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업의 1년 후 미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잡플래닛은 리뷰를 남기는 모든 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현 직장 또는 전 직장의 '성장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은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은 3가지다. 성장, 유지, 그리고 하락.
송곳같이 따끔한 리뷰를 남기기 주저하지 않는 잡플래닛 이용자들이다. 특히나 회사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전·현직자들이다. 유수의 대기업과 비교하면 규모가 크지 않은 코스닥 상장사가 이들에게 '성장'이라는 답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을 일.
그런데 이 질문에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답을 아주 많이 얻은 기업들이 있다. 컴퍼니 타임스가 코스닥 상장사들 중에서 올해들어 전·현직자들에게 '기업 성장률'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기업들을 찾아 살펴봤다.
(관련 기사: 직원들이 앞다퉈 "성장한다"고 말하는 회사?)
이차전지 소재 '양극재' 전문 기업 '에코프로비엠'. 최근 2년 사이 이 기업에 리뷰를 남긴 전·현 직원 중 77%가 이 기업의 1년 후 미래를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스닥 상장사 중에서는 4위에 오른 '기업 성장률'이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폭발적 성장 곡선을 그려 온 에코프로비엠은, 3조 2000억에 가까운 시가총액으로, 2020년 11월 기준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일곱 번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대체 어떤 회사길래, 80%에 가까운 직원들이 '성장'을 예상한 걸까.
◇ '이차 전지'가 뭐길래, '양극재'가 뭐길래?
전기차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다. 세계 각국이 내연기관차를 규제하고 친환경차 도입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면서 전기차 보급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상황은 국내도 마찬가지. 한국전력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보급량은 2016년 1만 5000여 대에서 2019년 8만 9000여 대로 4년 새 6배가량 성장했다. 전세계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테슬라부터, 현대·기아차까지 전기차로의 방향 선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됐다.
전기차 성능을 좌우하는 건 두말할 것 없이 '배터리'다. 전기차에 쓰이는 배터리는 충전과 재사용이 가능한 '이차전지'다. 한 번만 사용 가능한 '일차전지'와 구분을 위해 이차전지로 불린다. 전기차뿐 아니라 충전이 가능한 건전지나 크고 작은 전자제품 배터리도 '이차전지'라고 보면 된다.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뉘는데,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이다. 이중 핵심소재로 분류되는 게 바로 '양극재'다. 양극재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와 용량·출력 등을 결정한다. 양극재의 퀄리티가 배터리의 성능을 결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배터리 원가 비중의 40~50%를 차지한다. 가격적으로도 중요하고, 성능 측면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가 양극재인 셈이다.
양극재 산업을 꾸준히 선도해온 건 글로벌 기업들이다. 벨기에의 유미코아, 리튬전지 강국 일본의 스미토모, 니치하 등이 대표적인 양극재 전문 기업이다. 국내 기업으로는 에코프로비엠을 비롯해 L&F, 포스코케미칼, 코스모신소재 등이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삼성SDI나 SK이노베이션, LG화학과 같이 크고 작은 이차전지를 생산하는 기업들에 이차전지용 양극재를 공급하며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전기차나 전동공구 등에 쓰이는 중대형 배터리 소재 생산에 주력하는 업체다. 사진=에코프로비엠
◇ '미래' 생각하며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 투자한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의 시작을 말하려면 모회사 '에코프로'의 역사부터 살펴야 한다. 에코프로는 1998년 10월 이동채 회장이 설립했다. 당시 사명은 '코리아제오륨'. 처음에는 환경 소재 개발에 주력했다. 대기 오염을 방지하는 '화학 흡착제', 악취 및 특정 유해가스를 없애는 '기능성 흡착제', 일산화탄소나 온실가스(PFC)를 제거할 수 있는 촉매 등 '친환경' 소재 개발에 힘썼다.
에코프로는 2001년 사명을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하고, 2003년부터 수입 의존도가 높던 이차전지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4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이차전지 소재'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랐다. 국내 기업 대부분이 소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배터리를 만들기조차 어려웠던 때였다. 에코프로는 이런 상황에 집중했고, 전해질·양극재 등 소재 사업에 우선적으로 공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양극재 주 원료였던 '코발트'는 가격이 비싸고 수급 전망도 밝지 않았다. 이를 가격이 낮고 안정적인 니켈로 대체하고 상용화하는데 성공하면서, 에코프로는 '니켈계 양극재' 생산 기업으로 떠오르게 됐다. 이후 LG화학 등 소형 배터리 생산 기업에 양극재를 납품하며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됐다.
비용 절감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니켈은 에너지 용량이 높은 데 비해 고밀도로 응집할 시 불안정한 문제가 있었다. 에코프로는 이를 망간 등으로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니켈의 함량을 80% 이상으로 높이는 '하이니켈 양극재'를 2008년 국내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에코프로비엠 주력 상품인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NCM(니켈·코발트·망간) 등 하이니켈 양극재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08년 충청북도 청주에 '양극소재 제1공장'의 문을 연 에코프로는 이듬해 제2공장을 만들었다. 제2공장을 준공하며 양극재 소재인 '전구체' 생산 설비도 함께 준공했다. 이를 통해 한국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일본산 전구체에 대한 견제가 가능해졌다.
2008년 에코프로 양극소재 제1공장 준공식 현장. 사진='에코프로 20년사'
◇ '위기를 기회로'… 빠른 결정으로 살아남은 에코프로
잘나가던 에코프로의 소재 사업에도 위기는 있었다. 2003년부터 전개하던 '전해액 용매 사업'은 저가 공세로 강하게 밀고 들어온 중국 제품에 밀려 수익성이 날로 악화했다. 결국 2009년부터 전해액 용매 사업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전구체 사업에는 더 큰 굴곡이 있었다. 일본 업체에서 전구체를 공급받던 LG화학이 2012년 에코프로와도 전구체 공급 계약을 체결하자, 전례 없던 '제로섬 게임'이 시작됐다. 일본 경쟁사들은 납품 단가를 큰 폭으로 낮추며 '가격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에코프로의 매출 80%는 LG화학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가격을 무리하게 낮춘 일본 경쟁사는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에코프로도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동채 회장은 에코프로가 20년을 맞아 발행한 <에코프로 20년사>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의 추세로 계속 가다가는 경쟁사와 함께 경영난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죠. 경쟁사가 4달러로 가격을 낮추면 우리는 3달러로 낮춰야 했는데, 직접 원가가 4달러 수준이었습니다. 납품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으로 사면초가였습니다."
이동채 회장은 과감하게 LG화학에 '전구체 사업 포기'를 통보했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고객사를 잘라내면서 회사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에코프로는 위기 극복을 위해 수익성에 한계가 있는 소형 전지용 소재 사업 대신, 전기차 등에 쓰이는 중대형 전지용 소재 개발에 힘쓰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글로벌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2013년부터 'NCA 양극재'를 활용한 배터리를 사용하겠다고 밝히며 이차전지 업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이니켈계 NCA를 주력 상품으로 삼는 에코프로의 소재 사업 불씨도 함께 살아났다. 2013년 10월에는 당시 이차전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던 삼성SDI로부터 중대형 전지에 적용할 양극재 납품 승인을 이끌어냈다.
경쟁이 심한 국내 대기업 외에도 새로운 고객사를 통해 성장 활로를 펼쳐야 했던 에코프로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에코프로는 2015년 소니(SONY)에 NCA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리튬전지 종주국으로 불리는 일본 업체가 해외 소재업체와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외 수출이 늘면서 2015년 에코프로의 이차전지사업 부문 매출액은 전년 대비 81%나 늘어났다.
나라 안팎 큰 고객사를 품은 에코프로는 2015년 제3공장을 준공하면서 양극재 생산 능력을 연간 4300톤으로 늘렸다. 양극재 1위인 일본 스미토모사에 이어 세계 2위의 위상을 확보했다. 판매량도 2014년 1100톤에서 2015년 2000톤으로 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2015년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청주에 위치한 에코프로비엠 본사. 사진=에코프로비엠
◇ '에코프로비엠'의 시작, 성장과 상장 사이
에코프로는 2016년 5월, 전지재료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에코프로비엠'을 설립했다. 핵심사업이 된 이차전지 사업에 집중 투자해 납품 물량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권우석 사업대표와 김병훈 경영대표가 에코프로비엠을 이끌게 됐다.
꾸준히 매출액을 늘린 에코프로비엠은 2019년 3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상장을 통해 유입되는 자금은 증설을 위해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상장 당시 공모가는 4만 8000원. 희망 공모가는 3만 7500~4만 2900원이었지만 최상단을 상회하는 금액으로 확정했다.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에서 경쟁률은 277대1, 기관 대상 경쟁률은 988대1에 달했다. 상장 후 4만원 대를 오르내리던 주가는 2020년 1월 말 대폭 상승해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 지난 8월에는 16만원 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2020년 11월)는 15만원 대를 유지 중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2월 삼성SDI와의 합작법인 '에코프로이엠' 설립을 공시했다. 지분율은 에코프로비엠이 60%, 삼성이 40%다. 신설되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양극재는 모두 삼성SDI에 납품될 계획이다. 올해 초 SK이노베이션과도 4년 간 2조 7000억 원이 넘는 계약을 체결했다.
에코프로비엠은 2019년 매출액 6160억 원, 영업이익 370억 원으로 에코프로에서 떨어져 나온 2016년 대비 6배가 넘는 매출, 3배가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에코프로가 2003년 이차전지 소재 사업을 시작한 지 17년, 에코프로비엠은 이제 연매출 1조를 바라보는 '양극재 대표 기업'이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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