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힐링페이퍼 개발자가 말하는 은퇴의 조건
시니어 개발자가 ‘여기가 내 마지막 회사’라 말하는 이유는?
"힐링페이퍼가 내 마지막 회사다, 여기서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 요즘,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이직할 준비가 돼 있다는 요즘, 특히나 개발자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는 요즘인데, '여기가 내 마지막 회사라는 생각으로 입사했다'는 개발자가 있습니다.
힐링페이퍼에서 iOS 챕터를 담당하고 있는 고찬혁 리드인데요. 힐링페이퍼에서는 'GO'로 불리는 찬혁님은 네이버, 쿠팡, 삼성전자까지 손에 꼽히는 기업들을 두루 거치고 힐링페이퍼에 합류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IT, 특히나 일하기 좋다고 소문난 기업들을 떠나 힐링페이퍼에 안착한 찬혁님은 왜 이 곳을 ‘마지막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시니어 개발자가 말하는 은퇴의 조건을 들어봤습니다.
-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삼성전자, 네이버, 쿠팡 등을 거쳐 현재 힐링페이퍼에서 iOS 챕터 리드를 담당하고 있는 고찬혁입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굵직한 기업에서 일하시다가, 힐링페이퍼로 자리를 옮기셨는데요. 힐링페이퍼 합류를 결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에이든(홍승일 대표)의 철학이었어요. 장기적인 관점에 대한 생각을 듣고 합류를 결정했죠. 예를 들어 ‘같은 일을 누구는 빨리하고 누구는 늦게 끝낼 수도 있는데 빨리 끝낸 사람은 뭘 하죠?’라는 질문에 에이든은 “대부분 지금 당장 다른 일을 시키는 게 좋을 것처럼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때로는 쉬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이 효율적으로 일해서 성취해 내는 것보다 팀원으로서 팀 자체가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멋진 비전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저는 그 비전을 시험해볼 수 있는 철학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여기가 내 마지막 회사다, 여기서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 ‘여기서 은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라면 대표님의 철학에 정말 깊이 공감하고 계시다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찬혁님은 11년차 개발자, QA업무까지 고려하면 17년차라고 들었어요. 이미 여러 회사를 경험하셨고요. 시니어 개발자로서, 개발자가 일하기 좋은 회사의 조건이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크게 세 가지 조건이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회사가 장기적인 사고를 하는 가, 두 번째는 개인보다 팀으로 협업해서 일하는가, 세 번째는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 조건1: 회사는 ‘장기적인 사고’를 하는가
- 세 가지 조건이라, 궁금해지는데요.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볼게요. 먼저 '장기적인 사고'를 말씀하셨어요. 장기적인 사고가 중요한 이유가 뭐죠?
장기적인 사고는 더 큰 성과, 더 높은 효율을 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 일의 의미'를 찾는데 기본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실제 회사의 장기적인 사고가 구성원이 일하는데 어떻게 영향을 미치죠?
OKR 도입을 예시로 들 수 있는데요, 장기적으로 보면 자율적으로 몰입해서 일하는 것이 회사가 크게 성장하는 길이라고 에이든은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회사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면, 과연 구성원들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죠. 다른 좋은 회사의 사례들을 찾아본 결과, "무조건적인 자율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조율 속의 자율(autonomy with alignment)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이를 잘 이뤄내는 방법으로 'OKR'이라는 툴을 발견했고, '우리의 방향을 조율해 자율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는 목표로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에이든과 함께 OKR 리딩을 할 때 처음부터 무조건 하자는 것은 아니었어요. 혼란도 있었죠. 'is-to be' 기반으로 구성원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개선해 나갔어요.
힐링페이퍼는 좋은 것은 받아들이려 하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시도를 해 본다는 게 달라요. 비판적인 피드백도 '이걸 왜 해?' 가 아니라 '제대로 하려면 잘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 더 잘하려면 이것도 해야 하는 데 이건 왜 빠졌지?' 이런 논의였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며 '아 좋은 회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 조건2: 팀으로 협업해서 일하는가
- 두 번째 조건으로 '협업해서 일하는가'를 말씀하셨어요. 강남언니팀도 극도의 협업을 핵심가치로 여기고 있는데요. 협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회사는 개인을 효율적으로 써요. '어떤 목적을 위해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모여서 일하는지' 보단 '나에게 닥친 일들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더 큰 관심사죠. 그러다 보면 '어떻게 성과를 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까?' 즉, 팀보다 개인이 더 중요해져요.
협업은 나 혼자서 이룰 수 없는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엄청난 천재 개발자라면 혼자 다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보통 사람이라 팀으로 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성취할 수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뛰어난 개발자라도 팀으로 움직이면 더 많은 걸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혼자 이룰 수 있다면 굳이 회사에 다닐 필요도 없겠죠. '같이 이룰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한다면 장기적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시니어 개발자, 팀 리드로서 구성원과 협업, 즉 함께 일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노력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1대1 미팅(1on1)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어요. 예전엔 어색한 분위기를 안 좋아해서 하다가 말기도 하고, 문제가 있으면 회피하거나 ‘개발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팀으로 일하려면 이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좋은 싫든 서로 영향을 주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개개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지, 시스템이 아닌 인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잖아요. '개발자니까 알아서 하겠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면 될까, 솔직하고 투명하게 얘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구성원들을 더 이해하게 되더군요. 힐링페이퍼에서 일하면서 '팀'으로 고민하고 같이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생겼어요.
◇ 조건3: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 마지막 조건으로 '일의 의미'를 말씀하셨어요.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을 넘어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의미가 중요한 이유가 뭔가요?
개발을 하다 보면 조금 슬프지만(?) 필연적으로 밤늦게까지 코드를 들여다보는 일이 생겨요. 그러다 보면 문득 '이걸 내가 왜 해야하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연차가 쌓일수록 회의감은 더 크게 들죠. 제가 그랬어요. 그래서 일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 같아요.
Grit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성공하는 데에는 재능보다 끈기가 중요하고, 끈기를 가지려면 높은 목적의식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면 천직이 된다, 이런 이야기더라고요. 성공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성공, 혹은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끈기가 필요하고, 끈기를 가지려면, 내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는 장기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보는 에이든의 생각과도 결이 맞다는 생각이 들고요. 장기적으로 뭔가 성취하려면 당연히 끈기 있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개발도 똑같은 것 같아요. 코드를 짜는 일도 누군가는 월급을 받으니까, 누군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고, 누군가는 고객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할 거예요. 사람마다 내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죠. 장기적으로 일하려면 이에 대한 고민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 찬혁님은 어떠셨나요? 힐링페이퍼에서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나요?
내 일이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납득을 시켜주는 회사예요.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왜 중요한지 설명을 해 주고, HPP(Healing Paper Proposal, 어떤 아이디어가 고객에게 가치를 주는지 꼼꼼히 되묻고 반드시 해야 할 실험에 더 집중하기 위해 힐링페이퍼에서 작성하는 문서) 등 업무 리뷰를 활발하게 하고 있거든요.
리뷰를 통해 쓸데없는 일이 있는지, 이게 의미 있는 일인지 등을 자연스럽게 묻게 되고, 자유로운 질문 속에서 꼭 해야 하는 것과 안 해도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뉘죠. 보통 회사에서는 일단 '다'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는 질문을 통해 '이걸 왜 다 하죠.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것만 해도 충분하겠는데' 같은 흐름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엔 어색하고, 이런 의견을 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잠깐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왜 하는지 묻고, 금방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문화거든요. 이런 문화를 가진 곳은 흔하지 않아요. 스타트업이라도요. '나는 왜 개발을 하고 있지?'의 결론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을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대기업에서는 시키는 거 하면서 월급 받고, 의미를 찾는 게 허상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힐링페이퍼는 그런 부분을 만족시켜주는 것 같아요.
타운홀 미팅에서 에이든의 모습 / 사진=힐링페이퍼
- 경력에 따라 일의 의미도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시니어 개발자에게 일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시니어분들이 주니어분들보다 '내 일의 의미'에 대한 갈망이 더 많을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는 이미 잘하시는 경지에 올랐을 것이고, 협업도 많이 하셨겠죠? 힐링페이퍼에서는 스스로 ‘왜’를 지속적으로 물어보면서 일의 의미를 찾게 돼요. 비슷한 고민하는, 비슷한 이유로 답답한 시니어 개발자분들 많으실 거예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힐링페이퍼에서는 이런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 그렇다면 주니어 개발자에게 일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일의 의미를 빨리 찾을수록 더 많이, 더 빠르게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의 의미가 분명하다면, 잘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 고민할테니까요..
- 힐링페이퍼에서 찬혁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힐링페이퍼 iOS챕터에 계신 분들이 일의 의미를 찾으면서 일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를 돕는 것이 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주니어 때는 개발 잘하고 코드를 잘 만드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오래 일해보니 코드를 아름답게 짜는 것,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코드를 짜는 것, 이런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더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 함께 일하는 것인 것 같아요. 솔직히 주니어분들이 저보다 최신 기술을 더 잘 사용하실 수 있어요. 다만, 기술이 아니라 협업을 어떻게 하는지는 제가 알려 드릴 수 있어요. 앞서 말했지만, 개발 업무는 혼자 하는 일 같지만 협업이 정말 중요해요. 더 많이 배우고,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어요.
새로운 개발자가 온다면, 끊임없이 챙겨주고 협업하는 방식으로 리드할 겁니다. 서로 감정 상하지 않도록 토론하고 의문점을 해결하고 더 좋은 방법을 함께 생각하는 식으로요. 이 점이 다른 회사와는 다른, 힐링페이퍼만의 개발 문화라고 생각해요.
- '힐링페이퍼가 마지막 회사다. 여기서 은퇴할 생각으로 입사했다'고 하셨어요. 정말 힐링페이퍼에서 은퇴할 건가요?
꽤 많은 회사에 다녀봤는데 이렇게 개발에 의미를 잘 부여받을 수 있는 회사는 없었어요. 그래서 은퇴를 한다면 여기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린건데요.
사실 이 말이 '회사가 완벽해서 계속 다녀도 좋을 정도'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개발자들이 은퇴할 때까지 다녀도 좋을 만한 회사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미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HR팀 리드도, 애자일 코치도 했던 거고, 현재는 그 연장선에서 iOS챕터 리드를 하고 있고요.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건 대표인 에이든의 좋은 철학, 이에 기반한 힐링페이퍼의 좋은 문화 때문인 것 같아요.
개발이 누군가에게는 돈을 버는 수단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거쳐 가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일의 의미를 찾는 개발자분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이 와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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