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 선배는 셜록 홈즈"…탐정이 되는 법

[세상에 이런 '일'도] 한국판 '탐정'은 어떤 모습?

2020. 08. 20 (목)

'장래희망' 란에 어떤 직업을 써내는 게 멋있어 보일지 고민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무슨 일 할지' 고민했던 학창시절처럼, 취업·이직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 또한 직업과 직무일 텐데요. 고용노동부 워크넷의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직업 수는 1만 6891개(2019년 기준)에 달합니다. 최근 8년 사이 5236개의 직업이 새롭게 생겨났다고 합니다.

'수많은 직업 중 내 자리는 어디에…' 고뇌하고 있을 여러분을 위해, 컴퍼니 타임스가 "세상의 이런 '일'도"를 연재합니다. 들어는 봤는데 무슨 일 하는지 잘 모르는 직업, '세상에 이런 일도 있었나' 싶은 이색 직업, 영화·드라마에서는 멋지게 나오는데 실상은 어떤지 궁금한 직업 등 다양한 '일자리'를 다뤄봅니다.

 
[탐정: 드러나지 않은 사정을 몰래 살펴 알아냄.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왓슨, 난 이 사건을 주홍색 연구라고 이름 짓겠네. 살인이라는 주홍색 실이 아무 색깔도 없는 인생이라는 실타래 속에 얽혀있다고 생각해봐. 그 실을 풀어내어 남김 없이 드러내는 게 바로 우리의 임무야." (셜록홈즈 '주홍색 연구' 중)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소년 탐정 김전일, 명탐정 코난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과 주인공의 직업이 탐정이라는 점이죠. 작은 단서 하나로 사건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실체를 파악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탐정들. 이들의 활약상을 보고 어릴 적 탐정을 꿈꿨던 분들 적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는 '탐정'이라는 직업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형이라는 점. 지난 2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2020년 8월 5일부터 '탐정'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는데요. 그동안 법은 '정보원, 탐정, 그 밖에 이와 비슷한 명칭 사용'을 금지했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당당하게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결론은 이제 '탐정'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 "이제야 '탐정'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동안 일 해 왔어요" 
법 시행 첫날 '명탐정사무소'라는 이름의 탐정사무소가 관할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마치면서 대한민국 1호 탐정사무소가 탄생했습니다. 사실 법 개정 전에도 탐정과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은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른바 '민간조사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제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름 '탐정'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전문직으로 자리잡은 직업입니다. 한국에서도 탐정이 사건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한 사례가 적지 않은데요. 

1991년 미국의 공인탐정 강효흔씨는 '대성그룹 50억 대출사기 사건'을 해결하며 이름을 알렸는데요. 당시 대성그룹 해외사업부 직원이 사장의 이름을 도용해 50억원을 대출받아 미국으로 도주한 사건에서, 강 탐정은 9개월에 걸친 탐문 수사 끝에 범인을 찾아냈죠. 당시 한국 10대 뉴스에 꼽힐 정도였던 이 사건은, 한미 간 최초로 이뤄진 범인 송환 사건인 데다 해외 도피 범죄자에게 영장을 청구해 체포된 첫 사례로 기록돼 있습니다. 

민간조사원으로 활동해 온 유우종 공인탐정중앙회 회장은 '화물선에서 사라진 달러 뭉치 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는데요. 유 회장은 "2013년 부산항에 도착한 터키 국적의 화물선에서 달러 뭉치가 사라졌는데, 공해상에 떠 있는 외국 배에서 외국인이 벌인 사건이라 한국 경찰도 쉽게 수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며 "금고와 서류 봉투 등에서 지문을 찾아내 사건 해결에 기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유우종 한국공인탐정중앙회 회장(가운데) 
 
◇ 한국의 탐정,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긴 논의 끝에 이번 법 개정으로 한국에서도 탐정으로 영리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 속 범죄자를 쫓는 탐정의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민간 조사의 영역인 만큼 법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활동에는 제약이 따르기 때문인데요. 

증거를 수집해서 형사사건의 진범을 밝히거나, 잠적한 불법행위자의 소재나 은신처 등을 파악하는 행위, 이혼소송에서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입증할 자료 수집, 가출한 배우자나 성인 자녀의 거주지나 소재를 파악하는 일 등은 위법 가능성이 큽니다. 수사·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증거 수집은 변호사법 위반이 될 수 있고, 성인에 대한 정보 수집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위법한 내용을 탐정에게 의뢰하는 것 역시 교사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탐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개인정보보호법상 본인의 동의가 없어도 법정대리인의 동의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아동·청소년의 소재 파악'은 가능합니다. 부동산등기부등본 등 공개된 정보를 대신 수집해주거나, 상대방의 동의를 전제로 한 이력서·계약서 기재 내용의 사실확인, 도난·분실·은닉 자산의 소재 확인 등도 가능합니다. 

실제 최근에는 기업 관련 사건 의뢰가 늘고 있다고 하는데요. 유 회장은 "민간조사원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워주고 있다"며 "과거에는 개인 사건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기업 부정, 지식재산권침해 관련 사건들 의뢰가 크게 늘었고, 이 밖에도 교통사고 조사, 해상사고, 금융사기, 사이버범죄, 해외 도피 사범 등 민간조사원 시장 분야는 다양해지고 시장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탐정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민간 조사 영역인 만큼 현재 탐정이 되기 위한 자격 조건은 없습니다. 탐정사무소를 차리고 업무를 하면 탐정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모두 민간 자격증이라 탐정이 되기 위해 필수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민간조사(탐정) 자격 발급 기관으로 등록된 곳은 27곳인데, 실제 자격증을 발급하는 곳은 9곳이라고 합니다. 역시 모두 민간 자격증이라 국가의 관리 감독을 받는 자격증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탐정이라는 이름을 걸고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관련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탐정 교육을 한다며 수업료만 받고 제대로 된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경찰은 민간자격증 발급 단체 대상으로 자격에 대한 허위·과장 광고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허위·과장 광고로 적발되는 단체는 자격기본법 위반 등으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는데요. 경찰은 탐정 명칭을 사용하는 업체와 심부름센터·흥신소에 대해서도 특별 단속을 할 예정입니다. 

유 회장은 "자격증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탐정이 법을 어기거나 부정을 저질렀다면 자격증을 박탈하는 등 민형사상 처벌 규정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국가 공인 탐정' 나올 수 있을까? 
이런 문제 때문에 '공인 탐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자격이 없는 이들이나 불법행위를 하는 이들 때문에 탐정에 대한 인식이 아직 '흥신소' 정도에 머물러있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관리·감독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개인의 사생활이나 타인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큰 업종 특성상 제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정부도 나섰습니다. 관련 부처는 법안을 준비 중인데요. 법무부와 경찰청은 공인탐정제도에 대한 정부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까지 입법을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스페인 등이 공인탐정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미국의 경우 15개 주(州)에서는 경찰, 1개 주에서는 법무부, 21개 주에서는 별도 전담부서에서 공인 탐정을 관리 중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내무부, 스페인은 경찰, 일본은 공안위원회 등에서 공인 탐정을 관리·감독하고 있고요. 

공인탐정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업무 범위 등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각종 이유로 법의 사각지대에서 선 이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고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진짜 탐정이 자리 잡을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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