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4.5일 일해도 'TOP광고회사' 자리 굳건한 비결

[인터뷰] TBWA KOREA 김영옥 수석국장, 이예나 대리

2023. 09. 18 (월)
동틀 때까지 진행되는 밤샘 아이디어 회의, 책상 위 가득 쌓인 커피컵과 카페인 음료들, 치열한 경쟁 PT, 출퇴근의 경계 없이 이어지는 야근, 또 야근. 미디어에서 보여준 광고회사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촉박한 시간 안에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든다는 건 일상이 뒷전으로 밀릴 만큼 어려운 업무일 것 같다. 사실, 안 해봤지만 짐작이 된다. 그래서인지 광고회사의 기업 리뷰 속에는 경쟁,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쉽게 보이곤 한다. 

이런 이유로 ‘2023년 상반기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에 광고대행사가 오르긴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는데, 한 광고회사가 보란 듯이 종합 부문 외국계 순위와, 성장가능성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외국계 기업이자 국내 독립 광고대행사인 TBWA KOREA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광고그룹 Omnicom Group의 자회사로, 국내 독립 광고대행사 중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워라밸이 있는 거의 유일한 광고회사”
"광고를 배우고 싶다면 최고의 회사. 인간을 챙길 줄 아는 회사"


살얼음판이라 예상했던 광고회사에 인간 냄새 폴폴 풍기는 평가가 남겨져 있다니 궁금해졌다. 광고회사에서 어떻게 워라밸을 챙길 수 있는 걸까? 일하기 좋은 회사로 꼽힌 비결은 무엇일까? 2000년 TBWA KOREA HR팀에 입사해 무려 23년간 조직문화를 구축해온 김영옥 수석국장(이하 김)과 주니어들의 적응을 두팔 걷어 돕고 있는 이예나 대리(이하 이)를 직접 만나 물어봤다. "광고회사가 어떻게 워라밸이 좋아요?"

TBWA KOREA 사무실 전경 (자료=TBWA KOREA)
광고회사에서 ‘칼퇴’와 ‘4.5일제’가 가능하다고?


-상상했던 광고회사의 이미지와 TBWA KOREA 직원들의 기업 평가 내용은 조금 달랐어요. “워라밸이 있다” “근무환경과 복지가 좋다”는 리뷰가 많아요. 광고업계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HR팀의 노력이 궁금합니다. 그냥 됐을 것 같진 않아요. 

 : 저희도 예전엔 야근이 정말 많았어요. 악순환의 연속이더라고요. 한번 밤에 일을 하기 시작하면 다음 날 늦게 나오게 되고, 그럼 또 일을 늦게 시작하고 그럼 또 야근을 하고…. 이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많이 노력했어요. 과거의 일하던 방식을 유지하기엔, 워라밸이 중요한 시대가 됐고, 무엇보다 구성원의 일상이 보장돼야 일도 잘하게 된다는 걸 이젠 다들 아니까요.

시니어분들께 낮에 일할 수 있도록 독려했어요. 저희는 출퇴근 시각을 입력하고 근무 시간을 확인하는 시스템이 있는데요, 그 뒤로 야근이 크게 줄었어요. 한창 과도기 때는 야근 많은 팀의 팀장님들을 불러서 출퇴근 시간 기록을 보여주며 “일이 너무 많다, 휴가를 보내거나 업무 조정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일하는 문화가 잘 자리잡아서 옛날처럼 한달 내내 야근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 회사 차원에서 업무 시간을 관리하고 있군요. 4.5일제 시행 중이란 리뷰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야근이 일상이라는 광고업게에서 4.5일제라니요! 광고회사라고 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고, 경쟁PT에서도 이겨야 하잖아요. 절대적인 업무 시간을 줄이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업무 시간이 모자라지는 않나요? 

: 막상 해보니 그 시간 안에 일이 되더라고요.(웃음) 오히려 업무의 질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과거 주6일제에서 주5일제로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도 “이 시간 안에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일이 다 돌아갔잖아요.

물론 어느 정도 일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건 필요하죠. 그래서 4.5일제를 시작하면서 점심시간을 2시간에서 1시간 30분으로 줄이긴 했어요. 점심시간마저 2시간이면 정말 일할 시간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구성원들도 이해했고요. 이렇게 바꿔보니 개인에게 필요한 휴식을 제공하는 근무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지금은 정말 모두가 4.5일제를 누리고 있습니다. 대표님도, 임원진 분들도 월요일엔 오후 출근을 하세요.  

- 업무의 질이 오히려 좋아졌다니 꽤 놀라운 결과인데요? 그래도 결정하기까지 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4.5일제를 시행한 이유가 뭔가요? 

: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다 일상복귀가 이뤄지면서 직원들을 회사로 불러야 했어요. 워낙 대면 업무가 많은 업종이다 보니 재택근무를 유지하긴 어렵더라고요. 그렇다고 회사로 바로 복귀를 하자니, 일주일 내내 출근하는 게 힘들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했는데, 대표님이 4.5일제를 한번 시도해 보자고 하셨어요.

4.5일제를 시행하면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반영했어요. 요일도 설문조사로 정했는데, 금요일, 월요일 중에 더 좋은 날을 물었더니 의외로 월요일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월요일 아침이 비어있으면 마음이 여유롭고, 주말 일정을 짜기도 좋다고요. 그래서 일단 월요일로 시작해본 거고요. 반응이 좋아서 작년 7월부터 월요일 오후 출근을 이어오고 있고, 이제는 직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복지 중 하나예요.

물론 광고주와의 일정 등으로 월요일에 쉬지 못하는 분도 계시죠. 그분들은 2주일 내에 다른 날 오전 반일을 쉴 수 있어요. 이렇게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만족도가 99.9%라고 생각해요. 이직해서 오신 분들도 깜짝 놀란다니까요.

- “인간을 챙길줄아는 회사"라는 리뷰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군요! 회사가 개개인의 상황을 섬세하게 고려해주는구나 싶어요. 김영옥 수석국장님은 무려 20년 동안 TBWA에 계셨다고요. 예전과는 조직문화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 무척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 제가 주니어였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죠. 예전에는 윗분들이 계시면 퇴근을 제때 못하기도 하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도 눈치를 많이 봤거든요. 시대적으로 그런 분위기였잖아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당연히 육아휴직을 갈 수 있는 분위기로 변했어요.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당연해졌죠. 

광고회사가 야근이 많다고 하잖아요. 사실 야근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구조이긴 해요. 그렇지만 되도록 빨리 퇴근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가정적인 분이 정말 많으세요. 광고회사라 음주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술도 잘 못 마시는 분도 많고요. 생각보다 다들 일찍 집에 가십니다.(웃음)

TBWA KOREA가 작업한 광고 (자료=TBWA KOREA 홈페이지)
‘꼰대’ 없는 회사에서 멋진 창작물이 나온다


- 대기업 소속의 인하우스 광고대행사가 아닌, 외국계 기업이자 독립 광고대행사인데요. 한국에 지사를 둔 외국계 회사로서 가진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 : '꼰대'라고 부를만한 분이 없다는 점요.(웃음) 미국 본사와 소통하며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조직관리는 저희 나름대로, 저희에게 잘 맞다고 판단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물론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하고 있고요.  

-광고회사는 아무래도 창의적인 분들이 많이 모여있잖아요. 조직관리 측면에서 다른 회사들과는 다른 점이 많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 처음에 입사했을 땐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어요. 깔끔한 모습으로 면접 때 뵌 분이 입사날 파격적인 스타일로 오셔서 깜짝 놀란 경우도 있었어요.(웃음) 처음엔 반바지 입고, 슬리퍼 신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이게 더 편해요. 오히려 정장이 불편하죠. 이제는 첫 출근에 정장 입고 오시는 분이 있으면 오히려 그러지 말라고 해요. 자유로운 분위기니까 좋은 창작물이 나오는 것 아닌가 싶어요.

-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요? TBWA KOREA는 사내문화에서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높은 만족도의 비결이 뭘까요?

: 일단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진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저희 회사는 독립대행사다 보니 광고를 무조건 따와야 하는 입장이에요. 그렇다 보니 1인당 하는 일이 다른 회사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고요. 다른 광고회사에서 한 사람이 1년에 2~3개 할 분량을 저희는 한 달 만에 하기도 하죠. 그래서 지치는 경우도 있고요.

일은 많지만 일하는 과정에서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눠요.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아이디어 공유도 활발히 이뤄지고요.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게 저희 조직문화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또 HR팀에서 면담도 많이 하고, 소통할 수 있는 행사도 자주 열고 있고요. 주니어로서 갖고 있는 고민, 팀장들이 갖고 있는 고충이 다 다르잖아요. 주니어들은 특히 예나 대리에게 많이 찾아가요. 이야기 하다 보면 풀어지는 게 많으니까요. 

다른 회사로 이직한 분들도 이런 분위기가 그립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재입사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3번까지 재입사 하신 분도 봤고요.(웃음) 재입사를 해도 근속연수가 다들 기니까 같이 일할 사람들이 그대로여서 좋다는 이야기도 하세요.

- 예나 대리님도 TBWA KOREA에 재입사하셨다고요. 재입사를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 처음엔 대학을 휴학하고 입사한 거였어요. 당시 저보다 직급이 높은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님들, 팀장님들이랑 일정 조율할 일이 많은 업무였는데, 제가 어린데도 그분들이 동료로서 존중해주고 잘해주셨던 게 좋은 기억이었어요. 특히 조직문화연구소의 소장으로 계신 박웅현 님과 함께 일하면서 “이런 어른이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컸죠. 그러다 학업을 마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면서 퇴사하게 됐는데요, 학업을 마치고 다시 일을 해야 할 시점에 HR팀에 자리가 났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연락을 받고 바로 입사를 결정했죠. 

TBWA KOREA 이예나 대리(좌)와 김영옥 수석국장(우) (자료=TBWA KOREA)
회사에 자부심을 느끼게 만드는 방법


- 면담이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하셨는데요. 직원들이 주로 어떤 고민을 안고 오나요?

: 주니어들은 말 그대로 일이 너무 힘들다는 경우가 많죠. 회사 차원에서 휴가 등 복지를 많이 만들어도 어쨌든 일이 많으면 힘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HR팀에서 제가 연차가 비슷하다 보니 주니어들의 연락이 많이 오는데요. 대화를 나누면 비밀은 무조건 지켜줍니다.(웃음) 그래야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요. 

: 주니어들은 면담을 통해서 회사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해결해 주려고 해요. 상황에 따라 팀 배치를 조정해주기도 하고요. 물론 팀 구성은 연차 등을 고려해야 하고, 담당 팀장님과 상의도 해야하기 때문에 원하는 팀으로 보내주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가고 싶은 곳으로는 못 보내주지만, 가기 싫은 곳에는 보내지 않겠다”고 말해줘요. 분명 본인과 맞지 않는 업무 형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반면 제작을 맡은 CD들은 창작하는 사람들이라 또 다른 고충이 있더라고요. 머리가 쉬어야 새로운 게 나오는데, 계속 뭔가를 만들어야 하다 보니 쉬질 못하는 거예요. 그런 부분은 옆에서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서로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많이 만드는 편이에요. 저희는 HR팀이니까 회사의 좋은 인력을 최대한 유지하는 게 목표고,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게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 생각하고요.

- 독립 광고대행사다 보니 일이 많고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셨어요. 그럼에도 직원들은 ‘성장’과 ‘자부심’이란 단어를 장점으로 꺼냈습니다. TBWA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 회사에서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말 많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어요. 사원과 대리가 함께 모여 기획팀장들에게 노하우를 배우고 발표하는 자리가 있고요. 차장급이 모인 자리에서는 본부장이 들어가 과제를 부여하고 리뷰하는 기회가 있어요. 차장급은 주로 기획 교육이 많고 실제 PT를 많이 해보도록 교육해요. 선배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연습하는 거죠. 다들 정말 바쁜 시간을 쪼개서 강의를 준비하고, 노하우를 알려주고,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CD분들끼리 워크숍을 진행해 리뷰하는 시간도 따로 갖기도 하고요. 거기서 정말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요. 개별적으로 만나면 말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거든요.

이렇게 직급별로 교육의 기회가 많아요. 웬만하면 저희가 갖고 있는 내부 자원을 활용해서 미디어 교육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선배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고 배우는 과정이 직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TBWA KOREA가 주최한 대학생 대상 '주니어보드' 프로그램 현장 (자료=TBWA KOREA)
 
- 회사 차원에서 서로의 능력과 노하우를 나누는 것에 진심인 것 같아요. 사내 교육뿐만 아니라 2003년부터 광고인을 꿈꾸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주니어보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신다고요. 무려 20년이란 시간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진행하고 있나요?

: 사내 사원, 대리, 차장급을 모두 교육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주니어보드는 회사 밖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거예요. 현업에 계신 TBWA 직원분들이 15명의 학생에게 6개월 정도 강의와 멘토링을 해주는 프로그램인데요. 대학생 중에서 광고에 흥미가 있거나 광고를 꿈꾸는 친구들이 지원해요. 그 학생들에게 광고가 뭔지 설명을 해주고, 발표 기회도 주고요. 또 몇백 명의 청중 앞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스스로 한계를 깨보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어요.

이런 자리가 있으니 저희도 배우는 게 많아요. 요즘 친구들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게 되고 새로운 생각을 배우게 되고요. 특히 연차가 높으신 분들이 대학생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가 없잖아요. 광고는 트렌드에 민감한 업종인데 얘기를 들으면서 아이데이션 할 수 있죠. 그렇게 주니어보드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인턴이나 신입사원으로 지원하기도 해요. 주니어보드 출신의 사원급 직원이 현재 10명이 있어요.

- 지금도 높은 지원율을 보이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렇게 대학생뿐만 아니라 TBWA KOREA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요. 인사팀으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서 많이 고민하고 발전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회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주니어 리프레시 휴가도 추가했고, 4.5일제도 새로 생겨난 제도인데요. 이처럼 매년 복리후생을 하나씩 만들고 있어요. 더 일하기 좋은 회사로 만들고 싶은 노력이죠. HR팀이 직원들에게 더 오래 남을 수 있고, 좋게 기억할 수 있는 회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 기억해 주세요!

TBWA KOREA 사무실 전경 (자료=TBWA KOREA)
장경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