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늘 쓴 종이컵이 내일의 추억까지 담아준다면

[찐-환경 기업] 종이컵 인화지로 추억 새기는 '필라로이드' 오승호 대표

2020. 11. 30 (월) 10:50 | 최종 업데이트 2021. 12. 09 (목) 09:57
'지구가 기후 변화로 망했다'는 설정은 미래를 그리는 영화나 소설의 클리셰가 됐습니다. 환경 문제가 그만큼 당연한 주제가 돼 버렸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지구를 강타한 코로나19와 올여름 지속된 장마·태풍은 기후 위기의 단면입니다. '친환경'을 넘어 '찐-환경'이 절실한 지금, 컴퍼니 타임스가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는 기업들을 찾았습니다. 
"플라스틱이 문제"라는 말은 요즘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다. 코에 박힌 플라스틱 빨대 때문에 신음하는 거북이 영상을 보며 죄책감을 갖지 않는 이 그 누구인가. 그래서인지 마트에서 비닐봉투 대신 '종이 쇼핑백'을, 카페에서 플라스틱 컵 대신 '종이컵'을 주면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헌데, '종이'라고 해서 정말 환경적으로 더 나은 선택인 걸까.

환경 운동 단체 '자원순환사회연대'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1년간 일회용 종이컵은 약 230억 개가 사용됐으나 그중 재활용 된 종이컵은 1.5% 수준인 3억 2000만 개에 그쳤다. 시중 종이컵 대부분은 음료에 젖지 않도록 내부를 폴리에틸렌 소재의 막으로 코팅하기 때문에 여타 폐지와 함께 재활용하기 어렵기 때문. 종이컵만 따로 모으면 제지 원료로 활용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처리 과정에서 일반 쓰레기로 소각된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찐-환경' 스타트업이 있다. 종이컵을 '인화지'로 재활용해 사진을 인화해 주는 서비스 '필라로이드'를 만든 스타트업 '테오아'다. 필라로이드는 지금까지 13만 개가 넘는 종이컵을 재활용해 77만 장에 이르는 사진을 인화했다.

필라로이드를 직접 이용해 보니, 살짝 거친 질감의 종이는 사진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듯했다. '환경적'이면서 '감성적'일 수 있다니. 무릎을 탁 쳤다. 서비스를 구상하게 된 계기, 앞으로의 사업 방향이 궁금해 11월 12일 필라로이드를 운영하는 테오아의 오승호 대표를 만났다.
사진 인화 서비스를 이용하면, 주황색 봉투(왼쪽)에 사진이 담겨 온다. 사진=필라로이드
- 광고홍보학을 전공하시고, 유수한 광고제에서 수상도 하셨던데요.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되셨는지.

처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창업을 한 건 아니었어요.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하면서부터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국내외 공모전에 많이 참가했고, 칸 광고제, 뉴욕광고제 등 인지도가 있는 대회에서 본선 수상을 하게 되면서 창업을 하게 됐죠. 특별한 사회 문제를 생각하기 보단 '어떤 부분에서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환경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데는 작은 계기만 있으면 됐거든요.

- 어떤 계기였을까요.

이전엔 저도 환경이라는 단어가 조금 추상적이고, '굳이'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지구 탄생: 45억년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지구가 형성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며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인데요. 지구가 만들어진 그 어려운 과정이 무색하게, 너무도 쉽게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졌어요. 이렇게 가다가는 굉장히 끔찍하게 끝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점이 크게 와닿았고, 이런 가치를 위해서 사업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원래 '필라로이드'는 사진을 인화해 주는 카메라앱이었죠. 종이컵을 재활용해 인화지로 활용하는 아이템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필라로이드는 '사진을 인화해 주는 카메라앱'으로 시작했습니다. 기존에는 비닐로 된 일반 인화지를 사용했어요. 그런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보니, 비닐 인화지를 만드는 데 비환경적인 원료들이 사용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양심과 행동에 큰 간극이 생겼어요. '어떻게 하면 사진에 환경적인 부분을 결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종이컵을 재활용하는' 방향이 옳다고는 확신했지만, 사업적인 부분에 있어서 '사진'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 고민이 됐어요. 사진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명함, 증명사진 등 여러 출력물들로 확장한다면 그 분야에서 충분히 영향력 있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필라로이드만의 차별점이 있다면요.

다른 브랜드들 포토북을 보면, 비환경적 재료를 너무 많이 쓰거든요. 라미네이트 코팅이라든지, 포토북 앞뒤를 덮는 비닐 덮개라든지, 프린팅과 접착 방식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는 'Beautiful Recycling'에 확실히 집중하고 있어요. 기존에 환경적 부분만 고집하는 제품들이 고객의 니즈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잖아요? 환경적인 부분만 내세우면, 또 그것대로 고객들이 금방 싫증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낱장 인화는 물론, 포토북도 제작할 수 있다. 당연히 100% 재활용한 종이컵을 활용한다. 사진=필라로이드
- 막연하게 '종이컵은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실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환경 오염도 방식에 따라 분류를 할 수 있겠는데요. 플라스틱이 썩지 않아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도 환경에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소각'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종이컵은 대부분 모두 소각되고 있기 때문에 유해한 물질들이 모두 공기 중으로 배출됩니다.

기존에 지구에 여러 번 찾아온 대재앙들이 결국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 증가'라는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이 돼요. 소각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은 지구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큰 원인이 됩니다. 종이컵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잖아요. 전 세계적 사용량을 보면 일 년에 버려지는 종이컵으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가 전체적인 이산화탄소 배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요.

- 환경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들도 많아지고 있죠. 필라로이드 이용자도 늘어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확실히 늘어나고 있어요.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도 얼마 전 5만을 돌파했습니다. 필라로이드가 처음에 의도한 것이 '고객이 환경적 가치와 친해지게 만들자'였거든요. 환경적인 가치가 어렵고 멀리 있는게 아니라는 점을 알려 주고 싶었어요. 사진이라는 콘텐츠 자체가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콘텐츠니까 가능성이 보였거든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사람들이 환경적인 가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 시발점으로 필라로이드가 더 친해지게 하는데 자연스러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보통 '환경적 실천'하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필라로이드 서비스는 이에 반해 불편함이 적고 허들이 낮다고 느껴졌어요. 환경적 실천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서비스랄까요.

불편함이 적고 허들이 낮다는 게 포인트네요. 저희 고객님들 피드백을 살펴보면, 거의 95%가 같은 말씀을 해주시는데요. '환경적이면서도 예쁘다'는 말을 주로 많이 하세요. 그래서 저희도 'Beautiful recycling'이라는 말을 붙이고요. 기존의 사진 인화보다 예쁘면서 환경적인 가치를 담았기 때문에 많이 이용해주시는 것 같고, 만족감이 높은 것 같습니다.

- 부정적 피드백도 없지 않을 텐데요.

사실 대부분은 서비스나 어플리케이션 이용에 불편이 있어서 뼈아픈 피드백을 주시는 경우고요.(웃음) 아무래도 종이컵을 재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티끌이 가끔 있어요. 물론 작은 티끌도 '필라로이드답다'며 좋게 봐 주실 때도 있어서 저희 입장에선 감사하죠.

- 이용자가 늘었다면 매출도 늘었겠네요. 성장세는 어떤가요?

매출은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요. 제품군이 너무 한정적이어서 아직 더 성장할 영역이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고객님들도 꾸준하게 이용해주시고 있지만, 서비스를 조금 더 확장해서 더 머물 수 있도록, 방문 주기를 더 잦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매출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현재는 브랜드 인지도와 영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필라로이드다운' 재밌는 것을 많이 시도해 보고 싶어요.
기자가 직접 필라로이드를 이용해 인화해 본 사진들. '친환경'이니만큼 자연을 담아 봤다.
- 환경 문제는 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기업 노력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렇죠. 개인적으로는 정책적으로 쓰레기 처리 과정을 조금 더 엄격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제품을 판매하는 데서 오는 환경적 손실을 기업이 책임질 수 있는 제도도 설계된다면 좋겠죠. 환경 부담금을 낸다든지, 기업이 용기나 쓰레기를 수거하게 하는 인식이 당연하도록요.

정부에 많은 제도적 변화를 바라지는 않지만, 어떤 제도를 만드냐에 따라 가속이 붙는 건 사실이거든요. "이런 규제가 생겼대"라며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 자체가 이슈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들을 정부가 캐치해서, 환경 문제 해결을 가속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네요.

- 환경 문제 해결에는 정부만큼 기업의 역할이 크다는 목소리도 많아요.

기업들은 느끼고 있을 거예요. 소비자들의 목소리와 니즈가 얼마나 강하고 분명해졌는지요. 고객의 목소리를 인정하고 의견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고요. 전자제품 하나를 만든다 치더라도, 이전에는 새로운 기능이나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기능과 디자인을 대하듯 환경적인 가치를 대하는 시대가 되고 있어요.

- CJ제일제당이 고객 요구에 따라 추석 선물세트에 스팸 뚜껑을 없앴던 사례가 떠오르네요.

네. 스팸처럼 즉석 밥도 용기를 따로 수거해서 포인트를 적립해 준다든지 다양한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기업들도 이제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 그 효과가 배로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이슈가 되거든요. '환경적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인 가치를 깊게 고민하고 브랜드의 시작부터 끝까지 환경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 앞으로 필라로이드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궁금해요.

저희가 앞으로 해 나가야 하는 건 '필라로이드만의 제로웨이스트 디자인'을 만드는 일이에요. 환경적이면서도 새로워보이고, 트렌디해야 하니까요. 환경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는 저희만의 디자인으로, 고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저희의 도전입니다.

지금까지는 서비스 운영하는데 집중을 했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부분으로 확장을 준비하고 있어요. 인화지 소재도 다양화하고, 제품 카테고리도 더 확장하려고 해요. 추가적으로 서비스 내부에서도 인화한 사진 제품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지향하는 하나의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오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고, 환경 운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친환경 제품을 사고 팔 수 있는 E-commerce 영역까지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장명성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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