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 고민에 대한 7080세대 어르신들의 손글씨 답변으로 제작한 스티커 (사진 제공=아립앤위립)
‘꿈을 이루고 싶은데, 어떡하죠?’ 라고 묻는 주니어에게 90세의 시니어는 답한다. ‘이뤄야지, 젊잖애’라고. 길에서 폐지를 줍던 어르신들이 책상 앞에 앉아 2030세대의 고민에 정성을 꾹꾹 눌러 담아 답장을 쓰고, 크레파스로 알록달록 그림도 그린다. 어엿한 창작자가 되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다.
7080세대 어르신들이 ‘신이어’라는 이름의 창작자로 일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준 ‘신이어마켙’. MZ세대 사이에선 이미 꽤 입소문이 난 디자인 브랜드다. 배달의민족, 스킨푸드, 카카오톡 등 여러 빅브랜드와 협업하기도 했다. 브랜드명은 시니어(Senior)를 '신이어'라고 발음하는 어르신들의 말씨에서 따왔다. 새로울 신(新)에 Year를 더해, 새로운 세대와 가까워지는 마켙이라는 의미도 담았다.
어르신들의 글과 그림에 MZ세대가 열광하는 모습도 자못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일하는 사람’으로서 궁금해진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지 말이다. 황혼의 나이에 디자인 창작자가 된 어르신들, 그리고 함께 발을 맞추고 있는 청년들. 분명 쉽지만은 않을 이 동행은 이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신이어마켙을 운영하는 아립앤위립의 심현보 대표를 만나, 어르신들과의 파트너십과 브랜드가 사랑받는 이유, 지속 가능한 사회적기업으로 자리잡아가는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신이어마켙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 심현보 대표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신이어마켙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의 대표 심현보입니다. 2017년에 법인을 설립했고요. 그 전에는 KG그룹에 잠깐 근무했고, 이후 스포츠마케팅 관련 직무로 옮겨서 커리어를 쌓았어요. 아립앤위립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 커리어 히스토리를 듣고 나니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어쩌다 노인 일자리와 관련된 사회적기업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직장인으로 살면서, 일이라는 게 그냥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느껴졌어요. ‘좀 더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없을까?’에 대한 고민과 갈증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친할머니가 폐지 줍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할머니 주변 친구분들 중에 폐지를 줍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운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을 따라 나섰던 거죠.
가족들의 만류로 할머니는 머잖아 폐지 줍는 일을 그만두셨지만,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할머니 친구분들도 제겐 친할머니와 같은 존재셨거든요. 폐지를 줍는 노인 분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드릴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어르신들의 글과 그림을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이분들은 어떤 형태로 고용돼 있나요? 창작 외에 다른 업무도 하시나요?
대부분 파트타이머로 모시고 있어요. 정예 멤버 어르신들이 여섯 분 계시고요. 매주 수요일에 2시간씩 만나 창작 업무를 해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품을 포장하는 일이 있을 때 16명의 어르신들 중 시간 되는 분들이 오셔서 함께 일을 해주시고요.
지금 사무실에서 일하고 계신 어르신은 유일한 시니어 정규직이세요. 주 15시간씩 근무하고 계십니다. 파트타이머로 3년 근무하시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 2년째 됐는데 꾸준히 일을 잘 해주고 계시죠.
정규직으로 함께해주실 어르신들을 계속 모색중이에요. 이 분들이 정규직으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가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어르신들 건강 상태도 고려해야 하고, 조직 생활에 대해 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아서 쉽지만은 않아요. 올해 시니어 채용을 계속 늘려 나가려고 합니다.
신이어마켙 정예 멤버와 청년 구성원들의 단체사진 (사진 제공=아립앤위립)
- 시니어분들은 여기서 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이 나이에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는 말씀을 가장 많이 하시죠. 할 일이 있어서 활력이 생긴다고도 하시고요.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가 있다가 없어지면 한두 달까진 편해도, 갈수록 무기력해지잖아요. 어딘가에 소속돼 있고, 갈 곳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하고요. 어르신들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하세요.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껴져서 좋다고요.
- 현재 신이어마켙에서 일하고 계신 어르신 중 최고령 직원과 최장기 근속 직원을 소개해주세요.
최고령 직원은 올해로 90세이신 함복순 어르신이에요. 사무실이 2층인데, 여기 계단도 무리 없이 잘 올라오시고요. 즐겁게 일하고 계십니다. 호칭은 모든 직원들이 ‘왕언니’라고 불러요. 가장 오래 근무하신 직원분은 아까 말씀드렸던 신이어마켙의 유일한 시니어 정규직, 78세 강옥자 어르신이고요. 옥자 어르신이 시니어 정예 멤버 가운데 황금막내입니다.(웃음)
- 시니어 멤버를 발탁하는 기준이 있나요?
일자리가 시급하게 필요한 분들을 중심으로 모시고 있어요. 따라서,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저소득층이나 차상위계층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고요.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의 생활 수준과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적합한 분들을 찾은 뒤, 사회복지사분들이 직접 대면 인터뷰를 진행해요. 일을 하시기에 어려움이 없는 상태라고 판단되면 최종적으로 신이어마켙과 연결해줍니다.
초반에는 5~6분과 함께하다가 재작년에 16분으로 확 늘렸어요. 그때 시니어 멤버 선정 기준도 만들어졌고요. 인원을 무작정 많이 늘리는 것보단, 고용기간을 길게 보장해드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급여 지급이나 수익 분배 등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우선, 어르신들이 창작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미술 교육과 미술 도구 등을 지원하고요. 이를 통해 어르신들이 만든 작품은 신이어마켙이 저작권료를 드리고 구매합니다. 이를 제품화한 뒤에는 제품 포장 일자리를 제공하고요. 포장 업무에 대해서는 최저시급 기준으로 급여를 지급해요.
더불어, 스토어 판매 수익금을 분기별로 정산해 순수익의 10%를 어르신들에게 지정후원금 형태로 전달하고 있어요. 기부/후원 내역은 신이어마켙 인스타그램과 아립앤위립 블로그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어르신들의 글씨와 그림을 새긴 '할매할배노트지갑' (사진 제공=아립앤위립)
- 사회에 공헌하면서도 이익을 창출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잖아요. 지속 가능한 사회적기업을 만들기 위해 창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항상 고민이죠. 아립앤위립은 사회적기업이긴 하지만, 사회적경제라는 섹터 안에만 머무르려고 하진 않아요. 직원들에게도 매번 얘기하죠. 일반 시장에 나가서 부딪혀야 된다고요. 수요가 많은, 큰 시장에 나가야 우리의 팬들이 만들어지니까요. 소비재 시장에서 다른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있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봐요.
또 한 가지는, 수익 측면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지만, 브랜드를 알리는 데 의미 있는 활동이라면 마이너스가 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진행해보려고 해요. 우리 브랜드를 접할 기회가 많아져야 고객들이 한 번이라도 보고 나중에 ‘저거 어디서 봤는데…’라고 떠올릴 수 있어요. 당장 눈앞의 수익만 좇기 보다는, 더 큰 성장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과정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배달의민족, 스킨푸드, 카카오톡 등 다양한 빅브랜드와의 협업도 그러한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네요. 협업 진행 시에는 어떤 부분들을 고려하나요?
협업 제안이 상당히 많이 들어오는데, 일단 저희와 핏(fit)이 맞아야 해요. 유명하고 규모가 큰 브랜드라면 더 좋긴 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고요. 저희는 어르신들의 손글씨, 손그림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제작 속도가 더딘 편이에요. 그걸 이해하고 존중해주셔야 원활한 진행이 가능해요.
더 중요한 건,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취지를 살리는 거예요. 예컨대, 스킨푸드는 제품의 패키지를 어르신들의 글씨와 그림으로 바꾸고 굿즈를 만들면서 노인분들께 제품 포장 일자리를 제공했어요. 이렇게 신이어마켙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고, 뜻을 함께 해주는 기업들과 협업할 때 힘이 나죠.
어르신들의 손그림으로 제작한 24절기 달력 (사진 제공=아립앤위립)
- 신이어마켙이 MZ세대에게 인기를 끌게 된 비결은 뭘까요?
MZ세대 팬분들께서 진정성을 알아봐주신 것 같아요. 2030세대의 고민에 7080세대 시니어들이 답장을 보내주는 ‘신이어 상담소’를 처음 선보였을 때 공감하면서 SNS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고요. 절기달력을 만들었을 때도 반응이 좋았죠. 요샌 절기 개념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어르신들은 일상에서 절기를 항상 언급하시거든요. 거기서 착안해 기획한 제품인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많이 알려지게 됐어요.
수익금 분배나 활동 내역에 대해서도 팬분들이 꼼꼼히 알아보시곤, 각종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퍼나르시더라고요. ‘불시에 점검했는데, 여긴 진짜로 노인 일자리를 해결하려고 투명하게 애쓰는 곳 맞네’라고 판단하신 거예요. 마치 미스테리 쇼퍼* 같다고 느껴졌어요. 사회적기업이다 보니, 팬분들이 윤리적인 측면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듯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미스테리 쇼퍼(Mystery Shopper) : 손님으로 가장해 매장에 방문하여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사람.
- 원래 찐팬들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영업에 나서는 법이죠. 대표님은 마케터로 일한 경험이 있으시니, 마케팅적으로도 신경을 많이 쓰실 것 같아요. 혹시 페이드(Paid) 광고도 진행하시나요?
아립앤위립을 운영해 온 5~6년을 통틀어서 광고 비용 지출은 50만 원도 안 돼요. 처음에 아무 것도 모를 때 테스트로 해본 게 전부죠. 흔히들 하는 SNS 팔로우 이벤트도 안 해요. 그렇게 모은 팔로워는 금방 떠나거든요. 신이어마켙을 정말로 좋아하고, 우리의 활동에 공감하는 팬들은 자발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고 팔로우를 해요. 더디더라도 탄탄하게 팬층을 쌓아가는 게 마케팅적으로 훨씬 좋은 징조라고 봐요. 그래서 마케팅 비용을 태우는 대신, SNS 피드에 올릴 콘텐츠에 어떤 내용을 담으면 좋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합니다.
책 <일단 살아 봐, 인생은 내 것이니까> 출간 기념 북토크 (사진 제공=아립앤위립)
- 최근에 SNS 투표로 팬클럽 명칭도 정했죠. ‘준이어’라고요. 신이어와 준이어가 함께하는 활동도 계획중이신가요?
나들이라든지,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르신들 체력 문제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좀 많기는 해요. 팬들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재작년, 작년엔 팝업스토어를 열었어요. 작년에는 신이어 상담소를 책으로 엮어서, 출판 기념 북토크를 개최하고 팬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죠. 일단, 올해도 팝업스토어를 열 계획이에요.
- 앞으로 회사와 브랜드를 어떻게 키워나갈 계획인가요?
신이어마켙이라는 브랜드가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를 이해하고 응원해줄 수 있는 팬들과의 접점을 늘려 가는 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고요. 아립앤위립은 올해 안에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폐지 수거 노인뿐 아니라, 더 많은 노인들에게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해드리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5년 뒤는 제 아버지가 만 65세에 접어드시는 해예요. 저희 청년 구성원들의 부모님도 그 연령대에 근접하실 거고요. 그래서 내부 구성원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우리 부모님이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우리가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라고요. 한국에선 만 65세부터 ‘노인’으로 보지만, 생각보다 그 나이대 어른들은 사회활동을 하시기에 충분한 체력을 지니고 있어요. 사회활동을 끝마치기엔 여생이 너무 길죠. 그분들이 좀 더 활발히 일하실 수 있게끔 저희가 지원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