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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파묘> 유해진 실제 인물 '대통령 염장이' 몸값은?
[인터뷰] '대통령 염장이' 유재철 장례지도사가 '천운'을 만든 방법
2024. 03. 13 (수)

"나는 산 사람과 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약속 중에도 나를 찾는 전화가 오면,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나는 사람이 죽으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장례지도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염장이> 중
약속 중에도 나를 찾는 전화가 오면,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나는 사람이 죽으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장례지도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염장이> 중
인터뷰 약속 하루 전날 전화가 왔다.
"스님이 입적하셔서,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인터뷰는 힘들겠어요."
그는 산 사람과의 약속을 미루고, 죽은 자를 만나는 길에 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 14년 전 법정 스님의 다비(茶毘)가 진행된 곳이다. 이른 새벽,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 연화대(蓮花臺)를 만들고, 연화대 주변에 만장대를 둘러 세웠다. 약속된 시간, 연화대에 법구(法軀·스님의 시신을 이르는 말)가 안치됐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거화봉에 불이 붙고, 불붙은 거화봉이 연화대에 닿자, 짙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에,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선 낮은 신음소리가 피어 나왔다. 이윽고 연기는 붉은 불꽃으로 바뀌고, 초봄 쌀쌀한 공기에 온기가 실렸다. 붉게 치솟는 불꽃 사이로 얕게 깔린 푸르스름한 빛이 보였다. 육신에 불길이 닿아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내는 빛깔이라고 했다.
수시로 모습을 바꾸며 타오르는 불꽃이 남은 자들의 감정을 다독였으니, 누군가는 불꽃을 바라보며 생전의 추억을 나눴고, 다른 누군가는 떠나는 자의 열반을 기도했다. 3시간쯤 지나 어느덧 축제 같았던 불길이 잦아들고, 남은 이들은 떠난 자의 유골을 쇠 절구에 곱게 빻아 바람에 실려 보냈다.
"스님이 입적하셔서,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인터뷰는 힘들겠어요."
그는 산 사람과의 약속을 미루고, 죽은 자를 만나는 길에 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 14년 전 법정 스님의 다비(茶毘)가 진행된 곳이다. 이른 새벽,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 연화대(蓮花臺)를 만들고, 연화대 주변에 만장대를 둘러 세웠다. 약속된 시간, 연화대에 법구(法軀·스님의 시신을 이르는 말)가 안치됐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거화봉에 불이 붙고, 불붙은 거화봉이 연화대에 닿자, 짙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에,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선 낮은 신음소리가 피어 나왔다. 이윽고 연기는 붉은 불꽃으로 바뀌고, 초봄 쌀쌀한 공기에 온기가 실렸다. 붉게 치솟는 불꽃 사이로 얕게 깔린 푸르스름한 빛이 보였다. 육신에 불길이 닿아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내는 빛깔이라고 했다.
수시로 모습을 바꾸며 타오르는 불꽃이 남은 자들의 감정을 다독였으니, 누군가는 불꽃을 바라보며 생전의 추억을 나눴고, 다른 누군가는 떠나는 자의 열반을 기도했다. 3시간쯤 지나 어느덧 축제 같았던 불길이 잦아들고, 남은 이들은 떠난 자의 유골을 쇠 절구에 곱게 빻아 바람에 실려 보냈다.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에서 진행된 다비장. (사진=박보희 기자)
'육신을 원래 이뤄진 곳으로 돌려보낸다'는 의미의 다비는 불교식 화장 의식이다. 과거에는 스님들만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일반인들에게도 문이 열렸다.
이날 연화 다비를 진행한 이, 연화회 대표 유재철 장례지도사다. 최규하(2006년), 노무현(2009년), 김대중(2009년), 김영삼(2015년), 노태우(2021년) 전 대통령의 국가장에 참여해 장례 의례를, 전두환(2021년) 전 대통령의 가족장을 진행하여 '대통령 염장이'라 불린다. 방송인 송해 장례, 법정 스님 다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묘소 조성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런 그에게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 영화 <파묘>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장의사의 실제 인물이라는.
"영화 초반 이장할 때 장의사가 관에서 나온 금붙이를 챙기잖아. 나 안 그래~ 촬영할 때 옆에 있었거든! 감독한테 '이게 뭐냐'고 하니까 나중에 다 좋게 바뀔 거라고. 아니 그래도 왜 그런 걸 넣어가지고, 아휴 아쉬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하하"
장례지도사라는 직함에, 첫 만남 장소가 다비장이었으니, 뭔가 진지하고 엄숙할 것 같은 편견 가득 안고 인사를 나누는데, 이렇게 시종일관 유쾌한 매력이라니. '대통령 염장이'이자 영화 <파묘> 속 염장이의 실재 인물, 유재철 장례지도사를 만났다.
이날 연화 다비를 진행한 이, 연화회 대표 유재철 장례지도사다. 최규하(2006년), 노무현(2009년), 김대중(2009년), 김영삼(2015년), 노태우(2021년) 전 대통령의 국가장에 참여해 장례 의례를, 전두환(2021년) 전 대통령의 가족장을 진행하여 '대통령 염장이'라 불린다. 방송인 송해 장례, 법정 스님 다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묘소 조성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런 그에게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 영화 <파묘>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장의사의 실제 인물이라는.
"영화 초반 이장할 때 장의사가 관에서 나온 금붙이를 챙기잖아. 나 안 그래~ 촬영할 때 옆에 있었거든! 감독한테 '이게 뭐냐'고 하니까 나중에 다 좋게 바뀔 거라고. 아니 그래도 왜 그런 걸 넣어가지고, 아휴 아쉬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하하"
장례지도사라는 직함에, 첫 만남 장소가 다비장이었으니, 뭔가 진지하고 엄숙할 것 같은 편견 가득 안고 인사를 나누는데, 이렇게 시종일관 유쾌한 매력이라니. '대통령 염장이'이자 영화 <파묘> 속 염장이의 실재 인물, 유재철 장례지도사를 만났다.

사진=스브스뉴스 유튜브 캡쳐
그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36살, 이후 30년째 한 길을 걷고 있다. 그가 마지막을 지킨 고인이 4000여 명에 이른다. 그 사이 대한민국 전통장례명장 1호로 이름을 올렸고, '단체장'과 '국가장'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야말로 이 일에 진심이다.
하지만 그 길이 쉬웠을 리 없으니, 지금은 명장으로 불리지만 처음엔 곱지 않은 시선에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행사 기획을 한다'고 둘러대기도 했단다. 생의 마지막 이별 여행 기획!
-어떻게 장례지도사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27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 돈 가져다 사업을 했는데, 일 년 반 만에 다 까먹었어요. 폐업하고 잔금 빼서 직원들 월급 주고 하니 끝이더라고. 그때 정말 힘들었죠. 100일간은 지금도 기억이 없어요. 한동안 위산과다로 신물이 올라와서 길을 걷다가도 한참을 멈춰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랬어."
그 후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내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이 일을 만났고, 천직이 됐다.
"처음엔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첫째가 4살, 둘째가 1살이었는데, 여전히 자리는 못 잡은 것 같고. 뭐든 못 할 게 없었죠.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일 시작했을 때 만난 분들 덕분인 것 같아. 일을 배우겠다고 하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셔서 염을 했는데, 참 깨끗하게 돌아가셨어요. 염을 하고 나왔는데 가족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더라고요. 고맙다는 얘기를 들으니 보람도 있고 자부심도 생기고. 한 2년은 깨끗하게 돌아가신 분들만 오시더라고. 그러다 나중에는 힘든 분을 만나도 '나니까 편히 잘 보내드릴 수 있지, 내가 해야지'라는 자부심으로 일했고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잘 배운 덕분이기도 하죠. 전국에 잘하시는 분들 찾아다니면서 많이 배웠어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는 걸 자꾸 물어봐! 어떻게 해, 모른다고 하기 창피하니까 공부하게 된 거죠. 맨날 술먹고 노는 거 좋아하던 사람이 공부를 하게 됐다니까. 그러고 보면 천직은 따로 있는 것 같긴 해요. 지금까지 하면서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사업 실패 후 누워있던 100일의 시련이 날 살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그게 아니었으면 엄청 건방지게 살았을 거야. 그때 돈 잘 벌고 했으면 맨날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술이나 먹었겠지. 그때 사업에 실패하면서 세상을 배우게 됐죠."
하지만 그 길이 쉬웠을 리 없으니, 지금은 명장으로 불리지만 처음엔 곱지 않은 시선에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행사 기획을 한다'고 둘러대기도 했단다. 생의 마지막 이별 여행 기획!
-어떻게 장례지도사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27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 돈 가져다 사업을 했는데, 일 년 반 만에 다 까먹었어요. 폐업하고 잔금 빼서 직원들 월급 주고 하니 끝이더라고. 그때 정말 힘들었죠. 100일간은 지금도 기억이 없어요. 한동안 위산과다로 신물이 올라와서 길을 걷다가도 한참을 멈춰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랬어."
그 후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내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이 일을 만났고, 천직이 됐다.
"처음엔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첫째가 4살, 둘째가 1살이었는데, 여전히 자리는 못 잡은 것 같고. 뭐든 못 할 게 없었죠.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일 시작했을 때 만난 분들 덕분인 것 같아. 일을 배우겠다고 하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셔서 염을 했는데, 참 깨끗하게 돌아가셨어요. 염을 하고 나왔는데 가족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더라고요. 고맙다는 얘기를 들으니 보람도 있고 자부심도 생기고. 한 2년은 깨끗하게 돌아가신 분들만 오시더라고. 그러다 나중에는 힘든 분을 만나도 '나니까 편히 잘 보내드릴 수 있지, 내가 해야지'라는 자부심으로 일했고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잘 배운 덕분이기도 하죠. 전국에 잘하시는 분들 찾아다니면서 많이 배웠어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는 걸 자꾸 물어봐! 어떻게 해, 모른다고 하기 창피하니까 공부하게 된 거죠. 맨날 술먹고 노는 거 좋아하던 사람이 공부를 하게 됐다니까. 그러고 보면 천직은 따로 있는 것 같긴 해요. 지금까지 하면서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사업 실패 후 누워있던 100일의 시련이 날 살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그게 아니었으면 엄청 건방지게 살았을 거야. 그때 돈 잘 벌고 했으면 맨날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술이나 먹었겠지. 그때 사업에 실패하면서 세상을 배우게 됐죠."
"장례지도사는 나에게 돈벌이 정도의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유족이 위로받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이 일은 내 삶의 이유이자 사명이다.
요즘은 평생직장 개념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내 사명이라고 느끼는 일을 발견한 순간,
그것은 평생 놓지 못하고 붙드는 직업이 된다."
유족이 위로받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이 일은 내 삶의 이유이자 사명이다.
요즘은 평생직장 개념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내 사명이라고 느끼는 일을 발견한 순간,
그것은 평생 놓지 못하고 붙드는 직업이 된다."
-장례지도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 질문을 가장 많이 할 것 같아요. '귀신 본 적 있냐'고요. 영화 <파묘> 때문에 더 그럴 것 같아요. 실제 책에서 염을 하고 난 이후 자려고 누웠더니 영가가 쳐다보는 걸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영혼의 존재를 느낀 사례들이 꽤 있으시더라고요.
"일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땐데, 젊은 애 아빠 장례였어요. 장례를 치르는 데 어린아이들도 있고 마음이 안 좋더라고. 그래서 '덕분에 잘 배웠다, 좋은데 가시라'고 30분쯤 기도를 드렸죠. 자려고 누웠는데 그 아저씨가 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거야. 눈 뜨면 없어졌다가 자려고 눈 감으면 또 나타나고. 꽤 선명했어요. 며칠을 그래. 아는 스님께 여쭤봤더니 '너는 네 일에 최선을 다 했으면 네 할 일은 다한 것이고 이후는 그분의 업에 맡기면 되는건데 영가 걱정을 왜 했냐, 니가 집착을 하니까 그 영이 못 떠나는 거'라고, 그 생각을 떨치라고 하시더라고. 그 생각을 딱 하고 나니까 안 보여요. 그게 제 신조가 됐어요. 그냥 그 순간만 열심히 살아. 염 끝나고 나오면 잊어버려요.
그런 기운은 많이 느껴요. 순간적으로 어떤 기운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염할 때 내가 물건을 잘 정리하면서 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물건 위치가 바뀌어있을 때가 있어요. 꽤 여러 번. 영가가 장난을 치시나 싶기도 하고.
일하면서 기도를 많이 해요. 지금도 새벽이면 나와 인연 맺은 영가 님, 고인들 극락왕생하시라, 또 앞으로 좋은 인연들 만나게 해주시길, 기도를 드려요. 30년쯤 되니까 기도가 쌓여서 내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단단해지는 걸 느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계속하지 싶기도 하고."
"일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땐데, 젊은 애 아빠 장례였어요. 장례를 치르는 데 어린아이들도 있고 마음이 안 좋더라고. 그래서 '덕분에 잘 배웠다, 좋은데 가시라'고 30분쯤 기도를 드렸죠. 자려고 누웠는데 그 아저씨가 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거야. 눈 뜨면 없어졌다가 자려고 눈 감으면 또 나타나고. 꽤 선명했어요. 며칠을 그래. 아는 스님께 여쭤봤더니 '너는 네 일에 최선을 다 했으면 네 할 일은 다한 것이고 이후는 그분의 업에 맡기면 되는건데 영가 걱정을 왜 했냐, 니가 집착을 하니까 그 영이 못 떠나는 거'라고, 그 생각을 떨치라고 하시더라고. 그 생각을 딱 하고 나니까 안 보여요. 그게 제 신조가 됐어요. 그냥 그 순간만 열심히 살아. 염 끝나고 나오면 잊어버려요.
그런 기운은 많이 느껴요. 순간적으로 어떤 기운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염할 때 내가 물건을 잘 정리하면서 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물건 위치가 바뀌어있을 때가 있어요. 꽤 여러 번. 영가가 장난을 치시나 싶기도 하고.
일하면서 기도를 많이 해요. 지금도 새벽이면 나와 인연 맺은 영가 님, 고인들 극락왕생하시라, 또 앞으로 좋은 인연들 만나게 해주시길, 기도를 드려요. 30년쯤 되니까 기도가 쌓여서 내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단단해지는 걸 느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계속하지 싶기도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가장 진행 사진. 사진 오른쪽 검은 양복을 입고 선 이가 유재철 장례지도사다.
영화 <파묘>에서 유재철 장례지도사를 유해진 배우로 바꿔 사용했다.
그가 '대통령 염장이'로 불리게 된 건 최규하 전 대통령 장례를 모시면서다.
-처음에 어떻게 최규하 전 대통령 장례를 모시게 되셨어요? 먼저 연락이 왔나요?
"자고 있는데, 아내가 깨우는 거야. 최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장례식장으로 갔어요. 갔더니 다들 처음이니까 허둥대고 혼란스럽더라고.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게 되고, 그러다 최 전 대통령 장례를 모시게 된거지."
-연락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셨다고요?
"그랬다니까.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자다 일어나서 부랴부랴 나갔지."
전국에 수많은 장례지도사가 있었을 테지만, 최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직접 찾아간 이는 아마도 그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도 연락이 오기 전 먼저 봉하마을로 향했다.
-처음에 어떻게 최규하 전 대통령 장례를 모시게 되셨어요? 먼저 연락이 왔나요?
"자고 있는데, 아내가 깨우는 거야. 최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장례식장으로 갔어요. 갔더니 다들 처음이니까 허둥대고 혼란스럽더라고.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게 되고, 그러다 최 전 대통령 장례를 모시게 된거지."
-연락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셨다고요?
"그랬다니까.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자다 일어나서 부랴부랴 나갔지."
전국에 수많은 장례지도사가 있었을 테지만, 최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직접 찾아간 이는 아마도 그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도 연락이 오기 전 먼저 봉하마을로 향했다.
"운도 따랐겠지만 사람 일은 운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운만으로 이 일을 해왔다면 나는 천운을 타고난 사람일 거다.
나는 오랫동안 우리나라 큰 단체장을 조사하고 연구하고 준비하며,
실제로 적용할 기회를 늘 찾고 기다렸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일을 대하는 태도와 접근방식을 반성하며
진정성 있는 자세, 성실성, 사명감 등을 다져왔다."
운만으로 이 일을 해왔다면 나는 천운을 타고난 사람일 거다.
나는 오랫동안 우리나라 큰 단체장을 조사하고 연구하고 준비하며,
실제로 적용할 기회를 늘 찾고 기다렸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일을 대하는 태도와 접근방식을 반성하며
진정성 있는 자세, 성실성, 사명감 등을 다져왔다."
1980년대 초, 이른바 '서울의 봄'은 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학생이던 그는 데모 주동자로 지목돼 석 달을 유치장에 잡혀있었다. 41년이 흐른 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례를 직접 모시게 됐다.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장례를 직접 치르며 복잡한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유치장 생각도 났을 것 같고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병으로 오래 편찮으셨어요. 돌아가시기 10년 전부터 연락이 와서 어느 정도 준비가 돼있었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고요. 사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삶이 어떠했든 전 대통령의 장례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잖아요. 외국에도 알려질 수 있고요.
이 과정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우리 장례 문화에 안 좋은 영향이 갈 수도 있고, 그러니 '제대로 진행돼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인이 어떤 사람이든 죽음을 맞이한 자를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일, 그게 제 일이니까요."
그는 대통령이나 유명인의 장례를 모신 걸 자랑으로 삼지는 않는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 장례 문화를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는 영정에 두르는 검은 띠를 없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에는 상주 왼팔에 완장을 채우는 대신 베로 만든 나비 모양의 상장을 왼쪽 가슴에 달았다. 전통상례의 의미를 더 잘 담을 수 있는 형식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 때 의장대의 장갑과 마스크를 없앤 것은 고인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싶어서다.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장례를 직접 치르며 복잡한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유치장 생각도 났을 것 같고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병으로 오래 편찮으셨어요. 돌아가시기 10년 전부터 연락이 와서 어느 정도 준비가 돼있었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고요. 사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삶이 어떠했든 전 대통령의 장례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잖아요. 외국에도 알려질 수 있고요.
이 과정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우리 장례 문화에 안 좋은 영향이 갈 수도 있고, 그러니 '제대로 진행돼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인이 어떤 사람이든 죽음을 맞이한 자를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일, 그게 제 일이니까요."
그는 대통령이나 유명인의 장례를 모신 걸 자랑으로 삼지는 않는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 장례 문화를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는 영정에 두르는 검은 띠를 없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에는 상주 왼팔에 완장을 채우는 대신 베로 만든 나비 모양의 상장을 왼쪽 가슴에 달았다. 전통상례의 의미를 더 잘 담을 수 있는 형식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 때 의장대의 장갑과 마스크를 없앤 것은 고인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싶어서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아간다.
30년 간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이다.
나도 어느 한순간 갈 수 있다는 생각하면 오늘이 소중해진다."
우리는 '내일'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아간다.
30년 간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이다.
나도 어느 한순간 갈 수 있다는 생각하면 오늘이 소중해진다."

-'대통령 염장이'로 알려지면서 일반분들은 범접하기 힘든 분이라는 인식이 큰 것 같아요. 재벌 장례도 많이 진행하셨잖아요. 얼마 전 출연하신 유튜브 영상에 실제 '몸값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댓글이 많더라고요.
"아이고, 아니야! 예전에는 장례 비용이 부르는 게 값이다 보니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요즘에는 딱 정해진 정가가 있어요(웃음). 장례 규모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 거지, 일반적인 장례 비용은 비슷해요. 상조회사나 병원에서 많이 하는데, 우리가 다른 점이라면 맞춤 장례를 할 수 있다는 거겠죠. 전 모든 사람의 장례식에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장례식은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 정리를 위한 의식이기도 하거든. 떠나는 분을 추억하고,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런 장례 문화라 할 것이 없어요. 아무 때나 장례식장에 와서 절하고 봉투 내고 조금 앉아있다가 떠나잖아요.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영결식이 있더라고요. 고인이 떠나기 전,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고인의 삶, 함께 한 추억을 이야기를 나누며 이별의 시간을 나누는 시간이 있어요. 작은 장례식이라도 이야기와 문화가 있는 장례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거창할 필요가 있나요,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를 수도, 시를 낭송할 수도, 추도사를 읽는 방법도 있겠죠.
장례식이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고인과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충분히 추모하고 아름답게 이별하는 자리가 됐으면 해요. 고인이 주인공이 되는 맞춤 장례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걸 뭔하는 분들도 분명 계실거고. 연락 주세요. 안 비싸요."
이런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함께 일할 이를 찾고 있다고.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직업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겠죠. 사실 마음이 약한 분들은 좀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 있는 일이예요. 현실적으로도 정년 없이 오래 할 수 있는 일이고요. 사실 우리끼리는 '사장을 뽑자'는 얘기도 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농담인 줄 아는데 진짜거든. 2세가 사업을 물려받아서 더 잘 되는 경우 얼마나 많아요. 이제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일 알려주고, 물려주고 할 때가 됐다 생각해요. 일 배우고 싶으신 분들 찾아오세요. 진짜로!"
"아이고, 아니야! 예전에는 장례 비용이 부르는 게 값이다 보니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요즘에는 딱 정해진 정가가 있어요(웃음). 장례 규모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 거지, 일반적인 장례 비용은 비슷해요. 상조회사나 병원에서 많이 하는데, 우리가 다른 점이라면 맞춤 장례를 할 수 있다는 거겠죠. 전 모든 사람의 장례식에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장례식은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 정리를 위한 의식이기도 하거든. 떠나는 분을 추억하고,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런 장례 문화라 할 것이 없어요. 아무 때나 장례식장에 와서 절하고 봉투 내고 조금 앉아있다가 떠나잖아요.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영결식이 있더라고요. 고인이 떠나기 전,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고인의 삶, 함께 한 추억을 이야기를 나누며 이별의 시간을 나누는 시간이 있어요. 작은 장례식이라도 이야기와 문화가 있는 장례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거창할 필요가 있나요,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를 수도, 시를 낭송할 수도, 추도사를 읽는 방법도 있겠죠.
장례식이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고인과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충분히 추모하고 아름답게 이별하는 자리가 됐으면 해요. 고인이 주인공이 되는 맞춤 장례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걸 뭔하는 분들도 분명 계실거고. 연락 주세요. 안 비싸요."
이런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함께 일할 이를 찾고 있다고.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직업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겠죠. 사실 마음이 약한 분들은 좀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 있는 일이예요. 현실적으로도 정년 없이 오래 할 수 있는 일이고요. 사실 우리끼리는 '사장을 뽑자'는 얘기도 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농담인 줄 아는데 진짜거든. 2세가 사업을 물려받아서 더 잘 되는 경우 얼마나 많아요. 이제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일 알려주고, 물려주고 할 때가 됐다 생각해요. 일 배우고 싶으신 분들 찾아오세요. 진짜로!"
⭐<파묘> 속 진실⭕ 혹은 거짓❌⭐
-파묘 전 "파묘요" "파관이요" 외친 뒤 무덤을 파던데, 진짜?
✔️산소에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계시는데, 손을 대려면 소리가 나니까 놀라지 마시라고. 삽으로 '파묘요 파묘요 파묘요' 세번을 파고, 가족들이 산소 동서남북으로 한 삽씩 떠서 떼어놓으면, 그다음에 작업하는 거.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이 파묘 후 100원짜리를 던지던데, 진짜?
✔️묘지 잘 썼으니까 사용료로 던지는 거, 10원짜리 3개. 영화에선 10원짜리가 흙색과 비슷해서 표시가 안 나서 100원짜리로 했다더라.
-관 채 화장하던데, 진짜?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오래된 관이 있으면 꺼내기도 힘들어. 뚜껑 열고 유골만 모셔서 나와.
-관 밑에 또 관이 있는 첩장, 진짜?
✔️3년 전에 10대 재벌 중 한 곳에서 의뢰를 받아 산소를 팠는데 한쪽 흙이 쓰러지면서 다른 관이 나오더라. 100년 됐다는 산소였는데, 할머니 관 옆에 다른 관이. 그걸 첩장이라 하겠지. 양반집이나 잘된 집 옆에는 간혹 있다고 하더라.
-파묘 전 "파묘요" "파관이요" 외친 뒤 무덤을 파던데, 진짜?
✔️산소에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계시는데, 손을 대려면 소리가 나니까 놀라지 마시라고. 삽으로 '파묘요 파묘요 파묘요' 세번을 파고, 가족들이 산소 동서남북으로 한 삽씩 떠서 떼어놓으면, 그다음에 작업하는 거.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이 파묘 후 100원짜리를 던지던데, 진짜?
✔️묘지 잘 썼으니까 사용료로 던지는 거, 10원짜리 3개. 영화에선 10원짜리가 흙색과 비슷해서 표시가 안 나서 100원짜리로 했다더라.
-관 채 화장하던데, 진짜?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오래된 관이 있으면 꺼내기도 힘들어. 뚜껑 열고 유골만 모셔서 나와.
-관 밑에 또 관이 있는 첩장, 진짜?
✔️3년 전에 10대 재벌 중 한 곳에서 의뢰를 받아 산소를 팠는데 한쪽 흙이 쓰러지면서 다른 관이 나오더라. 100년 됐다는 산소였는데, 할머니 관 옆에 다른 관이. 그걸 첩장이라 하겠지. 양반집이나 잘된 집 옆에는 간혹 있다고 하더라.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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