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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더비기닝: 한국 유일 위성 수출 기업의 탄생
[기업분석보고서] 쎄트렉아이① 벤처로 시작해 20년…학생에서 경쟁자로
2020. 11. 18 (수)
'이 기업의 1년 후 미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잡플래닛은 리뷰를 남기는 모든 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현 직장 또는 전 직장의 '성장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은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은 3가지다. 성장, 유지, 그리고 하락.
송곳같이 따끔한 리뷰를 남기기 주저하지 않는 잡플래닛 이용자들이다. 특히나 회사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전·현직자들이다. 유수의 대기업과 비교하면 규모가 크지 않은 코스닥 상장사가 이들에게 '성장'이라는 답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을 일.
그런데 이 질문에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답을 아주 많이 얻은 기업들이 있다. 컴퍼니 타임스가 코스닥 상장사들 중에서 올해들어 전·현직자들에게 '기업 성장률'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기업들을 찾아 살펴봤다. (관련기사: 직원들이 앞다퉈 "성장한다"고 말하는 회사?)

전·현직자들이 평가한 기업 성장률 83.3%, 10명 중 8명의 전·현직자가 '성장'에 베팅한 회사가 있다. 코스닥 상장사 중 전·현직자 평가에서 기업 성장률 1위를 기록했다. 국내 유일의 인공위성 개발·수출 민간 업체인 '쎄트렉아이'다.
쎄트렉아이의 시작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8월 11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적 위성인 '우리별1호'가 남미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에서 우주로 날아 올랐다. 이날 우주 과학 분야의 불모지로 평가됐던 한국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이 '우리별1호'를 쏘아올린 카이스트(KAIST) 연구원들이 모여 만든 회사가 쎄트렉아이다. 1999년 문을 열고 20여년이 흘렀지만, 한국에서 위성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수출하는 민간기업은 여전히 쎄트렉아이뿐이다.
쎄트렉아이의 시작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8월 11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적 위성인 '우리별1호'가 남미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에서 우주로 날아 올랐다. 이날 우주 과학 분야의 불모지로 평가됐던 한국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이 '우리별1호'를 쏘아올린 카이스트(KAIST) 연구원들이 모여 만든 회사가 쎄트렉아이다. 1999년 문을 열고 20여년이 흘렀지만, 한국에서 위성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수출하는 민간기업은 여전히 쎄트렉아이뿐이다.
◇ 한국 우주 산업의 시작 'Devotion'…유학 3년 만에 쏘아올린 '우리별1호'
1989년 8월, 카이스트의 한 강의실. 칠판에는 'Devotion'(헌신)이 적혀 있었다.
"너희가 돈도 내지 않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라. 너희가 공부하는데 쓴 돈은 국민의 세금이고, 국민의 세금은 시장에서 채소나 생선을 파는 할머니의 전대에서도 나왔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라."(고 최순달 카이스트 교수)
박성동 쎄트렉아이 이사회 의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최 교수를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며 "이 얘기를 듣고 '그래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 IT기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 최 교수는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쎄트렉, SaTRec)를 설립하고, 그해 가을 국제공동연구협약을 맺은 영국 서리대(University of Surrey)로 5명의 학생을 보냈다. 당시 서리대는 소형 위성을 가장 잘 만들던 곳. 이를 시작으로 연구소는 학생 27명을 서리대, 런던대 등 해외로 보냈다.
고 최 교수는 생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손으로 인공위성을 만들고 싶었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전문가가 전무해 사람을 키워야겠다 싶어 학생들을 외국에 보내기 시작했다"며 "통신위성을 만들려면 149개 전문 기술 분야에서 각각 두 명 정도의 인력을 육성해야 하는데 당시 여건으로는 그렇게까지 할 수가 없어서 한 학생당 두 개 전문 분야를 배워 오는 것을 목표로 유학을 보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유학생들은 서리대팀이 제작하는 인공위성 작업에 참여하면서, '우리별1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낮에는 인공위성 제작에 참여하고, 밤에는 한국에 배운 기술을 전했다. 그렇게 3년 후, 1992년 우리별 1호가 우주로 떠났다. 그리고 1년 후인 1993년 9월, 이번에는 한국에서 우리별2호가 발사됐다.
당시 런던대 유학생 1기였던 김병진 전 쎄트렉아이 대표는 "지금 보면 런던대 팀은 최 교수가 미래의 우리별3호를 위해 미리 보낸 별동대였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당시 영국에는 다른 나라 학생들도 기술을 배우러 왔지만, 실제 독자적인 인공위성 기술을 만들어낸 곳은 한국뿐이었다.
"너희가 돈도 내지 않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라. 너희가 공부하는데 쓴 돈은 국민의 세금이고, 국민의 세금은 시장에서 채소나 생선을 파는 할머니의 전대에서도 나왔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라."(고 최순달 카이스트 교수)
박성동 쎄트렉아이 이사회 의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최 교수를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며 "이 얘기를 듣고 '그래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 IT기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 최 교수는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쎄트렉, SaTRec)를 설립하고, 그해 가을 국제공동연구협약을 맺은 영국 서리대(University of Surrey)로 5명의 학생을 보냈다. 당시 서리대는 소형 위성을 가장 잘 만들던 곳. 이를 시작으로 연구소는 학생 27명을 서리대, 런던대 등 해외로 보냈다.
고 최 교수는 생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손으로 인공위성을 만들고 싶었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전문가가 전무해 사람을 키워야겠다 싶어 학생들을 외국에 보내기 시작했다"며 "통신위성을 만들려면 149개 전문 기술 분야에서 각각 두 명 정도의 인력을 육성해야 하는데 당시 여건으로는 그렇게까지 할 수가 없어서 한 학생당 두 개 전문 분야를 배워 오는 것을 목표로 유학을 보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유학생들은 서리대팀이 제작하는 인공위성 작업에 참여하면서, '우리별1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낮에는 인공위성 제작에 참여하고, 밤에는 한국에 배운 기술을 전했다. 그렇게 3년 후, 1992년 우리별 1호가 우주로 떠났다. 그리고 1년 후인 1993년 9월, 이번에는 한국에서 우리별2호가 발사됐다.
당시 런던대 유학생 1기였던 김병진 전 쎄트렉아이 대표는 "지금 보면 런던대 팀은 최 교수가 미래의 우리별3호를 위해 미리 보낸 별동대였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당시 영국에는 다른 나라 학생들도 기술을 배우러 왔지만, 실제 독자적인 인공위성 기술을 만들어낸 곳은 한국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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