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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그 후, "모든 날이 흉흉해졌어"

[데이터J] 구조조정② 트라우마, 심적 불안, 나빠진 사내 분위기

2023. 03. 16 (목) 18:28 | 최종 업데이트 2023. 03. 28 (화) 09:31
물건은 목적에 맞게 쓰여야 제 기능을 비로소 다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임지연 분)은 머리 모양을 내라고 만든 고데기(헤어 스트레이트너)로 문동은(송혜교 분)에게 화상을 입히며 학교 폭력을 가한다. 원래 목적을 잃은 고데기는 더이상 고데기가 아니라 흉기가 돼버렸다.

구조조정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단, 누군가의 밥벌이가 걸린 일이기에 칼춤추듯 마구 쳐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잡플래닛 리뷰를 살펴보면 그 구조조정을 고데기처럼 흉기삼아 휘두른 사례들이 눈에 띄었다. 칼만 안 들었을뿐, 폭력을 쓴 것과 다름없다. 혹자는 속된 말로 '양'아치스러웠다고 비꼬기도 했다.

그 구조조정, 제대로 된 걸까? 남은 이들은 어떨까? 1000자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 구조조정을 겪은 이들의 리뷰를 통해 '구조조정' 전과 후를 <컴퍼니 타임스>가 정리해 봤다.
◇ 남은 직원들의 고통…트라우마, 심리적 불안

구조조정 태풍이 한 차례 휘몰아치고 나면, 남은 자리는 폐허가 된다. 동료를 일순간에 떠나보내고 남은 구성원들의 마음도 쉽사리 자리잡히지 않는다. 떠난 이들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남는 이들도 마찬가지의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 이번엔 살아남았지만 다음엔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를 '생존자 증후군(Survivor Syndrome)' 혹은 'ADD 증후군(After Downsizing Desertification Syndrome)'으로 분류한다. 구조조정 후 남은 구성원들이 정신적 황폐를 겪는 현상이다. 대형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과 유사하다. 생존자 증후군을 겪었는지 여부는 잘된 구조조정인지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로도 여겨진다.

구조조정을 겪으면 처음엔 회사에 대한 충성도 하락, 불안, 우울, 스트레스, 자존감 하락 등 부정적인 영향을 경험하지만, 구조조정과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전달받으면 긍정적인 태도로 바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면, 리뷰에서 확인한 구조조정 후 남은 구성원들의 경험은 불행히도 부정적이었다.

 
"이번 구조조정으로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사원들이 잘려나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권고사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회사가 아무리 좋아도 한 번에 회사 생활이 끝나는데 그런 공포심을 붙잡고 다녀야 한다면 무슨 소용일지. 나간 사람들은 상처받고 나가고, 남겨진 사람들은 반송장이 돼서 다니고 있다. 이런 회사가 과연 좋은 회사일까" (⭐️3.6 서울 서비스업 회사)

"매각 후 계속되는 구조조정과 해고. 모두 벌벌떨며 비위 맞추기 바쁘다. 매각 전엔 인간미 넘치는 회사였지만 후엔 장점이 없다. 회사 좋게 만드신다더니 이게 좋아진 건가요" (⭐️2.9 서울 유통/무역/운송 회사)

"사업성 없어 보이는 아이템을 살리려고 끝까지 욕심 부려서 마케팅에 수억을 쏟아부었지만, 뚜렷한 성장을 만들지 못했다. 기업과 함께 성장할 거라 기대했지만, 하루아침에 동료들을 구조조정으로 보내고 정말 힘들었다. 고용 불안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희망퇴직을 택해서 퇴사했다" (⭐️2.8 서울 IT/웹/통신 회사)

"경영진이 무능한 줄은 알았는데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구조조정 후 구체적인 상황과 비전에 대해 침묵하면서 이상한 소문만 더 퍼져서 남은 직원들은 동요 중이다. 경영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으면 다음은 자기 차례라는 걸 다들 짐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충 일하고 이직 준비하지 누가 열심히 일할까" (⭐️2.0 서울 IT/웹/통신 회사)

"열정 강요, 월급 체납, 잦은 구조조정. 미래가 불안한 회사. 급여도 무기한으로 밀리고 줘도 50%씩 분할해서 준다. 일을 하면할수록 더 많은 일과 책임이 따라온다. 일을 안 하면 오히려 여유롭게 다닐 수 있다. 다니는 동안 매년 1번씩 구조조정을 겪은 것 같다. 직원들은 사기를 잃었고, 애사심은 원망으로 바뀜" (⭐️2.0 경남 제조/화학 회사)
◇ 이 구조조정 잘한 거 맞아?…사내정치, 해고 후 채용?

구조조정 후에는 결과를 살펴보고 문제가 있었다면 고쳐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구조조정 후 나빠질 수 있는 기업문화도 혁신을 이어가는 등 장기적 관점으로 살펴야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이 구조조정, 잘한 건지를 봐야 한다. 제대로 된 사람이 남은 건지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회사들도 있었다. 정작 일 잘했던 직원은 내보내고, 사탕발린 말만 잘하는 이들이 남아서 사내문화는 더 나쁜 방향으로 바뀌고 있던 것. 그래서 필요인력이 부족해진 회사들은 금세 또 새로운 채용공고를 내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구조조정의 필요성 검토부터 구조조정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 설정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한 게 있었는지 의심이 드는 회사들이다.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고 복지도 좋았고, 직원을 위한 회사가 되려고 했던 참 좋았던 회사였는데 이젠 사내정치만 남았다. 경영진은 불통이고, 몇몇 입김 센 사람들이 일진 놀이를 해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미운 털이 박히면 업무 능력과 상관 없이 무능력자가 된다. 구조조정 후 회사와 개인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던 직원들이 다 사라진 것 같아서 너무 아쉽다. 정말 좋았던 회사가 망가져가는 모습이 참 마음 아프다" (⭐️3.2 서울 유통/무역/운송 회사)

"수개월 전 100명 대에서 20명 미만으로 구조조정한 후 회복을 못함. 복지 다 사라지고 전 직원 급여와 사대보험이 미납 돼서 노동청 통해서 겨우 받을 수 있었다. 거래처도 미납 대금으로 매번 연락오는 상황.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데 채용공고 낸 거 보고 어이가 없었다" (⭐️3.0 서울 IT/웹/통신 회사)

"결국 구조조정까지 오게 됐지만 경영진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수백명 직원들의 생계를 단순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 경영진 옆에는 일은 하지 않고 아첨만 하는 고인물들이 있다" (⭐️2.4 서울 IT/웹/통신 회사)

“사내정치와 구조조정 여파로 퇴사가 이어졌다. 그후 뒷말 만들고 비방했던 일부 사람들이 분위기가 좋다며 일하기 편해졌다고 말하는 걸 듣고 소름 돋았다. 사수 도맡던 분들 다 퇴사하셔서 일 가르쳐줄 시니어도 없다" (⭐️2.3 서울 미디어/디자인 회사) 

"심각한 적자로 구조조정하고 바로 채용 진행하는 답없는 회사. 구조조정을 할 거면 회사에 도움되지 않는 사람을 정리하길. 대표 아드님 때문에 망해가는데 더 빨리 망해가는 중. 유학이라도 가서 경영이라도 배워야 현 상태라도 유지할 것 같다. 직원들 때문에 적자라는 말 그만하면 좋겠다” (⭐️1.8 서울 제조/화학 회사) 
◇ 직원들의 바람은 이랬다 "소통하고, 알려주세요"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몸담았던 회사가 잘되길 바라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비록 구조조정으로 회사의 민낯을 확인했지만, 더 좋은 회사가 되길 바라는 애증 섞인 마음들이었다. 그만큼 당부하는 말들도 장문이었다. 

이들이 속했던 회사는 다 달랐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감없이 솔직히 숨기지 말고 공유해 달라는 것. 그래서 구조조정이 필요하면 제대로 하고, 힘들면 힘든대로 함께 고통 분담하며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다. 

 
"뒤에서 사내 정치를 조장하지 말고, 일반 직원들의 조언과 의견을 귀담아 듣고 제대로 소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려니 소통에 제한됐고, 입맛에 맞는 직원들의 말만 듣다보니 그들에게 권한이 쏠렸다. 그 후엔 그들이 거짓을 말해도 믿어야만 했을 것.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믿은 선택이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 하니,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고 탓할 수밖에 없다" (⭐️2.3 서울 미디어/디자인 회사) 

"끝이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회사에서 소중한 동료들을 얻은 덕분에 힘든 시기도 꾸역꾸역 버틸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부디 다시 살아나는 조직이 되길 응원한다. 물론 그러려면 경영진이 정말 달라져야 할 거다. 많은 걸 느끼고 반성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남은 구성원들에게 만큼은 신뢰를 다시 얻길 바란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초심으로 돌아가시길 빌고, 부디 어려운 시기를 잘 넘어 성장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2.8 서울 IT/웹/통신 회사) 

"회사가 어려워지면 숨기지 말고 미리 설명부탁드린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비밀스럽게 하는데, 직원들도 소문으로 어떻게든 듣는다. 그 과정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실망한다. 구조조정을 할 때는 잉여 인력을 우선 대상으로 고려하면 좋겠다. 정말 심하게 일이 없는 10%가 있다. 일이 없어서 기사 뒤져보고 노래 듣고 유튜브 보는 사람들은 자르지 않는다. 금방 끝낼 일을 천천히 하는 사람은 없는지,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타인에게 미루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해 보시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주변에선 정작 자기 업무할 시간이 부족해서 더 고생했다. 업무 속도가 안 나는 건 프로젝트가 무리하게 많아서일 수 있다. 실무진 다섯 명이 열 명이 해야할 과제를 세 개씩 하면서 성과를 내긴 어렵지 않겠나"  (⭐️3.3 서울 의료/제약/복지 회사) 

"회사 방향성이 뭔지 알려줘서 제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가게 해달라. 매달 전사 미팅이라며 전 직원들의 시간을 두 시간씩 뺏지만, 정작 회사 상황은 전혀 알지 못한다. 구조조정도 그랬다"  (⭐️3.6 서울 서비스업 회사) 
◇ 박수받는 구조조정도 있다…사내정치·월급루팡 OUT! 충분한 정보 공유

다행히 잘한 구조조정도 있었다. 한 마디로 구조조정을 정석대로 해나간 곳들이었다. 

나가야 할 사람이 나가고, 남을 사람이 남았다. 업무를 태만히 하거나 함께 일하려는 분위기를 해치는 이들도 나갔다. 또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보 공유를 충분히 했고, 구성원들의 공감과 이해를 얻었다. 고군분투 끝에 구조조정을 해야했던 대표를 봐온 구성원이 안타까운 심경을 전한 경우도 있었다. 

 
"이상한 사람들이 다 나갔고, 사업이 어려워져서 규모를 축소해야 할 때 의지가 있던 직원들에게는 합당한 조건을 걸고 내부 부서 이동을 권해서 현재까지 잘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2.6 충남 건설업 회사) 

"대표가 모든 일을 잘한다. 그러다 보니 혼자 이야기하게 되는데, 타운홀 미팅을 하면 다들 질문 없이 듣기만 한다. 그렇게 고군분투 했는데 구조조정 소식이 들려 안타깝다"  (⭐️2.6 서울 IT/웹/통신 회사) 


구조조정하면 당연히 반대의 목소리가 높을 것 같지만, 오히려 구조조정을 해주길 바라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고인물이나 무능력한 직원들 때문. 이들은 일하려는 직원들의 의지를 꺾고, 자리 보전을 우선시 하기 때문에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방치하고 실력보다 충성만을 강요하는 회사라면 성장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인재가 많은 회사는 성장성을 기대하게 된다. 이들은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을 잘해서든 인품이 좋아서든 어떤 식으로든 배울 점 있는 동료들은 동기 부여가 되고,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동료들의 수준이 회사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셈. "좋은 동료는 복지"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실력 없고 무능한 인력들도 의리로 끌고 같다.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3.3 서울 세무/회계 회사) 

"일하는 사람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임원들이 사원보다 너무 많다. 구조조정을 통해 불필요한 인력 정리가 시급"  (⭐️3.1 서울 IT/웹/통신 회사)

"성장하려면 전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수준 낮은 사람들이 많다"  (⭐️2.7  서울 제조/화학 회사) 

 "구조조정을 통해 역피라미드 구조를 뒤집으면 좋겠다. 그래서 개개인의 성과와 능력을 연봉으로 인정해주면 좋겠다"  (⭐️2.4 경기 제조/화학 회사) 

"시대를 못따라가는 회사. 일할줄 아는 사람도, 공부하는 사람도 없다. 현재 매출을 보고도 인지도 하나로 큰 회사로 생각함. 주말 마라톤과 등산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내문화에 적응 못해서 밀리는 거라며 직원 탓을 한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전문 경영인만이 답인 것 같다"  (⭐️2.1 서울 제조/화학 회사) 
[구조조정] 
① "그 칼춤, 꼭 춰야 했나?" 구조조정에 빠진 기업들
② 구조조정 그 후 “모든 날이 흉흉해졌어"
 
안시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