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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반전에 반전! 대하소설급 커리어 스토리…이렇게 된다고?
[직장해방일지] 엔조이소프트 미래전략본부의 유영준 부장
2024. 02. 23 (금)
FIND YOUR PLANET.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직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잡플래닛의 목표인데요. 취업과 퇴사, 이직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 ‘내게 딱 맞는 행성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생각해보면, 제법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니까, 본인만의 여정에 나선 우리 독자 요원님들은 모두들 로맨티시스트인 셈이죠. 잡플래닛을 지키는 JP요원보다 훨씬 더요!
<컴퍼니타임스>는 각자의 행성을 찾고 있거나, 결국 찾아냈다고 외치는 독자 요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하여 스타트를 끊게 된 독자 인터뷰 시리즈 ‘나의 직장해방일지’.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 <주간 컴퍼니타임스> 구독자분들을 대상으로 사연을 받았는데요. 정말 많은 독자 요원들의 신청이 이어졌어요. 때론 유쾌하고 때론 처절한 우리네 파란만장 이직·퇴사 스토리, 하나하나씩 같이 귀 기울여 봐요. 이 모든 각자의 우주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삶의 영감을 발견할지도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직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잡플래닛의 목표인데요. 취업과 퇴사, 이직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 ‘내게 딱 맞는 행성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생각해보면, 제법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니까, 본인만의 여정에 나선 우리 독자 요원님들은 모두들 로맨티시스트인 셈이죠. 잡플래닛을 지키는 JP요원보다 훨씬 더요!
<컴퍼니타임스>는 각자의 행성을 찾고 있거나, 결국 찾아냈다고 외치는 독자 요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하여 스타트를 끊게 된 독자 인터뷰 시리즈 ‘나의 직장해방일지’.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 <주간 컴퍼니타임스> 구독자분들을 대상으로 사연을 받았는데요. 정말 많은 독자 요원들의 신청이 이어졌어요. 때론 유쾌하고 때론 처절한 우리네 파란만장 이직·퇴사 스토리, 하나하나씩 같이 귀 기울여 봐요. 이 모든 각자의 우주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삶의 영감을 발견할지도요!

‘'직장해방일지' 인터뷰 시리즈의 두 번째 주인공. 수많은 사연 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일단 한번 보세요.
✉️ 프로축구단 재활트레이너→특급 호텔 요리사→창업→탑차 운전→C레벨→IT회사 영업
프로축구단 재활트레이너를 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는데, 막상 새로운 도전을 결정하기에 그리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처와 자식이 생기고, 창업을 해서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보기도 했고, 재취업을 해서 잘 유지하다가도, 어느새 1톤 탑차를 몰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작은 회사의 C레벨 관리자를 했는데, 이렇게 끄적이다 보니, 참 많은 경험을 했네요.
프로축구단 재활트레이너를 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는데, 막상 새로운 도전을 결정하기에 그리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처와 자식이 생기고, 창업을 해서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보기도 했고, 재취업을 해서 잘 유지하다가도, 어느새 1톤 탑차를 몰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작은 회사의 C레벨 관리자를 했는데, 이렇게 끄적이다 보니, 참 많은 경험을 했네요.
담담하게 쓰인 짧은 글에서 범상치 않음이 온몸으로 느껴졌는데요. 축구단 재활트레이너를 하다가 특급호텔 요리사가 되더니, 창업을 하고 나중에는 탑차 운전을 하다 회사의 C레벨 관리자가 됐다니 '이게 어떻게 한 사람 이력서에 담길 수 있는 내용이지?' 싶더라고요. 사연을 보자마자 이분은 진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정말 궁금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대하소설 급 커리어 스토리였는데요. 어느 직장인들처럼 그의 의지대로 된 일도, 어떻게 이렇게 꼬일까 싶은 안타까운 상황까지 그야말로 믿기 힘든 롤러코스터같은 인생 이야기. "허투루 한 경험은 없었다"는 그의 말에서 뭔가 모를 감동까지 느껴졌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엔조이소프트 미래전략본부의 유영준 부장님입니다. 99학번 1980년생 유영준 요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대하소설 급 커리어 스토리였는데요. 어느 직장인들처럼 그의 의지대로 된 일도, 어떻게 이렇게 꼬일까 싶은 안타까운 상황까지 그야말로 믿기 힘든 롤러코스터같은 인생 이야기. "허투루 한 경험은 없었다"는 그의 말에서 뭔가 모를 감동까지 느껴졌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엔조이소프트 미래전략본부의 유영준 부장님입니다. 99학번 1980년생 유영준 요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보내주신 이력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축구단 재활 트레이너를 하다 요리사를 하다 지금은 IT회사에서 일하신다고요.
학교에서 운동을 했어요. 장대높이뛰기 선수였죠. 체고와 체대를 졸업했고요. 체육계가 진로 폭이 넓지가 않아요. 주로 교수나 코치, 체육 선생님 같은 지도자 코스를 밟는데, 그건 썩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대학 때 앞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스포츠의학이 보였어요.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운동처방사들을 보고 이런 진로도 있구나 생각을 하게 됐죠.
관심이 생겨서 스포츠의학회에 등록하고, 강의도 듣고 많이 쫓아다녔어요.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스포츠클리닉에 인턴으로 들어갔어요. 뭐 아는 게 있었겠어요, 그냥 가서 부딪힌 거죠. 아침 일찍부터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해부학을 공부하는데 영어로 근육이며 신경이며 용어들부터 생소하니 지금 생각해도 열심히 했어요. 아침마다 발표를 시켰거든요. 아마 '얘 당연히 모르겠지' 하면서 시켰던 거 같아요. 맨날 나만 시켜...
하여튼 그러다 트레이너 자격증을 따서 SK를 모기업으로 하는 프로축구단 재활트레이너로 들어가게 됩니다.
학교에서 운동을 했어요. 장대높이뛰기 선수였죠. 체고와 체대를 졸업했고요. 체육계가 진로 폭이 넓지가 않아요. 주로 교수나 코치, 체육 선생님 같은 지도자 코스를 밟는데, 그건 썩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대학 때 앞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스포츠의학이 보였어요.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운동처방사들을 보고 이런 진로도 있구나 생각을 하게 됐죠.
관심이 생겨서 스포츠의학회에 등록하고, 강의도 듣고 많이 쫓아다녔어요.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스포츠클리닉에 인턴으로 들어갔어요. 뭐 아는 게 있었겠어요, 그냥 가서 부딪힌 거죠. 아침 일찍부터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해부학을 공부하는데 영어로 근육이며 신경이며 용어들부터 생소하니 지금 생각해도 열심히 했어요. 아침마다 발표를 시켰거든요. 아마 '얘 당연히 모르겠지' 하면서 시켰던 거 같아요. 맨날 나만 시켜...
하여튼 그러다 트레이너 자격증을 따서 SK를 모기업으로 하는 프로축구단 재활트레이너로 들어가게 됩니다.

- 프로축구단 재활트레이너면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직장일 것 같은데, 졸업 후 바로 들어갔다니 대단하신데요?!
운이 좋았죠. 제가 99학번이거든요. 그때 한국에 14개 축구단이 있었어요. 구단마다 트레이너는 1~2명이니까 TO가 적었죠. 조금씩 트레이너를 제도화하려던 때였고요. 그때 SK에너지 구단이 부천에 있다가 제주로 연고를 옮기던 때라 틈새가 있었달까요? 제주도 가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하하.
그때가 정해성 감독님이 계실 때인데, 히딩크 사단 아시나? 하여튼 대기업이라 처우도 좋고, 각종 복지 포인트에, 명절이면 선물도 집으로 보내주고, 어디 간다고 하면 정장도 쫙 맞춰주고, 아, 좋았어요. 그런데 제가 육상 개인 종목을 했잖아요. 축구 같은 단체종목이랑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개인 기록이 중요하다 보니 같은 방 쓰는 친구라도 경쟁자죠. '내가 얘보다 빨라야 돼' 이런 게 있어요. 체벌 같은 것도 별로 없고 좀 부드러운 편이고요.
그런데 축구는 단체 종목이잖아요. 팀워크가 중요하고 단체 체벌도 종종 이뤄지던 때기도 하고, 분위기가 좀 거칠다고 할까. 어느 날은 결과가 안 좋다고 선수고 스텝이고 다 머리를 깎으라 그러고. 지금은 나아졌을 텐데 20년 전이잖아요. 이런 게 좀 안 맞는 것 같았어요.
또 트레이너는 음지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해야 돼요. 선수들을 살뜰하게 챙겨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근데 저는 선수들을 보면 그냥 후배 같은 거예요.
운이 좋았죠. 제가 99학번이거든요. 그때 한국에 14개 축구단이 있었어요. 구단마다 트레이너는 1~2명이니까 TO가 적었죠. 조금씩 트레이너를 제도화하려던 때였고요. 그때 SK에너지 구단이 부천에 있다가 제주로 연고를 옮기던 때라 틈새가 있었달까요? 제주도 가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하하.
그때가 정해성 감독님이 계실 때인데, 히딩크 사단 아시나? 하여튼 대기업이라 처우도 좋고, 각종 복지 포인트에, 명절이면 선물도 집으로 보내주고, 어디 간다고 하면 정장도 쫙 맞춰주고, 아, 좋았어요. 그런데 제가 육상 개인 종목을 했잖아요. 축구 같은 단체종목이랑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개인 기록이 중요하다 보니 같은 방 쓰는 친구라도 경쟁자죠. '내가 얘보다 빨라야 돼' 이런 게 있어요. 체벌 같은 것도 별로 없고 좀 부드러운 편이고요.
그런데 축구는 단체 종목이잖아요. 팀워크가 중요하고 단체 체벌도 종종 이뤄지던 때기도 하고, 분위기가 좀 거칠다고 할까. 어느 날은 결과가 안 좋다고 선수고 스텝이고 다 머리를 깎으라 그러고. 지금은 나아졌을 텐데 20년 전이잖아요. 이런 게 좀 안 맞는 것 같았어요.
또 트레이너는 음지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해야 돼요. 선수들을 살뜰하게 챙겨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근데 저는 선수들을 보면 그냥 후배 같은 거예요.

결정적으로 제주도에 있다 보니 구단 생활 말고는 제 생활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경기 결과에 따라 주말이고 평일이고 제 시간이 없어요. 어린 나이에 좀 답답했죠. 나름 재미도 있고 근무 환경도 좋긴 한데, 여기 오고 싶어 하는 애들이 많은 것도 알겠는데, 이렇게 앞으로 20년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좀 고민스럽더라고요. 어렸죠.
선배들을 보니 가정을 꾸리기도 힘들고, 오래 일해도 트레이너로서 한계도 분명히 느껴지고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외국에 나가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29살쯤 호주로 갑니다.
- 축구단을 그만두고 호주로 유학을 가신 건가요? 29살에 유학이라니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것 같아요.
족병학, 족부의학쪽을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호주로 갔어요. 가기 전에 축구단에서 일하면서 영어 공부를 했거든요.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영어 테스트를 봤는데 엘리멘트리(elementary·초급) 등급이 나오더라고요. 아, 수치스러운 역사죠.
하여튼 그래서 어학연수를 먼저 했어요. 9개월쯤 걸린다던데 전 6개월만에 IETLS 5.5를 받고, 호주 대학 입학에 필요한 조건을 갖췄어요. 유학원에서 바로 학교를 연결해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 와, 그럼 호주에서 의대에 들어가신 거예요?!
아니, 안 갔어요.
-네? 왜요?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얘기를 하는데, 얘들은 '르 꼬르동 블루'(세계 3대 요리학교)에 가려고 공부한다는 거에요. 듣다 보니 '괜찮은데?' 싶더라고요. 전 이미 입학 조건이 됐거든요. 또 거기서 2년 3개월 과정을 들으면 영주권을 줬어요. 영주권이 있으면 장학 제도 혜택도 받을 수 있고요. 그럼 나중에라도 공부는 장학금 받아 가며 할 수도 있겠는데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르 꼬르동 블루에 원서를 내봤는데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하는 게 힘들어서 현실적인 타협을 한 거죠. 그렇게 요리를 시작합니다.
선배들을 보니 가정을 꾸리기도 힘들고, 오래 일해도 트레이너로서 한계도 분명히 느껴지고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외국에 나가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29살쯤 호주로 갑니다.
- 축구단을 그만두고 호주로 유학을 가신 건가요? 29살에 유학이라니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것 같아요.
족병학, 족부의학쪽을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호주로 갔어요. 가기 전에 축구단에서 일하면서 영어 공부를 했거든요.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영어 테스트를 봤는데 엘리멘트리(elementary·초급) 등급이 나오더라고요. 아, 수치스러운 역사죠.
하여튼 그래서 어학연수를 먼저 했어요. 9개월쯤 걸린다던데 전 6개월만에 IETLS 5.5를 받고, 호주 대학 입학에 필요한 조건을 갖췄어요. 유학원에서 바로 학교를 연결해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 와, 그럼 호주에서 의대에 들어가신 거예요?!
아니, 안 갔어요.
-네? 왜요?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얘기를 하는데, 얘들은 '르 꼬르동 블루'(세계 3대 요리학교)에 가려고 공부한다는 거에요. 듣다 보니 '괜찮은데?' 싶더라고요. 전 이미 입학 조건이 됐거든요. 또 거기서 2년 3개월 과정을 들으면 영주권을 줬어요. 영주권이 있으면 장학 제도 혜택도 받을 수 있고요. 그럼 나중에라도 공부는 장학금 받아 가며 할 수도 있겠는데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르 꼬르동 블루에 원서를 내봤는데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하는 게 힘들어서 현실적인 타협을 한 거죠. 그렇게 요리를 시작합니다.

-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요리요?
그런 거죠. 르 꼬르동 블루에 다니면서 일을 했어요. 돈도 필요했고 재학 중에도 커리어가 있어야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구조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 '아 요리는 정말 요리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해야 하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아니, 얘들은 돈이 생기면 좋은 칼, 요리 도구 같은 걸 사요. 저랑은 다르더라고요.
그때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에어즈락(울룰루)에 있는 에어즈락 리조트에서 일했어요. 호주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곳인데 오지거든요. 사람도 없고. 그때 이민법이 바뀌면서 바로 영주권이 나오는 게 아니라 2년을 더 일해야 영주권이 나오게 됐어요. 학교 졸업하고 리조트에서 2년을 더 일해야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된 거죠.
그런 거죠. 르 꼬르동 블루에 다니면서 일을 했어요. 돈도 필요했고 재학 중에도 커리어가 있어야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구조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 '아 요리는 정말 요리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해야 하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아니, 얘들은 돈이 생기면 좋은 칼, 요리 도구 같은 걸 사요. 저랑은 다르더라고요.
그때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에어즈락(울룰루)에 있는 에어즈락 리조트에서 일했어요. 호주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곳인데 오지거든요. 사람도 없고. 그때 이민법이 바뀌면서 바로 영주권이 나오는 게 아니라 2년을 더 일해야 영주권이 나오게 됐어요. 학교 졸업하고 리조트에서 2년을 더 일해야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된 거죠.

- 아, 그럼 거기서 일하고 영주권을 받으셨군요?
아니죠. 저는 한국에 돌아옵니다.
- 앗?! 왜요?
그때 한국 이랜드 외식 사업부에 취업을 했어요. 이게… 사막에서 살려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때 교대근무를 하는데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새벽 4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또 출근하고, 이런 삶이었거든요. 거기다 호주가 진짜 너무 추웠어요. 호주 가보셨어요? 겨울에 진짜 너무 추워요. 어휴 지금 생각해도 춥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간절함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제가 못 버틴 거죠. 같이 일하던 유부남들은 잘 버티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힘들고, 내 삶은 전혀 없고, 그때 만나던 여자 친구는 한국에 돌아간다고 하고, 그러던 차에 한국 회사에 원서를 넣었는데 된 거예요. 그래서 호주에서의 4년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왔죠.
- 그럼 그때부터 이랜드에서 요리사로 일을 시작하신 건가요?
사실 이랜드에서는 거의 일을 안 했어요.
- 네?
한국에 왔는데,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지금은 창업 관련 유투버로 활동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치킨 프랜차이즈 창업을 했어요. 그 일을 같이하게 됐죠. 2013년이니까 벌써 10년 전이네요. 소보루치킨이라고 오븐구이 치킨이었어요. 그때 목표가 매장 100개를 런칭하는 거였어요. 처음엔 바쁘게 잘 됐죠. 매장 수가 늘어나니까 경쟁 업체 방해로 닭을 못 받게 되서 닭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하루에 닭 100마리씩 튀기고, 온통 닭이었던 시절이었죠.
그때 프랜차이즈 업계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1년 반쯤 같이 하다가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친구는 친구대로 하고 저는 나와서 여성 전용 피트니스 프랜차이즈인 커브스 코리아에 취업을 했어요. 여기서 한국의 직장생활을 사실 처음 경험해 보게 된 거죠.
-어떠셨어요?
그때 이미 나이가 30대 중반, 나이는 있는데 첫 사회생활이잖아요. 사원으로 시작하려니 뭔가 혼자 억울한 시간이었죠. 근데 영업을 처음 해봤는데 성과가 잘 나왔어요. 한 달에 몇 개씩 계약을 따내고 혼자 몇억씩 벌어오고 회사에서 꽤 인정을 받았죠. 진급도 빨리 됐고요. '아, 이런 맛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했어요. 거기서 상품기획팀의 박00 대리를 알게 되고... 이분이 지금 제 와이프입니다.
하여튼, 제 일이 가맹점을 찾아 계약을 따오는 일이잖아요. 보니까 가맹점들이 돈을 잘 벌더라고요. 실제 동료들이 커브스 헬스클럽을 오픈했어요.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해야겠다, 퇴사하고 클럽을 오픈했죠.
아니죠. 저는 한국에 돌아옵니다.
- 앗?! 왜요?
그때 한국 이랜드 외식 사업부에 취업을 했어요. 이게… 사막에서 살려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때 교대근무를 하는데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새벽 4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또 출근하고, 이런 삶이었거든요. 거기다 호주가 진짜 너무 추웠어요. 호주 가보셨어요? 겨울에 진짜 너무 추워요. 어휴 지금 생각해도 춥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간절함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제가 못 버틴 거죠. 같이 일하던 유부남들은 잘 버티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힘들고, 내 삶은 전혀 없고, 그때 만나던 여자 친구는 한국에 돌아간다고 하고, 그러던 차에 한국 회사에 원서를 넣었는데 된 거예요. 그래서 호주에서의 4년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왔죠.
- 그럼 그때부터 이랜드에서 요리사로 일을 시작하신 건가요?
사실 이랜드에서는 거의 일을 안 했어요.
- 네?
한국에 왔는데,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지금은 창업 관련 유투버로 활동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치킨 프랜차이즈 창업을 했어요. 그 일을 같이하게 됐죠. 2013년이니까 벌써 10년 전이네요. 소보루치킨이라고 오븐구이 치킨이었어요. 그때 목표가 매장 100개를 런칭하는 거였어요. 처음엔 바쁘게 잘 됐죠. 매장 수가 늘어나니까 경쟁 업체 방해로 닭을 못 받게 되서 닭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하루에 닭 100마리씩 튀기고, 온통 닭이었던 시절이었죠.
그때 프랜차이즈 업계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1년 반쯤 같이 하다가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친구는 친구대로 하고 저는 나와서 여성 전용 피트니스 프랜차이즈인 커브스 코리아에 취업을 했어요. 여기서 한국의 직장생활을 사실 처음 경험해 보게 된 거죠.
-어떠셨어요?
그때 이미 나이가 30대 중반, 나이는 있는데 첫 사회생활이잖아요. 사원으로 시작하려니 뭔가 혼자 억울한 시간이었죠. 근데 영업을 처음 해봤는데 성과가 잘 나왔어요. 한 달에 몇 개씩 계약을 따내고 혼자 몇억씩 벌어오고 회사에서 꽤 인정을 받았죠. 진급도 빨리 됐고요. '아, 이런 맛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했어요. 거기서 상품기획팀의 박00 대리를 알게 되고... 이분이 지금 제 와이프입니다.
하여튼, 제 일이 가맹점을 찾아 계약을 따오는 일이잖아요. 보니까 가맹점들이 돈을 잘 벌더라고요. 실제 동료들이 커브스 헬스클럽을 오픈했어요.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해야겠다, 퇴사하고 클럽을 오픈했죠.
-와, 본사 직원이 직접 오픈했으면 말 다 한 거죠. 진짜 잘 되셨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게 잘 안됐어요. 나중에 보니 상권 분석이 잘 안됐더라고요. 제가 잘못 읽었죠. 저뿐만 아니라 그 지역이 자영업자들의 무덤이었어요. 수도권 신도시였는데 소비가 많은 동네가 아니었어요.
클럽은 적자인데, 아기가 태어나고, 임대료 감당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클럽은 아내에게 맡기고 저는 돈을 벌러 나왔죠.
-무슨 일을 하셨어요?
요식업 프랜차이즈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갔어요. 기본급은 엄청 짠데 계약을 따오면 수당을 받는 식으로. 근데 또 제가 꽤 잘 벌었어요. 많이 벌 때는 월 천 훌쩍 넘게도 벌고, 적은 달은 또 적고. 물론 스트레스도 컸어요. 수익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좀 안정적이면서 괜찮은 회사로 옮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프랜차이즈로 옮겼어요. 죠스푸드 아시죠?
-죠스떡볶이! 저 떡볶이 진짜 좋아해요!
맞아요. 죠스푸드에 가게 됐어요. 죠스푸드 매장이 500개 정도 됐을 때, 잘 나갈 때였죠. 그때 나상균 대표님이 직원 교육에도 투자를 많이 했어요. 그때 매주 목요일 아침에 업계 유명한 분들을 모셔서 강연을 했는데, 그때 많이 배웠어요. 좋은 시간이었어요. 아 지금 생각해도 좋네요. 나 대표님이 직원들 처우에도 신경을 많이 썼고 좋은 인력들에게 좋은 기회를 많이 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내부적으로 텃세가 좀 있었어요. 영업 쪽에서 괴롭히는 최악의 방법이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안 주는 거거든요, 거기서 실적이 나오는데. 제가 들어갔을 때 그거 때문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게 제 상황이 되더라고요. 회사가 층마다 ID카드가 달랐는데, 제가 영업인데 영업본부 사무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ID카드가 안 돼서. 그렇게 있으니까 몸이 아프더라고요. 결국 나와서 다른 회사에 갔어요. 그런데 얼마 안 돼서 이직한 회사가 상황이 어려워져서 정리해고가 됐어요.
와, 이때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때 아직 클럽 차린 게 정리가 안 돼서 실업급여도 못 받았거든요. 가게는 계속 적자였고, 내놨는데 안 나가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잘 안됐어요. 나중에 보니 상권 분석이 잘 안됐더라고요. 제가 잘못 읽었죠. 저뿐만 아니라 그 지역이 자영업자들의 무덤이었어요. 수도권 신도시였는데 소비가 많은 동네가 아니었어요.
클럽은 적자인데, 아기가 태어나고, 임대료 감당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클럽은 아내에게 맡기고 저는 돈을 벌러 나왔죠.
-무슨 일을 하셨어요?
요식업 프랜차이즈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갔어요. 기본급은 엄청 짠데 계약을 따오면 수당을 받는 식으로. 근데 또 제가 꽤 잘 벌었어요. 많이 벌 때는 월 천 훌쩍 넘게도 벌고, 적은 달은 또 적고. 물론 스트레스도 컸어요. 수익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좀 안정적이면서 괜찮은 회사로 옮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프랜차이즈로 옮겼어요. 죠스푸드 아시죠?
-죠스떡볶이! 저 떡볶이 진짜 좋아해요!
맞아요. 죠스푸드에 가게 됐어요. 죠스푸드 매장이 500개 정도 됐을 때, 잘 나갈 때였죠. 그때 나상균 대표님이 직원 교육에도 투자를 많이 했어요. 그때 매주 목요일 아침에 업계 유명한 분들을 모셔서 강연을 했는데, 그때 많이 배웠어요. 좋은 시간이었어요. 아 지금 생각해도 좋네요. 나 대표님이 직원들 처우에도 신경을 많이 썼고 좋은 인력들에게 좋은 기회를 많이 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내부적으로 텃세가 좀 있었어요. 영업 쪽에서 괴롭히는 최악의 방법이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안 주는 거거든요, 거기서 실적이 나오는데. 제가 들어갔을 때 그거 때문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게 제 상황이 되더라고요. 회사가 층마다 ID카드가 달랐는데, 제가 영업인데 영업본부 사무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ID카드가 안 돼서. 그렇게 있으니까 몸이 아프더라고요. 결국 나와서 다른 회사에 갔어요. 그런데 얼마 안 돼서 이직한 회사가 상황이 어려워져서 정리해고가 됐어요.
와, 이때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때 아직 클럽 차린 게 정리가 안 돼서 실업급여도 못 받았거든요. 가게는 계속 적자였고, 내놨는데 안 나가는 상황이었어요.
- 아...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진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게, 커리어가 1년 단위로 뚝뚝 끊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 좋은 이력서가 만들어진 거죠.
- 아 진짜 듣는 저도 속상한데요. 뭐가 상황이 자꾸 꼬였네요.
심란한 상황이었는데, 그때 마침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어요. 거기서 선수단 차량을 운전하는 드라이버를 뽑는다는 거예요. 영어를 할 줄 알면 돈을 더 준대요. 그래서 갔죠. 두 달 일해서 집에 생활비 가져다주고, 이제 뭘 해야 하나 하던 차에, 예전에 알던 사장님하고 연락이 됐어요.
치킨 프랜차이즈 할 때 회사에 오븐 납품해 주시던 분이었는데, 와서 전기 기술을 배워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밑에 들어갔죠. 이게 상업용 오븐 배달하고 설치하는 일인데, 하나에 100㎏씩 나가는 오븐 짊어지고 다니면서 설치하고 AS하고 한거에요. 처음엔 하라는 대로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됐죠. '아, 이거 잘못하면 감전돼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때 탑차를 운전하게 된 거고요. 스틱 운전도 처음이었는데 탑차잖아요. 운전부터 기술까지 다 새로 배우는 거였어요. 탑차에 오븐 싣고 다니면서 되게 순수하게 다른 생각 안하고 열심히 일했어요. 우리 사장 돈 잘 벌게 해주고 싶었고요.
- 와, 진짜 대단하신거 같아요...
와이프랑 아이가 있으니까, 뭐든지 했죠. 그쯤에 다행히 가게가 정리됐어요. 손해보고 넘겼는데 그래도 진짜 시원했어요. 그리고 춘천으로 이사를 갔어요. 아내 고향이 춘천이었거든요. 당장 생활비나 생활 환경이나, 아이 키우기에 춘천이 낫겠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는 춘천에서 서울 영등포로 출퇴근을 하게 됩니다.
- 춘천에서 서울 영등포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셨다고요???
그랬죠. 그때 진짜 무식하게 일했어요. 그때 하루 만에 대구, 부산, 목포갔다 서울 올라온 적도 있어요. 한 1년은 삼각김밥이랑 사발면만 먹고 살았어요. 삼각김밥 900원에 사발면 900원, 해서 점심값 1800원. 그렇게 살다 보니 아프더라고요. 그때 대상포진도 걸렸어요.
- 아... 아빠는 강하다! 저 잠깐 눈물 좀 닦고...
그러던 와중에 전에 같이 일했던 분께 연락이 왔어요. 다른 프랜차이즈로 옮겨서 팀을 꾸리는데 오라고. 2주 안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급여나 처우 조건이 훨씬 좋았어요. 빨리 오라니까 가기로 하고 사표를 냈죠. 근데 마지막에 대표가 '노'를 하면서 입사가 무산됐어요. 사실 이 분이 전에 같이 일할 때도 저를 그만두게 한 분이었거든요. 이번에 또 이렇게...
- 와... 이건 악연인가요...
다른 회사 가라며 소개를 해주는데, 같은 영업인데 직책이며 처우며 다 낮춰서, 전문용어로 후려친다고 하는데, 입사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는 못 가겠더라고요. 탑차 운전보다 조건이 좋은데, 그래도 그렇게는 안 되겠는 거예요.
그래서 뭐 어떻게 해요. 뭐든 해야 하니까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았죠. 2019년쯤 빨래방이 엄청 유행이었잖아요. '워시엔조이'라는 셀프빨래방 프랜차이즈인 코리아런드리에 영업으로 들어갔어요. 그때 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냥 주말에 사업 설명회 하니까 오래요. 급여나 처우 조건 같은 이야기는 뭐 없어요. 그래도 저는 일을 해야 하니까, 갔죠.
- 그럼 연봉은 얼마나 되지도 얘기 안 하고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그렇죠. 지금 보면 그런 게 다 테스트인 거예요. 얼마나 할 의지나 생각이 있나 뭐 그런. 그냥 그렇게 시작했어요. 초반에는 힘들었어요. 집이 춘천이잖아요. OJT 끝나면 새벽 1시, 일 끝나면 밤 12시, 집을 못 가는 거예요. 사우나에서 자고 하다가, 서울에 방을 구해야겠는데 집 보러 갈 시간도 없고 자리 비우기에 눈치는 보이고, 인터넷으로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방을 찾아서 연락해 두고 서울에 있는 가족한테 연락해서 집 계약 좀 대신해달라 그랬어요. 그래서 가족이 계약하고 저는 나중에 집 찾아가서 자고. 그렇게 집을 구했어요. 대안이 없었으니까요.
- (눈물을 훔치며) 일은 좀 어떠셨어요?
일단 살아야 하니까, 뭐든 보여줘야겠고. 열심히 했죠. 죽은 DB라고 하는데, 회사에 5년 동안 쌓여있던 DB를 찾아서 하나하나 전화해서 살려서 계약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회사가 NHN에서 50억 투자를 받았어요. 투자가 들어오고 제 실적이 좋으니까 처우가 좋아지더라고요. 주택, 차량 지원도 해주고 그러면서 생활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때 회사가 스웨덴 가전회사인 일렉트로룩스의 아시아 최대 딜러사였어요. 1년에 빨래방이 100개씩 생기던 시절이거든요. 매장 하나에 세탁기가 6세트는 들어가니까, 기본 600개는 깔아놓는 거예요. 그러니 그 회사 입장에선 저희가 아시아 탑인 거죠. 여기저기 출장도 다니고 재미있었어요.
진급도 계속 했어요. 부장, 본부장, 그리고 그룹장이 됐죠.
- 와, 그룹장까지 얼마나 걸리신 거에요?
2년 반, 3년쯤 걸린 것 같아요. 그때 이런저런 레퍼런스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개인들이 이용하는 빨래방이 주 사업이었는데, 이걸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들, 제약회사 같은 기업 쪽으로 확대를 했어요. B2B 볼륨을 키운 거죠.
아파트 건설 현장에 가면 다 30년 차 현장소장, 이런 분들이랑 얘기를 해야 하거든요. 이분들 세계의 용어를 할 줄 모르면 대화가 안 돼요. 이 공간에 장비를 어떻게 넣고 배수구를 빼주고 규정이 어떻고 이런 얘기가 통해야 일이 돼요. 그래서 캐드(CAD)를 독학으로 배웠어요. B2B를 하려면 이게 필요하겠더라고요. 또 세탁 쪽 지식이 필요하다 싶어서 세탁 기능사도 땄어요.
진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게, 커리어가 1년 단위로 뚝뚝 끊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 좋은 이력서가 만들어진 거죠.
- 아 진짜 듣는 저도 속상한데요. 뭐가 상황이 자꾸 꼬였네요.
심란한 상황이었는데, 그때 마침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어요. 거기서 선수단 차량을 운전하는 드라이버를 뽑는다는 거예요. 영어를 할 줄 알면 돈을 더 준대요. 그래서 갔죠. 두 달 일해서 집에 생활비 가져다주고, 이제 뭘 해야 하나 하던 차에, 예전에 알던 사장님하고 연락이 됐어요.
치킨 프랜차이즈 할 때 회사에 오븐 납품해 주시던 분이었는데, 와서 전기 기술을 배워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밑에 들어갔죠. 이게 상업용 오븐 배달하고 설치하는 일인데, 하나에 100㎏씩 나가는 오븐 짊어지고 다니면서 설치하고 AS하고 한거에요. 처음엔 하라는 대로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됐죠. '아, 이거 잘못하면 감전돼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때 탑차를 운전하게 된 거고요. 스틱 운전도 처음이었는데 탑차잖아요. 운전부터 기술까지 다 새로 배우는 거였어요. 탑차에 오븐 싣고 다니면서 되게 순수하게 다른 생각 안하고 열심히 일했어요. 우리 사장 돈 잘 벌게 해주고 싶었고요.
- 와, 진짜 대단하신거 같아요...
와이프랑 아이가 있으니까, 뭐든지 했죠. 그쯤에 다행히 가게가 정리됐어요. 손해보고 넘겼는데 그래도 진짜 시원했어요. 그리고 춘천으로 이사를 갔어요. 아내 고향이 춘천이었거든요. 당장 생활비나 생활 환경이나, 아이 키우기에 춘천이 낫겠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는 춘천에서 서울 영등포로 출퇴근을 하게 됩니다.
- 춘천에서 서울 영등포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셨다고요???
그랬죠. 그때 진짜 무식하게 일했어요. 그때 하루 만에 대구, 부산, 목포갔다 서울 올라온 적도 있어요. 한 1년은 삼각김밥이랑 사발면만 먹고 살았어요. 삼각김밥 900원에 사발면 900원, 해서 점심값 1800원. 그렇게 살다 보니 아프더라고요. 그때 대상포진도 걸렸어요.
- 아... 아빠는 강하다! 저 잠깐 눈물 좀 닦고...
그러던 와중에 전에 같이 일했던 분께 연락이 왔어요. 다른 프랜차이즈로 옮겨서 팀을 꾸리는데 오라고. 2주 안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급여나 처우 조건이 훨씬 좋았어요. 빨리 오라니까 가기로 하고 사표를 냈죠. 근데 마지막에 대표가 '노'를 하면서 입사가 무산됐어요. 사실 이 분이 전에 같이 일할 때도 저를 그만두게 한 분이었거든요. 이번에 또 이렇게...
- 와... 이건 악연인가요...
다른 회사 가라며 소개를 해주는데, 같은 영업인데 직책이며 처우며 다 낮춰서, 전문용어로 후려친다고 하는데, 입사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는 못 가겠더라고요. 탑차 운전보다 조건이 좋은데, 그래도 그렇게는 안 되겠는 거예요.
그래서 뭐 어떻게 해요. 뭐든 해야 하니까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았죠. 2019년쯤 빨래방이 엄청 유행이었잖아요. '워시엔조이'라는 셀프빨래방 프랜차이즈인 코리아런드리에 영업으로 들어갔어요. 그때 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냥 주말에 사업 설명회 하니까 오래요. 급여나 처우 조건 같은 이야기는 뭐 없어요. 그래도 저는 일을 해야 하니까, 갔죠.
- 그럼 연봉은 얼마나 되지도 얘기 안 하고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그렇죠. 지금 보면 그런 게 다 테스트인 거예요. 얼마나 할 의지나 생각이 있나 뭐 그런. 그냥 그렇게 시작했어요. 초반에는 힘들었어요. 집이 춘천이잖아요. OJT 끝나면 새벽 1시, 일 끝나면 밤 12시, 집을 못 가는 거예요. 사우나에서 자고 하다가, 서울에 방을 구해야겠는데 집 보러 갈 시간도 없고 자리 비우기에 눈치는 보이고, 인터넷으로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방을 찾아서 연락해 두고 서울에 있는 가족한테 연락해서 집 계약 좀 대신해달라 그랬어요. 그래서 가족이 계약하고 저는 나중에 집 찾아가서 자고. 그렇게 집을 구했어요. 대안이 없었으니까요.
- (눈물을 훔치며) 일은 좀 어떠셨어요?
일단 살아야 하니까, 뭐든 보여줘야겠고. 열심히 했죠. 죽은 DB라고 하는데, 회사에 5년 동안 쌓여있던 DB를 찾아서 하나하나 전화해서 살려서 계약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회사가 NHN에서 50억 투자를 받았어요. 투자가 들어오고 제 실적이 좋으니까 처우가 좋아지더라고요. 주택, 차량 지원도 해주고 그러면서 생활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때 회사가 스웨덴 가전회사인 일렉트로룩스의 아시아 최대 딜러사였어요. 1년에 빨래방이 100개씩 생기던 시절이거든요. 매장 하나에 세탁기가 6세트는 들어가니까, 기본 600개는 깔아놓는 거예요. 그러니 그 회사 입장에선 저희가 아시아 탑인 거죠. 여기저기 출장도 다니고 재미있었어요.
진급도 계속 했어요. 부장, 본부장, 그리고 그룹장이 됐죠.
- 와, 그룹장까지 얼마나 걸리신 거에요?
2년 반, 3년쯤 걸린 것 같아요. 그때 이런저런 레퍼런스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개인들이 이용하는 빨래방이 주 사업이었는데, 이걸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들, 제약회사 같은 기업 쪽으로 확대를 했어요. B2B 볼륨을 키운 거죠.
아파트 건설 현장에 가면 다 30년 차 현장소장, 이런 분들이랑 얘기를 해야 하거든요. 이분들 세계의 용어를 할 줄 모르면 대화가 안 돼요. 이 공간에 장비를 어떻게 넣고 배수구를 빼주고 규정이 어떻고 이런 얘기가 통해야 일이 돼요. 그래서 캐드(CAD)를 독학으로 배웠어요. B2B를 하려면 이게 필요하겠더라고요. 또 세탁 쪽 지식이 필요하다 싶어서 세탁 기능사도 땄어요.

-아니, 일하면서 CAD를 독학으로 배우고 세탁 기능사까지 따셨다고요?
제가 국가 공인 세탁 기능삽니다. 이게 일할 때 명함에 딱 적어놓으면, 전문성 있어 보이잖아요. 상대방이 절 전문가로 본다는 게 영업에선 중요하거든요. 열심히 했죠. 퇴근하면 다음 날 할 거 미리 해두고, 공부하고. 가족들은 주말에만 보니까 퇴근 후 할 일이 없었거든요. 집보다 사무실이 더 좋기도 했고. 그냥 사무실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그냥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셨는데, 그 회사는 왜 나오셨어요?
항상 회사가 꺾이니까 문제인 것 같아요. 빨래방이 이제 끝났죠. 창업이 확 꺾였어요. 1년에 100개씩 매장이 늘었는데, 이제 어딜 가든 빨래방이 있잖아요. 다 찬 거에요. 이제 시장이 포화 돼서 더 성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사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어야 했는데 그게 힘들었죠. 그러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다음을 찾은 거예요. 그냥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거죠. 그때 관심이 갔던 곳이 IT 쪽이었어요.
-세탁에서 IT 업계로요? 이게 연결이 되나요? 어떻게요?
아파트 빨래방을 이용하면 주민 카드 찍고 관리비 청구하는 식의 시스템이 있잖아요. 이게 API를 연동해서 하는 시스템이라, IoT 영업을 한 거거든요. 1년 전에 지금 회사로 옮겼어요. 여기는 쉽게 말하면 키오스크 관련 회사고요.
제가 국가 공인 세탁 기능삽니다. 이게 일할 때 명함에 딱 적어놓으면, 전문성 있어 보이잖아요. 상대방이 절 전문가로 본다는 게 영업에선 중요하거든요. 열심히 했죠. 퇴근하면 다음 날 할 거 미리 해두고, 공부하고. 가족들은 주말에만 보니까 퇴근 후 할 일이 없었거든요. 집보다 사무실이 더 좋기도 했고. 그냥 사무실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그냥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셨는데, 그 회사는 왜 나오셨어요?
항상 회사가 꺾이니까 문제인 것 같아요. 빨래방이 이제 끝났죠. 창업이 확 꺾였어요. 1년에 100개씩 매장이 늘었는데, 이제 어딜 가든 빨래방이 있잖아요. 다 찬 거에요. 이제 시장이 포화 돼서 더 성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사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어야 했는데 그게 힘들었죠. 그러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다음을 찾은 거예요. 그냥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거죠. 그때 관심이 갔던 곳이 IT 쪽이었어요.
-세탁에서 IT 업계로요? 이게 연결이 되나요? 어떻게요?
아파트 빨래방을 이용하면 주민 카드 찍고 관리비 청구하는 식의 시스템이 있잖아요. 이게 API를 연동해서 하는 시스템이라, IoT 영업을 한 거거든요. 1년 전에 지금 회사로 옮겼어요. 여기는 쉽게 말하면 키오스크 관련 회사고요.
-와, 저 지금 무슨 대하소설 한 편을 읽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드니까 제 삶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좀 심란했거든요. 나는 왜 이럴까, 왜 한 곳에 자리를 못 잡고 떠돌까, 왜 나는 운이 없나 이런 생각도 들고, 자책도 많이 했어요.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오갈 데 없는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니까 사람이 명리학을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명리학이요?!
뭐 어디 수업을 듣고 그런건 아닌데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된달까요. 지난해부터 운이 바뀌는 시점이구나 생각해요. 주변 사람과 환경이 바뀌고,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고요. 이 인터뷰를 신청한 것도 이럴 때 뭐든 다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그동안의 제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그동안 운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이제는 좋을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20년간 준비를 거친 거고, 그 히스토리를 가지고 이제 잘 살 준비가 됐다, 앞으로는 잘 될 거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고요.
-진짜 성과를 내신 것 보면 정말 열심히 하셨고, 성과도 좋으셨거든요. 운이 안 좋으셨구나 밖에 다른 생각이 안 드는...
뭔가 코드가 맞으면 활동력이 왕성해지는 것 같아요. 코리아런드리에 있을 때는 대표님과도 싸워가면서 일했어요. 이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면서 막. 그때 대표님과 코드도 잘 맞고, 성과도 좋았던 것 같고요. 재미있었어요.
나이가 드니까 제 삶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좀 심란했거든요. 나는 왜 이럴까, 왜 한 곳에 자리를 못 잡고 떠돌까, 왜 나는 운이 없나 이런 생각도 들고, 자책도 많이 했어요.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오갈 데 없는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니까 사람이 명리학을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명리학이요?!
뭐 어디 수업을 듣고 그런건 아닌데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된달까요. 지난해부터 운이 바뀌는 시점이구나 생각해요. 주변 사람과 환경이 바뀌고,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고요. 이 인터뷰를 신청한 것도 이럴 때 뭐든 다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그동안의 제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그동안 운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이제는 좋을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20년간 준비를 거친 거고, 그 히스토리를 가지고 이제 잘 살 준비가 됐다, 앞으로는 잘 될 거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고요.
-진짜 성과를 내신 것 보면 정말 열심히 하셨고, 성과도 좋으셨거든요. 운이 안 좋으셨구나 밖에 다른 생각이 안 드는...
뭔가 코드가 맞으면 활동력이 왕성해지는 것 같아요. 코리아런드리에 있을 때는 대표님과도 싸워가면서 일했어요. 이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면서 막. 그때 대표님과 코드도 잘 맞고, 성과도 좋았던 것 같고요. 재미있었어요.
-아니 직장인이잖아요. 싸우면서까지 일하신 이유가 뭐예요?
제가 일을 해야 하니까요. 같은 영업이라도 그냥 저냥 일하고 싶진 않았어요. 나름의 격이랄까, 내가 맡은 일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요. 내가 실패한 거면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다, 내가 맡으면 일단 누구보다 잘 해낸다, 이런 게 좀 있어요.
-운동선수의 승부욕 같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퇴사하고 나면 다시 취업하지 못 할까 봐 걱정하는 분들도 많으시잖아요. 그래서 직장생활이 힘들고 불만족스러워도 어떻게든 버티게 되고. 직장인으로서 산전수전 다 겪으신 셈인데, 혹시 이런 고민을 하는 후배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세요?
취업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이력서 500개 정도 써보지 않았다면 알아봤다고 하지도 말라고 해요. 100군데 정도는 떨어져 봐야지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고요.
전 회사는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특별히 아주 대단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일단 인연이 닿는 곳에서 찾아봐야 하는 거 같아요. 전 직업이 내가 원해서 되는 것도 있지만 날 알아봐주고 내가 알아보는, 이런 서로에 대한 인연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조바심을 느끼거나 그런 건 좀 덜해요. 항상 스스로 관리 잘하고, 열심히 하면 언제든 또 인연이 닿을 거로 생각해요. 쓸데없이 고민하고 잠 못 자고 하면 마음만 피폐해지더라고요. 쓰임이 올 때를 대비해서 건강 잘 챙기고 기다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또 파이팅하고 야근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뭐.
-아니 어쩜 이렇게 긍정적이죠? 안 좋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힘들어하는 스타일은 아니셨던 것 같아요.
아니에요. 되게 우울했어요. 그런데 많이 승화시켰죠. 아내가 많이 지지해 줬어요. 가족, 이런 게 힘이 많이 됐죠.
제가 일을 해야 하니까요. 같은 영업이라도 그냥 저냥 일하고 싶진 않았어요. 나름의 격이랄까, 내가 맡은 일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요. 내가 실패한 거면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다, 내가 맡으면 일단 누구보다 잘 해낸다, 이런 게 좀 있어요.
-운동선수의 승부욕 같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퇴사하고 나면 다시 취업하지 못 할까 봐 걱정하는 분들도 많으시잖아요. 그래서 직장생활이 힘들고 불만족스러워도 어떻게든 버티게 되고. 직장인으로서 산전수전 다 겪으신 셈인데, 혹시 이런 고민을 하는 후배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세요?
취업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이력서 500개 정도 써보지 않았다면 알아봤다고 하지도 말라고 해요. 100군데 정도는 떨어져 봐야지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고요.
전 회사는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특별히 아주 대단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일단 인연이 닿는 곳에서 찾아봐야 하는 거 같아요. 전 직업이 내가 원해서 되는 것도 있지만 날 알아봐주고 내가 알아보는, 이런 서로에 대한 인연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조바심을 느끼거나 그런 건 좀 덜해요. 항상 스스로 관리 잘하고, 열심히 하면 언제든 또 인연이 닿을 거로 생각해요. 쓸데없이 고민하고 잠 못 자고 하면 마음만 피폐해지더라고요. 쓰임이 올 때를 대비해서 건강 잘 챙기고 기다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또 파이팅하고 야근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뭐.
-아니 어쩜 이렇게 긍정적이죠? 안 좋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힘들어하는 스타일은 아니셨던 것 같아요.
아니에요. 되게 우울했어요. 그런데 많이 승화시켰죠. 아내가 많이 지지해 줬어요. 가족, 이런 게 힘이 많이 됐죠.
-근데 궁금한 게요. 트레이너, 요리사 경력도 있으시고요. 상황이 힘드실 때 다시 트레이너나 요리를 해볼까 생각도 들었을 것 같은데 다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일을 하셨어요.
지금도 당장 오갈 데 없는 상황이 되면, 극단적인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할까 준비를 항상 해요. 서울에 자리 없으면 춘천 닭갈비집에서라도 일하고 배달이라도 하면 살 수는 있을 거야 이런 생각도 하고요.
운동할 때 광화문을 지나가는데,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라고 양복에 사원증 걸고 다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어요. 운동선수였으니까 맨날 운동복만 입고 다녔잖아요. 부럽더라고요. 그때 뭔가 저런 오피스 영역에 포함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 때는 학교 다닐 때 진로 지도가 제대로 안 됐어요. 운동하는 조직이다 보니 그 영역 이외에는 다른 길을 제시해 주는 선배도 없었고요. 사실 제가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도 아니었고요. 옛날을 생각하면 참 무모했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갔던 거 같아요.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뭔가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결정이 더 신중해졌고, 미래를 생각하게 됐고요.
글쎄요, 그래도 다시 트레이너나 요리를 해볼까란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쪽 세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인가 싶어요. 거기서 내 미래를 찾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지금도 당장 오갈 데 없는 상황이 되면, 극단적인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할까 준비를 항상 해요. 서울에 자리 없으면 춘천 닭갈비집에서라도 일하고 배달이라도 하면 살 수는 있을 거야 이런 생각도 하고요.
운동할 때 광화문을 지나가는데,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라고 양복에 사원증 걸고 다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어요. 운동선수였으니까 맨날 운동복만 입고 다녔잖아요. 부럽더라고요. 그때 뭔가 저런 오피스 영역에 포함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 때는 학교 다닐 때 진로 지도가 제대로 안 됐어요. 운동하는 조직이다 보니 그 영역 이외에는 다른 길을 제시해 주는 선배도 없었고요. 사실 제가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도 아니었고요. 옛날을 생각하면 참 무모했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갔던 거 같아요.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뭔가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결정이 더 신중해졌고, 미래를 생각하게 됐고요.
글쎄요, 그래도 다시 트레이너나 요리를 해볼까란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쪽 세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인가 싶어요. 거기서 내 미래를 찾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혹시 후회되는 건 없으세요?
아니요. 후회는 없어요. 포인트마다 미련은 있어도 '그때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건 없어요. 그냥 트레이너 다시 할까, 요리를 다시 할까, 이런 건 없어요.
빨래방이 그냥 빨래만 생각하는데, 무거운 전자 기기를 옮기고, 다루고, 전기도 연결해야 하고요. 생각보다 험한 일이거든요. 영업하던 사람이 그룹장이 되고 이런 다른 영역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관리해야 했던 건데, 이게 가능했던 건 제가 탑차를 몰고 오븐 배달하고 설치하러 다니면서 뭘 잘못 연결해서 트랜스도 태워 먹어보고 이런 경험이 있었던 덕분이거든요. 이런 경험들이 있어서, 다른 일들도 나름 잘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게 다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허투루 한 경험은 없었어요.
제가 엄청 딱딱하고 피곤한 놈인데 호주를 다녀와서 굉장히 유연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서 괄시도 당해보고 차별도 당해보고 그러면서요. 요리를 배운 게 있어서 식당이나 주점 메뉴 컨설팅을 해주면서 용돈벌이를 하기도 하고요. 친구들을 통해 연락이 오기도 하거든요. 전 뭐 들어오는 건 다 해요. 제가 가성비가 좋아요.
- 다시 창업을 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제 생각에 전 오너가 될 역량은 안되는 거 같아요. 저는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서 뭔가 퍼포먼스를 내는 걸 잘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와 잘 맞았던 회사를 보면 뭔가 점프업하는 순간에 제 역량을 잘 발휘하는 것 같더라고요. 전 저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또 기다리는 중이에요. 좋은 인연을 만날 거라 생각하고 있고요.
아니요. 후회는 없어요. 포인트마다 미련은 있어도 '그때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건 없어요. 그냥 트레이너 다시 할까, 요리를 다시 할까, 이런 건 없어요.
빨래방이 그냥 빨래만 생각하는데, 무거운 전자 기기를 옮기고, 다루고, 전기도 연결해야 하고요. 생각보다 험한 일이거든요. 영업하던 사람이 그룹장이 되고 이런 다른 영역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관리해야 했던 건데, 이게 가능했던 건 제가 탑차를 몰고 오븐 배달하고 설치하러 다니면서 뭘 잘못 연결해서 트랜스도 태워 먹어보고 이런 경험이 있었던 덕분이거든요. 이런 경험들이 있어서, 다른 일들도 나름 잘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게 다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허투루 한 경험은 없었어요.
제가 엄청 딱딱하고 피곤한 놈인데 호주를 다녀와서 굉장히 유연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서 괄시도 당해보고 차별도 당해보고 그러면서요. 요리를 배운 게 있어서 식당이나 주점 메뉴 컨설팅을 해주면서 용돈벌이를 하기도 하고요. 친구들을 통해 연락이 오기도 하거든요. 전 뭐 들어오는 건 다 해요. 제가 가성비가 좋아요.
- 다시 창업을 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제 생각에 전 오너가 될 역량은 안되는 거 같아요. 저는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서 뭔가 퍼포먼스를 내는 걸 잘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와 잘 맞았던 회사를 보면 뭔가 점프업하는 순간에 제 역량을 잘 발휘하는 것 같더라고요. 전 저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또 기다리는 중이에요. 좋은 인연을 만날 거라 생각하고 있고요.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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