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헤어질 결심' 하게 하는 신년사 유형

[데이터J] 회사는 늘 어렵고, 일은 늘 못했고, 그러니 기도합시다

2023. 01. 16 (월)
<컴퍼니 타임스> 독자 여러분은 새해 첫 날 무엇을 하셨나요? 일출을 보거나, 2023년 다이어리를 꺼내 새해 목표를 적어보거나, 떡국을 드시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회사에서도 2023년을 알차게 달려나가기 위한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을 세우고, 신년회 혹은 시무식으로 새해를 맞이하죠.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신년사'입니다. 회사 대표가 주로 하는 ‘신년사'는 지난 1년을 회고하면서 되돌아보고, 어떤 목표로 달려가야할지 구성원들에게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도 합니다. “올해는 나쁜 관행을 근절하자"는 사장 신년사로 환영받은 총만족도 4.0인 좋은 회사도 있었죠.

반대로 고장난 네비게이션처럼 길을 잃고, 돌림노래처럼 끝나지 않는 신년사도 있는데요. 잡플래닛 리뷰에서 확인한 신년회와 ‘신년사'의 유형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거기엔 새해부터 회사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유형들을 <컴퍼니 타임스>가 정리해 봤습니다.
유형1. 위기 강조형 "다들 알죠? 회사 어려운 거"(해석: 그래서 연봉은 동결입니다.)

“올해도 경제는 어려울 전망입니다…”는 뉴스는 어째 매년 들리는 것 같다. IMF 이후 레퍼토리가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2023년은 정말 어려울 거라는 게 물가와 각종 지표로도 예측이 되고 있지만, 명확한 지표도 없이 입버릇처럼 ‘어렵다'는 말을 직원들에게 매년 되풀이하는 곳들도 있다. 심지어 최대 실적을 냈는데도 여전히 어려워서 올해도 연봉을 동결해야겠단다. ‘그래서 사장님, 얼마나 더 해야 좋아지는 거죠?’
 
-매년 신년사 때 회사가 힘들다는 말만 함. 회사가 직원을 신경 안 써서 직원 대부분도 회사에 관심없음. 능력되는 사람은 다 이직하고 고인물만 남았다고 보면 됨. (⭐️1.8 경남 제조/화학)

-매년 세계 경제가 불황이라는 신년사로 시작하는데, 회사 매출은 매년 상승중. 이익이 나도 직원들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2.3 경기 제조/화학)

-매년 신년사에서 위기니까 위기 DNA를 발휘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만 하면서 직원들을 압박하고 성과급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에 놀람 (⭐️2.3 인천 제조/화학)

-매년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직원에게 감사하다는 사장의 신년사. 연봉은 계속 동결 (⭐️2.5 인천 유통/무역/운송 외국계)

-신년사에 연봉 인상이 없다고 써서 톡으로 공지한 덕분에 퇴사 러시 발생 (⭐️2.8 광주 IT/웹/통신)
유형2. 사기 저하형 "올해는 쉬어가는 해…일 못하면 해고!" 일을 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 

시험 보고 한 문제를 틀려서 집에 돌아왔을 때 “잘했어"하고 칭찬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100점을 못 맞았어?”라며 닭잡듯 몰아세우는 부모도 있다. 칭찬은 둘째치고, 1개 틀리고 불호령 맞으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매출 기록을 세워도 돈을 못 번다고 하고, 새해 벽두부터 연봉 동결을 선포해 사기를 떨어뜨려놓고 열심히 일하라고 닦달하면 열심히 일하려던 직원의 마음도 돌아설 수밖에 없다.
 
-신년사를 하면서 직원들 일 못한다고 호통치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연봉은 지역 최하위인데. (⭐️1.6 충남 교육업)

-’올해는 쉬어가는 해입니다'라고 신년사를 해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림 (⭐️2.4 서울 미디어/디자인)

-최대 매출 올렸는데도 ‘너넨 돈을 못 번다. 이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신년사함. 이미 레드오션돼가는 시장에 이제 와서 신사업이라며 투자 시작함 (⭐️2.6 서울 IT/웹/통신)

-대표가 신년사라며 일을 못하면 자른다고 협박 메일 보냄 (⭐️2.8 서울 서비스업)
 
유형3. 아무말형 "10년째 같은 얘기…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대표 신년사에는 앞으로 나갈 경영 방침과 비전이 실리기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된다. 유명 기업들의 신년사가 보도되는 것도 향후 1년을 전망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요한 메시지이지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알맹이 없는 말로 시간 떼우기로 일관하는 신년사도 있다. 로봇처럼 같은 말만 매년 되풀이하거나,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다가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빠지거나, 써준대로 읽기만 하는 신년사를 들은 직원들은 무슨 마음이 들까. 열심히 일해보려 했던 의지마저 허탈해지진 않을지 걱정스럽다. 
 
-신년사에 회사의 비전은 찾아볼 수 없고, 샛길로 빠져서 대표의 이상과 후회, 다짐을 들어야 했다. 문제는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 (⭐️1.8 경기 제조/화학)

-10년째 신년사로 변화와 혁신을 말하는데 정작 회장과 임원들의 구체적인 전략은 없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신입사원들의 입사 1년 내 퇴사율이 10명 중 5명일 정도로 많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좋겠음. (⭐️2.5 경기 제조/화학)

-임원도 밥그릇 싸움하기 바빠서 회사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데, 오너는 신년사로 컨설턴트가 만들어준 내용만 읽고,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자산으로 놀고 먹기만 한다. (⭐️3.2 서울 유통/무역/운송)
유형4. 과대 포장형 "투자로 수백억…우리가 제일 잘나가!" 그런데 급여는? 

공기를 잔뜩 채워 포장된 과자는 ‘질소 포장'이라고 비웃음을 산다. 결과가 뒷받침되지 못한 말은 ‘허언증' 혹은 ‘과장광고'가 된다. 신년사에서도 이렇게 과대 포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리 그럴싸한 말이라도, 직원은 안다. 직접 겪어봤으니 그 말이 진짠지 아닌지를. 
 
-신년사부터 수백억을 썼느니 하면서 성과낸 것들 다 무시하고, 위로금으로 준다. 그럴 거면 연말 성과급 지급이라고 왜 써뒀는지 모르겠다. 여기 급여 처참합니다. (⭐️2.4 경기 석유/화학/에너지)

-신년사에서 직원들에게 비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겠다는 등의 의미없는 말만 주구장창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내뱉는다. 자기 포장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2.6 강원도 교육업)

-매년 신년사 때마다 재계약 및 사업확장 내용만 부각한다. (⭐️2.6 서울 서비스업)
유형5. 제정일치형 “새해를 맞았으니, 기도하고 절합시다"

헌법 제20조 제1항에는 이렇게 써있다.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지만 무법지대인 회사도 있다. 종교적인 행사가 많은 연말연시에 회사에서 종교적 절차를 따르게 하는 회사들이 있다. 회사도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직원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이리도 어려운지. 새해부터 종교 의식에 왜 강제로 참석해야만 하는지, 직원들의 머릿 속은 물음표로 가득하다. 
 
-신년사에서 내년에도 이런 식이면 회사를 접겠다고 협박한다. 회사가 불교를 믿어서 행사에 참여해서 절해야 한다. 참석 안 하고 일찍 퇴근하면 눈치 줌. (⭐️2.3 부산 제조/화학)

-신년회처럼 특별한 때에는 목사님을 불러서 설교 듣고 찬양곡을 부르고 영상으로도 찍자고 반강제적으로 강요하기도 함. “기독교 정신 위에 세워진 회사가 사내 문화”라며 천주교라 종교가 다르다고 해도 취업할 때 동의하지 않았냐며 강요함. 사내문화면 근무시간에 해야 하는 걸 텐데, 하나님 말씀은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퇴근 후 반 강제로 징집'해야만 가치있게 빛납니까? (⭐️2.8 서울 IT/웹/통신)

-새해 첫 날 대체 왜 회사에서 필수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서울 미디어/디자인)
유형6. 제왕형 "회장에게 충성하라…맨바닥에 절하고 인사는 90도"

회사 대표니까 제왕적 권력까지 허용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돈으로 지불하지 않은, 사적인 마음까지 모두 산 것처럼 말이다. 새해부터 없는 마음까지 다 꺼내서 대표님께 충성을 뼛속 깊이 표현을 해야만 1년이 평온해진다. 

헌법으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제11조 제1항)라고 되어 있지만 돈과 권력 앞에서 뛰어난 업무 능력과 노동력 대신, 충성을 다해야 하는 현실에 놓인 직원들도 있다. ‘머슴' 혹은 ‘현대판 노비'라고 여겨진다면 신분제를 만들 수 없다고 명시된 이 헌법 조항을 기억하면 좋겠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헌법 제11조 제2항)
 
-회장 신년사를 밤늦은 시간까지 전 직원이 들어야 한다. 임원 개인사에도 직원을 동원하는데 물론 보수 없음. (⭐️2.4 부산 섬유/의류/패션)

-신년사에서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 중 나에게 새해 인사 문자를 보낸 사람을 다 세어보니, 23명이었습니다" 이 문장이 이 회사의 기업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직원들에게 비전이나 희망을 주는 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2.5 서울 유통/무역/운송)

-새해마다 회장님께 고개 푹 숙여서 인사를 박듯이 해야 합니다. 북한인줄. (⭐️2.8 서울 제약/보건/바이오)

-신년회엔 회장님한테 맨바닥에서 그냥 절해야 한다 (⭐️3.3 서울 호텔/여행/항공)
유형7. 창조경제형 "마른 걸레도 짜면 물이 나온다…쥐어 짜라!"

비금속을 금, 은 같은 귀금속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아는가? 맞다. 연금술사다. 신년사에서 대표님은 도끼가 얇디 얇은 바늘이 될 때까지 갈아내고, 바짝 말라서 수분기가 다 사라진 걸레에서 물이 나오게 하라는데, 얼마나 대단한 노동력을 투입해야 할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금속을 금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그렇게 만드는데 투입되는 자본과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돼서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사실은 자꾸만 잊게 되는 모양이다. 금은 직접 채굴하거나, 돈으로 사는 게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고 싸다. ‘티끌모아 태산’이라지만, 꼭 써야할 돈도 안 쓰고 아끼다가는 똥되는 수가 있다. 마른 걸레를 짜라고 할 시간에 더 많은 매출을 올릴 방법을 고민하고, 투자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마른 수건도 쥐어짜라던 대표. 대표 사생활 소문으로 영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는데, 매출이 고꾸라진 건 다 직원들 때문이라고 탓하는 신년사를 듣고 퇴사 결심함 (⭐️1.5 서울 제조/화학)

-’마른 걸레도 짜면 물이 나온다.’ 회장 신년사임. 짠돌이회사. (⭐️1.9 경기 건설업)

-신년사부터 시니컬한 곳입니다. ‘마부위침'(磨斧爲針)요?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라고 합니다. 야근수당이나 주고 요구하시죠. (⭐️2.0 대구 제조/화학)
안시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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