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국 구글 디렉터,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다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 저자 정김경숙

2024. 06. 05 (수) 17:28 | 최종 업데이트 2024. 06. 08 (토) 17:27

16년간 다니던 회사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정리해고라는 메일을 받는다면?

 

뼛속까지 ‘구글러’로 살았다는 정김경숙(로이스 김) 작가의 실제 이야기다. 구글 코리아에서 커뮤니케이션 총괄 임원을,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에서 최초의 비원어민 디렉터를 맡았던 정김경숙 작가. 팬데믹의 여파로 미국 IT업계에 정리해고 바람이 불던 2023년, 한 통의 메일을 받고 16년간 이어온 구글러 생활을 매듭지었다.

 

“내가 이 남자를 차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남자에게 차인 기분이었달까요?”

 

당시의 마음을 묻자 정김경숙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30년간 직장이라는 틀 안에 갇혀 못했던 일을 마음껏 하고자, 원하는 일을 하나씩 손으로 써 내려갔다고. ‘적기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데, 실제로 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이 설렘이 도전 정신과 용기를 마음속에서 움트게 했다.

 

지난 1년간의 뜨거운 갭이어 시간을 보낸 정김경숙 작가는 이제는 실리콘밸리 알바생으로 보낸 경험담을 나누며, 절망의 한복판에 있는 직장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화창한 5월의 어느 아침, 한국에 잠시 들어온 정김경숙 작가를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환하게 웃어 보이며 지난 1년간의 소회를 전했다. ‘구글’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정김경숙’만의 삶을 멋지게 꽉 채워가고 있다고 느꼈다.

어느 날 구글로부터
‘정리해고’라는 메일이 왔다
 

작가님, 직접 만나 뵙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작가님의 <유퀴즈 온 더 블럭> 인터뷰와 <세바시> 강연을 감명 깊게 봤었거든요. 그래서 대화가 더 기대됩니다. 독자분들께는 요즘 작가님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저는 책 제목처럼 ‘실리콘밸리 알바생’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웃음) 3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고, 지금은 갭이어(gap-year)* 기간을 보내는 중인 정김경숙입니다. 최근에는 퇴사 후 새로운 도전을 하며 느낀 점을 모아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라는 책을 썼어요.

*갭이어 : 학업, 업무 등 본래의 일에서 잠시 벗어나 봉사, 여행, 인턴 등을 통해 진로를 재탐색하고 충전하는 시간
 

저는 작가님을 구글 코리아 임원이자, 미국 구글 본사의 디렉터로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이번 책 출간 소식을 통해 구글에서 퇴사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놀라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심리적으로 ‘허둥거렸다’는 표현이 적절하죠. 저는 모토로라, 한국 릴리, 구글 코리아를 거쳐 구글 본사까지 30년간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중 한국에서 25년간 일하며 ‘권고사직’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정리해고’라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죠. 그래서인지 정리해고가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게다가 금융 위기 때 미국의 많은 IT기업이 정리해고를 했는데요, 당시에도 구글은 하지 않았어요. 구글 본사에서 일하며 정리해고로 퇴사를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였죠.

 

그런데 2023년 1월 어느 날, 구글로부터 제가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문장 뜻을 해석은 하겠는데, 현실처럼 와 닿지 않더라고요. 사실 회사 입장에서 1만 2000명의 해고 대상자와 사전에 대화하거나 조율 과정을 거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CEO여도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을 테니까요.

 

구글 재직 당시 ©정김경숙

 

한국에서 미국까지, 16년을 ‘구글러’로 사셨잖아요. 한 통의 메일로 구글을 떠나게 됐는데, 허탈함은 없으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당황하기도 하고 화도 났죠. 내가 이 남자를 차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남자에게 차인 기분이었다니까요.(웃음) 입국신고서를 쓸 일이 있었는데요. 30년 동안 직업 칸에 무엇을 쓸지 고민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제야 직업으로 무엇을 쓸지 처음 고민해본 거예요.

 

상실감이 크셨을 텐데, 퇴사 후에 바로 이직하지 않으셨어요. 게다가 3가지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스스로 갭이어 기간이라고 정의하셨고요.


30년간 ‘풀타임 잡(full-time job)’으로 일해왔잖아요. 해보고 싶어도 마음만 먹은 게 참 많았거든요. 제가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서 시간 제약 때문에 못 했던 걸 마음껏 해보고 싶었어요. 금요일에 정리해고 통지를 받고 일요일 밤에 하고 싶은 걸 적어보기 시작했는데요. 쓰는 순간부터 벌써 가슴이 뛰더라고요? 적기만 해도 이렇게 설레는데, 직접 해보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가장 상위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도전해 보기 시작했죠.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로 근무 중인 정김경숙 작가 ©정김경숙

 

실리콘밸리의
N잡러가 되다

 

퇴사 후 가장 먼저 도전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원하는 걸 쭉 적어 보니, 주로 사람 만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더라고요. 고객을 감동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회사, 그리고 그들의 시스템을 몸소 겪어보고 싶었고요. 특히 ‘트레이더 조’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요. 마침 집 주변 지점에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가 있어서 퇴사하고 3일 만에 바로 지원했어요. 트레이더 조는 미국에만 있는 식료품 슈퍼마켓 체인이에요. 평소에 자주 이용했고,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했던 시기에는 누군가와 잠시라도 대화하고 싶어 갔을 만큼, 직원들이 고객과 대화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곳이거든요.

 

“구글에서 16년 넘게 일하고 또 임원이 되면서
나 자신이 사람과 현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글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만질 수 있는 제품이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프라인에서 고객을 만나 나의 제품과 서비스를
즐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현재 고객을 가장 사랑하는 회사는 어디일까?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 중에서
 

 

트레이더 조 유니폼을 입고 ©정김경숙

트레이더 조 외에도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일하고, 공유 승차 서비스인 ‘리프트’에서 운전사로 일을 하셨다고요. 나열한 것만 해도 3개인데, 작은 일도 몇 가지 더 하셨고요. 이렇게 여러 일에 도전한 이유가 있다면요?

갭이어를 보내기로 결심하며 저만의 목표를 갖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1만 명의 사람을 만나보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잖아요. 1만 시간을 노력하면 뭐든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기죠. 저는 이 말을 1만 명으로 바꿔봤어요. 논어에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안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럼 1만 명을 만나면 얼마나 많은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됐죠.
 

한 인터뷰에서, 구글 본사에 적응하기 위해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고 하신 게 불현듯 떠올라요. 갭이어 기간에도 작가님은 역시 ‘사람’을 만나는 데 집중하셨군요.

모든 사람과 깊게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제 시야가 넓어졌어요. 실제로 리프트에서는 600번 이상의 운전을 했고요. 스타벅스에서는 음료 주문을 받으며 많은 손님과 대화했죠. 트레이더 조에서는 매일 고객과 이야기하고, 동료들과도 가깝게 지내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데요. 트레이더 조에서 만난 한 동남아시아인 손님이 매일 제 손에 사탕을 주시는 거예요. 서로 말은 하나도 안 통하는데 말이죠.(웃음) 이렇게 고객과 직접 만나면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일도 참 많아요.
 

스타벅스 동료들과 함께 ©정김경숙

 

16년간 구글의 조직 문화 안에서 일했으니 새롭게 배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일하신 곳을 보면 리테일, F&B, 차량 공유 서비스까지 분야도 다 다르고요.

트레이더 조는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 중 항상 고객 감동 브랜드에서 1위를 차지해요. 실제로 일해보니, 시스템이나 문화를 통해서 가격 경쟁력으로 이룰 수 없는 가치를 전하고 있다고 느꼈고요. 요즘 시대에 클릭 하나면 뭐든지 찾을 수 있고, 인공지능 기술도 발전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트레이더 조는 온라인 쇼핑몰이 없어요. 뉴욕 매장에는 주차장도 없어서 사람들이 바리바리 들고 갈 각오를 하고 오는데도, 줄이 길고요. 그만큼 트레이더 조의 문화를 미국 사람들이 좋아해요.

 

저도 마케팅 일을 했지만, 마케팅의 제1원칙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제품이 항상 있다’는 믿음을 고객에게 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트레이더 조는 이 원칙을 깨더라고요. 물건을 왕창 들여놔도, 인기가 많으면 금방 단종돼요. 근데 고객이 한 달이 걸려도 그걸 기다려요. 전 지금까지 마케팅 원리 안에서 가격 경쟁력, 편리함만 생각할 줄 알았는데 마케터로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됐죠.

 

스타벅스에서는 표준화된 시스템을 경험해 볼 수 있었어요. 만약 직원 중에 못 오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매장에서 일할 사람이 오더라고요. 컵, 숟가락, 기계까지 똑같으니까 스타벅스 직원이라면 누구든 다른 매장에서 일할 수 있어요. 덕분에 휴가를 가도 눈치 볼 일이 없죠. 물론 획일화가 주는 아쉬움도 있지만, 배운 점만 말하자면 표준화가 주는 효율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리스트에서는 앱 기능 하나하나가 고객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배웠는데요. 일을 하다 보니 앱에 기능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라고요. 예를 들어, 운전자인 제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선택하면 그 목적지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승객만 콜이 들어와요. 검도장에 갈 때 이 기능을 잘 사용했어요. 어차피 제가 일 보러 가는 길에 승객을 태워 돈을 버는 거죠. 이렇게 새로운 기능 하나하나가 고객을 무척 편리하게 해준다는 걸 몸소 체감했죠.
 

달리로 박스를 옮기는 정김경숙 작가 ©정김경숙

 

와, 각각의 일에서 배운 점이 다 다르네요. 사회생활을 오래 하셨는데도 또 다른 분야에서 새롭게 배우셨다는 게 흥미롭고요. 구글을 포함해 30년간 주로 사무직 일만 하셨잖아요. 몸 쓰는 일이 어렵진 않으셨어요?


힘들었죠. 혹시 마트에서 쓰는 달리(dolly)라고 아세요? 바퀴가 달려서, 박스를 쌓아 끌고 갈 수 있는 도구인데요. 물건을 쌓으면 제 키를 넘어선 높이라 처음엔 무게중심을 잡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이걸 끌고 다니는 게 지난 1년 동안 한 최고의 도전이었어요. 처음엔 못할 것 같았는데, 저보다 체구가 작은 여자분도 하셔서 그냥 했습니다.(웃음) 멍도 들고 힘들었지만 나중엔 결국 끌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제가 오랫동안 운동을 계속해서 큰 도움이 됐어요.

 

사실 몸을 쓰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스타벅스에서 주문을 외우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출근 시간의 스타벅스, 아시죠? 천천히 기다려주지 않아요. 게다가 미국 스타벅스는 한국보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더 많아요. 디카페인과 카페인 샷을 1/2씩 섞어달라, 휘핑크림을 바닥에 깔아달라, 온도를 170도로 해달라는 등 세세한 요청이 많고, 당연해요. 그런데 막상 일해보니 제가 손이 느리더라고요. 결국 인정해 버렸죠. ‘여기서는 내가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없다’는 걸요. 모든 방면에서 ‘하이 퍼포머(high performer)’가 될 수 없으니까요.

 

여러 가지 종류의 일에 부딪히면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네요.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걸 인정도 하게 되고요. 지금 잠깐 한국에 들어오셨는데, 일은 전부 쉬고 계신 상태인가요?


스타벅스는 3월 말로 그만둔 상태예요. 스타벅스까지 하면 하루에 3시간밖에 못 자서 하나는 정리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트레이더 조에서 매니저가 됐는데요. 6개월 만에 섹션 리드로, 또 6개월도 안 돼서 매니저가 됐어요. 그렇다 보니 옛날보다 트레이더 조의 근무시간이 많아졌거든요. 최근 들어서는 트레이더 조에 더 집중하고 있고, 지금은 휴가를 내고 온 상태입니다. 운전사 일은 시간 날 때만 할 수 있으니 동선에 따라 가능할 때 하는 편이에요.

 

미국에서 화제가 된 트레이더 조 김밥을 들고 ©정김경숙

 

마침 오늘도 트레이더 조 유니폼을 입고 오셨어요! 그동안 ‘뼛속까지 구글러’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는데, 지금은 ‘뼛속까지 트레이더조’ 직원이라고 느껴집니다.(웃음) 직원으로서 트레이더 조의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한번 회사에 들어가면 올인하는 성격이라 그래요.(웃음) 트레이더 조의 매력이라 하면 시스템, 사람, 문화 이 3가지가 있어요. 트레이더조는 말씀드렸듯 온라인 쇼핑몰도 없고, 셀프 계산대도 없고, 고객이 길을 잃으면 안 된다고 매장 크기도 제한해요. 진열된 제품의 80%는 직접 생산한 PB제품이고요. 일반 마트와 다르죠? 대신 ‘우리 매장에는 직접 만든 우리만의 제품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어요.

 

트레이더 조는 직원 수가 비슷한 면적의 마트보다 4~5배는 많아요. 직원들이 항상 고객과 접촉하고,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죠. 그래서 고객이 사랑방처럼 찾아와요. 동료 간 협업 문화도 시스템으로 잘 갖춰져 있고요. 만약 캐셔로 일하고 있어 여유가 없는데, 옆에 도움이 필요한 고객이 보여요. 그럼 종을 두 번 치면 다른 동료가 바로 와요. 이런 약속마저 시스템화 되어있죠.

 

또 동료들이 사람으로서 좋아요. 함께 일하며 계속 배워요. 스타벅스에서도 일해봤으니 비교가 되잖아요. 트레이더 조에는 호기심도, 정도 많은 사람들이 일하더라고요. 호기심 많은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많거든요.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해 주는 걸 귀찮아하지 않아요. 고객들도 똑같은 내용을 계속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래도 항상 친절하고요.

 

이렇게 시스템과 좋은 사람들, 여기서 생겨나는 트레이더 조만의 문화가 있어요. 구글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는데요. 좋은 조직은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최고의 사람을 뽑아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더라고요. 리테일 매장이든 IT기업이든 다름이 없어요.
 

트레이더 조와 구글은 산업이 다른데도 ‘성공하는 기업은 무엇인가’에 대한 똑같은 답을 줬네요. 두 기업의 DNA가 비슷하다고 느껴져요.


경험해 보니 성공하는 회사들은 시스템, 사람, 문화 중 무엇 하나 빼놓지 않더라고요. 이때 성공이라는 건 ‘지속 가능하다’는 뜻인데요. 20년 전과 지금, 포춘지가 선정한 20대 기업을 비교해 보면 3개의 기업 말고는 겹치는 회사가 없더라고요. 회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건 정말 중요해요. 기업도 사람도 반짝은 할 수 있지만 오래 가는 건 힘들거든요. 살아남는 게 곧 성공이고, 지속 가능한 회사들은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고 느꼈죠.

 

트레이더 조에서 ©정김경숙

 

 

“막상 털어놓으니
별것 아니더라고요”
 

어떤 이는 다시 일어서기 힘들 수 있는 상황인데, 바로 새로운 도전을 하셨어요. 덕분에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고요.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전 직장에서 월급이 나오지 않아 퇴사한 경험이 있어 이번 책을 무척 공감하며 읽었거든요.

사실 전 일기를 계속 썼을 뿐, 이 주제로 책을 내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주변에 해고나 권고사직을 당한 분을 보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면 아래 계시더라고요. 우울과 무기력을 반복하면서 사람과 만나는 걸 피하고요. 저는 이렇게 수면 아래 계신 분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드리고 싶었어요. 바깥으로 나와서 햇볕도 쬐고, 사람을 만나 우울감도 극복하고, 네트워킹도 해야 하는데 창피하게만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는 이걸 깨고 싶어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인정하겠어요? 그래서 책을 쓰기로 했죠.

 

만약 제가 다시 큰 기업의 임원 같은 자리에 들어가 이 책을 썼다면 와닿지 않았을 거예요. 전 여전히 알바생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가능성을 갖고 있잖아요. 똑같이 과정 속에 있는 사람으로서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독자분들을 만나보니 어떠셨어요?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거나, 커리어에 고민이 많은 분들이 저처럼 공감하셨을 것 같아요.

며칠 전에 북토크를 했는데요. 거의 인생 상담 시간이 되더라고요.(웃음) 특히 직업적으로 변화가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울먹거리는 분도 계셨고요. 개인적으로는 ‘비트윈 잡스(between jobs)라는 이름의 모임도 만들었어요.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이 많다는 걸 알고 네트워킹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페이스북에 모집 공고를 올렸죠. 올릴 때만 해도 30명 정도 오시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신청만 130명이 해주신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장소 협찬도 선뜻 받게 되어, 많은 분과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졌죠.

 

그때 6개월 만에 처음 밖에 나왔다는 분도 오셨고요. 한 분은 자동차 회사에 다니다가 회사를 나오셨대요. 그래서 지나가는 자동차만 봐도 너무 힘들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위로 섞인 웃음을 드렸죠. “저는 구글에 다녔어요. 근데 맨날 쓰는 게 구글이에요”라고 말씀드리니 웃으시더라고요.(웃음) 이 자리를 겪고 나서, 정말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맞아요. 입 밖으로 꺼내 마음을 털어놓고 보면, ‘아 별거 아니었네’라고 느낄 때가 많죠.

한 여성분은 제게 유리천장을 깨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보통 여성이 직장에서 임원직에 올라가면 유리천장을 깼다고 하잖아요. 그분은 본인이 직장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사회로 나가는 게 힘들었고, 이게 유리천장이었대요. 이걸 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제게 전해주시더라고요. 그때 이 책을 쓰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많이 팔리든, 적게 팔리든 제게 의미가 큰 책이 됐어요.

 


  정김경숙 작가가 쓴 책 3권 ©정김경숙

 


직장생활 30년 롱런 비결
체력과 긍정으로 무장하라
 

작가님과 대화를 나눠보니, 어떤 상황에 놓여도 긍정적으로 전환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긍정 에너지, 회복탄력성은 어디서 나오나요?

제가 첫 번째로 강조하는 게 체력이에요. 체력이 실력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체력이 곧 인간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힘들어 죽겠는데,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더 낼 수 있겠어요. 누가 나보고 하라고 할까봐, 의견을 내면 보고하라 할까봐 가만히 있죠. 체력이 없으면 창의성도 없어져요. 그래서 체력은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29살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달리기는 이제 기본이자 일상이 되었죠. 40살 때는 검도를 시작했고요. 검도도 벌써 지금 17년 차예요. 50살 때는 수영을 배워서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면 운동에 시간을 참 많이 들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최소 하루 1시간은 꼭 운동에 시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와, 이렇게 많은 운동을 섭렵하셨다니! 운동이 육체를 단련하는 역할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트레스 해소가 되잖아요.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창구가 될 것 같아요.

맞아요. 30대 후반부터 체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겠더라고요. 갑자기 프로젝트가 생기거나 일정이 빠듯해지면 스트레스 지수가 바로 올라가고요. 정신력도 육체가 받쳐줘야 관리가 되거든요. 그래서 체력 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꼭 말하고 싶어요.

 

요즘 직장인들은 스크린 중독이 심해요. 화장실에 가면서도 스마트폰을 쳐다보잖아요. 근데 달리고, 수영할 땐 손에서 내려놔야만 해요. 화면과 자연스럽게 멀어지죠. 제가 최근에 읽은 기사 중에, 스마트폰을 보거나 이메일을 보면 무호흡증이 온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실제로 저도 느껴지더라고요. 운동을 통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김경숙

 

이렇게 일과 삶에 적극적인 작가님도 한때는 내향적인 성격이었다고요? 상상이 안 돼요. 왜 내향적인 성격에서 벗어나려고 하셨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해요.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내향적으로 살아도 만족스럽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살면 돼요. 내실 없는 외향인이 속이 알찬 내향인보다 포장이나 사내 정치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더 큰 인정을 받는 걸 경계해요. 후천적 외향인으로서, 내향적인 사람이 무조건 외향적으로 바뀔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대 후반까지 저는 내향적이어도 너무 내향적이었어요.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감은 있는 채로 내향적이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전 자신감도 없고 대화를 해도 늘 듣기만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때 ‘이렇게 살면 평생 불행하겠구나’라는 생각했죠. 말을 워낙 안 하니 ‘내가 정말 생각이 없는 걸까’라는 자괴감도 들더라고요. 29살 때 내향적인 성격을 고치고 싶다는 마음을 제대로 먹었어요. 앞으로 60년은 더 살 텐데, 이 싫은 성격으로 살고 싶지 않으니, 고쳐보자고 결심한 거죠. 정말 절실했어요.
 

내향적인 성격을 바꾸기 위해 어떤 것을 하셨나요?

그때가 남편과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거든요. 일부러 남편과 다른 대학원에 가서 혼자 지내봤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저를 놓아두고 싶더라고요. 그곳에선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외향적으로 바뀌어도 이상하게 보지 않잖아요? 누구도 나를 모르는 환경에서 맛본 자유가 참 좋았어요.

 

외향적으로 바뀌기 위해 저만의 원칙 3가지를 정했는데요. 내가 먼저 인사한다. 모든 수업 시간에 내가 먼저 질문을 한다. 운동을 한다. 이 3가지였습니다. 왜 이렇게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1년 동안 했더니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수업 시간에 제가 질문을 안 하면 교수님이 “로이스가 아직 질문을 안 해서 수업을 못 끝낸다”고 농담을 하실 정도로요.(웃음) 성격에도, 체력도 자신감이 붙으니까 미국에서 공부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영어도 잘 못하면서 발표란 발표는 제가 다 맡아서 했거든요. 그렇게 1년을 보내니 성격이 많이 바뀌어 있었어요.

 

 

©정김경숙

 

타고난 성격을 바꾸는 게 쉽지 않잖아요.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삶을 개선하는 모습에 영감받는 분이 많을 것 같아요. 작가님은 그럼 불안할 때는 없으셨어요?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불안감이 찾아올 때마다 생각을 고쳐먹었죠. ‘불안한 건 이상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게 첫 번째 할 일이에요. 불안한 건 당연한 거고, 약간의 불안감이 있는 게 건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불안한 게 하나도 없으면 발전이 없잖아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또 불안이 나를 지배하면 안 되니까 잘 다룰 수 있어야 해요.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먼저 그 원인을 잘 알아야 하죠. 제가 주로 불안했던 원인은 ‘내 일을 제대로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전문적인 지식을 계속 배웠어요.

 

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털어놓고 해소해야 해요. 저도 N잡러가 되고 ‘풀타임 잡’이 아닌 것에 대한 불안이 있었어요.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지 6개월째 되는 날, 불안감이 훅 찾아온 거예요. 이 감정을 친구한테 말했더니 “갭이어는 연 단위야. 몇 개월을 말하는 게 아니잖아”라고 답해줬죠. 그 말을 듣고 또다시 6개월을 잘 버틸 수 있었어요.

 

그런데 1년이 되던 날, 불안이 갑자기 또 찾아왔는데요.(웃음) 지금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느껴져도 불안감은 어쩔 수 없이 찾아오더라고요. 제게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세요. 그분께서 “로이스, 갭이어는 일과 일 사이의 시간을 의미해. 1년이 될 수도 있고, 3년이 될 수도 있어”라고 말해주셨어요. 이 말을 들으니까 불안감이 사라졌죠. 이렇게 주변 사람들과 툭 터놓고 이야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회생활만 30년을 하셨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불안하기도 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에 몰입하고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셨을 텐데요. 작가님의 인생에서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일차적인 건 경제적인 활동이죠. 돈을 버는 거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N잡러에 도전한 이유도 첫 번째는 돈을 버는 거였어요. 퇴직금을 받았지만, 지금 당장 쓸 생활비를 벌기 위해 경제적인 활동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더 나아가 일은 내가 재미있어야 하고, 잘하는 게 되어야 해요. 그 일을 좋아해야지 잘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도 다니고 책도 많이 읽었어요. 성취감, 이걸 느끼는 건 무척 중요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일을 너무 인생의 중심에 두지 않으려고도 노력하고 있어요. N잡러 생활을 하면서 특히 깨고 싶었던 건데요. 구글을 나와보니 일을 뺀 ‘정김경숙’ 자체로 정체성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너무 내 정체성처럼 여기면 안 될 것 같아요.

 

이 균형을 이루려면 휴식도 중요하죠. 전 여행을 하드코어로 가는 걸 좋아해요. 회사에서 15분 단위로 캘린더를 설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쉴 땐 일과 떨어져서 자연 속에 저를 확 묻어버리죠. 그래야 일을 오래 할 수 있겠더라고요. 백패킹이나 캠핑, 하이킹도 좋아하고요. 아프리카에 가서 한 달을 살아보기도 했어요. 
 

누구보다 일에서 많이 고민하신 만큼, 일을 대하는 작가님만의 기준이 잘 정립되었다고 느껴집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힘든 상황 속에 계신 직장인분들이 계시다면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긴 호흡으로 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아요. 그런데 이 말 참 추상적이죠.(웃음) 제 인생의 스승이었던 분도 “갭이어가 꼭 1년을 말하는 게 아니야, 긴 호흡으로 봐야 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지만, 본인의 상황 안에 있으면 누구나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에요.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요즘 90살은 거뜬히 사는 세상이잖아요. 축구 경기를 보면 전반 45분, 후반 45분, 연장전까지 있죠. 인생을 축구 경기에 비교해 생각하면, 젊을 때 골을 많이 넣어도 아직 이긴 게 아니고, 지고 있어도 진 게 아니에요. 결국 후반에 승부가 납니다. 지금 힘든 상황 속에 있으시다면 “난 아직 전반전이야!”라고 생각을 전환해 보시면 좋겠어요.

 

제게 인생에서 가장 큰 성장을 언제 했냐고 물으시면, 지난 갭이어 기간 1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 된 거예요. 힘든 순간을 끝내고 뒤돌아보면 깨달을 수 있어요. 그러니 본인에 대한 믿음을 갖고 나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장경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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