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croSoft HoloLens2>
[e대한경제=김태형 기자] # 대우건설 하태훈 수석연구원이 책상에 앉아 건축물 목업(Mock-upㆍ실물 모형)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다. 그때 핑크색 레게 머리를 한 여성이 맞은편 의자에 앉더니 목업을 잡아 돌리고, 크기를 키웠다 줄였다 하면서 하 수석연구원과 기술적인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하 수석연구원을 뺀 책상과 목업, 그리고 대화 상대인 여성까지 모두 허상(虛像)이다. 이 여성 아바타의 실제 주인은 수m 떨어진 곳에서 헤드셋을 쓴 채 허공에 대고 손을 열심히 움직이는 한국씨아이엠의 박진희 책임매니저다. 하 수석연구원의 머리 위에도 헤드셋이 씌워져 있다.
이 헤드셋은 혼합현실(MR) 장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2’.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두 엔지니어가 자신의 아바타로 가상 사무실에 출근해 동료와 공동 작업을 하는 영화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어준 첨단 MR기기다.
MR은 현실과 차단된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는 가상현실(VR)과 실제 공간에 가상 요소를 덧씌우는 증강현실(AR)을 합친 개념이다. 사람의 손동작이나 음성, 시선으로 조작할 수 있는 가상 영상을 구현해낸다. 홀로렌즈2는 별도 장비 없이 맨손으로 조작 가능한 MR 기기로, 현재 시판 제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마트폰이나 PC와 연결 없이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올인원 웨어러블 디바이스’다.
<e대한경제>는 홀로렌즈2가 건설현장에서도 유용한 ‘스마트 기기’인지, 아니면 500만원짜리 ‘값비싼 장난감’이 될 것인지를 검증해보기 위해 전문가 시연을 진행했다.
홀로렌즈2의 국내 유일한 공인 판매사(ADR)인 한국씨아이엠의 서울 성수동 본사에서 지난 8일 진행된 시연에는 하태훈 수석연구원이 참여했다. 하 수석연구원은 대우건설 기술연구원 소속으로 스마트건설기술 전문가이자, 2016년 첫 출시된 홀로렌즈1을 사용해본 유경험자다. 하 수석연구원은 “홀로렌즈1에 비해 홀로렌즈2는 착용감과 조작감에서 확실히 개선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홀로렌즈2는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장치의 맹점인 착용감을 개선하기 위해 초경량 탄소섬유 소재를 써서 무게를 줄이고, 배터리를 뒤로 보내 안면부에 치중됐던 무게중심을 잡았다. 또 머리를 조금이라도 돌리면 홀로그램 정보가 사라졌던 시야각도 전작보다 2배 이상 넓혔다. 홀로그램 밀도(시야각 당 47픽셀)와 해상도(1안당 약 220만화소)도 개선해 8포인트의 작은 글자로 읽을 수 있게 업그레이드했다. 4개의 가시광선 카메라와 2개의 적외선 카메라, 깊이를 측정하는 인공지능(AI) 심도 센서 등을 통해 사용자의 시선과 손의 움직임을 즉각 인식할 수 있게 된 것도 홀로렌즈2의 특징이다. 실제 물건을 만지듯이 자연스럽게 조작이 가능해졌고,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면 실행된다.
하 수석연구원은 특히 “메시(Mesh)와 결합된 작업환경에서 아바타 및 모델과 상호작용해 본 경험은 영화를 넘어 조만간 미래에 펼쳐질 업무환경처럼 느껴졌다”고 평했다. 메시는 클라우드에서 작동하는 MR 플랫폼으로, 홀로렌즈2뿐 아니라 페이스북의 VR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2’ 등 다양한 디바이스와 호환된다.
하 수석연구원은 홀로렌즈2의 활용분야로 △원격 기술 지원 △시공 관리 △협업 도구 등을 꼽았다. 그는 “건설회사의 본사 기술 담당자들은 한 달에 수곳의 현장을 찾아 기술지원을 한다”며, “홀로렌즈를 통해 현장의 상황을 진단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수단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모델, 도면, 문서 등을 현장에서 언제든지 손쉽게 열람하고, 곧바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돕는 ‘필드 엔지니어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 수석연구원은 특히 “홀로렌즈2가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화상회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태훈 대우건설 수석연구원(오른쪽)이 한국씨아이엠 엔지니어와 함께
혼합현실(MR) 장비 ‘홀로렌즈2’를 이용해 건설현장 협업을 시연하고 있다. 안윤수기자[email protected]
한국씨아이엠에 따르면 홀로렌즈2를 활용하면 현장사무실의 회의공간에서 200분의 1의 크기로 축소된 BIM(건설정보모델링) 모델을 복수의 인원이 공유하면서 회의를 할 수 있고, 현장에서는 BIM 모델을 1대1 크기로 키워서 현장상황에 반영해 비교할 수 있다. 리모델링 시에는 기존 시설 위에 가상 자재나 가구를 배치해 계획하고, 보이지 않는 기존 구조 벽이나 천장 속의 사용가능한 공간을 찾아 수리ㆍ개선도 가능하다.
홀로렌즈2의 몇 가지 아쉬움도 지적됐다. 하 수석연구원은 “장시간 머리에 쓰기엔 여전히 무겁다. 안경처럼 착용하고 배터리 등 무거운 부분은 배낭 형태로 만들면 착용감이나 확장성에 더 유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GPS, 라이다(LiDAR), 열화상 등의 센서와 결합해 현장 업무 수행을 위한 확장성을 보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존 안전모에 부착해 쓰는 활용방식에 대해선 “디자인 폭망(폭삭 망했다)”이라며 전용 안전모가 필요하다고 했다. 배터리 발열로 인한 사용시간 제한(2∼3시간)도 개선이 필요해보였다. 반도체, 플랜트 등 분야를 겨냥한 홀로렌즈2의 산업용 에디션은 이달 중 출시 예정이다.
전준호 한국씨아이엠 전무는 “홀로렌즈와 MR 같은 새로운 장비와 기술들이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다양한 기술과 새로운 장비들을 건설현장에 적용시켜 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태형기자 [email protected]
출처:e대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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