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에 미친 자들이 ‘무비랜드'를 만든 이유

[인터뷰] 모빌스그룹(모베러웍스·무비랜드) 모춘 & 소호

2024. 04. 25 (목) 18:12 | 최종 업데이트 2024. 04. 26 (금) 14:32
모베러웍스 무비랜드 모춘 & 소호소호와 모춘, 그리고 부기 인턴. ©컴퍼니타임스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이다. 그냥 휴무일 아니냐고? 섭섭한 소리. 더 나은 일(Work)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브랜드 모베러웍스에겐 1년 중 가장 특별한 명절이다. 이들은 브랜드가 처음 만들어진 2019년 이래로 매년 노동절마다 팬들과 재미난 잔치를 벌여왔다. 

모베러웍스에게 일이란? 삶을 담대하게 즐기는 방식이자 ‘나다움’을 찾아가는 통로다. 그러니, 일과 노동의 가치를 기리는 노동절에 남다른 애착을 가질 수밖에! 

올해 모베러웍스의 노동절은 조금 더 특별할 예정이다. 무려 2년간의 준비를 거쳐 지난 2월 세상에 내놓은 극장 무비랜드에서 노동절 잔치를 치른다. 무비랜드 오픈을 위해 달려온 686일의 기록을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제작해 상영하고, 전시도 연단다. 

그런데 잠깐, 일에 관해 이야기해오던 브랜드가 별안간 극장은 왜 만든 거지? ‘Small Work, Big Money’와 같은 농담을 던질 땐 언제고, 요새 가장 어렵다는 극장 사업을…? 그것도 고작 30석짜리 소규모 상영관을…?!  

모베러웍스에서 무비랜드로 이어지는 이들의 세계관은 대체 어딜 향해 흘러가고 있는 걸까.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 중심에 자리 잡은 무비랜드에서 모빌스그룹(모베러웍스, 무비랜드 운영사)의 대표, 모춘과 소호를 만났다. 노동절 잔치 히스토리부터 무비랜드 비하인드 스토리, 일에 대한 생각들까지. 묻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무비랜드빈티지한 매력의 무비랜드 박스오피스와 인쇄물. ©컴퍼니타임스
 

SCENE 1.
번아웃 치료제가 ‘일’이었다고?

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지 상상해 본적 있는가? 

다른 건 몰라도,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일하는 장면으로 채워질 게 분명하다. 우린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쓰니까. 이 상상의 끝자락엔 매번 ‘내 인생, 이대로도 괜찮나’ 따위의 질문이 끈적하게 따라붙는다. 하지만 파도처럼 밀려드는 업무 일과에 휩쓸려, 질문은 이내 흐릿해진다.

그런데 이들은 좀 달랐다. 라인플러스에서 라인프렌즈 브랜드 디자이너, 기획자로 일하던 모춘과 소호. 전력투구하듯 달려온 직장생활에서 번아웃을 맞닥뜨린 두 사람은 생각했다. 

‘좀 더 즐겁고 유쾌하게, 나다운 일을 하면서 살 순 없을까?’ 

그렇게 모두가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들. 퇴사 후 2019년 모베러웍스를 세상에 선보이기에 이른다. 나다운 일을 찾고 유쾌하게 일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희한한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

“누군가에겐 일이 단지 괴로운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였어요. 일을 빼놓고는 저희를 설명할 수 없다고 느꼈거든요.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테니, 그들과의 접점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브랜드를 시작했어요.”
모베러웍스©모베러웍스
퇴사하는 장면부터 시작해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날 것 그대로 유튜브에 올리자, 순식간에 1만 명에 달하는 코어 팬이 모였다. 일에 대해 유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열어보고 싶다는 바람은 자연스레 ‘노동절 잔치’ 기획으로 이어졌다. 

“모베러웍스를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일이라는 주제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일은 그저 힘든 거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아요. 우리처럼 일을 즐기고 싶고, 나다운 일을 찾고 싶은 분들이 한데 모여서 재밌는 잔치를 즐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일의 방식을 실험하고, 일에 대한 농담을 건넨다는 모베러웍스의 컨셉이 사람들에게 잘 와닿는 형태로 전달되길 바랐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바로 페르소나를 내세우는 것. 마침 배달의민족 출신 마케터 숭(이승희)과 뀰(김규림)이 퇴사 후 백수 듀오 ‘두낫띵클럽(Do Nothing Club)’를 결성한 차였다. 두낫띵을 외치며 자꾸 뭔가 재미난 일을 두, 두, 두, 찾아다니는 이들이라니. 모베러웍스의 가치관에 딱 들어맞았다. 두낫띵클럽과 합심해 첫 번째 노동절 잔치를 준비했다. 결과는 대흥행! 행사 첫날에만 1,000명에 달하는 방문객이 몰렸다.

이듬해 노동절에는 무신사에서 ‘WORK SHOP’이라는 이름으로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뉴발란스를 비롯해 9개의 로컬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에 함께했다. 모베러웍스만의 일하는 방식, 일에 대한 철학을 담은 책 <프리워커스>도 때맞춰 출간해 매대를 채웠다.

이들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팬들이 늘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브랜딩 의뢰와 협업 제안이 쏟아졌다. 여기저기 강연에 초청받는 일도 많아졌다. 농담처럼 외쳤던 ‘Big Money’가 진짜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문제는, 처음 퇴사를 결심하면서 꿈꿨던 ‘나다운 일’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희가 알려지기 시작하니 일을 확장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게 우리 팀의 색깔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씬에서 ‘쟤들 잘한다, 재밌게 한다’라는 평을 받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일에 다시 속박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어떤 일이든 기꺼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죠.”
 

SCENE 2.
다시 번아웃, 위기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달콤한 해피엔딩은 역시 쉽게 주어지지 않는 법일까. 모춘은 다시 지독한 번아웃에 빠졌다. ‘프리워커’의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건만…! 물론, 머리 위에서 왱왱 울리는 경고음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일개 직장인일 땐 꿈꾸지 못했던 Big Money에 성큼 가까워진 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빌스그룹은 과감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숨을 고르고 경로를 재탐색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팀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몇 개월간 큰 번아웃이 찾아왔어요. 그때 저희끼리 다짐했죠. 시장의 논리에 휩쓸리지 말고,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요.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극장’이었어요. 주변에서 다 뜯어말렸어요. 웬만한 브랜드도 살아남기 힘든 성수동에서 극장 열어봤자 무조건 망한다고요. 그 얘길 들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그럼 우리가 한 번 해볼까? 하고 싶은 거 해보고 망하면 차라리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모베러웍스 무비랜드 모춘 & 소호무비랜드 극장주이자 모빌스그룹의 대표인 모춘과 소호. ©컴퍼니타임스
그렇게 새로운 도전이 다시 시작됐다. 모빌스그룹에서 영화상영업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곤 단 1명도 없었다. 하지만 두려움보단 새로운 일이 주는 설렘과 흥분이 이들을 달뜨게 했다. 1년 치 플랜을 세웠다. 목표는 2023년 5월에 극장을 오픈하는 것.  건축, 브랜딩, F&B, 콘텐츠…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졌다. 디자이너인 모춘은 브랜드 디자인과 공간을 맡고, 소호는 기획과 재무, 운영 전반을 담당하기로 했다.

“안 해본 일을 어떻게 그리 척척 계획했느냐고요? 놀랍게도,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정말이지 다 틀렸죠.(웃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수도 없이 생겼으니까요. 제 경우에는, 디자인에 대한 비전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어요. 팀원들 각자에게 과제를 부여하고 고도화해야 하는데, 디렉터인 제가 헤매니까 팀원들도 같이 헤맬 수밖에 없었죠.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밤을 새웠어요. 무비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일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매일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기획자인 소호에게도 큰 숙제가 안겨졌다. 무비랜드가 어떤 극장이 될 것인가를 정하는 일. 멀티 플렉스에서는 주로 신작을 틀고, 작은 극장들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튼다. 무비랜드는 옛날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기준이 필요했다. 무수히 많은 옛날 영화 가운데 대체 무엇을 골라야 한단 말인가. 

일단 팀원들이 각자 좋아하는 영화를 쭉 나열해 봤다. 총 300편 남짓. 이걸 다 틀고 나면 그다음엔 어떤 영화를 틀어야 하지? 그땐 무비랜드가 문을 닫아야 하는 건가… 지속 가능한 방식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빠더너스의 코미디언 문상훈이 선정한 무비랜드 4월 큐레이션 상영작무비랜드 4월의 상영작 4편은 빠더너스(BDNS)의 코미디언 문상훈이 선정했다. ©컴퍼니타임스
“사람에 집중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우리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먼저 정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를 트는 거죠. 그렇게 하니까 극장의 색이 뚜렷해졌고 지속 가능한 형태가 만들어졌어요. 물론 이외에도 해결해야 할 이슈가 많았어요. 큐레이터가 선정한 영화를 수급해 오는 것도 난항이었는데, 다행히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이제 대부분의 영화를 수급할 수 있게 됐죠.”

큐레이터를 선정하는 기준은 완전히 열어뒀다. 모베러웍스가 매력을 느끼는 인물, 궁금한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무비랜드의 큐레이터가 될 수 있다.

“‘주변의 친구 3명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베러웍스가 알고 싶은 사람들을 모으면 결국에는 그들이 모베러웍스의 색채를 설명해 주지 않을까요? 무비랜드가 ‘그릇’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픈을 준비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해요.”
극장주(劇場主)라는 직함이 새겨진 모춘과 소호의 명함 ©컴퍼니타임스
 

SCENE 3.
무비랜드, 삶을 이야기하다

단 30석으로 구성된 오렌지빛의 무비랜드 상영관. ©컴퍼니타임스
혹자는 ‘그럼 이제 모베러웍스는 더 이상 일 얘기를 안 하는 건가?’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왜 굳이 극장이어야만 했던 것이며, ‘일’에서 ‘영화’로 건너오기까지 행간에 숨은 맥락은 무엇일까. 그래서 결국,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저희에게 일은 삶을 담는 도구와도 같아요. 왜 굳이 모베러웍스라는 브랜드를 만들면서까지 일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을까 생각하면, 사실 ‘잘 살고 싶어서’였어요. “일 재밌게 하자,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자”라는 말은 곧 “웰빙(Well-being)을 추구하자!”였던 거예요. ‘일’이란 단어를 ‘삶’으로 바꿔도 동일한 느낌인 거죠.”

더 다양한 삶의 방식과 태도를 이야기로 포착하고 싶었다. 무비랜드를 준비하면서 거친 험난한 도전과, 각자의 매력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애착이 담긴 영화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흐르는 공간으로 극장이 기능하기를, 이들은 꿈꾼다.
즉석에서 티셔츠나 가방 등 원하는 곳에 실크스크린 프린팅을 받을 수 있는 무비랜드 1층 공간. ©컴퍼니타임스
“극장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 최대한 저희 손을 거쳐 직접 만들었어요. 무비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게 어쩌면 안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한 순간도 많아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해냈잖아요. 앞으로도 많은 숙제가 남아있긴 하지만요. 극장을 찾는 분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여러분 각자의 삶에도 여러 부침이 있겠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냥 계속하다 보면 그게 어떤 모습이든 언젠가는 분명 결실을 볼 거라고요.”

모베러웍스의 시작부터 함께해 온 현판에는 ‘START WITH YES’라고 쓰여있다. 모베러웍스의 스피릿(Spirit)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문구가 또 있을까. YES로 시작해, 끝끝내 YES!에 도달하고 마는 사람들. 그래서겠다. 모베러웍스는 이번 2024년 노동절 타이틀을 ‘START WITH YES’로 정했다. 

“도즈드 매거진 팀과 함께 지난 2년간 무비랜드 준비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어요. 그것들을 모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습니다. 5월 1일부터 6일까지 무비랜드에서 상영되고요. 2층에서는 MoTV 요약 영상과 모베러웍스 팀의 기록물 전시를 관람하실 수 있어요. 멋있는 성과에 대한 전시가 아니라 ‘어라,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네…?’ 뭐 이런 식의 연속이었던, 구질구질한 기록이에요.(웃음) 일의 괴로운 속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해냈던 날들의 지난하고 진솔한 흔적을 가감 없이 나누고 싶어요.”
노동절 기념 다큐 <MOVIE LAND MAKING FILM: 무비랜드 686일의 기록> 티켓 ©무비랜드
 

SCENE 4.
모빌스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즐겁고 유쾌한 일만 가득한 팀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베러웍스 팀은 혹독하리만치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추구하는 ‘빡센’ 조직이다. 대표뿐 아니라 직원들까지도 한번 시작한 일은 어떻게든 끝을 본다. 직원들의 마음속에 이토록 뜨거운 열정을 뿌리내리는 비결이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꼬신다고 되는 건 아니고, 좋은 씨앗을 지닌 친구들을 만난 거죠. 이 친구들이 굉장히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하면 일을 진짜 재밌게 할 수 있는가를 아는 사람들 같거든요. 그리고 우리의 일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저희에겐 이 공간을 바닥부터 함께 만든 경험과 기억이 쌓여있거든요. 하나하나 본인들의 손길이 닿은 작업물인 셈이죠. (벽에 걸린 아트워크를 가리키며) 여기 보시면 ‘강혜린’이라고 쓰여 있어요. 보통 이런 브랜드 공간에서 작업자 이름을 따로 적진 않잖아요. 저희는 디자인 실명제예요.(웃음)”
©컴퍼니타임스
햇수로 5년. 즐겁고 가슴 뛰는 일을 향해 열심히 방향키를 돌리며 제법 멋진 항해를 해왔지만, 그럼에도 매순간 고민은 많았다. 팀이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으려면 비즈니스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것 또한 분명 중요하기 때문. 이들은 여전히 ‘돈이 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아가고 있다. 

“회사에 다닐 땐 상사와 시스템의 눈치를 봐야 해서 힘들었고, 회사를 차린 뒤에는 이해관계자와 파트너,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힘들었어요. 여전히 눈치를 아예 안 보고 일한다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이제는 우리가 만든 공간이 있으니 조금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됐어요. 우리집에선 남의 눈치 안 봐도 되잖아요.”

브랜드 초기와 달라지지 않은 점은 지금 이 순간, 후회 없이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일이 본인에게 어떤 감정과 감각을 가져다주는지 매 순간 기민하게 관찰한다.

“오늘 하루 웃으면서 재밌게 일했는가가 저희에겐 굉장히 중요한 지표예요. 일정에 쫓기고 파트너 눈치를 보면서 일할 땐 힘들지만, 여기서 내가 맛있는 팝콘을 만들어 손님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할 땐 즐겁거든요. 바쁜 시기엔 한동안 그걸 잊을 때도 많았죠. ‘오늘 하루 재밌게 일했는가’를 항상 놓치지 않고 감각하려 해요.”

그렇다고 해서 게으르고 안일하게 일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을 묻자, 두 사람은 단번에 “결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과정에서 애매하게 착한 척 하지 않으며, 성과와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위로를 갈구하는 나약한 마음은 집에 두고 오는 것. 모춘의 일하는 방식이다.
©컴퍼니타임스
“사람마다 하우 투(How to)는 다를 수 있죠. 하지만 단돈 몇천 원이라도 남이 지불한 돈을 받고 일하는 이상, 동아리처럼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매 순간 최선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하죠. 완성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일하는 것, 본인이 돈값을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것이 일을 잘하는 지표가 될 수 있어요.”

실제로 모춘은 라인플러스에 입사했을 당시, 팀 내에서 본인의 실력이 제일 떨어진다는 걸 한두 달 만에 깨달았다. 그날부로 그는 365일 중 360일을 출근했다. 돈 받으며 일하면서 돈값을 못한다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일을 못하면 청소라도 해서 돈값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자신의 업무 결과물을 봤을 때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객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물을 내놓고도 떳떳하다 느낀다면, 프로의 게임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는 거라고.

“극한의 완성도를 추구하면 저희도 많이 힘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최상의 결과물을 내려고 노력하는 게 저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의 방식이에요. 물론, 삶의 목표에 따라 기준은 다 달라질 수 있어요. 본인이 설정한 삶의 방향에 맞춰,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면 되는 거죠.”
©컴퍼니타임스
일이 곧 나의 삶!이라고 한치의 고민 없이 외치는 이들에게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소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2001)를 꼽았다.

“영화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중간지점인 ‘림보’에 들러요. 거기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생전의 기억을 하나만 골라야 하죠. 영화를 볼 때는 지루했는데, 가끔 생각이 나요. 난 일하면서 언제 제일 재밌었는지, 어떤 기억을 가져가고 싶은지 돌이켜보게 되는 영화거든요. 영화를 보시면서 어떤 기억을 남기며 일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옆에서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모춘은 이내 벤 스틸러 감독·주연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를 추천했다. ‘라이프’ 잡지사에서 십수년간 따분하게 일하며 공상만을 즐기던 주인공 월터가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모험을 떠난다는 내용의 영화다.

“지금 내가 어디에 속해있다고 해서 그 소속이 나를 대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별로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과감히 뛰쳐나와 맞는 곳을 찾아가고, 직무가 맞지 않으면 바꾸기도 해보는 거죠. 내 상황에 무조건 순응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의 인생은 절대 여기서 끝이 아니거든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내 인생에서 작지만 위대한 모험을 얼마든지 떠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SCENE 1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든다면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길까? 여전히 답은 같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앞으로도 노동의 연속일 테니까. 하지만 모베러웍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나니, 새로운 상상이 펼쳐진다. 매 순간 유쾌하고 즐겁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설령 일하는 장면으로만 가득 채워질지라도 꽤 재밌고 의미 있는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질지 모르겠다고.

당장 이들의 극장 도전기를 담은 686일의 다큐멘터리가 그걸 증명하는 듯하다. 구질구질하고 안 풀리는 일 투성이지만 끝끝내 해내고야 마는 이들의 이야기.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멋지지 않은가! 30석의 아담한 오렌지빛 극장에 담길 이들의 이야기가 부디,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To be continued…!
 
박지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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