 기간까지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할 때도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잘해내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취합업무도 남들보다 탁월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그러고 나서 ‘다른 업무도 제가 같이 해볼 수 있을까요?’ 이렇게 어필해보는 거죠. 이게 통하면 그 안에서 커리어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고, 만약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는 게 좋겠죠. 

제가 여러 사례를 살펴본 바로는, 보직 변경이나 직무 확장은 이직을 통해서 되는 것보다 오히려 현직장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아요. 이직은 철저히 '경력'이라는 재료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직무를 변경하는 데 필요한 실력이나 명분을 어필하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내부에서는 회사를 잘 아는 것. 즉, 사내 시스템을 경험해보고 조직문화를 이해하는 측면 만으로도 보직 변경이나 직무 확장이 수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거든요. 이또한 쉽지 않다면 이직이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리고요.


- 성과를 정량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직무는 경력을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분들도 많아요.

영업이나 마케팅, 개발 등의 직무는 명확하게 매출 신장률, ROAS 달성률 등으로 성과를 쓸 수 있지만 회계나 인사, 재무 등의 사무 직군은 상대적으로 성과를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직무는 월, 반기, 연간의 루틴대로 프로세스를 진행해본 것 자체가 경력이 됩니다. 

즉, 해당 직무에서 요구되는 필수적인 업무를 얼마나 깊이 있게 수행해봤는지, 프로세스를 설계해보거나 업무상 문제를 개선해봤는지 등을 어필할 수 있겠죠. 다만, 팀의 성과를 너무 무리하게 본인에게 적용하여 경력을 설명하하다보면 오히려 과대 포장이 될 우려가 있어요.
- 업무 범위가 너무 넓고 일관적이지 않아서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 것 같다고 고민을 토로하는 분도 계신데요. 

질문주신 분의 디테일한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단편적인 질문만 보고 답변을 드리자면요. 재직중인 회사의 규모가 작은 경우라면, 동일 규모 회사 혹은 한 단계 상향 기업으로 이직할 때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대기업은 업무 영역을 세부적으로 쪼개서, 개개인이 한 영역을 깊게 다룹니다. 그런데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을 보면, 1명이서 넓은 영역을 다방면으로 다루게 돼요. 이런 형태의 회사에서는 멀티플레이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 범위가 넓고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해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해요. 

오히려 이런 기업의 경우, 대기업에서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세부적인 업무만 진행해 온 직장인을 좀 답답하게 느낄 수 있어요. 회사의 전체적인 생리에 따라 제 역할을 확장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큰 장점을 지닌 것입니다. 아울러 본인 직무만이 아닌, 다른 직무에 대한 이해를 보유한 것 역시 커다란 장점이고요. 만약 마케팅 업무까지 맡고 있는 디자이너라고 한다면, 회사 전체의 매출적인 관점에서 디자인을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 한 직장에서 너무 오래 일해서 물경력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에는 어떤 답변을 줄 수 있을까요?

한 회사에 오래 다니신 분 중 이직을 고민하시는 분께 제가 오히려 이직을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분들은 대부분 사내에서 장기근속하는 동안 순환근무를 통해 여러 부서를 경험하게 되는데요. 본인이 고민하실 때나 이력서 상 내용만 보면 앞서 말한 물경력 케이스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죠. 

그런데 사실 내면을 들여다 보면, 회사로부터 비즈니스를 다방면으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계속 얻은 케이스인 경우도 많아요. 회사 안팎으로 네트워크도 탄탄하게 쌓였을 거고요. 나중에 임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베이스를 다지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계속 다니시라 권해드리죠. 


- 마지막으로, 스스로 물경력이라 느껴질 때 어떻게 해야 이직이 좀 더 수월해질 수 있을까요?

일단 내가 싫어하는 업무에서 도전하고 성과를 내보는 게 첫 번째가 아닐까 싶어요.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영역이 있는데, 일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이 일을 좋아하는지, 본인에게 맞는지 알기 위해선 일단 몸으로 전심을 다해 부딪혀봐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 업 안에서 내가 싫어하는 일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어요. 지금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는 거죠. 최선을 다해야만 취할 수 있고, 반대로 후회 없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본인이 판단할 때 뾰족한 차별점도, 날카로운 전문성도 없는 물경력이라고 여겨진다면, 한 번은 뿌리를 내리는 시기를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이직을 분갈이에 자주 비유하는데요. 최적의 분갈이 시점은 화분 안에 뿌리가 꽉 차서 더이상 이 화분에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입니다. 어떤 식물도 허공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은 없습니다. 한 번은 진득하게 뿌리내려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힘을 기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지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