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헌혈하고 친구살렸개!" 덕구는 왜 헌혈을 할까?

[잡플래닛X현대차] 현대차는 왜 '아임도그너'를 시작했을까?

2022. 11. 03 (목)
 
2019년 여름, 덕구는 도살장에서 구조됐다. 안락사를 권하는 병원이 있을 정도로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던 덕구는 5번의 대수술을 이겨냈다. 발가락과 귀 끝에는 아직 이때의 상처가 남아있지만, 새로 만난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을 쌓으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 중이다. 

덕구가 5번의 대수술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피를 나눠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면 수술은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도움을 받은 덕구는, 이제 다른 아픈 친구들을 돕고 있다. 

덕구가 두른 스카프 한 켠에 적힌 'I'M DOgNOR(아임도그너)'는 Dog(개)와 Donor(헌혈자)를 합성해 만든 말로, '헌혈견'이라는 뜻이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헌혈견 덕구는 현대자동차와 건국대학교 부속 동물병원이 함께 하는 '아임도그너 캠페인'의 마스코트다. 실제 천안의 한 도살장에서 구조돼 헌혈견으로 활동하고 있는 '설악이'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덕구는 곧 설악이고, 헌혈로 생명을 구한 모든 반려견이기도 하다.
 
◇ "헌혈견과 공혈견을 아시나요? 반려견 3600마리가 1년에 1번 헌혈하면…"

그런데 잠깐. 헌혈견? 개가 헌혈을 한다고?

2021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약 606만 가구로 추산된다. 10가구 중 3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헌헐견'이라는 단어는 낯설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물 역시 사람처럼 아프고, 수혈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테니 말이다. 문득 물음표가 떠오른다. 반려견이 수혈이 필요할 때, 그 피는 어디서 구할까? 

"현재 90% 이상이 공혈견을 통해 공급되고 있어요. 공혈견은 말 그대로 혈액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길러져요. 1년에 2~3번 정도 헌혈을 권장하는데, 공혈견은 매달 혈액을 뽑는다고 해요"(박찬빈 매니저, 현대차 국내마케팅팀)

누군가에게 피를 공급하기 위해 사는 삶. 아무리 동물이라 할지라도 가혹하다. 공혈견의 혈액은 '상품'이다. '혈액 생산과 공급'이라는 영리적 목적으로 길러지니 생활 환경 역시 가족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반려견에게 수혈이 필요할 때, 공혈견 이외 다른 선택지를 찾긴 힘든 상황. 이를 조금이나마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 '아임도그너 캠페인'이다. 

"전국의 공혈견은 300여 마리로 추정돼요. 매달 피가 뽑히니 1년간 총 3600회에 달하죠. 반대로 생각하면 3600마리가 1년에 1번만 헌혈을 한다면 공혈견을 통한 수혈은 사라질 수 있을 거예요."(박찬빈 매니저, 현대차 국내마케팅팀)

헌혈은 체중 25kg 이상 2~8세 대형견만 할 수 있다. 헌혈 한 번에 소형견 4마리, 공혈견을 대체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5마리를 살리는 것과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2007년에 '동물혈액은행 PBB(Pet Blood Bank)'라는 자선단체가 설립돼, 혈액 기부 모집은 물론 긴급 혈액 요청 건에도 24시간 대응하고 있다. 헌혈 문화가 정착해가면서 공혈견 농장은 자연스럽게 사라져가고 있단다. 
◇ 현대차가 '아임도그너 캠페인' 시작하게 된 이유

현대차가 헌혈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9년이다. '찾아가는 반려견 헌혈카 캠페인'으로 시작해 지난 8월에는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과 함께 아시아 최초 반려동물 헌혈센터인 'KU아임도그너 헌혈센터'를 개소했다. 특별 제작한 '펫 앰뷸런스'도 기증했다. 

의아했다. 자동차 회사가 반려동물, 그것도 헌혈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현대차는 어떻게 전혀 관련 없어보이는 '반려견'과 '자동차'를 연결하는 기획을 하게 됐을까?

현대차에서 아임도그너 캠페인을 운영 중인 박찬빈 매니저를 'KU아임도그너 헌혈센터'에서 만나 물어봤다. 

"자동차와 반려견은 생각보다 깊은 연관이 있어요. 반려견과 이동할 때, 특히 대형견이 있는 가구의 74%는 이동할 때 자가용을 이용해요. 산책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가 중요하다보니 외출과 이동에 대한 니즈가 높고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잖아요. 모빌리티 기업으로서 많은 고객들의 관심사인 반려견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 공혈견의 현실을 알게됐고, 기업의 사회적 활동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의견이 모아졌어요." 

시작은 자동차 회사답게 '이동'이었다. 

"처음에는 '헌혈카'로 시작했어요. 헌혈은 대형견만 할 수 있는데 대형견은 아무래도 지방에 많이 살거든요. 헌혈카를 운영하다보니 '거점'이 필요하더라고요. 헌혈은 단지 피를 뽑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제나 보관 등을 위한 전문 장비, 시설이 필요해요. 그래서 헌혈센터를 지원하게 됐죠. 

또 반려견의 생명이 위급한 응급 상황에서 이동 수단이 없어 골든아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펫 앰뷸런스'를 지원하게 됐고요. 당장 필요한 것들, 해결해야 할 것들을 찾아 고민하다보니 조금씩 영역이 확장되고 있어요."

(왼쪽) 'KU아임도그너 헌혈센터'와 '펫 앰뷸런스' (오른쪽) 덕구의 모티브가 된 설악이 / 사진=현대차
 
◇ "아플 때 도움 받고 헌혈견 활동 하기도…문화 정착 넘어 참여도 늘고 있어요"

여전히 궁금한 점은 남는다. 기업이 사회공헌활동(CSR)을 기획을 할 때는 논란의 여지 없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일'을 찾기 마련이다. 헌혈견의 경우 필연적으로 따르는 논란이 있다. 공혈견 문제 해결을 위해 헌혈을 장려하지만, 그렇다면 헌혈견은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헌혈인가? 사람의 헌혈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이뤄지지만, 헌혈견은 스스로 원해서 헌혈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반려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헌혈이기에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이견이 붙는다. 

"저희도 고민이 되는 부분이긴 해요. 다만, 이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반려견과의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직접적인 의사가 없는 헌혈을 문제시한다면, 반려견에 대한 그 어떤 의료 행위도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반려견 헌혈은 사랑받는 가정에 있는 아이 대상으로 1년에 1회 권장하고 있어요. 헌혈 전 건강검진으로 건강상태를 미리 체크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으니, 헌혈견한테도 매우 이로운 일입니다. 또 헌혈 증서가 있으면, 혹시나 아플 때 이를 이용해 수혈을 받을 수 있고, 진료 비용도 할인받을 수 있고요. 

헌혈견도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러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어요. 헌혈 자체도 혈액 순환을 도와 건강에 좋다고 하고요. 아플 때, 힘들 때 서로 돕는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어떨까 싶어요. 실제 '설악이'처럼 아플 때 도움을 받은 뒤 헌혈견이 되는 경우도 꽤 많아요."

실제 헌혈은 헌혈견의 건강 뿐 아니라 심리 상태까지 고려해 이뤄진다. 센터 내에는 헌혈견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꽤 넓은 야외 공간이 마련돼 있다. 헌혈견이 공간에 친숙함을 느끼고,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주고 기다려 준다. 헌혈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헌혈은 진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센터에서 수용 가능한 하루 헌혈 횟수는 2회지만, 이마저도 매일 이뤄지기는 힘들다. 

현대자동차가 진행한 '아임도그너' 캠페인.  / 사진=현대차
 

현대차가 '아임도그너 캠페인'을 시작한지 올해로 3년차를 맞았다. 그동안 공혈견의 실상을 알리고 헌혈견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실질적인 참여를 높이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까지는 '아임도그너'를 알리는데 주력했어요. 대내외적으로는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고요. 지난 8월 헌혈센터 개소 후 약 두 달동안 총 78건의 헌혈이 이뤄졌어요. 지난 3년 간 건국대 동물병원에서 이뤄진 헌혈건수가 총 68건, 1년에 최대 500회까지 헌혈이 가능한 것을 생각하면 의미있는 숫자죠. 대형견주분들 사이에서는 많이 알려진 것 같아요. 

내년부터는 실질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확장해 나가려고 합니다. 최근에 경상남도 하동에서 6시간 차를 타고 온 헌혈견이 있었어요. 긴 시간 이동에 힘들 법도 한데 공혈견 문제를 알고 도움이 되고 싶어 오셨다는 견주님을 보니 감사하기도 하고, 감동까지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선 마음이 있어도 참여가 쉽지 않은데요. 지극히 개인적인 제 생각으로는 현대차의 수소버스를 활용해 헌혈버스를 만들어 '출장 헌혈'을 다니면 어떨까 싶어요. 전동화 모델이기 때문에 정차 상태에서도 공회전 없이 전력을 공급할 수도 있고, 친환경적인데다 충전도 오래 걸리지 않거든요. 실현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길을 찾아 봐야죠."

헌혈을 마치고 나온 '떠기'. 벌써 두 번째 헌혈이다. 헌혈 증서, 스카프, 모자까지 선물을 한아름 받았다. 쏟아지는 폭풍 칭찬을 들으며 한껏 즐기는 중. 
이날 떠기의 헌혈로 누군가의 반려견 4마리는 생명이 위급한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헌혈센터를 찾은 날, 마침 헌혈을 마치고 나온 대형견 '떠기'를 만날 수 있었다. 벌써 두 번째 헌혈, 한번 해본 경험'견'이라 10분만에 '쿨'하게 마치고 나왔단다. 견주와 수의사들에게 둘러쌓여 폭풍 칭찬과 함께 스카프, 모자까지 선물받아 쓴 모습이 사뭇 늠름하다. 귀찮다고 도망갈 법도 한데 관심을 한껏 즐기는 떠기의 눈빛에서 뿌듯함까지 엿보인다! 

무사히 헌혈을 마치고, 센터 야외 공간에서 햇볕을 받으며 뛰어 노는 떠기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이곳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낸 뒤, 떠기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갈 것이다. 

이날 이뤄진 한번의 헌혈로, 어딘가에 갇혀 지낼 이름 모를 공혈견은 한 번의 채혈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헌혈 증서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설악이에게 일어났던 기적이, 비슷한 상황에 처한 공혈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 

답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날 떠기가 헌혈한 피는 머지 않은 미래에 응급상황에 처한 소형견 4마리의 생명을 구할 것이란 점이다. 이정도면 '영웅'이라 불릴만 하지 않나? 이날 센터에서는 작은 영웅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