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말은 내면을 드러냅니다” 직장인을 위한 현명한 대화법

[인터뷰] ≪말 그릇≫ 저자 김윤나 말마음연구소 소장

2024. 12. 26 (목) 10:12 | 최종 업데이트 2024. 12. 26 (목) 18:21

 

 

직장은 작은 사회다. 회사 안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한다. 이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환호하고, 분노할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타인의 ‘말’일 것이다. 상사의 쓴 잔소리, 동료의 말투, 다른 팀의 요구…. 이 모든 대화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에 직면한다. 말 한 마디면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건만, 직장에서는 말 한 마디에 버텨왔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 참 많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잘하는 건 아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말을 잘하는 것’과 ‘소통을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몸을 부딪치며 익힐 뿐, 자세히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말의 힘은 직장생활에 있어 너무나 거대하다. 관계를 맺게 하고, 결과를 만들고, 한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그러니 매일 하는 ‘말’을 현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한 번쯤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소통을 잘 한다는 건 무엇일까? 말로 상처받지 않는 직장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베스트셀러 ≪말 그릇≫의 저자, 김윤나 말마음연구소 소장을 찾아 물었다. 그는 기업에서 오랜 시간 인사 교육을 해왔으며, 현재 말마음연구소의 소장으로서 강사, 코칭, 작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이들의 ‘말 그릇’을 넓히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크기에 따라서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일명 말 그릇이 큰 사람들은 누군가를 현혹시키고 이용하기 위해

혹은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갈등을 극복하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말을 사용한다. 

너와 나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 ≪말 그릇≫ 중

 

 

 

말을 잘한다는 것,
기술이 아닌 마음의 문제

 

소장님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에 관한 책을 쓰고 강연, 코칭을 이어오고 계시는데요. 말이란 키워드에 주목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말이라는 건 제 인생의 주제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경우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다가 남을 도와주게 되는 그런 스토리요. 제가 딱 그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말에 대한 예민도가 높은 사람이었어요. 저희 부모님은 서로 원하는 것을 비난의 형태로 말하곤 하셨거든요. 제가 7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아버지는 재혼하셨는데 그 과정이 제겐 정말 쉽지 않았어요.

 

가까운 관계에서 파괴적인 언어를 경험했고, 제겐 큰 상처로 남았죠. 그러니 제가 성장 과정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겠어요. 그런데 멀리는 못 가더라고요. 제가 타인과 연애하거나 친한 관계로 들어서면 부모님에게서 봤던 그 모습이 저도 모르게 나오곤 했어요. ‘도대체 이 말이라는 것은 어떻게 바뀌는 건가’, ‘이렇게 공부하고 연구해도 왜 내 말은 바뀌지 않을까’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죠.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알게 된 건 말이 만들어지는 곳은 마음이라는 거예요. 말이 나오는 입은 그저 발화하는 신체 기관에 불과해요. 마음에 대한 이해나 회복이 되지 않으면 말이 바뀌지 않는 거죠. 그러니 대화 기술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해요.

 

 

말을 잘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회복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마음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돌보는 게 추상적이라고 느끼는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의 마음을 빙산에 비유하곤 합니다. 마음의 가장 아래에는 욕구가 있어요. 욕구 위에는 기대, 기대 위에는 감정이 있고요. 욕구라는 건 ‘나는 위로를 윈해’ ‘나는 사랑받고 싶어’와 같은 마음이에요. 이런 욕구가 기저에 있으면 사람은 기대하기 마련이죠. 기대는 ‘날 좀 도와주지 않겠니’, ‘날 이해해 주지 않겠니’라고 타인에게 원하는 거예요.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더 기대하게 되죠. 감정은 욕구와 기대보다 위에 존재해요. 아래 있는 욕구와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감정이 불편하게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고 살아가요. 나의 욕구도 모르고, 기대도 모르고, 감정도 잘 몰라요. 이게 다 소통에 중요한 데이터거든요. 데이터를 잘 들여다보고, 정보로 써야 대화를 잘할 수 있는데 말이죠.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채 대화하다 보니 “넌 왜 말을 그렇게 하니”라고 표현하게 되고, 말의 방향도 이상해져 버려요. 이건 다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거예요.

 

 

마음을 빙산에 빗대 설명하는 김윤나 소장 ©유튜브 tvN Story '어쩌다 어른'

 

 

마음을 이루고 있는 감정, 기대, 욕구를 똑바로 직시해야 말이 내 마음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맞아요. 내 마음을 본다는 건 나의 욕구와 기대, 감정이 무엇인지 아는 거예요. 이 세 가지를 잘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자주 물어야 합니다. 한 번에 되는 건 아니라서, 시간이 필요해요. 계속해서 질문하다 보면 타인과의 소통도 더 쉬워질 거예요. 마음과 말이 일치되니까요. 반대로 타인의 말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죠.  ‘저 사람이 짜증 내고 있지만 저 감정이 다가 아닐 거야. 지금은 기분은 어떨까? 불안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볼 수 있어요.

 

 

막상 대화하다 보면 욕구나 기대, 감정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순간적인 반응을 그대로 표현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곤 후회하죠.

 

훈련이 필요해요. 가장 중요한 건 일단 마음을 ‘인식’하는 거예요. 대화하다가도 ‘잠깐, 내가 이 말을 들으니 불편하네’ 이렇게 알아차려야 해요. 대부분은 괜찮은 척 넘겨버리거든요. 이젠 그냥 넘기지 않고 대화 속에서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고 먼저 인식해 보는 거예요. 인식한 다음에는 바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춰보세요. “야, 너 말 이상하게 한다”라고 말할 게 아니라 참아보는 겁니다. 그 후에 반응을 선택해야 해요. 어떻게 대화를 이어 나갈지 골라야 하죠.

 

 

내 마음을 인식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 상대방과 건강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네 가지 대화 기술 중 하나가 필요해요. 첫 번째는 경청, 두 번째는 칭찬과 인정입니다. 세 번째는 질문이에요. 만약, 생각이 다르다면 이견을 좁힐 방법은 질문밖에 없어요. 네 번째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피드백을 하는 겁니다. 네 가지 기술 중 하나를 사용해 원하는 바를 말로 이어가야 해요. 이 네 가지 기술은 직장인이 꼭 익혀둬야 해요.

 

하지만, 이보다 앞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더 많죠. 네 가지 대화 기술을 선택하기 전에 내 마음 상태를 인식하고 정지하는 과정이 선행되지 않고 있거든요. 그래서 무엇보다 감정을 먼저 인식하고 잠시 멈추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이후에 여기서 경청할지, 질문할지 반응을 택해보는 전체적인 대화 훈련을 거치는 겁니다.

 

인식하지 못하면 확 질러버리듯 표출하게 돼요. 이런 방식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내가 괜찮지 않거든요. 상대에게 화를 내고 난 후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죠. ‘나는 왜 그것밖에 말 못 하지?’라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결국 자존감이라고 하는 건, 내가 나를 볼 때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형성돼요. 이런 대화를 하게 되면 나에게도 안 좋은 선택이에요. 그러니 감정을 제대로 깨닫고 잠시 멈춰 반응을 선택하는 연습을 계속해 보시면 좋겠어요.

 

 

 

김윤나 소장 ©말마음연구소

 

 

앞서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좁힐 방법은 질문밖에 없다고 하셨는데요. 질문을 통해 건강한 대화를 이어가는 노하우를 알고 싶어요.

 

질문도 연습이 필요해요. 특히 직장인은 두 종류의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합의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이에요. 예를 들어, 서로 의견 차이가 생겨요. 나는 a를 하고 싶고 선배는 b를 하고 싶어요. 그럴 때 “지금 어떤 지점에서 의견 차이가 가장 큰 걸까요?”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이런 질문 안에 ‘의견을 좁히고 싶어요’ ‘지금 우리가 서로 의견이 다른데, 제가 어떤 부분을 설명해 드리면 도움이 될까요?’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이런 질문들은 다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한 질문이에요.

 

 

이렇게 예시로 들으면 건강하고 건설적인 것 같은데, 실제 상황에서는 한 사람의 의견에 따라야 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이럴 땐 두 번째, ‘내가 당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는 질문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어떤 결정이 이뤄졌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된다고 해봅시다. 그럼 상대에게 “어떤 부분이 가장 작업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물어볼 수 있죠. 이 질문은 당신 내가 당신의 수고를 이해하고 싶다는 거예요. 이런 질문도 있어요. 선배가 후배에게 “내가 좀 조심스럽고 어려운 얘기를 했는데, 지금 마음이 어때요?”라고요.

 

 

직장에서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죠. 쑥스럽기도 해요.(웃음) 이런 질문을 들으면 조금 더 편안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200여 명 있는 강연장에서 “마음이 어때요?”라는 질문을 회사에서 들어본 적 있는지 물어본 적 있어요. 한 명이 될까 말까 하더라고요. 막상 그런 질문을 들으면 저 사람이 지금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알 수 있잖아요. “내가 네 마음을 이해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어렵잖아요. 대신 질문으로 이해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는 거예요.

 

비즈니스 대화를 할 땐 이렇게 ‘의견을 좁히기 위한 질문’과 ‘상대를 이해하고 있다고 표현하기 위한 질문’이 필요해요. 회의나 미팅을 하고 나와서 내가 질문을 했는지, 그 질문은 우리의 합을 맞추기 위해서, 혹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도움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김윤나 소장 ©말마음연구소

 


직장생활 속에서
현명하게 대화하는 법

 

나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말을 연습한다고 해도, 상사나 동료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을 거예요. 그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혼자 훈련한 게 물거품이 될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세 가지 대화 형태 중 하나로 흐를 수 있어요. 힘의 대화, 회피하는 대화, 존중하는 대화죠. 힘의 대화는 똑같이 맞받아치는 거예요. 상대가 “야, 그거 확실해? 이거 믿어도 돼?”라며 불쾌하게 나올 수도 있죠. 나 역시도 감정을 그대로 터뜨리면 힘의 대화가 돼요. 이건 일을 성공시키거나 나를 어필하는 데는 좋지 않은 선택이에요. 선택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두 번째 선택은 회피하는 대화예요. 안타깝게도 요즘 회피하는 대화를 선택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누가 뭐라고 하면 “네,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하고 대화를 끝내버리는 거예요. 오해를 풀어야 하는데 ‘내가 너하고 무슨 말을 하겠어’라는 태도를 취하는 거죠. 그 선배랑 어떻게 하면 안 만날 수 있을까, 그 동료랑 어떻게 하면 협업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관계 단절을 선택하는 겁니다.

 

회피하는 대화법은 발전을 막아버려요. 사람은 나쁜 것을 차단할 때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쓰거든요. 선배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나의 업무 능력을 발휘하지 않기 위해 내 역량을 차단을 하는 것도 큰 에너지를 쓰는 일이란 거죠. 또 조직 차원에서도 좋지 않아요. 아이디어를 나누지 않게 되니까요. 조직 안에 회피하는 대화가 만연해질수록 발전이 없어져요. 이런 회피형 대화는 소통 전문가로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에요. 요즘은 개인이 점점 지쳐가고, 회복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회피하는 대화 역시 개인과 조직을 위한 건강한 반응은 아니네요. 존중의 대화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존중의 대화는 대화의 테이블 위에 상대방의 마음 한 번, 내 마음 한 번을 올리는 거예요. 예를 들어 선배가 “이거 확실해?”라고 쏘아붙인다고 합시다. 선배의 마음은 사실 모든 일을 확실하게 진행하고 싶은 거예요. 근데 선배는 “내가 이번에는 확실하게 진행하고 싶어서 그래”라고 말하지 못하고 기분 나쁘게 말하는 겁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고 실력도 좋은 후배라면 “ 이 일을 확실하게 하고 싶어 그러신 거죠?”라고 선배의 마음을 대화의 테이블 위에 한 번 올려줍니다. 아까 말했듯, 질문은 존중의 대화를 할 수 있는 핵심 방법이에요. 서로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질문하는 관계가 존중하는 관계니까요.

 

그리고는 “제가 이번에 선배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믿으셔도 돼요. 한 번 봐주세요!”라고 내 마음도 올리는 거예요.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상대도 뭘 원하는지 아는 게 존중의 대화예요. 이 대화법은 무엇보다 실력과 용기가 필요해요. 실력이 없으면 양측의 마음을 올릴 수 없거든요.

 

세 가지 대화 방법을 말씀드렸는데요. 힘의 대화, 회피하는 대화, 존중의 대화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여러분의 몫이겠죠?

 

 

 말과 마음에 관한 김윤나 소장의 저서 ©말마음연구소 홈페이지

 

 

선배와 후배, 동료 간에 존중의 대화가 이뤄진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 같아요. 대부분의 조직에서 건강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이끄는 건 역시 리더의 역할이 클 거예요. 소장님은 ≪말 그릇≫에 이어 ≪리더의 말 그릇≫도 집필하셨어요. 리더에 주목하신 이유가 있나요?

 

누군가 변화해야 한다면 그 시작은 리더여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리더십의 핵심은 영향력이잖아요. 영향력을 펼치는 사람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리더의 말하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량은 유연성과 개방성과 투명성이거든요. 어떻게 불편한 상황을 유연하게, 개방적으로, 깨끗하게 대화할 수 있을지 책을 통해 알리고 싶었어요.

 

또 조직이 건강하게 대화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구성원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제가 리더 교육을 할 때 가장 강조하는 게 심리적 안정감이에요.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마음대로 말해도 되네’ ‘아닌 것 같다고 말해도 괜찮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분위기가 없다면 조직 안에서  더이상의 성장은 없어요. 리더는 이런 분위기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고요.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오는 강의도 존중의 문화, 수평적 대화와 같은 주제가 가장 많더라고요.

 

 

이번에는 사원들의 고민도 살펴보고 싶은데요.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해 고민인 분도 많으실 거예요. 이런 분들께 조언 부탁드려요.

 

지난주에 강연을 갔는데, 어떤 분이 쫓아 나와 비슷한 질문을 했어요. “사람들이 저한테만 일을 넘겨요. 제가 거절을 못 하고 감정 표현을 못하니까 만만해서 저한테 주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요. 주신 질문과 이 분의 질문, 두 가지는 같은 뜻이라고 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말씀드린 얘기인데요. 자신의 감정을 구별하는 연습이 굉장히 중요해요. 보통 무리한 요청을 받아도 내가 어떤 감정인지 모르고 그냥 넘겨요. 예를 들어서 내가 받으면 안 되는 업무를 누가 요청할 때, 그 순간 ‘난감하네’라고 내 감정을 잠깐 멈춰 인식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감정 구별이 서툰 분들은 그냥 쓱 웃고 받아버려요. 이건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고 넘긴 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에요. 이런 분들에게 불편함을 감지하는 연습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처음부터 하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런 부탁을 어쩔 수 없이 받았다고 합시다. 그래도 ‘내가 방금은 난감했네’ ‘당황스럽고 원망스러웠구나’라고 후에라도 인식해 보세요. 앞으로 그런 상황 또 올 테니까요. 그렇게 계속 감정을 구별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날은 ‘난감해요’ ‘죄송하지만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말이 나올 거예요.

 

 

모든 대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은 1순위네요.

 

그렇죠. 제 경험에 의하면 그런 분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자면 ‘이렇게 느껴도 되나?’ ‘이 정도로 내가 부담 있다고 말해도 되나?’라고 여기는 거예요. 자신에 대한 감정이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감정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걸 어려워합니다. 

 

왜 확신이 없게 됐을까요?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는 경험이 부족했거나 내 감정을 부정당하는 경험이 많았을 거예요. 성장과정에서 혹은, 사회생활에서 감정 표현을 하려고 하면 “시끄러워” “막내가 뭘 알아”라고 들었을 수도 있죠. 그러니 내 감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필요해요.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면 부당한 일이라고 받아들여도 돼요.

 

 

직장생활 속 여러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며 대처 방법을 알아봤는데요. 실제로 말을 바꿔 삶이 달라진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두 분이 먼저 떠오르네요. 먼저 한 남성분이 있었는데요. 제가 ‘까까 리더십’이라고 불렀던 분이에요. ‘까라면 까’라는 태도를 가지고 계셨죠. 코칭 시작엔 요즘 애들은 자기 할 말을 다 한다면서 화를 내곤 하셨어요. 분명 앞서 말했던 힘의 대화를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모든 코칭이 끝나고 나서는 “제가 다르게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배울 게 있을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하시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칭찬도 하고, 질문도 하게 되셨다고 해요. 굉장히 놀라웠어요. 분노가 많고 비난을 많이 하던 분이었거든요. 

 

그분이 언제부터 변화하게 됐을까 생각해 보면, 그저 대화의 기술을 배워서가 아니에요. 저는 처음엔 기술을 하나도 다루지 않고, 감정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하거든요. 심지어 어린 시절에 어떤 것을 느끼며 살았는지, 결핍된 욕구는 무엇인지 들여다보게 해요. 자신을 이해하게 되면 “제가 달라져야 하나 봐요”라는 고백이 입 밖으로 나오곤 하죠. 그때부터 경청, 칭찬, 질문과 같은 대화의 기술을 배우면 돼요. 그러니 말이 바뀌어서 사람이 바뀐 건지, 마음이 달라져서 바뀐 건지 잘 봐야 해요.

 

 

자신을 이해하고, 마음을 이해한 덕분에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 바뀐 거군요.

 

다른 한 분도 그랬어요. 20대 후반의 여성분이었는데요. 그분은 찾아오셨을 때 자기 비난이 굉장히 심했어요. “저는 왜 이 모양일까요? 저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요? 이렇게 된 게 저 때문일 것 같아요. 제가 왜 그 말도 못 했을까요?” 이런 말씀을 하셨죠.

 

그런데 코칭이 끝날 때쯤엔 “저도 잘하는 게 있어요. 이건 좀 괜찮게 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게 되셨어요. 말이 바뀌면 인간관계도 변해요. 관계 속에서 훨씬 더 자신감 있죠. 상대방의 피드백에 대해서도 상처를 덜 받아요. 또 대화할 때 꿍꿍이가 없어져요. ‘저 사람은 왜 나를 저렇게 쳐다볼까’라는 생각도 안 하게 돼요.

대화의 기술을 가르쳤다고 그게 되는 걸까요? 아니죠. 내면까지 깊이 내려가서 ‘나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어’ ‘나 그대로 소중한 존재야’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유창하게 말하는 건 못하지만, 깊게 사고하는 건 잘할 수 있어’라고 자기 수용하는 과정을 거친 거예요. 이런 과정을 건너온 사람만이 말을 바꾸고 삶을 바꿀 수 있어요.

 

내면부터 변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기술을 아무리 익힌다고 해도 말은 마음으로부터 튀어나오는 거예요. 상황이 좋으면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말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스트레스받고 타인이 나를 공격한다고 느껴지면 기술만 익혀서는 대처할 수 없습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예요.

 

 

김윤나 소장 ©말마음연구소

 

 

인터뷰 동안 일관되게, 마음을 먼저 살피라고 해주셨어요. 매일 출근하고, 일을 반복하는 직장인의 생활 패턴 안에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해 주세요.

 

저는 늘 하루 세 번, 자신에게 질문하라고 권하고 있어요. 출근하면서 내 감정이 어떤지, 점심을 먹으면서 내 감정이 어떤지, 퇴근하면서 내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거예요. 우리가 점심 메뉴는 치열하게 고민하잖아요.(웃음) 그런데 내 감정은 어떤지 잘 살피지 않아요. 더 나아가서, 욕구가 무엇인지, 기대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도 수시로 함께 살펴본다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직장생활 속 소통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인 분들께 한 말씀해 주신다면.

 

제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요즘 회피의 대화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내 감정을 차단하고, 관계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소통의 단절이 이뤄지고 있어요. 우리가 그만큼 지쳐 있고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 거라고 이해하고 있는데요. 어떤 면에서 이해되고 공감이 되죠.

 

근데 저는 조금 더 시도를 해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포기하지 말자고요. 자꾸 회피하면 나의 감정과 능력을 차단하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하는데요.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만 골라서 차단할 수 없어요. 내가 이렇게 차단한다는 건 나쁜 감정이나 능력뿐 아니라 좋은 면도 같이 차단돼요. 그럼 마음이든 몸이든 나의 전반적인 활동을 줄어들죠. 뻗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내 몸과 마음을 먼저 건강하게 하고 나서, 회피 대신 계속 대화를 이어가 보시길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장경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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