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글은 잡플래닛에 남겨진 리뷰와 회사 관계자와의 통화를 근거로 한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비서[비:서] 일부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직속되어 있으면서 기밀 문서나 사무를 맡아보는 직위,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
여러분은 기업 회장의 '비서'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여기 한 회사가 비서에 대한 새로운 정의 정립에 나섰습니다. 이 회사가 말하는 '비서'의 기본 조건은 '몸매 비율'과 '비혼주의'라고 하는데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인지 한번 들어볼까요?
◇면접 보러 갔더니 “남자친구 있어요? 슬림핏 스키니진 입고 오세요”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A일보입니다.”
비서직으로 입사원서를 냈던 그 회사다. 채용공고에서는 전화면접 후 대면면접을 본다고 적혀 있었다. 휴대폰을 고쳐 잡고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우리는 비율이 좋아야 하는데 키가 몇이죠?”
수화기 저쪽 누군가는 갑자기 키를 물었다. 아마도 인사담당자일 그는 주량과 부모님 직업 등을 추가로 더 물었다. 질의응답 끝에 인사담당자는 면접 날짜를 통보했다.
“그럼 내일 면접 보러 오세요. 복장은 스키니진이나 딱 붙는 슬림핏 슬랙스를 입고 오세요.”
인사 담당자는 면접 복장으로 딱 꼬집어 ‘스키니진’과 ‘슬림핏 슬랙스’라고 재차 강조했다. 도대체 얼마나 딱 붙어야 하는가. 장고 끝에 적당히 붙는 검은색 슬랙스를 골라 입고 A일보로 향했다.
심층 면접이 시작됐다.
“옷이 너무 헐렁헐렁하네요. 입사하게 되면 슬림핏으로 입고 다니셔야 돼요. 스키니나 딱 붙는 쫄티같은거요.”
“남자친구는 있어요? 결혼은 할 건가요? 언제쯤 하려고요?”
“술은 잘 마셔요? 나중에 면접이 끝나고 연락하면 같이 식사할 수 있어요?”
“본인의 몸매 비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임원진이 진행한 면접은 대부분 옷차림과 사생활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면접 후 비서 직무에 대한 혼란에 빠진 미경씨(가명)는 입사를 포기했다.
◇”비서는 외모가 중요…서른에 만나는 남자 있으면 계약직으로 근무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위 사례는 잡플래닛에 남겨진 40여개의 공개 또는 비공개 리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인데요.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비서직은 키와 몸매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답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비서를 채용하는데 스키니진 면접을 보고 주로 타이트한 옷을 많이 입도록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입고 있고요. 비서직이니까요. 비서는 키가 165㎝ 이상은 돼야 합니다. 회장님 키가 160㎝ 밖에 안되기 때문이에요. 회장도 작은데 (비서도 작으면) 똥까리(동강이의 방언. 일정한 부피를 가진 긴 물건의, 짤막하게 잘라진 부분이나 쓰고 남아 짤막하게 된 부분)끼리 외근 나가면 뭐 보기 좋겠어요. 비서직은 외적인 부분을 봅니다. 경리직은 몰라도 비서직은 고용상의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면접보러 오라고 하지 않아요. 전화상으로 설명을 해요. 생산적인 면접을 위해서 항상 소통을 해요. 무조건 오라고 하는 건 갑질이죠.”
‘결혼 여부’에 대해서는 “서른에 특별히 만나는 남자가 있으면 누가 정규직에 채용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경우 정규직 채용은 당연히 어렵다는 얘기인데요. 직접 담당자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원룸에 살고 있는데 애인이 있으면 저희 회사는 채용 안 합니다. 원룸에 살고 있으면서 20대 후반에 애인이 있으면 원룸에 안방 드나들 듯 왔다갔다 할 거거든요. 그럼 언제 결혼할지 모르고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요. 그런 사람 채용 안해요 저희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계약직으로 근무시킨다고요. 만약 31살에 돈독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누가 정규직에 채용하겠어요. 그렇다고 남자친구 있다고 불합격시키는 그런 악덕 기업이 어디있어요. 우린 그런 악덕 기업 아닙니다. 대신 29살, 30살에 특별히 만나는 사람 있으면 계약직으로 근무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개인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식사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식사를 하면서 무슨 엉큼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불순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면접 시 외모·결혼 개인정보 수집 ‘불법’…사적인 술자리 요구 ‘성희롱’”
결국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뽑기 위한 면접이었을 뿐”이라는 설명인데요. 안타깝게도 현행 법은 면접 시 이같은 질문을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차별적 질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제7조 제2항은 ‘사업주는 여성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 조건, 그 밖에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하여서는 안 된다’고 정해두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경우 사업주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역시 이같은 행위를 금지하고, 어길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이는 상시 30명 이상 근무 사업장에 적용됩니다.
특히 여성가족부와 10개 경제단체가 만든 성평등 채용 안내서인 '성평등 일자리, 차별 없는 채용이 만듭니다'는 △결혼 계획은 있나요? △결혼 안 할 거죠? △결혼·임신하면 그만둘 건가요? 등을 대표적인 부적절한 질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면접에서 이같은 일을 당했다면 고용노동부에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고용부는 성차별 익명신고센터를 상시 운영 중입니다. 성차별 익명 신고시스템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www.moel.go.kr)에서 ‘민원신청→신고센터→직장 내 성희롱 익명 신고창’을 통해 신고하면 됩니다.
한가지 더!
일부 면접자들과 전현직 근로자들은 외모에 대한 지적과 사적인 술자리 요구 등을 '성희롱'이라고 주장했는데요. 회사 측은 “성희롱이 아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는 성희롱에 해당할까요?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는 ‘직장 내 성희롱 ABC’에서 대표적 성희롱 유형으로 △신체적 특성,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평가·비하 △위아래로 훑어보기 △업무시간 외, 업무장소 외에서 만나자고 전화·문자·카톡 등으로 요구 등을 꼽고 있습니다. 이는 면접자에게도 적용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면접 과정에서 사적인 술자리를 요구하거나 남자친구와 진도 등을 물어 면접자가 성적굴욕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역시 이 경우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사법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을 한 사업주에게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제보를 받습니다. (링크) 직장에서 일어난 각종 억울하고 부당한 사건들을 잡플래닛에 알려주세요. 당신의 제보는 더 좋은 회사를, 더 나은 직장 문화를, 더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경험한 그 사건의 이야기와 함께 사진과 동영상, 연락처 등을 남겨주시면 추가 취재를 통해 세상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콘텐츠 저작권은 잡플래닛에 있으며, 무단 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