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비나이다비나이다 많이 팔리게 해주세요”

[논픽션실화극장] 샤머니즘편 ① 이른 아침 회사 옥상에서…

2020. 05. 25 (월)
※ 다음 글은 잡플래닛에 남겨진 리뷰와 못다한 이야기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미지
아침 7시50분. 원래 출근 시간은 오전 9시지만, 다들 회사에 모였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그날’이거든요.
새벽같이 출근한 직원들은 각종 음식을 준비해 회사 옥상으로 올랐습니다. 옥상 한 켠에는 정성이 가득 담긴 제사상이 차려졌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나니 회장님이 오시네요. 회장님은 경건한 표정으로 상 앞에 서더니,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장님의 간절한 마음이 온 하늘에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지금 회사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겁니다.
회사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요? 우리 회사는 한 달에 한 번씩 회사 옥상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매출 잘 나오게 해달라고요. 물론 준비는 다 사원들이 하죠. 이런 날 직원들은 아침 7시 50분까지는 출근을 해서 제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일찍 출근했으니 퇴근도 일찍 하지 않냐고요? 저희 회장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길 “출근은 15분 일찍, 칼퇴는 자기 일에 의욕 없고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인걸요.
사실 뭐 이정도는 괜찮습니다. 회사 옥상 정도야 뭐…. 올해 초에는 강화도도 다녀왔는 걸요. 우리 회사는 일 년에 한 두번씩 강화도 마니산에 오릅니다.
마니산 아시죠? 맞습니다. 그 참성단 있는 곳이에요. 고조선의 단군 할아버지께서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해 쌓았다는 그 제단이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봄과 가을에 이곳에서 단군 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냈 대요. 국가에 특별한 일이 있거나, 문제가 생겨 이를 극복해야 하는 국가적 차원의 대사가 있을 때에도 제사를 지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회사도 천지신명님께 우리 물건 잘 팔리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마니산에 오릅니다. 제사를 지내러 갈 때면 일부 직원들이 차출돼서 주말에 모이는데, 올해는 제가 다녀왔어요. 등에는 돼지 머리를 지고, 제사상에 올릴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산을 올랐습니다.
산도 빨리 올라가야 돼요. 회장님보다 늦게 정상에 도착하면 혼쭐나거든요. 사실 돼지 머리를 지고 올라가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가방에서 돼지머리를 꺼낼 때였어요. 가방에서 커다란 돼지머리가 나오는 순간, 소란스럽던 주변의 소음이 일순간 사라지는데, 시간이 멈춘 것 같더라니까요.
저보다 먼저 입사한 다른 직원에게 듣기로는 태백산에서도 고사를 지냈었나 보더라고요. 태백산도 기운이 좋다면서요? 회장님이 이쪽에 관심이 많으셔서 그런가 기운 좋은 산들 잘도 찾아서 고사를 지내왔더라고요.
“멍멍!!” “으아악”
제사를 마치고 옥상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집채만 한 개가 뛰어와서 뒤로 자빠질 뻔했네요. 매번 보는데 볼 때마다 놀라는 저도 참…. 이 개는 회장님이 키우시는 개인데, 회장님이 워낙 개를 좋아하셔서 그냥 사무실을 놀이터 삼아 지내고 있죠. 사무실에 있을 때는 목줄도 입 마개도 안하고 있어서, 가끔 회사를 찾는 손님들도 깜짝깜짝 놀라고 그래요.
여하튼 오늘도 ‘정기 고사’를 잘 마쳤습니다. 천지신명님께 우리 회장님 마음이 잘 전달이 됐으려나요.
그런데 회장님. 이렇게 제사를 지내서 회사 사정이 좀 나이지고 있습니까? 직원들 굴려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고 회사 사정이 얼마나 나아질지…. 글쎄요. 그 비용으로 일하기 좋은 환경 만들어주고,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는 사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천지신명님께 정성을 들이는 것처럼, 직원들에게도 정성을 들이시면 정말 존경받는 회장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옆에 사람이 곧 신이라고 하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회장님 앞에 복을 가져오는 가장 빠른 방법은 아닐까…. 그냥 제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제보를 받습니다. (링크) 직장에서 일어난 각종 억울하고 부당한 사건들을 잡플래닛에 알려주세요. 당신의 제보는 더 좋은 회사를, 더 나은 직장 문화를, 더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경험한 그 사건의 이야기와 함께 사진과 동영상, 연락처 등을 남겨주시면 추가 취재를 통해 세상에 알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