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계기로 지난해 세계 곳곳에서는 재택근무, 탄력근무 등 다양한 근로 형태의 실험이 이뤄졌다. 그리고 시작됐다. 주4일제 근무에 대한 논의가. 이미 해외에서는 주4일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일부 기업은 주4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주일은 7일, 이중 4일만 일하는 건 어떨까? '생각만해도 좋다'는 이들도, '설마 가능할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터. 16년 전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될 때도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은 있었지만 주5일제는 일상이 됐고,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 다만 일하는 방식의 차이가 생겼을 뿐. 그래서 잡플래닛 <컴퍼니타임스>는 근로자와 경영자와 인사담당자, 그리고 이미 주4일제를 시행중인 회사의 임직원들에게 물어봤다. "주4일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국 고민은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다.
2019년부터 주4일제를 운영 중인 캐릭터 인형 봉제 업체
메세(링크)가 <컴퍼니 타임스>의 취재 요청을 받고 자체적으로 시행한 직원 설문조사 결과,
메세 직원 중 93%가 '주4일제 시행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에 더해 직원
85%는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응답했으며,
71%가 '업무 성과가 향상됐다'고 했다. 설문조사만 보면, 적어도 메세에서는 주4일제가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좋은 제도로 자리잡은 듯해 보인다.
물론 설문조사를 통해 여러 개선사항도 지적됐다.
주5일 근무를 시행할 수밖에 없는 직무에 대한 보상이나, 주4일제의 시행에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소위 '월급루팡'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높은 만족도를 보인 만큼 관심을 기울여야 할 지점이 많은 셈이다.
설문조사를 보고 나니 주4일제에 관한 메세 직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메세 상품개발팀의 박수진 과장, 콘텐츠사업팀 이은영 팀장을 만났다. 두 직원은 모두 과거 다른 회사에서 '주5일 근무'를 경험해 본 이들이다. 이들에게 대표님은 말하지 않는 주4일제의 실체(?)를 물었다.
- 두 분 모두 입사할 당시는 메세가 주4.5일 근무제를 시행하던 때다. 주4.5일, 주4일을 처음 경험했을 때가 기억나는지.
수진 / 20년 가까이 봉제 완구 한 길만 걸었다. 디자이너다 보니까 야근을 빼 놓고는 할 얘기가 없을 정도로 일했다. 주5일이면 5일 전부 야근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출산하면서 점점 브레이크가 걸리더라. 직전에 다니던 회사는 8시 출근이었기 때문에 6시 30분에는 집에서 나와야 했다. 게다가 회사 분위기 자체가 야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회사는 탄탄해서 계속 다녔으면 커리어에도 좋았을 거다. 그렇지만 갈수록 가정을 등져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일하는 나도 있지만, 가정의 나도 있지 않나.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데 회사가 그걸 이해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결단을 내리고 과감히 휴직했다. 쉬는 동안에 메세 공고가 떴다. '한번 다녀보고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와서 입사 서류 쓰는데 '주4.5일 근무'라고 하더라. 공고에는 그런 얘기가 없어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0.5일이 뭐라고,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되더라. 대표님은 탄력근무제 활용하라고, 융통성 있게 일하라고 계속 이야기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들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유부녀고 가정이 있으면 사고가 굳어지기 마련인데, 이런 방식으로 일하니 사고가 유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은영 / 키즈 콘텐츠 기획자로 쭉 일해 왔다. IT 회사에 다녔는데, 회사가 보수적인 분위기보다는 자유로움을 추구했다. 근무 시간에 다른 곳 가서 일해도 되고, 낮에 피곤하면 낮잠도 자고. 그런데도 야근은 어쩔 수 없었다. '기획'이라는 영역의 모호함 때문에 억지로 일을 붙잡고 있는 때가 많았다. 해외 출장이 잦은 회장님은 시차를 가리지 않고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곤 했다. 주말이든 밤이든 답장하는 게 당연했다. 메일에 얽매이다 보니 몸은 쉬어도 정신은 놓을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랜서로 얼마간 일하다가 다시 입사한 게 메세였다. 나도 주4.5일 근무는 모르고 왔는데, 첫날 옆에 있는 직원이 "내일 아시죠?"라고 하더라. 알고보니 금요일 오후에 쉰다는 걸 그렇게 말한 거더라.
콘텐츠 기획은 '창작'을 해야 하는 일이다. 일에 쫓기고 몸이 피로하면 머리도 굴리기 싫어진다. 4일만 근무하고 3일을 쉬니까 하루는 빈둥거려도 나머지 시간에 자기계발에 집중할 수 있더라. 몸이 편하니까 아이디어도 더 잘 떠오른다. 좋은 컨디션으로 업무에 집중하게 된다. 코로나 전부터 재택근무도 활성화돼 있어서, 일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창작 파트는 특히 더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책상에 앉아 있다고 아이디어가 생기는 게 아니니까. 회사의 편안한 분위기에서, 결과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게 되는 것 같다.
- 지금은 주4일이 익숙해졌을 텐데. 직접 경험한 입장에서 주5일과 주4일의 큰 차이점이 있다면.
수진 / 5일 근무와 달리 4일 근무하는 동안은 쉬는 시간이 없을 수 있다. 압축해서, 집중도 높여서 일해야 한다. 5일 일하던 매출은 그대로 나와야 하니까. '쫀쫀'하게 4일을 쓰게 된다.
은영 / 시간을 능동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우선순위도 정해야 하고 버릴 일은 버린다. 조정을 꾸준히 하다보니 스스로 일을 주도한다고 느낀다. 주4일 근무한다고 해서 5일째 근무를 다음주 월요일로 넘기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되더라. 주5일 근무 중에 허비되는 시간을 없애고 4일로 맞추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 조정을 잘못해서 다음 주로 일이 넘어가면, 주4일제 취지와 다르게 일을 더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일이 넘어가면 결국 내가 힘들어진다. 그런 부분에서 직원들 스스로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취지를 계속 리마인드하면서 공유해야 한다.
수진 / 공감한다. 5일 일할 양을 4일만 하고 넘기는 걸로 착각하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 개념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5일과 같은 4일'을 만들어야 한다. 나이브하게 생각하면서 '4일만 일하면 된다'고 접근하는 건 주4일제 본질과는 다르다.
- 상황상 금요일에 일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들었다.
수진 / 나는 업무 포지션이 바이어와 연계돼 있기 때문에, 금요일에 집에 있어도 업무 메시지가 오고,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렇다고 집에서 일하는 느낌까진 아니고, 볼일 보면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정도 업무는 아직까지 어려움은 없다. 아무래도 다른 회사들이 주4일제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은영 / 콘텐츠팀도 외부 사업을 하면 데드라인이 있다 보니까 금요일에 일해야 할 때도 있다. 사업 기한이 가까이 오면 제대로 못 쉬기도 한다. 물론 금요일에 공식적인 일을 하면 대체 휴무를 사용할 수 있다.
수진 / 상황에 따라 일해야 할 때도 있지만 내 볼일을 볼 수 있고, 자기계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내 시간을 내가 주도한다는 느낌이 있는 거다. 금요일에 하는 간단한 업무에 대한 불만은 크게 없다. 만약 주5일 근무였으면 토요일에 출근해서 했을 일이니까.(웃음)
- 쉬는 금요일에는 주로 무얼 하는지 궁금하다.
수진 / 쉬는 날 오전엔 시장 조사를 많이 한다. 오프라인 시장 조사도 가끔 나간다. 트렌드를 파악하려면 책도 많이 읽고 자료도 많이 봐야 한다. 물론 그런 조사할 때도 아이들이 옆에 있는 거랑 아닌 거랑 다르다.
아이들이 예전에는 '학교 갔다 올 때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다'고 한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간단한 간식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물론 주말에도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학교 갔다 왔을 때 엄마가 있는 게 좋고, 샌드위치 만들어 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 애들은 큰 선물보다 그런 걸 좋아한다.
은영 / 일단 늦게 일어난다.(웃음) 업무의 연장일 수도 있고 자기계발 차원일 수도 있는데, 콘텐츠 영상을 많이 본다. 금요일은 주로 활동적인 걸 하기 싫어서 책을 읽거나, 콘텐츠를 보거나 정적인 활동을 하는 편이다. 무언가를 보거나 읽거나 자면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주말에는 남편도 집에 있어서 혼자가 아니다 보니 금요일은 주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금요일을 그렇게 보내면 주말도 다르게 느껴지는가.
수진 / 아무래도 그렇다. 하루 덜 쉬는 것과 피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말에는 가정의 대소사를 챙긴다. 주중에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 쓰지만, 주말에는 숙제를 봐준다든지 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긴다. 어쩌다가 한번씩은 여행도 가면서 리프레시하게 된다.
은영 / 금요일에 푹 쉬고 나면 몸이 개운하니까 무언가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것 같다. 예전에는 주말에 잠만 자고 싶었고, 생각도 하기 싫었다. 컴퓨터를 보기도 싫고 다 꺼버리고 싶고 그랬는데, 지금은 푹 쉬니까 주말에 하는 활동에 관대해진다. '뭐라도 해보자'는 의욕이 생겨서 요리를 시도하기도 한다. 가족 행사를 1박2일로 하면 부담도 없지 않았는데, 3일 쉬니까 그런 부담도 없어지더라.
- 많은 얘길 들었지만 여전히 주4일제가 멀게 느껴진다. 회사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 같고, 근로자 입장에선 마냥 좋을 것만 같은데. 주4일을 고민하는 회사, 주4일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수진 / 예전과 같은 패러다임으로 주5일에 맞춰서 살면 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 능동적인 사람만이 자기 시간을 지배하고 관리할 수 있다. 근로자들은 '주4일에 잘 일하려면 주3일을 뜻깊게 보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논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큰 오산이다.
은영 / 맞다. 주4일 근무를 한다면 책임감이 더 많이 요구된다. 다른 곳과 달리 나만의 시간이 하루 더 주어지는 건데, 그렇기에 더 무게가 생긴다. 익숙해지고 무뎌지면 그냥 '2일 같은 3일'이 될 수도 있다. 능동적으로,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이틀 쉬는 거랑 다를 게 없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도, 자기 생활도 더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수진 / 그래야지 회사도 근로자도 상생한다. 주4일제를 고려하는 오너가 있다면, 우선 직원들을 이해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냥 하루 쉬라고 하는 게 아니고, 5일을 압축해서 4일동안 일하는 거라는 점을 충분히 숙지시켜야 한다.
회사에서 그런 농담을 많이 한다. 다른 회사들이 주4일 근무하게 되면, 우리 회사는 '주3일' 할 거라고. 5일제 하다가 바로 4일로 가는 건 당연히 힘들 거다. 고민하는 회사가 있다면 과도기처럼 주4.5일 근무를 경험해 보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대세는 주4일이다. 주4일 시대는 곧 온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