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웹드라마 '좋소 좋소 좋소기업(좋좋소)'을 보며 짓는 웃음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신입사원 조충범 앞에 펼쳐지는 일을 냉정하게 뜯어 보면 법을 넘나들거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이는 요소도 없지 않기 때문. 법이 금하는 조항이 들어간 근로계약서나, 사적인 담배 심부름이나, 하급자에게 욕설을 하거나 막 대하는 모습이 그렇다.
"충범이는 능력에 맞는 회사를 간 거다. 공부 열심히 하자", "대한민국 최고의 공부 자극 영상"이라는 댓글을 보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과연 '좋좋소'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소기업 가지 말라'는 이야기인 걸까. 이런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들은 '노오력'이 부족한 사람들인 걸까. 그냥 'X소기업이 다 그렇지' 하며 웃어넘기면 그만일까.
그 어디에서도 '기획 의도'라고 할 법한 이야기를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이름, 총감독 '빠니보틀'. 구독자 수 58만 명, 총 조회 수 1억의 '여행 유튜버'가 대체 어떤 이유로 '중소기업' 이야기를 다룬 웹드라마를 기획하고 연출하게 된 걸까.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내자 금세 답신이 왔다. 그는 "의도를 물어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2월 15일, 빠니보틀을 삼성동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좋좋소에 까메오로 출연한 빠니보틀. 곳곳에 나오는 그를 찾는 재미(?)도 있다. 사진='좋좋소' 5화
- '좋좋소'의 서막이 궁금해요.
"코로나19로 국내에 발이 묶이게 되면서 불평만 늘더라고요. 불평해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뭔가 해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사실 '좋좋소'는 친구('정 이사' 역할을 맡은 조정우 배우)랑 아무 생각 없이 술 한잔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예요. 정 이사가 "유튜브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유튜버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새로운 프로젝트를 벌여보고 싶다고.
그 얘기를 하다 보니까 딱 '중소기업 드라마' 아이디어가 생각났어요. 예전부터 생각하긴 했거든요. 따져보면 대기업 다니는 사람은 많이 없잖아요. 저부터도 중소기업에 발을 담근 경험이 있고요. '진짜 현실 이야기로 가려면 여섯 일곱 명 다니는 현실 중소기업 드라마가 재밌을 것 같은데, 왜 없지?' 이런 생각을 해 왔던 터라 그 얘길 친구에게 했죠."
TMI) 빠니보틀은 드라마 '미생'의 광팬이다.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데도 서너 번을 돌려봤다고. 자칫 진부할 수 있는 회사생활 이야기를 현실적이면서도 진솔하게 그려냈다는 게 그의 평가다.
- 친구인 '정 이사'님은 처음부터 좋다고 하던가요.
"딱 듣더니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같이하고 있는 촬영감독님도 이야기를 듣더니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다"면서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의심했거든요. 저는 드라마 제작자도 아니고, 많이 보지도 않으니까 더 그랬죠. 시나리오 쓰면서도 '불안하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첫 촬영까지만 해도 잘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 그러면 이렇게 잘될 줄 몰랐던 거네요?
"네. 조회 수가 이렇게까지 나올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원래는 '20만 나오면 대박'이라고 그랬거든요. 저는 그 아래로 봤고요. 어떻게 보면 낡아 버린 '드라마 포맷'을 유튜브에서 받아줄 거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인기를 끌기는 어렵겠다고 예상했거든요. 진짜 비판적으로 보면 내용도 기승전결이 없어요.(웃음) 조충범이라는 인물이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그 문화를 겪는 게 다잖아요."
- 대박의 요인은 뭐라고 보세요?
"사람들이 '나도 저런 회사 다녔다', '나도 저랬다'고, 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디테일과 리얼리즘을 살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제가 시나리오를 쓰긴 했지만 유튜버 '이과장'님 도움이 컸어요. 밥 한 끼 하려고 만났다가 슬며시 여쭤봤어요. 이런 아이디어가 있다고. 요즘 유행하는 '피식대학' 같은 페이크 다큐 만들어 보면 어떠냐고. 이과장님이 '원래 그런 콘텐츠는 안 하는데 괜찮은 것 같다'고 해서 같이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시너지가 났죠.
과장님은 중소기업에 오래 재직했으니까 한 상황에서 직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다 아는 거예요. 저는 잘 모르니까 제가 시나리오 쓰면 대사나 상황의 디테일을 같이 수정하고 현실감을 살리니까 사람들이 그 부분에 열광하더라고요. '푸른거탑' 같이 군대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도 디테일과 리얼리즘으로 화제가 됐던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그런 콘텐츠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재밌다'가 대다수지만, 이런 디테일한 반응들도 있다.
- 과장이라는 반응도 있고, 정반대로 '순한 맛'이라는 반응도 있어요.
"안 좋은 점을 모아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과하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그런데 사실 저희가 각색한 '곽튜브'(유튜버)의 사연을 들어 보면, 드라마가 '순한 맛'이라고 느껴질 정도거든요. 국민 체조를 한 건 제 경험담이기도 하고요.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가혹하더라고요. 뭉쳐 놓으니 과장으로 보이지만, 절대 과장하지는 않은 드라마예요."
- 처음엔 저도 유쾌하게 봤는데, 계속 보다 보니 씁쓸한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냥 웃자고 만든 건 아니겠다'는 느낌이 들던데요. '풍자'의 목적도 있겠지만, 일종의 '고발' 같아 보이기도 해요.
"중소기업을 놀리고 까는 게 목적은 아니에요. '고발'이 정확히 맞아요. 저는 좋좋소가 일종의 '백신'이라고 생각해요. 일부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저희 드라마 보고 기분이 나쁠 수 있겠죠.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 왔는데 겨우 이것 갖고 왜 뭐라고 하냐'고 할 수 있고요. 그렇지만 백신처럼 사람들에게 인식 시켜 놓으면, 좋지 않은 문화들이 조금씩 바뀌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일부 기업에, 하급자에게 반말한다든가 욕하는 문화도 여전히 있잖아요. '군대 문화' 비슷한 게 있는 거죠. 이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군대는 많이 고발되고 문제점이 인식되면서 바뀌는 것 같은데, 직장 문화는 군대만큼 문제 제기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스타트를 끊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게 이렇게까지 온 거죠."
- 자칫하면 '중소기업 안 좋으니 가지 말라'는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을 텐데요.
"단순하게 보면 그럴 수 있지만, 제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변해야 한다'는 거예요. 근로자 80% 이상이 중소기업에 다닌다는데, '중소기업 안 좋으니 가지 말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직장 문화' 이야기를 하는 거죠. 문화라는 건 사장님뿐만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거니까, 모두가 조금씩 노력하면 바꿔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저희 드라마 보면서 '중소기업도 갈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빠니보틀이 좋아하는 '미생'에도 직장 내 성희롱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고발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미생에서 성희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마 부장'을 예로 들며 이야기했다. 자기 직장에서 '마 부장'이 될 뻔한 이들이 미생을 보고 반성하지 않았겠냐면서. 좋좋소의 이런 부분을 보고 '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겠다는 게 그의 작은 바람이다.
'좋좋소'의 무대가 되는 무역회사 '정승네트워크'의 임직원들. 왼쪽부터 이 과장, 정 이사(조정우), 정 사장(강성훈), 이 주임(김태영). 사진='좋좋소' 5화
- 캐릭터도 하나하나 개성 있으면서 어딘가 있을 법해요. 특히 '조충범'은 이 시대 청년의 표상(?) 같기도 하고요.
"캐릭터 한 명 한 명 간단한 컨셉을 잡고 시작했어요. 조충범은 '패배자', 정 사장은 '꼰대', 정 이사는 '무능', 이미나 대리는 '4차원', 이 과장은 '호구'… 이런 식으로요. 특히 조충범은 절 투영한 캐릭터예요. 충범이는 일이 막히거나 어려워지면 헤쳐나갈 생각 대신 포기하잖아요. 그렇게 살아온 저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요. 조충범 표정을 보면, 불만은 가득해 보이지만 절대 이야기를 안 하죠. 직장인들이 다 그렇잖아요. 그런 측면 때문에 '현실감 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해요."
현재 5화까지 릴리즈된 '좋좋소'는 15화를 목표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앞선 이야기를 흥미롭게 본 '왓챠'에서 협업을 제안해 왔다. 6화부터는 왓챠를 통해 '확장판'을 선공개한다. 스케일도 커졌다. 앞으로의 에피소드는 부산을 로케이션 삼아 찍는다. 빠니보틀은 "친구와 한잔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여기까지 온 게 신기하다"고 습관처럼 말했다.
- 예기치 못하게 관심이 커져서 부담도 있겠어요.
"사실 드라마에 일어나는 사건들 하나하나 뜯어보면 심각한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드라마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만 하면 안 되잖아요. '문제'를 보여주면서도 웃겨야 하니까 힘든 거 같아요. 저희는 가볍게 접근시키는 편이 훨씬 효과 있다고 본 거죠.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면 사람들이 지치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렇게 풀어내고 있어요. 일종의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렇게 만들어도 '도저히 못 보겠다'는 분들도 있어요. 힘든 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을 테니까요. '재밌게 즐기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드라마'를 최대한 지향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금해요.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해 주신다면요.
"일단 한 회 분량이 확 늘어날 거고, 회차도 (계획보다) 늘어났거든요. 회사 안팎의 일을 다양하게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등장인물도 늘어날 수 있고요. 사실 시나리오를 아직 반밖에 완성 못 했어요. 전에는 저예산으로 저희끼리 하니까 조금 느긋하게 해도 됐는데, 이젠 (왓챠랑) 같이하니까 빨리빨리 진행해야 되더라고요. 지금 열심히 촬영하고 있어요."
- 좋좋소를 봐 주시는 분들, 앞으로 보실 분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감히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희 드라마를 보시고 바뀌어야 하는 사람은 '사장님'이기도 하지만 직장인 모두이기도 해요. 본인에게 (직장 문화에 관한) 문제의식이 있으시다면 지금부터라도 작은 변화를 시도하면 어떨까요. 문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신입, 사장 가릴 것 없이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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