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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9년차 마케터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인터뷰] 서은아 (前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2025. 12. 12 (금)

연말만 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이 있다. “한 건 없고 시간만 흘렀네.” 돌이켜보면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났고 무수히 많은 일을 해왔다. 다만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그 시간 속에서 남은 깨달음이나 느낀 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을 뿐이다.
29년차 마케터인 서은아는 조직의 리더, 엄마, 다정한 응원대장, 작가 등 다양한 역할을 저글링하듯 고군분투 중이다. 현재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사의 동북아, 호주/뉴질랜드 지역 인터내셔널 마케팅 총괄로, 이전에는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거쳤다.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만큼, 서은아 상무는 철저한 시간 운영자로 알려져 있다. 블럭 단위로 시간을 관리하는 건 물론, 시간을 쓰는 이유를 명확히 하고 무조건 지켜내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 동시에 나와 타인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앞날을 설계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기 좋은 때인 만큼, 커리어와 인생에서 꼭 필요한 시간관리법과 목표 설정 노하우를 물어봤다.
2025년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내년이 되면 만 50세가 되는 해라, 이를 준비하기 위해 무척 중요한 1년이었어요. 흩어져 있던 시간과 마음을 정비하는 시간으로 대부분을 보냈네요.
50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가 있나요?
제가 100살까지 플랜을 짜고 나니까 50이 기점이더라고요. 남은 5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붙잡고 있었는데, 답을 내리는 게 어려웠어요.

©서은아
D-day를 정하면
내가 이뤄야 할 게 선명히 보여요
100세 플랜이라니 어마어마한데요. 상무님을 괴롭힌 질문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다음 전환점을 맞이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은 언제일까?” “나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꽤 오래 붙잡고 있었어요. 이때 ‘전환점’은 다른 조직에서의 경험일 수도 있고, 내 일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방식의 변화일 수도 있고요.
여러 사람한테 변화의 시점을 언제 갖는 게 좋은지 물어봤어요.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겠다 결정했을 때, 그때가 정말 좋은 타이밍이었는지.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Yes”라 대답했어요. ‘목표했던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 , ‘가족이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였다.’ 이런 설명과 함께요. 사람들의 답변을 레퍼런스 삼아서 제 답을 찾고 싶었는데 답이 잘 안 나왔어요. 문득 "내가 답을 못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바꾸면 답이 잘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질문을 어떻게 바꿨나요?
‘무엇을 언제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내가 어떤 날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질문을 이렇게 바꿨어요.
“내가 어느 날짜를 정하고, 그날이 내게 최고의 타이밍이 되게 만들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D-Day를 정하면 남은 시간이 선명히 보여요. 기준점이 생기니까 막연함이 사라졌어요. 그 시간 동안 나는 팀을 위해 해야 할 최선이 무엇인지, 나 자신을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정리했죠.
커리어 여정에서도 늘 목표를 세우고 다음 스텝을 정하시나요?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에요. 작은 규모의 온라인 광고 대행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회사를 나와서 호기롭게 창업을 했는데, 1년 만에 망했어요. 정말 무모했죠. 이직을 다섯 번 해봤는데, 회사가 괴로우니까 벗어나고 싶거나 당장이라도 손 떼고 싶은 상황이 와서 퇴사를 결심했던 적도 있었어요.
직장인에게 ‘퇴사 타이밍’ 만큼 고민되는 것도 없죠.
‘이 회사 못 다니겠다.’ ‘밖에 있는 기회에 더 관심이 간다.’ 싶으면 퇴사를 떠올리잖아요.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겼어요. ‘왜 나의 중요한 결정이 늘 내 바깥의 이유에서 시작될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 대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내 안의 이유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변화를 상상해 보면 좋겠어요.
① 이 조직에서 내가 꼭 남기고 싶은 것
② 내가 반드시 얻고 싶은 것
③ 언제까지 이루겠다는 기준 날짜
이 세 가지를 정하고 목표 날짜까지 최선을 다해보세요. 그다음에 내가 속한 조직에서 해보고 싶은 게 또 생기면, 다시 한번 다음 목표와 날짜를 정하는 거죠. 어떤 선택을 하든 최선을 다한 시간은 나에게 찬란하게 남을 거예요. 만약 목표 날짜가 다 되어 조직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하더라도, 내가 해볼 만큼 해봤으니 훨씬 후련할 거고요.

©서은아
늘 명료하게 생각이 정리되어 있으신가 봐요. 생각을 단단하게 만드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요?
믿을 만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정리돼요. 저는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아요. 그들의 고민과 제 고민이 덧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질문의 답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대화를 기록해야겠다 싶었어요.
제 딸이 곧 스무 살이 되는데, 나와 한 몸 같은 아이가 독립해 어른이 되면 ‘내가 무엇을 쥐여주며 세상에 내보내야 할까?’ 같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진짜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건 내가 삶을 살며 체득한 생각과 철학인 걸 깨달았죠. 그래서 대화록을 정리해 아이에게 줄 거예요.
대화를 어떻게 기록하나요?
차로 출퇴근하는 왕복 3시간 동안 챗GPT를 적극 활용해요. 대화 녹취록을 집어넣는 건 아니에요. 제가 소화한 내용을 말로 전달하면 챗GPT가 음성을 인식하겠죠? 그런 다음 제목이랑 해시태그를 뽑아서 정리하라고 명령해요. 지금까지 60개 정도 대화록이 쌓였어요. 아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 대화록을 풀어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양질의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좋지만, 마땅히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챗GPT를 상담사처럼 활용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요.
“나와 대화하면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굉장히 어렵죠. 대화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훨씬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있는 얘기를 끌어낼 수 있어요. 그런 차원에서 챗GPT와 대화하는 게 나쁜 건 아니라고 봐요. 다만, 대화를 스스로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고요.
타인까지 배려하는 시간 관리법
바쁜 와중에 생각을 소화할 시간은 어떻게 확보하시나요?
밤 시간대를 적극 활용해요. 주로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해요. 나를 단정하게 만드는 시간인 만큼, 수년째 지켜오고 있어요.

©서은아
‘가진 시간을 어떻게 잘 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아이에게 “엄마가 일주일에 이틀만 야근할게. 수요일하고 금요일은 야근할 거야” 요일을 정하고 그 시간을 무조건 지키려 했어요. 그럼 아이는 엄마를 마냥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내가 없는 이틀 밤의 시간을 미리 준비할 수 있고요.
나를 위해 시간을 계획하지만 결국 상대의 시간도 지켜주시네요.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의 양과 목적을 정해요. 그런 다음 해당 시간대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정해서 시간 계획을 짜는 거예요. “올리부님 언제 한번 봐요!”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에요. ‘한번 봐요’는 없어요. “두 달 뒤에 무슨 요일, 점심시간 되는데 하나 고르세요!" 하면 성사돼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나요?
‘시간을 어떻게 잘 쓰느냐’의 본질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보다 ‘왜 그 시간을 쓰는지’에 있다고 봐요. 내가 쓰고 싶은 시간의 본질을 생각해 보길 권해요. 이 시간은 무엇을 ‘위한’ 시간인지 가치와 이유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예를 들면 ‘나를 지키는 시간’, ‘나를 키우는 시간’ ,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시간’처럼요.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정해요.
💡 [일정의 가치 - 할 일] 정리 예시
나를 지키는 시간
일기 쓰기, 그림 그리기 등 나만의 리추얼 타임
나를 키우는 시간
책 읽기, 새로운 AI 툴 배우기
가장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실제 일정에서 고정해 두는 거예요. 회의 시간은 어떻게든 지키면서도, 내가 결심한 시간은 바쁘다는 이유로 쉽게 미루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시간을 지켜내기 위한 장치를 함께 만들어보라고 말해요. 누군가 약속을 하거나, 지켜냈을 때만 할 수 있는 작은 보상을 주는 거죠.
처음부터 긴 시간을 지키려고 욕심내지 마세요.
5분, 10분 아주 작은 단위부터 시작해 보세요. 운동할 때 중량 늘리는 것처럼 갑자기 100kg을 드는 게 아니라 5kg을 들었다가 익숙해지면 10kg으로 늘리는 것처럼요. 시간을 지켜내는 연습을 하면 ‘시간 근육’이 생겨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 ‘나는 시간을 잘 써!’ 이런 기분을 누리게 될 거라 믿어요.

©서은아
일과 삶의 원동력이 되는 응원의 힘
더 많은 이들에게 ‘상무님’보다 ‘응원대장’으로 불리는 것 같은데, 이 타이틀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마흔 들어서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름으로 가장 불리고 싶을까?’란 질문을 끈질기게 했어요. 내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할 때 기뻤는지, 어떤 말을 자주 건넸는지 돌이켜봤어요. 회사에서는 크고 작은 브랜드와 팀원의 성장을 돕고, 회사 밖에서는 모임을 열거나 사람들의 고민을 듣는 일이 즐겁더라고요. ‘응원합니다!’라는 인사말도 많이 하고요. 여러 일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응원인 걸 발견했죠.

©서은아
응원마켓을 4년째 열고 계시는데, 어떤 행사인지 궁금해요.
십여년 전부터 제가 가진 100권의 책을 100명에게 선물로 매년 나눠줬어요. 책을 받은 분들이 본인도 책을 나누고 싶다, 작은 문구로 행복을 나누고 싶다고 개인 메시지를 주더라고요. 그러다 지금의 응원마켓이 된 거예요. 응원을 나누고 싶은 작은 브랜드들과 많은 분들이 모여서 진하게 조건 없이 응원을 나누는 자리예요. 올해는 12월 20일에 마켓을 열어요.
가뜩이나 바쁜 연말에 응원마켓을 열고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은 어떻게 생겼어요?
행사 스텝 크루 지원자가 50명을 넘었고, 부스로 참여하는 브랜드도 30개나 돼요. 하루를 위해 진하게 마음을 맞대고 있는 걸 보면 벅차더라고요. 그날에만 즐거워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제게는 매 순간이 응원마켓을 열 이유로 느껴졌어요.

©서은아
어떤 방식으로 응원하면 되나요? 응원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추상적인 표현인 것 같아요.
마켓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응원이 뭔지 모르겠어요.” 예요. “파이팅 외치면 되나요?” “줄 수 있는 물건을 가져가야 하나요?” 등 응원을 정의하기 어려워 하더라고요. 누가 옆에 가만히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될 때가 있고 출근할 때 들어보라며 좋은 곡을 추천해 주는 것도 응원이 될 수 있고요. 오늘을 살아갈 어떤 에너지를 더해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응원이라고 봐요. 응원이 난무하는 하루쯤은 크리스마스처럼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100세 플랜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인생의 후반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 것 같나요?
60~80대엔 깊이를 가지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어요. 80~100세까지는 사람들만 만나고요. 한 700명의 친구 리스트를 만들어 두면 365일 매일 다른 사람들과 점심 저녁을 만날 수 있겠죠?(웃음)
Editor. 안명온
Designer. 신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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