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복날 온종일 닭털 뽑고 짤린 사연

[논픽션실화극]"나는 알바인가 직원인가…입사 3개월만에 치킨을 끊었다"

2020. 08. 03 (월) 18:45 | 최종 업데이트 2021. 12. 09 (목) 09:37
※ 다음 글은 잡플래닛에 남겨진 리뷰와 못다한 이야기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치킨 좋아하시나요? 전 세상에서 닭이 제일 싫습니다. 지금은 닭이 제일 싫은 저지만, 저도 '치돌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닭고기 회사에 취직할 만큼 닭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입사 3개월 만에 치킨이라면 치를 떨게 됐습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 회사는 닭고기 전문 기업입니다. 입사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치킨을 잔뜩 먹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설렐 정도로 치킨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입사 첫날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첫 출근 날, 회사 입구에서부터 닭 냄새가 진동을 하더라고요. 물론 닭고기가 주력 상품인 회사니까, 닭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이니까 냄새가 날 수 있죠. 하지만 수준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건 해도 해도 너무 심한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공장 악취가 너무 심해서 인근 주민들 민원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악취배출허용기준을 몇 번이나 초과해서 시설개선명령을 받기도 했다네요. 폐수처리시설도 제대로 운영하지 않아서 초과배출부과금도 몇 번이나 냈다고 하고요. 

그러니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오죽하겠어요. 닭 냄새를 맡다 맡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내가 닭인지 닭이 나인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래도 겨울에는 좀 나아요. 여름에는 말 다 했죠 뭐. 

거기다 여름에는 세 번의 '헬게이트'가 열립니다. 맞아요. 복 날. 회사 입장에서 복날은 대목이죠. 1년 중 닭이 제일 잘 팔리는 날 아니겠어요? 물론 회사가 장사 잘되면 좋죠. 직원 입장에서도 신나는 일이에요. 그런데 전 이 복날 있었던 일 때문에 회사에 오만 정이 '뚝' 떨어졌어요. 

제가 입사했던 게 복날 3개월 전이었어요. 15명의 신입이 공채로 뽑혔죠. 다들 사무직으로 들어왔지만 복날을 앞두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생산 라인에도 들어가게 됐어요. 온종일 닭털을 뽑았어요. 야근 수당이고 뭐고 없이 정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닭털을 뽑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 와 진짜 닭털을 뽑다 뽑다 닭털로 날개를 만들어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더라니까요.

교육의 일환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복날 업무 감당이 안 되니까 단기 알바 대신 수습을 투입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죠. 그래도 수습 교육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충격을 받은 건 복날 닭털뽑기가 끝나고 대부분이 잘렸다는 거예요. 

함께 입사한 15명의 신입 사원 중 12명이 3개월 만에 짤리는 것을 보니 회사에 정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닭털 뽑는 단기 알바 뽑기 힘드니까 수습이라고 뽑아놓고 싸게 일 시킨 것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드니까 정말 배신감이 들더라고요. 회사 나름의 사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근로 계약서를 쓰면서도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당초 말했던 월급이 기본급에 연장근무 수당까지 포함된 금액이라는 거에요. 포괄임금이라나 뭐라나. 따져보니 딱 최저시급 수준이더라고요. 나중에 보니 정말 연장근무 수당도, 야근 수당도 없었어요. 당연히 연차 수당도 없었죠. 지난 명절 선물로는 '닭'을 받았어요. 친구들에게 말하니 월급을 닭으로 안 주는 걸 고마워하라네요. 

가끔 치맥을 즐기던 때가 생각나요. 치킨과 맥주 한 잔에도 행복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치킨의 'ㅊ'만 봐도 닭살이 돋으니…언젠가 다시 한번 치킨에 맥주 한 잔 마시며 행복할 날이 오겠죠? 그날만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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