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
인터뷰
대기업 상사맨, ‘레게대장’ 스컬과 엔터회사 차린 이유
[일하는사람들을위한책] <기획자의 탄생> 조성후 사자레코드 대표
2024. 04. 22 (월) 15:43 | 최종 업데이트 2024. 04. 23 (화) 14:39

‘기획 정말 어렵다…’
직장인 서너명 모이면 꼭 한 번씩 나오는 일 얘기 중 하나죠. 꼭 직무명에 ‘기획’이 내걸리지 않아도, 어찌보면 회사 생활하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모두 다 기획인 셈인데요. 꼭 ‘이거다!’ 싶은 것들 찾아보면 누군가 이미 해놓은거라 한 발짝 늦었네 싶고, ‘이번엔 되겠지!’ 싶은 것들은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탁월한 한끗 없이는 ‘정말 쉽지 않구나’ 싶은 순간들입니다.
그런데 매주 스치는 주말, 단 하루라도 알차게 혹은 일년에 한 번 뿐인 해외 여행 놓치지 않고 꼼꼼히 계획 세우는 분들 많잖아요. 따지고보면 우리가 ‘계획’이라고 일컫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다 기획이라는 사실! 그럼 회사에선 머리 동동 싸매 고민해도 풀리지 않는 것들 투성인데 회사 밖 일상을 기획하는 데에는 서슴없는 우리에겐 뭐가 필요할까요?
이번에 <기획자의 탄생> 이라는 책을 펴낸 조성후님을 만나 그 전략이 뭔지 물었어요. 삼성물산 재직 시절, 다양한 이력으로 사내 방송은 물론 매체에도 이름을 올리며 스타로 불리던 성후님은 그렇게 잘 다니던 회사를 돌연 퇴사했는데요. 이내 국내 최초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 힙합 아티스트 스컬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렸어요.
어디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나 싶어 동공지진 중인 눈동자, 여기 딱 붙들어 놔주세요. “편안함을 버리고 내 위치를 스스로 바꿔보면 만들어내는 가치가 달라집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를 통해 자신이 주도적으로 헤쳐 나간 인생 이야기로 이뤄낸 기획자로서의 삶을 엿보고 왔습니다.
직장인 서너명 모이면 꼭 한 번씩 나오는 일 얘기 중 하나죠. 꼭 직무명에 ‘기획’이 내걸리지 않아도, 어찌보면 회사 생활하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모두 다 기획인 셈인데요. 꼭 ‘이거다!’ 싶은 것들 찾아보면 누군가 이미 해놓은거라 한 발짝 늦었네 싶고, ‘이번엔 되겠지!’ 싶은 것들은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탁월한 한끗 없이는 ‘정말 쉽지 않구나’ 싶은 순간들입니다.
그런데 매주 스치는 주말, 단 하루라도 알차게 혹은 일년에 한 번 뿐인 해외 여행 놓치지 않고 꼼꼼히 계획 세우는 분들 많잖아요. 따지고보면 우리가 ‘계획’이라고 일컫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다 기획이라는 사실! 그럼 회사에선 머리 동동 싸매 고민해도 풀리지 않는 것들 투성인데 회사 밖 일상을 기획하는 데에는 서슴없는 우리에겐 뭐가 필요할까요?
이번에 <기획자의 탄생> 이라는 책을 펴낸 조성후님을 만나 그 전략이 뭔지 물었어요. 삼성물산 재직 시절, 다양한 이력으로 사내 방송은 물론 매체에도 이름을 올리며 스타로 불리던 성후님은 그렇게 잘 다니던 회사를 돌연 퇴사했는데요. 이내 국내 최초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 힙합 아티스트 스컬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렸어요.
어디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나 싶어 동공지진 중인 눈동자, 여기 딱 붙들어 놔주세요. “편안함을 버리고 내 위치를 스스로 바꿔보면 만들어내는 가치가 달라집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를 통해 자신이 주도적으로 헤쳐 나간 인생 이야기로 이뤄낸 기획자로서의 삶을 엿보고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힙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자레코드’ 대표 조성후라고 합니다. 저희 소속 아티스트로는 한국 레게 장르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스컬과 쿤타, 식보이가 있고요. 지난해 엠넷 ‘쇼미더머니’ 시즌 10 우승자인 래퍼 조광일의 합류로 총 4인의 아티스트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요. 또 많이들 아시다시피 스컬은 저와 함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제 혈육이기도 합니다.(웃음)
-이번 저서 <기획자의 탄생> 서두에서 ‘회사원으로 살 것인가, 기획자로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셨어요.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 후 자신의 사업을 꾸리기까지, ‘기획’에 대한 성후님의 노하우가 담겼다고요. 노하우를 듣기 전, 문득 성후님의 지난 커리어 여정이 궁금해지는데요.
맞아요. 저도 과거에는 여러분과 같은 회사원이었어요. 저를 소개하면서 회사원으로서의 ‘조성후’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삼성물산 상사부문에 입사했는데요. 2005년 입사해 2014년 말까지 꼬박 10년을 다녔죠. 정말 재밌게 회사생활했어요. 일하는 것, 그 자체가 즐거웠죠.
삼성물산 상사부문은 다양한 사업분야를 다루고 있는데요. 철강, 에너지, 화학 등 수백억이 넘는 수주액을 다루는 프로젝트들도 있지만, 저는 그 안에서 좀 더 주도적으로 업무할 수 있는 영역이 뭘까 고민했어요. ‘언젠가 꼭 내 사업을 꾸려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삼성물산이 다루는 분야 중 소재 분야는 작게는 생활 소비재부터 시작해서 광물, 산업소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원재료 소싱을 담당하는 영역인데요. 저는 ‘이게 딱이다!’ 싶었어요. 덕분에 인도에서 1년, 아프리카에서 4년 정도 일했어요. 아프리카에선 말라리아 한 번, 장티푸스 한 번씩 걸리면서 녹록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회사생활에 대해 한마디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진짜 ‘찐’ 경험 제대로 했다는 겁니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게 그려진다고 하잖아요. 지나간 과거의 회사생활이라 좋은 기억만 남은 것은 아닐까요? 회사생활하며 어떤 것이 가장 만족스러웠나요?
물론 매일같이 반복되는 출퇴근, 사람들 사이에서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부단한 노력 등 모든 게 매번 쉬웠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여기에 더해 제가 진행한 모든 프로젝트가 다 승승장구해서 좋은 기억만 남았다는 것도 아니고요. 실제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을무렵, 제가 주도한 프로젝트에서 규모 큰 장비를 대거 사들였다가 크게 손해 보고 팔았을 때는 정말…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추억이랍니다.
근데 이렇게 위기에 놓였을 때 회사 내 다양한 부서와 유기적으로 협업해보고 일이 제대로 되게끔 만들어가는 과정을 직접 겪어 보는 건 정말 값진 일이에요. 나중에 사업을 직접 운영했을 땐 대기업처럼 각 부서가 나눠서 하던 일도 모두 다 내가 직접 해내야 하는 걸테니까요. 그래서 ‘이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면 오롯이 내 것이 될 값진 경험’이라 새기며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훗날 내가 직접 사업을 꾸리며 벌어질 사건·사고들을 미리 예행 연습한다고 생각했죠. 진짜 내 사업처럼 몰입해서 수많은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회사 재직시절, ‘이건 진짜 제대로 한 건 했다’ 싶은 기획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당시 회사에서 ‘지역전문가 코스’를 지원받아 인도에 머물렀는데요. 이게 뭐냐면 ‘차세대 글로벌 비즈니스 전문가’를 양성하는 코스거든요. 저도 당시 인도에 파견된 후 앞으로의 사업 확장을 위해 어떻게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인맥을 쌓을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어요. 그렇다면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내 무기는 무엇일까 치열하게 고민했죠.
저는 어려서부터 태권도, 검도를 오래해서 유단자 자격을 갖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선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쉽게 배울 수 있잖아요. 인도에선 그때만해도 대중화된 스포츠가 아니어서 상류층만 비싼 교습료를 내며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머물던 뭄바이에 단 하나 있는 태권도장 환경도 정말 열악했고요. 그렇게 제 발로 태권도장에 찾아가 기술 지도를 돕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 줬어요. 그 후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며 점차 유단자라는 게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의 태권도 입문을 도왔죠. 결국 모든 경험이 다 내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가르치다 보니 후에는 인도의 기업인들과도 연이 닿아서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고요.
그렇게 돌아가기 전, 인도태권도협회와 협력해서 주 대항전을 기획하게 됐어요. 15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대항전을 치르는데 이때다 싶어서 회사에 SOS를 보냈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와 함께 태권도 기술을 연마한 사람들과 대항전을 제대로 치르고자 회사의 지원이 절실했죠. 회사도 흔쾌히 승낙했고, 태권도 장비며 도복, 대회장 세팅 등을 모두 지원해 줬어요. 이 프로젝트가 사내에서도 입소문이 나서 사내방송에도 방영되고 기사도 났죠. 이후 지역전문가 코스 지원율도 높아졌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힙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자레코드’ 대표 조성후라고 합니다. 저희 소속 아티스트로는 한국 레게 장르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스컬과 쿤타, 식보이가 있고요. 지난해 엠넷 ‘쇼미더머니’ 시즌 10 우승자인 래퍼 조광일의 합류로 총 4인의 아티스트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요. 또 많이들 아시다시피 스컬은 저와 함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제 혈육이기도 합니다.(웃음)
-이번 저서 <기획자의 탄생> 서두에서 ‘회사원으로 살 것인가, 기획자로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셨어요.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 후 자신의 사업을 꾸리기까지, ‘기획’에 대한 성후님의 노하우가 담겼다고요. 노하우를 듣기 전, 문득 성후님의 지난 커리어 여정이 궁금해지는데요.
맞아요. 저도 과거에는 여러분과 같은 회사원이었어요. 저를 소개하면서 회사원으로서의 ‘조성후’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삼성물산 상사부문에 입사했는데요. 2005년 입사해 2014년 말까지 꼬박 10년을 다녔죠. 정말 재밌게 회사생활했어요. 일하는 것, 그 자체가 즐거웠죠.
삼성물산 상사부문은 다양한 사업분야를 다루고 있는데요. 철강, 에너지, 화학 등 수백억이 넘는 수주액을 다루는 프로젝트들도 있지만, 저는 그 안에서 좀 더 주도적으로 업무할 수 있는 영역이 뭘까 고민했어요. ‘언젠가 꼭 내 사업을 꾸려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삼성물산이 다루는 분야 중 소재 분야는 작게는 생활 소비재부터 시작해서 광물, 산업소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원재료 소싱을 담당하는 영역인데요. 저는 ‘이게 딱이다!’ 싶었어요. 덕분에 인도에서 1년, 아프리카에서 4년 정도 일했어요. 아프리카에선 말라리아 한 번, 장티푸스 한 번씩 걸리면서 녹록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회사생활에 대해 한마디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진짜 ‘찐’ 경험 제대로 했다는 겁니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게 그려진다고 하잖아요. 지나간 과거의 회사생활이라 좋은 기억만 남은 것은 아닐까요? 회사생활하며 어떤 것이 가장 만족스러웠나요?
물론 매일같이 반복되는 출퇴근, 사람들 사이에서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부단한 노력 등 모든 게 매번 쉬웠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여기에 더해 제가 진행한 모든 프로젝트가 다 승승장구해서 좋은 기억만 남았다는 것도 아니고요. 실제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을무렵, 제가 주도한 프로젝트에서 규모 큰 장비를 대거 사들였다가 크게 손해 보고 팔았을 때는 정말…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추억이랍니다.
근데 이렇게 위기에 놓였을 때 회사 내 다양한 부서와 유기적으로 협업해보고 일이 제대로 되게끔 만들어가는 과정을 직접 겪어 보는 건 정말 값진 일이에요. 나중에 사업을 직접 운영했을 땐 대기업처럼 각 부서가 나눠서 하던 일도 모두 다 내가 직접 해내야 하는 걸테니까요. 그래서 ‘이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면 오롯이 내 것이 될 값진 경험’이라 새기며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훗날 내가 직접 사업을 꾸리며 벌어질 사건·사고들을 미리 예행 연습한다고 생각했죠. 진짜 내 사업처럼 몰입해서 수많은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회사 재직시절, ‘이건 진짜 제대로 한 건 했다’ 싶은 기획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당시 회사에서 ‘지역전문가 코스’를 지원받아 인도에 머물렀는데요. 이게 뭐냐면 ‘차세대 글로벌 비즈니스 전문가’를 양성하는 코스거든요. 저도 당시 인도에 파견된 후 앞으로의 사업 확장을 위해 어떻게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인맥을 쌓을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어요. 그렇다면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내 무기는 무엇일까 치열하게 고민했죠.
저는 어려서부터 태권도, 검도를 오래해서 유단자 자격을 갖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선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쉽게 배울 수 있잖아요. 인도에선 그때만해도 대중화된 스포츠가 아니어서 상류층만 비싼 교습료를 내며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머물던 뭄바이에 단 하나 있는 태권도장 환경도 정말 열악했고요. 그렇게 제 발로 태권도장에 찾아가 기술 지도를 돕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 줬어요. 그 후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며 점차 유단자라는 게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의 태권도 입문을 도왔죠. 결국 모든 경험이 다 내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가르치다 보니 후에는 인도의 기업인들과도 연이 닿아서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고요.
그렇게 돌아가기 전, 인도태권도협회와 협력해서 주 대항전을 기획하게 됐어요. 15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대항전을 치르는데 이때다 싶어서 회사에 SOS를 보냈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와 함께 태권도 기술을 연마한 사람들과 대항전을 제대로 치르고자 회사의 지원이 절실했죠. 회사도 흔쾌히 승낙했고, 태권도 장비며 도복, 대회장 세팅 등을 모두 지원해 줬어요. 이 프로젝트가 사내에서도 입소문이 나서 사내방송에도 방영되고 기사도 났죠. 이후 지역전문가 코스 지원율도 높아졌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삼성물산 사내 방송에 실린 '조성후 대리' 시절 활약상 캡처화면
-책에서 ‘열정과 직감만으로는 성공하는 기획을 만들 수 없다!’는 구절을 보고 크게 공감했어요. 아무리 번뜩이는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제대로 다듬어져 실행할 전략이 없다면 원석에 그치고 말테니까요. 회사생활을 경험하며 성후님이 만들어나간 ‘기획력’은 어떤 차별점이 있는걸까요?
우선 나만을 위한 편안함을 버려야해요.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 중 ‘희소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 돌이켜보고 편안함을 탈피할 줄도 알아야 하죠. 그렇게 상상력을 탑재해 새로움에 도전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 경험과 결과들을 기록해서 남기는 것까지가 기획력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학창시절때부터 꾸준히 저만의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했어요.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도 그 이유겠죠. 태권도 4단, 합기도 2단, 검도 2단, 우슈 1단은 물론이고 관련된 대회라는 대회는 다 참석해서 기록을 쌓는 것에 혈안이 됐었어요. 이후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자진해서 아프리카 주재원을 지원했고요. 한국인이 없는 곳에서 제대로 저만의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에 놓이고자 도전했어요. 제가 스스로 저의 위치를 바꿔가면서 나만의 가치를 꾸준히 증명하고 높여나가고자 노력했어요.

아프리카 주재원 시절 조성후님 활동 모습
-그렇게 재밌게 이뤄나간 회사생활, 결국 퇴사를 선택했어요.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맞아요. 정말 즐겁게 다녔어요. 고객과 함께 먹는 맛있는 점심 식사 자리도 즐겁다고 여겼으니까요. 당시 제가 ‘최연소 주재원’으로서 아프리카로 파견되니 회사에서도 다양한 지원으로 생활에 도움을 줬어요. 아무래도 상사 부문이라 언어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혜택이 주어져서 회사생활하며 힌디어, 일본어도 섭렵할 수 있었고요.
사실 퇴사 결심은 저만의 도전 과제 중 하나였어요. 앞서 이야기했듯, 제 안에서는 꾸준히 ‘내 것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왔으니까요. 마침 동업 제의를 받았고 ‘이때다!’ 싶었죠. 그런데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동업은.. 역시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동업도 결국 주도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을 것 같았는데, 어떤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지나고 보니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했던 시기였겠다’ 싶은 건요. 서로 다루는 업종이 달랐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존에 진행되던 사업에 ‘내 것을 잘 얹어서 시너지를 내야겠다’ 생각하고 뛰어들었죠. 제가 갖고 있는 무역적인 지식과 경험을 녹여서 더욱 확장할 수 있겠다 싶었고요.
그런데 다루는 업종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다루는 액수도 다르다 보니 생각보다 제가 진행하고자 하는 영역에 큰 비중이 실리지 않더라고요. 이런저런 견해차가 불가피했고, 결국 제가 자리를 떠나는 것을 선택했죠. 그렇게 다시 혼자 무역사업을 시작했고 초반 1~2년은 어려웠어요. 그러다 금세 자리 잡고 난 뒤 근 2년간 번 돈이 지난 10년 동안 회사생활하며 번 돈보다 더 컸어요.
-결국 직장인으로서도, 사업을 스스로 꾸린 자영업자에게도 ‘기획력’은 주도적으로 업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스킬셋입니다. 양쪽 모두 경험해본 성후님 생각에 제대로된 기획력이 완성되기 위해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할까요?
주변을 돌아보면 기획 자체를 어려워하는 직장인들 많아요. 다들 회사 다니면서 ‘회사 그만두고 사업이나 할까…’라는 막연한 꿈을 그릴 때가 있잖아요. 그렇지만 ‘뭘 할지’ 막막하니까 푸념으로만 그치기 일쑤고요. 사업의 성패는 ‘뭘 해야 할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말이죠. 이를 위해 자신에게 먼저 질문할 줄 알아야 해요. 그 질문에 답을 만들어 나가면서 기록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는 거죠.
역시 남는 건 기록입니다. 기록을 계속 강요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책에서도 계속 소개하고 있어요. 기획을 위힌 D.R.A.W. 전략 중 W, 그러니까 Word의 중요성을 계속 피력하는 거죠.
사업에 뛰어드는 것까지 성공했다면, 제대로 된 계약 그리고 파트너십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기록이 중요해요. 파트너와 맺는 다양한 소통, 업무적인 공유를 짐작이나 추측, 상상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잡을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놓고 필요한 경우 써먹을 수 있어야 해요. 간단한 서면 양식부터 시작해 제대로 된 계약서까지 형식은 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요.
-그렇게 무역업으로 흥했는데 엔터사업으로 전향한 것은 의아하기도 해요. 가족과 함께 사업을 한다는 취지도 있었겠지만, 성후님을 움직인 강력한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리 형제가 아티스트라고 하더라도 무턱대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기란 쉽지 않아요. 앞서 얘기했듯 저는 저만이 가질 수 있는 무기가 확실한 곳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움직이는 편이니까요. 근데 사자레코드를 시작할 때는 오히려 동생이 먼저 ‘괜찮은 기록’을 갖고 제안을 해왔어요. 어느 정도 갈고 닦으면 사업을 시작할 만할 거라 생각했고요.
그렇게 함께 아티스트를 영입하면서 더욱 체감하는 것이, 이들도 모두 기획자더라고요. 아티스트라 아이디어도 워낙 많고요. 패션 센스가 좋은 쿤타를 통해서 패션 브랜드를 인수해 직접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고요. 장르적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소속 아티스트에게 무대가 필요하다면 직접 만들자’라는 생각에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기획하고 있어요. 카페, 라운지, 루프탑 스테이지 등을 한데 모아서 소속 아티스트와 팬들이 직접 소통하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정말 즐겁게 다녔어요. 고객과 함께 먹는 맛있는 점심 식사 자리도 즐겁다고 여겼으니까요. 당시 제가 ‘최연소 주재원’으로서 아프리카로 파견되니 회사에서도 다양한 지원으로 생활에 도움을 줬어요. 아무래도 상사 부문이라 언어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혜택이 주어져서 회사생활하며 힌디어, 일본어도 섭렵할 수 있었고요.
사실 퇴사 결심은 저만의 도전 과제 중 하나였어요. 앞서 이야기했듯, 제 안에서는 꾸준히 ‘내 것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왔으니까요. 마침 동업 제의를 받았고 ‘이때다!’ 싶었죠. 그런데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동업은.. 역시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동업도 결국 주도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을 것 같았는데, 어떤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지나고 보니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했던 시기였겠다’ 싶은 건요. 서로 다루는 업종이 달랐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존에 진행되던 사업에 ‘내 것을 잘 얹어서 시너지를 내야겠다’ 생각하고 뛰어들었죠. 제가 갖고 있는 무역적인 지식과 경험을 녹여서 더욱 확장할 수 있겠다 싶었고요.
그런데 다루는 업종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다루는 액수도 다르다 보니 생각보다 제가 진행하고자 하는 영역에 큰 비중이 실리지 않더라고요. 이런저런 견해차가 불가피했고, 결국 제가 자리를 떠나는 것을 선택했죠. 그렇게 다시 혼자 무역사업을 시작했고 초반 1~2년은 어려웠어요. 그러다 금세 자리 잡고 난 뒤 근 2년간 번 돈이 지난 10년 동안 회사생활하며 번 돈보다 더 컸어요.
-결국 직장인으로서도, 사업을 스스로 꾸린 자영업자에게도 ‘기획력’은 주도적으로 업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스킬셋입니다. 양쪽 모두 경험해본 성후님 생각에 제대로된 기획력이 완성되기 위해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할까요?
주변을 돌아보면 기획 자체를 어려워하는 직장인들 많아요. 다들 회사 다니면서 ‘회사 그만두고 사업이나 할까…’라는 막연한 꿈을 그릴 때가 있잖아요. 그렇지만 ‘뭘 할지’ 막막하니까 푸념으로만 그치기 일쑤고요. 사업의 성패는 ‘뭘 해야 할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말이죠. 이를 위해 자신에게 먼저 질문할 줄 알아야 해요. 그 질문에 답을 만들어 나가면서 기록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는 거죠.
역시 남는 건 기록입니다. 기록을 계속 강요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책에서도 계속 소개하고 있어요. 기획을 위힌 D.R.A.W. 전략 중 W, 그러니까 Word의 중요성을 계속 피력하는 거죠.
사업에 뛰어드는 것까지 성공했다면, 제대로 된 계약 그리고 파트너십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기록이 중요해요. 파트너와 맺는 다양한 소통, 업무적인 공유를 짐작이나 추측, 상상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잡을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놓고 필요한 경우 써먹을 수 있어야 해요. 간단한 서면 양식부터 시작해 제대로 된 계약서까지 형식은 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요.
-그렇게 무역업으로 흥했는데 엔터사업으로 전향한 것은 의아하기도 해요. 가족과 함께 사업을 한다는 취지도 있었겠지만, 성후님을 움직인 강력한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리 형제가 아티스트라고 하더라도 무턱대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기란 쉽지 않아요. 앞서 얘기했듯 저는 저만이 가질 수 있는 무기가 확실한 곳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움직이는 편이니까요. 근데 사자레코드를 시작할 때는 오히려 동생이 먼저 ‘괜찮은 기록’을 갖고 제안을 해왔어요. 어느 정도 갈고 닦으면 사업을 시작할 만할 거라 생각했고요.
그렇게 함께 아티스트를 영입하면서 더욱 체감하는 것이, 이들도 모두 기획자더라고요. 아티스트라 아이디어도 워낙 많고요. 패션 센스가 좋은 쿤타를 통해서 패션 브랜드를 인수해 직접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고요. 장르적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소속 아티스트에게 무대가 필요하다면 직접 만들자’라는 생각에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기획하고 있어요. 카페, 라운지, 루프탑 스테이지 등을 한데 모아서 소속 아티스트와 팬들이 직접 소통하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자레코드 소속 아티스트들과 회의 중인 모습
-그런데.. 분명 동업 쉽지 않다고 하셨는데, 형제가 함께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괜찮은가요? 이전의 사업 경험과는 어떤 것이 같고, 또 어떤 것이 다를까요?
각자가 확실히 책임질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아요. 각자 비슷한 결의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 만났다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특히 가족이라면 더더욱요. 그렇지만 저나 성진이 모두 각자 걸어온 길이 다르고, 각각 특화된 분야가 있다보니 그 분야에 대한 존중은 확실히 해요. 의사결정이 필요한 때에도 각자 맡은 부분이 확실하니 그 선택을 존중하고요. 물론 전후사정 없는 결정에는 서로 제재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평상시에도 충분한 대화를 통해 원활한 공유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좀 더 캐주얼하게 말해보자면... 가족과 함께 사업을 운영하니 자주 봐서 좋아요. 그렇지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아 놓은 모양이랄까요? 잘되면 함께 잘 되지만 망하는 것도 함께 망하는 거니까 더욱 조심해야 하죠.(웃음)
-<기획자의 탄생>이라는 책 제목은 성후님 자신이 ‘알을 깨고 새로 태어난 것’에 대한 다양한 소회를 응축시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인을 지나 직접 사업체를 꾸리게 되면서 성후님의 기획력은 어떻게 더 단단해졌나요?
함께 책을 펴낸 박준서 작가와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며 저의 과거 경험과 기획 전략을 접목한 내용을 소개할 수 있었는데요. 저의 개인적인 기획력을 놓고 보자면 좀 더 제 자신이 꼼꼼해졌다고 생각해요. 경험을 쌓아오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더이상 열정이나 감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실현가능한 지점을 제대로 간파하기 위해서 ‘꼼꼼함’을 더 키워나갔어요. 열심히 공들여 만들어 놓은 비즈니스 활동들도 꼼꼼함이 결여되면 한 순간에 결집력이 사라지고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여전히 기획을 어려워 하는 이들을 위해, 힘이 될 한마디 해주세요.
무엇보다 ‘기획’ 자체를 마냥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린 사실 일상에서 많은 것들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이를 위한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것도 기획이나 마찬가지에요. 사람을 얼마나, 어떻게 모으고 날짜와 장소, 음식, 준비물, 교통편 등 모든 방면에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획을 시작하는 거죠.
기동성 높은 능력자를 모아서 함께 시너지를 낼 수도 있고, 성공했던 파트너들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조사를 할 수도 있죠.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을 시뮬레이션하면서 하나씩 소거해 나가는 거에요.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된 기획도 성공을 위해서는 ‘꼼꼼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꾸준히 깨닫고 있답니다.
그럼에도 어려움에 봉착하고 도저히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다! 싶으면, 저희가 꾸린 ‘기획자 클럽’에도 함께 참여해 보는 것도 소개할게요. 누구든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실현가능한 것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갈증이 있으신 분들, 책 속에 숨어있는 ‘기획자 클럽’도 꼭 발견해주시길!
각자가 확실히 책임질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아요. 각자 비슷한 결의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 만났다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특히 가족이라면 더더욱요. 그렇지만 저나 성진이 모두 각자 걸어온 길이 다르고, 각각 특화된 분야가 있다보니 그 분야에 대한 존중은 확실히 해요. 의사결정이 필요한 때에도 각자 맡은 부분이 확실하니 그 선택을 존중하고요. 물론 전후사정 없는 결정에는 서로 제재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평상시에도 충분한 대화를 통해 원활한 공유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좀 더 캐주얼하게 말해보자면... 가족과 함께 사업을 운영하니 자주 봐서 좋아요. 그렇지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아 놓은 모양이랄까요? 잘되면 함께 잘 되지만 망하는 것도 함께 망하는 거니까 더욱 조심해야 하죠.(웃음)
-<기획자의 탄생>이라는 책 제목은 성후님 자신이 ‘알을 깨고 새로 태어난 것’에 대한 다양한 소회를 응축시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인을 지나 직접 사업체를 꾸리게 되면서 성후님의 기획력은 어떻게 더 단단해졌나요?
함께 책을 펴낸 박준서 작가와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며 저의 과거 경험과 기획 전략을 접목한 내용을 소개할 수 있었는데요. 저의 개인적인 기획력을 놓고 보자면 좀 더 제 자신이 꼼꼼해졌다고 생각해요. 경험을 쌓아오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더이상 열정이나 감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실현가능한 지점을 제대로 간파하기 위해서 ‘꼼꼼함’을 더 키워나갔어요. 열심히 공들여 만들어 놓은 비즈니스 활동들도 꼼꼼함이 결여되면 한 순간에 결집력이 사라지고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여전히 기획을 어려워 하는 이들을 위해, 힘이 될 한마디 해주세요.
무엇보다 ‘기획’ 자체를 마냥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린 사실 일상에서 많은 것들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이를 위한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것도 기획이나 마찬가지에요. 사람을 얼마나, 어떻게 모으고 날짜와 장소, 음식, 준비물, 교통편 등 모든 방면에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획을 시작하는 거죠.
기동성 높은 능력자를 모아서 함께 시너지를 낼 수도 있고, 성공했던 파트너들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조사를 할 수도 있죠.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을 시뮬레이션하면서 하나씩 소거해 나가는 거에요.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된 기획도 성공을 위해서는 ‘꼼꼼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꾸준히 깨닫고 있답니다.
그럼에도 어려움에 봉착하고 도저히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다! 싶으면, 저희가 꾸린 ‘기획자 클럽’에도 함께 참여해 보는 것도 소개할게요. 누구든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실현가능한 것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갈증이 있으신 분들, 책 속에 숨어있는 ‘기획자 클럽’도 꼭 발견해주시길!
조수현 기자 [email protected]
함께 보면 좋아요
가장 많이 본 이슈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