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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면접관이 말했다 "혈서 쓸 수 있나?"
[논픽션실화극] 대표 빼고 다 아는 우리 회사 '이직률' 높은 이유
2021. 01. 18 (월) 13:28 | 최종 업데이트 2021. 12. 09 (목) 10:05
※ 다음 글은 잡플래닛에 남겨진 리뷰와 못다한 이야기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혈서 쓰라고 하면 쓸 수 있어요? 혈서?"
헉. 나도 모르게 대표의 팔을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자 대표가 살짝 눈치를 보며, 허허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지워지는 펜으로? 지워지는 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면접 상황이다. 1시간쯤 전부터 대표와 함께 면접을 보는 중인데, 5분 전 상황은 이렇다. 대표는 면접자에게 우리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말하고,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임을 자화자찬하고, '워라밸' 같은 것을 따져서는 성장할 수 없음을 재차 강조한 뒤 물었다.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습니까? 구글이나 애플에서 이직 제안을 하면 갈 겁니까?"
당연하지. 나라도 가겠다. 구글과 애플의 인사담당자님, 연락 주시면 바로 갑니다. 하지만 면접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나, 면접자는 당연히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답변을 했다.
"오래 다니겠습니다"라고. 그러자 대표가 물어본 것이다.
"그럼 계약서를 10년으로 쓸까요? 그전에 퇴사하면 페널티 있게? 혈서 쓸 수 있어요?"
깜짝 놀란 내가 눈치를 주자, 그제야 한다는 말이 '지워지는 펜'으로 쓰는 것은 어떤지 묻는다. 이게 대표가 농담이랍시고 면접장에서 하는 말이다.
이미 이 질문 전에도 주량은 얼마나 되는지,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지, 부모님 하시는 일은 무엇인지, 별자리와 혈액형은 어떻게 되는지, 심지어 본인이 몇 살로 보이느냐는 질문까지 했다. 애써 표정 관리를 하고 있지만, 점점 어그러지는 면접자의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채용은 물 건너갔구나 느낌이 왔다.
면접자에게 혈서까지 쓰자고 하는 데서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우리 회사는 이직률이 높다. 입사 후 한 달 내 퇴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3개월을 다니면 장기근속자 반열에 오를 정도니 뭐….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입사할 때는 몰랐다. 처음 회사에 대해 알아봤을 때, 공개된 기업정보 상으로는 직원 80명의 꽤 규모 있는, 괜찮은 회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입사하고 보니 안 좋은 정보들은 다 명예훼손이니, 영업방해니, 각종 핑계를 대 지우거나, 비공개 처리를 한 것이었다.
지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입사를 결정한, 아니 이력서를 제출했던 그때로 되돌려 과거의 내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심정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왜 기업정보 사이트에 이직율과 연봉 등 대부분의 정보가 비공개 처리돼 있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고.
처음 이상함을 느낀 건 채용할 때 말한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맡게 되었을 때였다. 예를 들어 컨설턴트로 입사를 했는데 비서 업무를 맡기거나, 비서를 뽑고는 컨설턴트 업무를 시키는 식이다. 일단 쉽게 뽑을 수 있는 직무로 사람을 뽑고, 아무 일이나 시키는 식이랄까. 이마저도 이직률이 높아서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되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싶다.
거기다 이른 아침과 늦은 밤,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아무 때나 울려대는 카카오톡은 정말…. 업무 보고는 이메일과 카톡으로 하는데, 하루에 쌓인 메시지 수가 적으면 일 안 하고 게으름을 부렸다고 생각한다. 카카오톡을 처음 만든 라이언 닮은 그분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자꾸 직원들과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점심, 저녁은 꼭! 대표와 함께 먹어야 한다. 가끔은 아침도 같이 먹자고 한다. 직원들이 퇴근 후 사적인 약속을 잡는 것도 싫어 하고, 어떤 직원은 퇴근 후 소개팅을 잡았다가 대표가 달달 볶는 통에 취소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도대체 왜?
가장 정떨어지는 점은 여성 직원을 대하는 대표의 태도다. 회사에 괴담처럼 내려오는 얘기 중에는, 대표가 20대 중반 여직원들과 크리스마스이브에 호텔로 1박 2일 워크숍을 가려고 했다느니, 옷을 사주겠다며 공휴일에 백화점으로 불러내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느니, 야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여직원에게 집에 방이 많으니 자고 가라고 했다느니….
신문 사회면에서나 봤을 법한 얘기들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에이, 설마' 싶다가도 가끔은 정말인가 싶은 아슬아슬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쯤 되면 왜 직원들이 금방 그만두는지 알 법도 한데, 직원들은 다 아는데 오직 한 명, 대표만 모른다. 그러니 면접자를 붙잡고 '혈서' 운운하고 있겠지….
올해는 정말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떠오르는 새해를 보며 기도를 해본다.
헉. 나도 모르게 대표의 팔을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자 대표가 살짝 눈치를 보며, 허허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지워지는 펜으로? 지워지는 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면접 상황이다. 1시간쯤 전부터 대표와 함께 면접을 보는 중인데, 5분 전 상황은 이렇다. 대표는 면접자에게 우리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말하고,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임을 자화자찬하고, '워라밸' 같은 것을 따져서는 성장할 수 없음을 재차 강조한 뒤 물었다.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습니까? 구글이나 애플에서 이직 제안을 하면 갈 겁니까?"
당연하지. 나라도 가겠다. 구글과 애플의 인사담당자님, 연락 주시면 바로 갑니다. 하지만 면접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나, 면접자는 당연히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답변을 했다.
"오래 다니겠습니다"라고. 그러자 대표가 물어본 것이다.
"그럼 계약서를 10년으로 쓸까요? 그전에 퇴사하면 페널티 있게? 혈서 쓸 수 있어요?"
깜짝 놀란 내가 눈치를 주자, 그제야 한다는 말이 '지워지는 펜'으로 쓰는 것은 어떤지 묻는다. 이게 대표가 농담이랍시고 면접장에서 하는 말이다.
이미 이 질문 전에도 주량은 얼마나 되는지,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지, 부모님 하시는 일은 무엇인지, 별자리와 혈액형은 어떻게 되는지, 심지어 본인이 몇 살로 보이느냐는 질문까지 했다. 애써 표정 관리를 하고 있지만, 점점 어그러지는 면접자의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채용은 물 건너갔구나 느낌이 왔다.
면접자에게 혈서까지 쓰자고 하는 데서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우리 회사는 이직률이 높다. 입사 후 한 달 내 퇴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3개월을 다니면 장기근속자 반열에 오를 정도니 뭐….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입사할 때는 몰랐다. 처음 회사에 대해 알아봤을 때, 공개된 기업정보 상으로는 직원 80명의 꽤 규모 있는, 괜찮은 회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입사하고 보니 안 좋은 정보들은 다 명예훼손이니, 영업방해니, 각종 핑계를 대 지우거나, 비공개 처리를 한 것이었다.
지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입사를 결정한, 아니 이력서를 제출했던 그때로 되돌려 과거의 내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심정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왜 기업정보 사이트에 이직율과 연봉 등 대부분의 정보가 비공개 처리돼 있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고.
처음 이상함을 느낀 건 채용할 때 말한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맡게 되었을 때였다. 예를 들어 컨설턴트로 입사를 했는데 비서 업무를 맡기거나, 비서를 뽑고는 컨설턴트 업무를 시키는 식이다. 일단 쉽게 뽑을 수 있는 직무로 사람을 뽑고, 아무 일이나 시키는 식이랄까. 이마저도 이직률이 높아서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되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싶다.
거기다 이른 아침과 늦은 밤,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아무 때나 울려대는 카카오톡은 정말…. 업무 보고는 이메일과 카톡으로 하는데, 하루에 쌓인 메시지 수가 적으면 일 안 하고 게으름을 부렸다고 생각한다. 카카오톡을 처음 만든 라이언 닮은 그분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자꾸 직원들과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점심, 저녁은 꼭! 대표와 함께 먹어야 한다. 가끔은 아침도 같이 먹자고 한다. 직원들이 퇴근 후 사적인 약속을 잡는 것도 싫어 하고, 어떤 직원은 퇴근 후 소개팅을 잡았다가 대표가 달달 볶는 통에 취소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도대체 왜?
가장 정떨어지는 점은 여성 직원을 대하는 대표의 태도다. 회사에 괴담처럼 내려오는 얘기 중에는, 대표가 20대 중반 여직원들과 크리스마스이브에 호텔로 1박 2일 워크숍을 가려고 했다느니, 옷을 사주겠다며 공휴일에 백화점으로 불러내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느니, 야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여직원에게 집에 방이 많으니 자고 가라고 했다느니….
신문 사회면에서나 봤을 법한 얘기들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에이, 설마' 싶다가도 가끔은 정말인가 싶은 아슬아슬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쯤 되면 왜 직원들이 금방 그만두는지 알 법도 한데, 직원들은 다 아는데 오직 한 명, 대표만 모른다. 그러니 면접자를 붙잡고 '혈서' 운운하고 있겠지….
올해는 정말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떠오르는 새해를 보며 기도를 해본다.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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