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기업은 다니지 않겠다!" 그가 선택한 일은?

[직장해방일지] 고대 물리학과→테일러샵직원→청소부...다음은?

2024. 03. 06 (수) 15:46 | 최종 업데이트 2024. 03. 06 (수) 18:19
FIND YOUR PLANET.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직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잡플래닛의 목표인데요. 취업과 퇴사, 이직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 ‘내게 딱 맞는 행성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생각해보면, 제법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니까, 본인만의 여정에 나선 우리 독자 요원님들은 모두들 로맨티시스트인 셈이죠. 잡플래닛을 지키는 JP요원보다 훨씬 더요!

<컴퍼니타임스>는 각자의 행성을 찾고 있거나, 결국 찾아냈다고 외치는 독자 요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하여 스타트를 끊게 된 독자 인터뷰 시리즈 ‘나의 직장해방일지’.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 <주간 컴퍼니타임스> 구독자분들을 대상으로 사연을 받았는데요. 정말 많은 독자 요원들의 신청이 이어졌어요. 때론 유쾌하고 때론 처절한 우리네 파란만장 이직·퇴사 스토리, 하나하나씩 같이 귀 기울여 봐요. 이 모든 각자의 우주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삶의 영감을 발견할지도요!
잡플래닛 컴퍼니타임스 독자인터뷰 나의 직장해방일지 진로고민
여러분은 지금의 직업 혹은 전공분야를 택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거치셨나요? 어떤 ‘일’을 하느냐에따라 성격, 라이프스타일, 인간관계, 가치관 등 삶을 이루는 요인들이 모두 송두리째 바뀌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인생 2회차가 아닌 이상, 무슨 일을 하면서 먹고 살지 확신을 갖고 결정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했으나 대기업에 다니지 않겠다는 해괴한 신념으로 봉제 기술을 배움. 의류 패턴사로 꿈을 키웠으나 갑작스레 생겨난 아기를 키우게 됨. 1년동안 육아에 전념하다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배워보자 싶어 영상 편집을 배움. 영상 회사에 들어가서 기술을 배우려 했지만 말도안되는 노동조건에 기겁하여 테일러샵(맞춤 양복)에 취업. 근로계약서도 없고 매일 술마시고 고객 등쳐먹는 엄청난 업계 상황만 확인하고 도주. 그 후 영상 작업 하면서 기획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기획 직무로 재취업. 본인들은 스타트업이라 주장하는 요상한 회사에서 반년동안 가스라이팅 당한 후 퇴사 결심.

나이는 만 30세, 경력 없음, 기술 없음, 커리어 목표 없음, 저는 대체 뭘 하고 살아야 할까요.
‘나의 직장해방일지’ 세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 독자 요원 K님에게도 천직을 찾아가는 여정은 끊임없는 고민과 고난의 연속이었는데요. 보내주신 사연만 봐도 굴곡진 여정이 한껏 느껴지더라고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전히 그의 진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삶의 길목에서 행복을 찾고 깨달음을 얻고, 걸음마를 익혀가며 인생 1회차를 부지런히 헤쳐나가고 있는 K님의 이야기. 마음을 활짝 열고 함께 들어보시죠!
- K님 반갑습니다. 지금까지 워낙 다양한 루트를 거쳐 오셨더라고요. 특히 사연 첫머리에 ‘대기업에 다니지 않겠다는 해괴한 신념’이라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요. 어쩌다 그런 신념을 가지게 되신 거예요?

기본적으로 반골 기질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긴 해요. 보통 물리학과에 들어가면 졸업 후 진로가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대학원에 가거나 반도체 계열의 삼성, SK하이닉스 등의 대기업에 취업을 해요. 그렇게 정해진 루트를 따라서 취업을 하게 되면 40~50대까지 쭉 한 길로만 갈 것 같더라고요. 미래가 뻔히 그려지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어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학문을 깊게 파고드는 것보단 기술을 배워서 몸을 쓰고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게 더 제 기질에 잘 맞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 그럼 대학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물리학 전공을 살려서 진로를 정하기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던 게 2학년 1학기를 마쳤을 때쯤이었어요. 그 상태로 군대에 갔죠. 전역 후에는 휴학하고 쿠팡에서 배송업무, 사무직 알바를 했어요. 

정신차려보니 졸업이 코앞이더라고요.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던 때였죠. 먹고 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조바심에 쫓겨서 변리사 시험을 잠깐 준비하기도 했어요. 대학원 진학과 변리사 시험 준비를 병행하라는 부모님 성화에 못이겨 금방 때려치웠지만요.

부모님이 원하는 삶과 내가 원하는 방향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보고 싶어서 변리사의 길을 고려했던 거였는데, 대학원 진학까지 요구하시는 걸 보며 타협은 불가능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결정을 하느니, 차라리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 그래서 택한 게 의류 패턴사였나봐요.

4학년 때 동대문에서 원단을 떼다가 의류를 만들어 일본에 수출하는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거기서 일하다보니 자연스레 옷 만드는 일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옷의 구조를 짜는 ‘패턴사’가 되고 싶어서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고 관련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학원도 다니고, 유튜버가 개인적으로 강습하는 곳에 찾아가 배우기도 했고요. 그러던 중 패턴사 취업 제의가 들어왔는데, 1년간 기술을 배우면서 일하는 대신 교통비만 지급 받는다는 조건이었어요. 도제식 시스템인 거죠. 그때 이미 제가 결혼해 아이가 있는 상태여서 그렇게는 일을 못하겠다 싶더라고요.


- 아니, 어느 틈에 결혼을…?!

대학생 때 막내삼촌이 새로 오픈한 작업실 셀프 인테리어를 도우러 갔어요. 거기서 삼촌의 친구분들과 친해지게 됐죠. 같이 어울려서 놀다가 그 친구분들 중 한 분과 잘돼서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 거예요. 

아내는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공부하고, 잡지사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박사논문을 쓰던 사람이고 지금은 아트북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아내가 회사에서의 커리어와 작가로서의 예술 활동 사이에서 고민하던 차에 절 만났는데, 제가 작품 활동하라고 전시장으로 등떠밀었죠.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작가로 전향하게 됐어요.

사실 전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생각이 원래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아이가 생기고 보니, 36개월 정도까지는 집에서 아기를 보살피고 싶더라고요. 그 시기에 정서 발달이 이뤄진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어릴 땐 내가 같이 키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 그동안 직장을 찾는 일도 보류였던 건가요?

아내가 패브릭 소재를 기반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작가라, 같이 양말 사업을 해볼까 하고 준비했다가 결국 잘 안 됐어요. 그럼 차라리 아이를 볼 수 있도록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일이 좋겠다 싶어서 영상편집을 배웠어요. 생각보다 저랑 잘 맞더라고요. 그 기술로 취업을 하려고 여기저기 면접을 되게 많이 봤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면접본 곳 중 한 회사에서 ‘디자인적인 디테일이 많이 떨어지는데, 기획력은 정말 좋다’고 피드백을 주셨어요. 아내도 제게 비슷한 말을 자주 하긴 했는데, 제3자에게 그런 얘기를 들으니 제게 기획하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예 그쪽으로 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고요. 당장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맞춤정장 업체에 취직했어요.


- 맞춤정장을 제작하는 일이었나봐요.

그건 아니고, 예복을 맞추러 온 손님을 대상으로 상담해주는 일과 가봉 돕는 일을 했어요. 한 1년 정도 근무하다가 그만뒀죠.


- 왜요?

손님들에게 맞춤정장이라고 하면서 비싸게 파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정장을 짓는 방법이 크게 2가지가 있는데, ‘비스포크’라고 해서 실측한 사이즈대로 개개인에게 맞게 패턴을 새로 뜨고 곡선을 살리기 위해 손바느질로 제작하는 방법이 있고요. 정해진 패턴을 실측 사이즈에 맞게 늘리거나 줄이기만 하는 ‘수미주라’ 방식이 있어요. 

맞춤정장이라고 하고 비싼 값을 받으려면 비스포크 방식으로 옷을 제작해야 하는데, 수미주라로 사이즈를 재서 공장에 제작을 맡기더라고요. 손님에게 이런 차이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웃돈을 받으며 영업을 해야한다는 게 회의감이 느껴졌어요. 

테일러샵에선 남자들만 일을 하는데, 마초적인 성향이 짙고 술자리도 너무 잦아서 근무 분위기가 저랑 여러모로 맞지 않기도 했고요. 


- 그럼 테일러샵을 그만둔 뒤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집에 돈을 벌어올 사람이 저밖에 없다보니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했어요. 아내는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라서 수익을 내진 못하지만 굉장히 바빠요. 육아를 병행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거죠. 다시 기획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9 to 6로 근무하는 회사에 취업을 했죠. 환경 사업을 하는 테크 회사의 기획팀 자리라서 이과적인 사고방식과 기획, 영상이나 마케팅 스킬도 조금 가지고 있는 제가 잘 맞아떨어졌던 거 같아요. 


- 새로 들어간 회사는 어떠셨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7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이사님 아래 매니저, 그 아래 제가 있는 조직 구조로 일을 했는데요. 알고보니 그 회사에서 이사가 악명 높은 사람이더라고요. 제 전임자도 그 분 때문에 속앓이 하다 퇴사한 거였어요.


- 대체 어땠길래...

아주 사소한 보고서의 마침표 하나까지 세세하게 마이크로매니징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지시하면 마이크로매니징을 해도 괜찮은데, 그렇지가 않으니 너무 힘들었어요. 말로는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으면서 본인이 원하는대로 하길 바라는 거죠.

입사후 3개월 수습기간이 끝난 뒤부터는 더 심해지더라고요. 1on1 미팅에서 너무 감정적인 피드백 때문에 일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이사님도 조심하겠다고 답을 주셨어요. 그런데 이후부터는 대놓고 자리에서 얘기하지 않고 DM으로 지적을 한다든가 보고서를 수십차례 퇴짜 놓는다든지…교묘하게 수법이 바뀌더라고요. 

6개월을 참다가, 하루는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반발을 했어요. 그랬더니 이사님도 화를 내시더라고요. 물론 그 사람 입장에선 기분이 나빴겠지만, 저는 지난 6개월간 그냥 ‘네, 알겠습니다’하고 넘어갔거든요. 그냥 순응만 하던 직원이 이렇게 반발했을 땐 왜 평소랑 다르게 반응하는지 들여다볼거란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서로 잘해보겠다는 태도가 없더라고요. 이제 더이상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이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 그럼 지금은 일을 쉬고 계신 거예요?

사실 (인터뷰일 기준으로) 다음주부터 새로운 곳에 출근하기로 했어요. 


- 와! 사연 주셨을 때만 해도 앞으로 뭘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셨잖아요. 잘됐네요. 새로 하시게 되는 일은 어떤 건가요?

공장에서 청소하는 일이에요.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후 2~3시면 끝나거든요. 아이 하원 시간이 보통 오후 4시 정도니까, 청소 일을 하면 육아에 적합하게 생활패턴을 꾸릴 수 있겠더라고요. 

아내를 맘 편히 서포트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아내가 저희 집의 미래라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간 아내의 작품활동을 통해 가치 있는 일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어요. 

혹시 김환기 화백의 아내이신 김향안 선생님을 아시나요? 김환기 화백이 성공하기까지 김향안 선생님이 가계를 이끌고 자식을 책임지셨거든요. 단순히 내조만 한 게 아니에요. 본인의 작품이 세계에서 통하는지 알고 싶다는 김환기 화백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본인이 먼저 떠나셨죠. 거기서 불어와 미술사를 공부하고 인맥을 쌓으면서 김 화백의 파리 진출을 이끄셨다고 해요. 저도 제 아내를 그렇게 키워주고 싶어요. 


- 아내의 재능과 작품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남편이라니 멋진데요! 작품이 궁금해져요. 

아내는 패브릭을 가지고 책을 바인딩해서 만드는 작업도 하고, 설치미술 작품도 만들어요. 본인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해서 즐겁게 일하고 그걸로 돈도 벌 수 있으면 정말 좋잖아요. 제가 보기엔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의 옆에서 전시나 작품활동을 전체적으로 브랜딩, 마케팅하고 사업화하는 과정까지 돕고 싶어요. 그 기간동안 아내가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도록 시간과 경제적인 여력을 벌어주고 싶고요. 아내를 성장시키면서 저도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지금까지 제가 세운 계획 중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미래가 아닐까.


- 결혼과 육아가 인생 계획에 없었다고 하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인생 경로를 결정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네요. 

맞아요. 가끔 설문조사 같은 걸 하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써주세요’와 같은 질문이 있잖아요. 전 항상 그 빈칸에 쓸 내용이 없었거든요. 긍정적인 감정에 둔감한 편이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육아를 하면서 내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고, 행복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게 됐어요. 

전 원래 짜증이 많은 편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는 그게 되게 큰 문제가 되겠더라고요. 아이한테는 항상 일관된 태도로 대해야 하고,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자잘한 실수를 용인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인내가 생기고, 제 약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됐어요. 


- 아이를 키우며 스스로도 성장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어쩌면 ‘아빠’라는 직무가 가장 잘 맞는 옷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거 같아요. 전 성장과정에서 항상 부모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거든요. 나를 잘 키워내진 못하셨더라도 고생스레 키우셨을 테니까. 나 같은 아들이 있으면 나도 내 부모처럼 못 키웠을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제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제게 아이는 정말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거든요. '부모라는 역할은 이토록 행복하게 해 낼 수 있는 거구나' 생각해요. 어릴 때 가족관계 속에서 힘들었던 것들을 생각하며 내 아이는 그런 힘듦을 겪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더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렵기만하고 커리어를 망치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이잖아요. 아이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성장하고 계시는 것 같아 보기 좋은 것 같아요. 커리어적으로는 여전히 고민이 많을 수 있지만,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게 어떤 빛나는 커리어를 쌓는 것보다도 가치있는 일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꼭 뭐가 더 나은 길이라고 남들이 판단할 수는 없는 거겠죠. 저마다의 인생이 있는거니까요. 

지금까지 참 많은 시행착오와 도전, 변화를 겪어오셨잖아요. 마지막으로, 본인의 인생 히스토리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걸 하나씩 꼽아본다면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자퇴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검정고시를 치르고 유학 가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죠. 하지만 부모님의 만류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학교를 끝까지 다녔어요. ‘명문대-대기업-결혼-육아-노후대비’로 이어지는 공장형 인생 플랜에 갇혀서 그 이외의 선택지와 가능성이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어요. 그게 가장 후회스러워요. 그때 내 판단을 믿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을 텐데.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내를 만난 것과, 육아가 가능한 조건이 아니었음에도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던 일이에요. 첫만남 당시 아내는 저보다 13살이 많은 작가였고 저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학부 4학년생이었어요. 연애도, 결혼도, 육아도, 누구라도 만류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제 직관을 믿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용기 있는 선택을 했어요. 그리고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제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했죠. 

공장형 인생 플랜에 맞추느라 내내 달고 살던 불안과 위기의식을 떼어내고 유연함과 여유와 본래의 제 모습을 서서히 되찾았다고 생각해요. 육아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덤이고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동력 삼아,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제 손으로 열어가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 (열흘 뒤) K님, 잘 지내시나요. 새로 시작한 청소일은 잘 맞는지 궁금하네요.

일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애초 이야기했던 것과 달리, 새벽 1시에 일을 시작해야 했고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시급으로 13시간이 넘게 일을 해야 했어요. 작업시간에 허덕이는 아내에게 여유를 주고 싶어서 택한 일이었는데, 작업시간을 벌어주기는 커녕 몸도 생활도 망가지겠더라고요. 결국 그만 뒀어요. 또 다른 일을 찾아 봐야죠!
우리의 독자 요원 K님의 커리어 고민은 아직 현재진행형인데요. 그래도 그의 목소리에서 좌절보다는 희망과 기대가 느껴지는 건 이런 과정을 통해 한 걸음씩 진짜 내 삶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아내, 그리고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해준 아이가 있으니까요.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잖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딱 내 천직이다 싶다가도, 이게 아닌가? 지금이라도 다른 일 찾아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하다가도 어느샌가 불안과 고민이 몰려오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롭고, 하루에도 천 번은 흔들리는 게 우리의 삶 아니겠어요?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일지 모르지만, 두 번째 '직장해방일지'의 주인공 독자 요원이 그러셨잖아요. "허투루 한 경험은 없었다"고요. 지금의 시간과 경험이 쌓여, K님의 꽃길이 머지 않아 펼쳐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항상 응원할게요. 
 
 
박지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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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했거나, 혹은 지금까지 해온 일과는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셨나요?
혹은 회사를 떠나 마음 속으로 품어 온 꿈을 찾아 나서셨나요? 
이직·직종전환·퇴사 후 새로운 도전 등과 관련한 여러분의 경험담을 들려주세요.
재밌는, 자랑하고 싶은, 하소연하고 싶은 이야기 모두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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