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삶의 고비에 기댈 곳 하나 더해줄, 작가의 고백록

[인터뷰]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한동일 작가

2023. 11. 15 (수) 15:21 | 최종 업데이트 2023. 11. 16 (목) 09:04
당신의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있는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보자. 밤낮없이 공부한 학창 시절.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끝일 줄 알았건만 어느새 취업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해 모든 것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또다시 직장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산행길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힘들 줄 알면서 한 걸음 내디뎌 오르는, 그 길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 숨이 차오르기도, 거대한 바위를 만나 한참을 돌아가야 하기도 하지만, 그 뒤에 펼쳐질 아름다운 풍경과 성취감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힘들 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기댈 곳 하나 정돈 마련해 둬야 살만하지 않을까? 벼랑 끝에서 붙잡을 밧줄처럼, 짓무른 발을 치료해 줄 연고처럼, 지친 몸을 일으켜 줄 초콜릿 한 조각처럼 마음을 기댈 곳 말이다.

어느 작가의 기댈 곳이 되어준 건 ‘책 속의 문장’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저를 일으킨 제 인생의 라틴어 문장들을 여기에 모아둡니다. 잠언처럼, 기도처럼, 혼잣말처럼 제 마음이 힘들 때마다 입 안에 넣고 굴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문장들입니다.”

한동일 작가의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삶의 고비마다 되새길 ‘한 문장’을 만난다. 누군가는 그 문장을 타투로 몸에 새기고, 누군가는 필사를 통해 가슴에 새긴다. 한동일 작가는 삶의 고비마다 버티게 해준 문장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책의 이름은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그는 이 책에서 철학적 단상과 지난날에 대한 고백이 터져 나오는 문장들을 모았다고 전한다.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사진=컴퍼니타임스)
방황하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을 위한 안내서
한동일 작가는 지난 2017년 ≪라틴어 수업≫을 출간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그였지만, 단순히 작가로만 소개하기엔 소개가 부족하다.

그는 한국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로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로 지냈다. 교수로서 청년들과 만났고,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한 라틴어 수업은 타교생까지 청강하러 찾아오는 최고의 명강의로 꼽혔다. 이 현장 강의를 책으로 펴낸 것이 ≪라틴어 수업≫. 21년간 몸담았던 천주교의 사제직을 내려놓으며 이제는 ‘공부하는 노동자’로서, 작가로서 삶의 지혜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2023년 10월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을 출간했다.
한동일 작가를 만나기 전, 이력으로 본 그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을 연상케 했다. 20년 이상 몸담은 사제직과 변호사, 교수라는 수식어까지.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가니 우리네 삶과 다름없는, 한 사람의 치열한 고독과 연약한 마음을 들여다보게 됐다. 무너질 때도 있고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온 그의 이야기에 절로 공감하게 된다.

<컴퍼니 타임스>에도 매일 수많은 직장인의 고민이 도착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상사와의 갈등,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번아웃까지. 그의 솔직한 고백이 모든 직장인의 반딧불이 되길 바라며,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여름 진행한 북토크 후 1년 만의 재회다. 먼저 근황을 나눴다.

“지난 1년간은 크게 지쳐있었어요. 번아웃이란 게 오더군요. 남들은 이럴때 ‘여행이라도 다녀와’라고 권유도 하셨지만 여행도 계획을 짤 힘이 있어야 다녀오니까 머뭇거렸죠.

그때 멀리서 살고 있는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종종 받았습니다. 제겐 스페인에 19살부터 알고 지내온, 신부 일을 하는 친구가 있어요.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 애써 ‘괜찮다’라고 말했는데 티가 났나 봅니다. 스페인에 한 번 오라는 말에, “내가 비용은 다 댈 테니 계획만 짜달라”고 했죠.(웃음) 그 친구의 “알겠다”는 말만 믿고 스페인에 다녀왔어요. 그곳에서 많이 걷고, 많이 자면서 회복의 시간을 보냈네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주치의 선생님께서 ‘3개월은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지난 1년은 여행하고 쉬며 보낸 것 같습니다.”

한동일 작가와의 만남 (사진=컴퍼니타임스)
인터뷰 내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얼굴과 달리 지친 1년을 보냈다는 한동일 작가. 그런 그가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의 작가로 독자들 앞에 다시 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짐작건데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건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1년의 웅크림 속에서 완성된 이번 책에서 그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자 했는지 물었다.

“한 친구가 제게 이런 요청을 해왔습니다. '파스칼의 『팡세』 같은 명작을 하나 남겨다오'라고요. 저는 '내가 어떻게 팡세같은 책을 쓸 수 있니?'라고 대답했어요.

『팡세』는 전쟁 속에서 프랑스 병사들에게 성경만큼이나 많이 읽혔던 책입니다. 그 친구는 제게 지금쯤 방황하는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을 한 권을 써보라고 한 거였어요. 비단 젊은 사람들뿐 아니라 40대가 되어도 50대, 60대가 되어도 인간은 늘 방황하고 갈등하며 살아가니까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이후 출판사 ‘이야기장수’의 이연실 대표와 가볍게 만난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오더군요. 이런 내용으로 A4 용지 40장 분량의 짧은 책을 하나 쓰면 어떻겠냐고. 그렇게 요청을 거듭 받고 이 대표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책을 한 권 다시 쓰게 됐어요. 방황하는 이들을 위해 힘이 되어줄 그런 책을.”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은 삶의 정석 같다. 풀이가 막힐 때마다 원론으로 돌아가 해법을 보기 위해 펼쳤던 수학의 정석처럼, 절망의 한복판에 있을 때, 인간관계에 상처받았을 때 그러나 다시 꿈을 꾸고자 할 때 이 책을 펼치면 용기와 해법이 되어줄 라틴어 문장 하나를 만난다. 그리고 그 문장 옆에서 한동일 작가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누군가의 진실된 고백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이 책은 라틴어 문장과 함께 저의 고백과 짧은 생각이 더해졌습니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저의 솔직한 생각도 등장하지요. 사실 처음부터 이런 형태는 아니었어요. 처음엔 책 분량도 짧았고요. ‘내 고백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연실 대표는 오히려 저의 경험담을 담은 진솔한 고백에 더 많은 위로를 받으실 거라고 하더라고요. 책이 나와보니 그 말이 틀리진 않았더군요. 책이 나온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는데,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의 고백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요.” 이 말을 마친 그는 독자가 남긴 한 편의 문자를 보여줬다.
"이제껏 많은 책을 읽었는데 이번 책이 ‘백미’라고 느껴져요.
모든 걸 털고 일어나 완전한 자유로 나아가는 용기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축하드립니다."
그는 이번 책을 낼 수 있었던 건 좋은 사람과 작업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우리 시대에 대단한 편집자들이 많은데 저는 그 가운데 두 대편집자와 작업한 운이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한 명은 ≪라틴어 수업≫의 김수진 편집자이고, 다른 한 명은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의 이연실 편집자입니다."

한동일 작가는 앞서 말한 두 책을 쓰기 전 “카르페 라틴어 한국어 사전” “법으로 읽는 유럽사” “교회 법률 용어사전”과 같은 학술적인 책을 주로 집필해 왔다. 그래서 이번 책은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책 속에는 외로움, 가정사, 가난, 외로움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고통에 가까웠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저의 이야기를 고백할 수 있었던 건, 제게 더 이상 아픔으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속 아픔으로 남아있다면 털어놓지 못했을 거예요.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가난의 문제가 어려운 건, 현재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지금 가난한 사람의 문제를 다루니까 그렇다고요.

하지만 아픔은 가난과는 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아픔은 아문 사람 역시도 현재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책을 통해 써보고 싶었어요.
나의 가족사와 가정환경이 아름다운 배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가르침은 제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가족과 사는 집을 남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공개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 분명 운명은 두려워하거나 감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지고 가기 위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 순간과 떳떳이 밝혀야 하는 결정적 순간이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운명은 사는 동안 내내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수치심도 허세도 없이. 허튼 곳에 흘리지도 않고, 괜스레 남몰래 꽁꽁 묻어두지도 않으면서.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中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中  (사진=컴퍼니타임스)
후회없는 삶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동일 작가는 21년간의 사제직을 내려놓은 뒤 소속감 없이 방황하며 10대, 20대 때 겪지 못한 경험을 50대가 되어서야 했다고 전한다. 이 책 역시 그런 가운데 쓰였다고. 1~2년 다니던 직장을 이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평생을 바쳐 일한 곳에서 매듭을 짓고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는 건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과 같았을 터. 그에게 두려움 없이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내리는 방법이 있냐고 물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젊은이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사회적으로도 성공하셨고 많은 것을 이루셨는데, 앞으로 무엇을 남기고 싶으신가’라고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남기고 싶은 것은 없고,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은 있다”고. 그건 바로 후회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후회가 없을 정도로 멋진 삶을 살았냐고 물으시겠죠. 그건 아닙니다. 저 역시도 지금까지 많은 후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어요.

우리는 ‘~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를 많이 하고 살아가지요. 그러나 후회하기 앞서 어떤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아도 앞으로 나아가자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많은 고통과 힘듦이 있겠지만, 결국 그 과정도 반드시 끝이 있거든요. “여기까지, 여기까지”라고 자신에게 한계를 지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선택에 대한 끝을 봐야 합니다.

성장을 향해서 달려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점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목표에 가까워진 건 아닌가 살펴보셔야 해요. 기차를 상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우실 거예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했을 때, 부산역에 가까워질수록 기차는 점점 느려지잖아요. 우리 삶도 마찬가지예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면, 오히려 내가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가 아니라고 한다면 자신의 상황을 똑똑하게 볼 수 있어야 해요. 내가 어떤 상태인가 ‘식별’할 수 있는 능력도 살아가며 필요합니다. 제가 책에서 '보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2022년 잡플래닛 북콘서트에서 청년들과 만난 한동일 작가 (사진=컴퍼니타임스)
그는 변화의 첫 시작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에 있다고 말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자신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터널의 끝까지 걸어갈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외부로 시선을 돌리며,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적은 시대에 살고 있다.

“SNS가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면서 어느 때보다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SNS를 통해 보여주는 것마저 진짜가 아닐 수 있고, 진짜 행복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지금이야말로 공부를 통해서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능력을 필요로 할 때 ‘내가 무엇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인가?’ 되물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책에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독립하라(Alterius ne sit, qui suus esse potest). 이 문장은 독립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 속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어라는 의미지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게 아닌, 나만의 유별남을 발견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별나다’라는 그리스어 ‘아토피아’는 ‘설 자리가 없다’라는 뜻이에요. 다시 말하면 진정한 독립이란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설 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인 거죠. 여러분이 두려움을 뚫고 그럼에도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한동일 작가는 그의 또 다른 저서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에서 현시대의 청년들에게는 방황과 시행착오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고 바라봤다. 그러나 방황과 시행착오의 시기가 주어진다 한들, 모두가 지혜롭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그가 50대가 되어 젊은 시절 겪지 못한 방황을 겪은 것처럼, 방황은 누구에게나 불현듯 다가올 수 있다. 우리는 방황의 시기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보낼 수 있을까?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가슴에 품어야 할까?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저마다 “마음의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단순하고 명쾌한 그의 대답에 작가님의 ‘마음의 당’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저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두꺼운 벽을 치고 살아오기도 했죠. 그때마다 신기하게 주변 사람들이 그 벽을 넘고 제게 다가와 주더군요. 그분들 덕분에 제가 쌓은 벽을 허물 수 있었습니다. 그때 힘이 되어줬던 사람들은 제게 그리 많은 질문을 하진 않았어요. “너 뭐가 그렇게 슬프니?”라고 묻지 않았다는 거죠. 그저 저의 옆을 묵묵히 지켜주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방황의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한동일 작가와의 만남 (사진=컴퍼니타임스)
“삶이 힘들 때, 당신만의 진공관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독자에게 어떤 책이 되길 바라는가 물었다. 그는 '진공관'이라는 단어에 빗대며, 책 속의 문장을 꺼내 들었다.

“작가로서 ‘이 책 정말 좋았어요’라는 말씀을 해주실 때도 물론 행복합니다. 다만 더 큰 바람이 있다면, 숨이 헐떡헐떡할 정도로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이 이 책을 읽고 힘이 되었다는 말을 건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도 이런 문장을 적었습니다. ‘모든 책이 선생이 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선생이 되어줄 인생 책은 세상 어딘가에 꼭 있습니다’라고요. 제가 힘들었던 시기에 진공관에 갇힌 듯 보냈던 무수한 시간처럼, 이 책이 그런 시간을 선물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와 말하고 있지 않아도 시끄럽고 소란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빠르게 반응하고, 쉽게 휘청거린다. 그가 말하는 진공관이란 나를 오롯이 독대하는 시간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가 세상과 단절돼 자신을 연마하던 지난날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정적 속에 나를 담금질해야 한다는 조언이 아닐까? 

“지난날을 돌아보면 공부하는 것 자체도 무척 힘들었지만, 외적인 요인이 저를 너무나 힘들게 했습니다. 저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따라다녔지요. 사제직을 그만두기 전까지도 그랬습니다.

그때의 괴로움은 마치 파편 같았어요. 지구의 궤도에는 수많은 인공위성이 있죠. 그 주변에는 충돌해서 생긴 파편과 잔해물이 떠다니고요. 무수히 많은 점처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떠다니는…. 그런 파편이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 그만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때마다 저는 진공관 속에 저를 넣었습니다. 희망 그리고 절망을 함께. 진공관 속에 저를 넣는 그 시간만큼은 희망도 절망도 없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차단의 시간을 겪고 진공관 밖을 나왔을 땐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죠. 극도로 몰입한 뒤의 고요함 같달까요.

이 책이 여러분께 진공관 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책을 읽는 짧은 순간만이라도 희망과 절망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나를 밀어 넣어, 나의 사고를 바꿀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라는 한 문장을 전했다. 인생에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찾아온 아픔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기쁨과 환희, 성취와 갈채만이
나의 스토리가 된다면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거룩하기는 어렵습니다.
좌절과 아픔까지도 내 것, 내 인생입니다."
이번에 만난 한동일 작가는 자신의 아픔을 글로 표현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한 권의 스토리가 된 것이다.

그의 여정처럼 우리 모두 고비 앞에서 나만의 기댈 곳을 찾을 수 있길, 지금 고통의 시간을 걷고 있다면 이 역시도 소중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 믿으며 힘차게 나아갈 수 있길 바라본다.

한동일의 라틴어 문장 中 (사진=컴퍼니타임스)
장경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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