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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전체메일로 반성문 돌리는 회사

[논픽션실화극장] '전체 메일'은 '조리돌림'…"이런다고 나아지나요"

2021. 01. 25 (월) 14:25 | 최종 업데이트 2021. 01. 25 (월) 18:31
※ 다음 글은 잡플래닛에 남겨진 리뷰와 못다 한 이야기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메일 제목: XX팀 OOO입니다. 죄송합니다.]

오늘도 이런 제목의 '전체 메일'이 왔습니다. 다른 회사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표님이나 사장님, 인사팀에서 회사 전체에 중요한 공지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메일을 보낸다고 하던데요... 제가 다니는 회사에선 조금 다릅니다. '전체 메일'은 '조리돌림'의 신호탄이거든요.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저희 회사엔 아주 이상한 문화(?)가 있습니다. 업무 중에 누군가 실수를 하면, 해당 직원의 팀장이 직원의 실수 내용을 자세히 옮겨 적어 '모든 직원'에게 메일로 보내요. 심한 경우는 전체 메일로 '반성문'을 쓰기도 합니다. 이름도 떡하니 적어 놓으니 개인정보 보호도 요원한 일입니다. 사원 수만 100명이 훌쩍 넘는 회사라서, 전체 메일이 발송된 날이면 당사자는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 정도예요.

전체 메일이 전달된 후 점심시간이면, 이 이야기가 어딜 가나 들립니다. "전체 메일 봤느냐", "무서워 죽겠다"는 두려움은 물론이고, 대놓고 뒷담화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밥을 씹는지 사람을 씹는지… 회사가 '뒷담화 소재'를 제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회사는 "실수한 직원에게 무안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같은 실수가 없게 하려는 이유"라고 말하지만, 그 의도가 직원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것 같네요.

한번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이 쓴 반성문을 메일로 받아 본 적이 있는데요. 저와 직접 일하지 않는 머나먼 부서 직원의 반성문을 대낮부터 받아 읽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해지더라고요. 초등학교 다닐 때나 썼을 반성문을 쓰는 그분도 죽을 맛이겠지만, 저도 언제든 반성문의 글쓴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섬뜩했어요.

실수가 있을 때 지적하고 이를 고치도록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방식은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식이라면 당사자는 원치 않는 '공개 처형'으로 큰 무안함을 느껴야 하고, 전체 메일을 받는 사람들은 괜한 불편함을 느끼고… 조금 더 인격적인 방법을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한다고 정말 나아지긴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실수만 안 하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요? 그럴리가요. 실수를 전체 메일로 '공지'하는 이 회사의 DNA는 아무래도 직원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임원들에게서 나온 게 분명해 보입니다. 직원을 '야', '너'로 부르는 건 기본이고, 분에 찬 욕설도 쉽게 들을 수 있어요. 직원들이 전부 모여 있는 사무실에서 대 놓고 큰소리로 면박을 주기도 하는데, 아마 이게 기술의 발전을 따라 '전체 메일'이 됐는지도 모르겠네요.

겉으로는 '야근하지 말라'고 윽박지르지만 정시 퇴근하는 사람에게는 눈치 주고, 퇴사자들에게는 "이직하는 회사 이름을 말해주지 않으면 재직증명서 발급 안 해 준다"며 으름장을 놓질 않나, 부서원들을 한 명 씩 불러다가 '직원 평가'를 빌미로 '뒷담화'를 조장하질 않나… 여러모로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 많아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외국계 기업이기에 혹해서 입사했지만, 들어와 보니 60~70년대 한국 기업만 못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위치에 있는 깨끗한 사무실 정도는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회사를 다니면 다닐 수록 '속 빈 강정'이라고 느껴져요.

속이 썩어들어 가는데 껍데기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껍데기는 가라'고 외친 시인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오늘도 전체 메일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바짝 숨을 죽여 봅니다.
회사에서 '시말서'도 아니고 '반성문'을 쓰도록 하고, 심지어 반성문을 전체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낸다니,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걸까요?

대법원 판례는 사업자의 '시말서' 제출 명령이 단순한 사건 경위 보고에 그치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반성문'을 의미한다면 이는 업무상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본 건데요. '경위서 몇 회 제출 시 해고' 등을 근거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경우도 부당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직원이 쓴 반성문을 전체 메일로 공유하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백우연 공인노무사(노무사사무소 지금)는 "반성문을 쓰는 것 자체도 판례에 따라 양심의 자유 등 인권 침해 소지가 있고, 더 나아가 이를 전체 메일로 돌리는 행위는 제3자에게 전파돼 해당 근로자의 명예를 훼손할 정도라고 판단된다"며 "이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행위이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고용노동부도 2019년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에서 "시말서 작성 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등의 비자발적인 문장을 기재할 것을 강요"하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사례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장명성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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