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회의실 책상은 누가 없앴나
[오피스 랜선투어] SKC 광화문 본사
‘공간이 정신을 지배한다’
학창시절 내내 돼지우리 같은 방을 청소하라던 어머니들의 핵심 이론입니다. 100%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깨끗하면 좋긴 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동굴 같은 골방을 더 선호하기도하니까요. 공간의 지배를 받기엔 우리의 정신은 자아가 제법 강한 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공간에 만든 사람의 정신이 담기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공간을 설계하고 가구를 선택한 사람의 철학과 기대, 배려와 애정 같은 것이 공간 한가득 묻어납니다.
사무실도 그렇습니다. 자녀의 방에 칸막이 독서실 책상을 넣는 엄마도 있고, 책상 대신 테이블을 넣는 엄마가 있는 것처럼. 사무실을 보면 그 회사의 생각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하기 좋은 회사인지 살펴 보기 위해 사무실을 염탐합니다.
그렇다면 5년 만에 시가총액을 2.5배나 키운 회사의 공간에는 어떤 생각이 담겨 있을까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란 이런 것
지난 8월 1일, 리모델링을 진행했던 SKC의 5층 오피스가 문을 열었습니다.
SK넥실리스, SK picglobal, SK피유코어, SKC솔믹스, 거기에 SKC까지 5개사로 구성된 SKC 패밀리사 중 4곳이 광화문 앞에 있는 더케이트윈타워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율좌석제를 운영하면서 별도의 구분 없이 전체 공간을 공유합니다.
5층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원실 없는 공간 배치로 한눈에 전 층이 보이도록 했습니다. 통유리 건물에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위치다 보니, 개방감이 어마어마합니다.
흥미로운 건 거대한 하나의 공간 안에 다양한 컨셉과 목적성이 섞여 있다는 점입니다. 보통 새로 지은 사옥들을 보면 매우 웅장하고 일관되며 그 기업의 브랜딩을 보여주는데 집중합니다.
그런데 SKC 패밀리사의 5층은 좀 복잡합니다. 오른쪽은 발랄한데 왼쪽은 모던합니다. 창가에 붙은 테이블은 18000원짜리 커피를 파는 카페 같더니 그 옆에는 캠핑존이 있습니다. 자율좌석제 옆에 소파들이 붙어 있기도 하고, 미팅룸 사이에는 액티비티룸이 선물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팅룸과 업무 공간 옆에는 카페도 있습니다. 사무공간에서 공간의 단절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경계에 있는 테이블은 사무실에 있는 스텐딩 데스크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카페에 있는 테이블이었구나 싶은 느낌입니다.
기업의 브랜딩이 읽히지 않는 공간은 오히려 정이 갑니다. 기업을 지우고 사람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웅장하거나 획일적인 공간은 한번 보면 멋있지만, 매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숨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내 취향과 전혀 상관 없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 회사구나’ 하는 느낌도 강해지죠.
하지만 여기서는 일하는 사람이 중심입니다. 취향에 맞는 공간을 찾아 가는 것도 그렇지만, 컨디션 상태에 따라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일하다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잠시 게임 한판 하고 오는 것도, 경복궁 보면서 멍 때리는 것도 몇 걸음만 가면 가능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율좌석제
자율좌석제란 말 그대로 자유롭게 자리를 정해 앉는 제도입니다. 좌석은 자율이지만 공간은 자율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어디에 앉아도 같은 책상 같은 의자니까요.
그러나 사람마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다릅니다. 또 어떤 날은 혼자 몰입하고 싶은 날이 있고, 다른 어떤 날은 팀원들과 함께 상의하면서 일해야 하는 날도 있죠.
그래서 SKC는 다양한 형태의 자율좌석들을 구현했습니다.
여러 모양의 칸막이를 통해 독서실처럼 만든 자리도 있고, 경복궁과 빌딩숲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 자리도 있습니다. 모두의 허리를 위한 스텐딩 테이블도 있고, 간이 칸막이조차 없는 개방형 좌석도 있습니다.
가장 인기가 좋은 자리는 역시나 독서실형 자리라고 합니다. 확실히 그 쪽으로 가니 인구밀도는 높지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경복궁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 계시던 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커피 한모금 마신 후 한참을 멍 때리는 듯 하더니, 갑자기 폭풍 타이핑을 시전하셨습니다. 한 바퀴 돌고 돌아오니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커피를 내리시더군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일만은 잘 되도록, 이런 공간을 꾸렸구나 생각했습니다.
카페나 집에서는 잘 되던 일이, 사무실만 들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던 겁니다.
테이블은 어디 갔니
5층 특징 중 하나는 테이블 없는 미팅룸이 많다는 점입니다. 공원 벤치 컨셉의 미팅룸을 보고는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저 테이블은 마우스를 쓸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요.
문득 공원 벤치 컨셉인데 마우스를 사용하는건 아니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회사는 ‘테이블이 필요 없는 회의나 모임을 장려하고 싶은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달의민족은 잡담을 장려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봉진 의장 역시 “잡담이 경쟁력”이라는 말을 많이 하죠. 글로벌 1, 2등 하는 외국계 기업의 오피스를 봐도 이렇게 책상 없는 ‘수다 공간’이 많습니다.
잡담 또는 그런 분위기의 교류들이 팀워크를 높이고 의외의 아이디어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SKC는 아직은 다소 수직적인 기업 문화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까지 녹여냈습니다.
미팅룸에는 테이블도 없지만, 상석도 없습니다. 또 의자에도 앉는 순간 캐주얼해지는 교묘한 수법이 숨어 있습니다. 의자의 높이나 디자인 등이 각 잡고 앉기 힘들어서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어주는, 앉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미팅룸인지, 어떤 미팅을 기대하는지가 선명하게 보이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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