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대표님의 섹시댄스가 시작됐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뒤에서 춤을 춥니다.
우리 회사에는 아마도 다른 회사에는 없을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댄스 배틀’. 이 회사에 들어와 처음으로 배운 것은 업무도 뭣도 아닌 ‘춤’이었는데요. 무슨 얘기냐고요? 출근 첫 날 얘기부터 들려드릴께요.
출근 첫 날, 환영 회식을 앞두고 부서 선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신입씨 춤은 좀 춰요?”
의아했죠. 업무와 춤은 전혀 관련이 없었거든요. 이유는 잠시 후에 알게 됐습니다.
“신입씨, 우리 회사 전통 알죠? 회식 때 장기자랑 해야 하니까 제대로 준비해줘요.”
팀장님이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신입생 장기자랑’이라는 회사 전통이 있더군요. 신입들은 전 직원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기자랑이라니…대학교 신입생 MT에서도 안 했던 장기자랑을 회사에서 할 줄이야. 생각도 못해본 일이지만 어쩔 수 있나요, 회사 전통이라는데. 그날부터 일주일을 꼬박 장기자랑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아마도 직원들 간 화합과 친목 도모를 위해서…겠지?’ 정도로 좋게 좋게 생각을 했죠.
드디어 회식 날, 테이블 위로 엄청난 술 잔이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장기자랑이 시작됐습니다. 신입들이 돌아가며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장기자랑이 무사히 마무리됐을 때 쯤, 이제 다 끝났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쯤, 갑자기 클럽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대리, 이제 이 대리가 한 곡 춰야지?”
대표님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직원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대표님의 지목을 받은 선배들은 익숙한 듯 무대로 올라 춤을 췄습니다. 이게 도대체 뭔가 싶어 춤추는 선배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대표님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섹시 댄스를 추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이거 지금 대표님과 직원들이 부비부비 중인거 맞나? …회식에서? 대표랑 직원들이랑?’
제가 생각했던 회사 회식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상상 범위를 넘어선 광경에, 지금 회사 회식 중인지 나이트클럽에 온 것인지 혼란스러운 정신을 붙잡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옆구리를 쿡쿡 찔렀습니다.
“신입씨 뭐하고 있어요? 올라가서 대표님 도와드려야죠. 아, 이런 것까지 가르쳐줘야 하나?”
주변을 둘러보니 남자 직원들은 모두 무대에 올라 대표님 옆에서 춤을 추고 있더군요. 저 역시 그렇게 얼떨결에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날부터였습니다. 대표님이 춤을 출 때면 백댄서가 되어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알고 보니 대표님이 워낙에 춤을 좋아해서 회식이면 댄스 배틀이 열리고, 직원들의 춤 사위에 대표가 섹시 댄스로 화답하는 것이 회사의 전통이었습니다. 워낙에 섹시 댄스를 좋아하는 대표님인지라, 대표가 춤을 출 때면 몇 안되는 남자 직원들은 대표님의 무대를 도와드려야 했죠.
당연히 못하겠다고 빼기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춤을 못 춘다고 하니 사회생활 제대로 못한다며 핀잔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있는데 그렇게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그러니 어쩝니까 추라면 춰야지….
그렇게 오늘 회식의 피날레도 대표님이 장식 중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뒤에서 춤을 춥니다. 지금 제가 뭐하고 있는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가네요. 아 정말…. 먹고 살기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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