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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른아홉, 신입 연봉 받고 커리어를 바꿨다
[직장해방일지] "원하는 삶이 있다면 떠들고 다니기로 했어요"
2024. 04. 11 (목)
FIND YOUR PLANET.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직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잡플래닛의 목표인데요. 취업과 퇴사, 이직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 ‘내게 딱 맞는 행성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생각해보면, 제법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니까, 본인만의 여정에 나선 우리 독자 요원님들은 모두들 로맨티시스트인 셈이죠. 잡플래닛을 지키는 JP요원보다 훨씬 더요!
<컴퍼니타임스>는 각자의 행성을 찾고 있거나, 결국 찾아냈다고 외치는 독자 요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하여 스타트를 끊게 된 독자 인터뷰 시리즈 ‘나의 직장해방일지’.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 <주간 컴퍼니타임스> 구독자분들을 대상으로 사연을 받았는데요. 정말 많은 독자 요원들의 신청이 이어졌어요. 때론 유쾌하고 때론 처절한 우리네 파란만장 이직·퇴사 스토리, 하나하나씩 같이 귀 기울여 봐요. 이 모든 각자의 우주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삶의 영감을 발견할지도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직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잡플래닛의 목표인데요. 취업과 퇴사, 이직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 ‘내게 딱 맞는 행성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생각해보면, 제법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니까, 본인만의 여정에 나선 우리 독자 요원님들은 모두들 로맨티시스트인 셈이죠. 잡플래닛을 지키는 JP요원보다 훨씬 더요!
<컴퍼니타임스>는 각자의 행성을 찾고 있거나, 결국 찾아냈다고 외치는 독자 요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하여 스타트를 끊게 된 독자 인터뷰 시리즈 ‘나의 직장해방일지’.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 <주간 컴퍼니타임스> 구독자분들을 대상으로 사연을 받았는데요. 정말 많은 독자 요원들의 신청이 이어졌어요. 때론 유쾌하고 때론 처절한 우리네 파란만장 이직·퇴사 스토리, 하나하나씩 같이 귀 기울여 봐요. 이 모든 각자의 우주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삶의 영감을 발견할지도요!

가끔은 일에도 ‘관성’이 작용하는 게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삶에서 의미가 있고 좋아서 하는 건지, 오래 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하고 있는지 고민되는 순간이 있거든요.
연차가 쌓일수록 주니어 때와는 또 다른 고민이 어깨를 무겁게 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 직업이 내 커리어의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곤 하죠. 하지만 쌓아놓은 경력을 내버려두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한 발 떼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10년 이상 쌓아온 경력을 내려놓은 뒤, 다른 업계로 용감하게 이직했던 독자 요원의 사연이 <컴퍼니 타임스>에 도착했어요.
연차가 쌓일수록 주니어 때와는 또 다른 고민이 어깨를 무겁게 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 직업이 내 커리어의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곤 하죠. 하지만 쌓아놓은 경력을 내버려두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한 발 떼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10년 이상 쌓아온 경력을 내려놓은 뒤, 다른 업계로 용감하게 이직했던 독자 요원의 사연이 <컴퍼니 타임스>에 도착했어요.
✉️ 2005년 출판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줄곧 종이책만 만들었어요.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직업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내 직업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코로나 직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비대면, 뉴노멀 같은 새로운 신조어와 온라인 플랫폼 위주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이 직업을 계속 하더라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적어도 한번은 다른 업계를 경험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콘텐츠 스타트업 ‘헤이조이스’의 기획자로 입사해 1년간 근무했습니다.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에서 출판편집자나 라이브 강연 기획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유저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스타트업 문화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1년 뒤에 본래 업계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서른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신입 수준의 연봉을 받고 다른 업계로 이직했던 경험은 제게 큰 자신감이 되어주었어요. 출판계에만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고요. 이때의 경험과 용기를 기반으로 50살이 되었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이 직업을 계속 하더라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적어도 한번은 다른 업계를 경험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콘텐츠 스타트업 ‘헤이조이스’의 기획자로 입사해 1년간 근무했습니다.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에서 출판편집자나 라이브 강연 기획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유저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스타트업 문화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1년 뒤에 본래 업계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서른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신입 수준의 연봉을 받고 다른 업계로 이직했던 경험은 제게 큰 자신감이 되어주었어요. 출판계에만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고요. 이때의 경험과 용기를 기반으로 50살이 되었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자 요원 이다희 님의 이야기예요. “서른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신입 수준의 연봉을 받고 다른 업계로 이직했던 경험이 이후에 큰 자신감이 되어주었어요”라고 전합니다. 다희 님의 용기 있는 경험담을 많은 분께 공유하고 싶어 직접 만나봤어요.

88만 원 세대 출판사 편집자의 직업 생활
- 10년 이상 출판업계에서 일하다가 커리어 전환을 하셨다고요. 연차가 쌓일수록 이직이 쉽지 않은데 정말 용기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출판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셨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처음부터 출판에 뜻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고요.(웃음) 책을 좋아하지만, 신문기자를 꿈꾸던 대학생이었어요. 전공이 신문방송학과였거든요. 그러다 제일 먼저 취업한 곳이 출판사여서, 편집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엉겁결에 이 일을 시작했죠.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지금은 세종서적이라는 회사에서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단행본이라 부르는, 서점에서 보는 일반적인 국내서와 번역서를 다 만들고 있고요. 편집팀장은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까지 다 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편집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다고 하셨잖아요. 출판사에 대해서도, 편집자의 일도 모르고 시작했던 첫 직장생활은 어땠나요?
20년 전 제 첫 월급이 80 몇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나이대별로 그 세대를 나타내는 별명이 붙고는 하잖아요. 저는 ‘88만 원 세대’라고 불렸거든요. 비정규직으로 살거나 살 예정인 청년세대를 일컫는 표현이죠. 출판 자체가 워낙 규모도 작고 영세한 업종이고, 소규모 회사가 많아서 10명만 넘어가도 중견으로 불렀는데요. 사회적으로도 근로기준법이 지금보다 잘 지켜지던 때도 아니었어요. 그래서인지 사회초년생 시기에 출판사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기도 했던 것 같아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도 많았고요. 경영난을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해보기도 했죠.
- 20년이 흐른 지금도 다시 출판업계에 계시잖아요. 분위기가 어떤가요? 그때와 달라졌나요?
많이 나아지긴 했죠. 그렇지만 인식이 변한 것 같진 않아요. 제 고향 친구들은 출판사와 인쇄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옛날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처럼 난롯불에 손 녹이는 열악한 환경이나, 윤전기 소리 나는 곳에서 일한다고 생각한 분도 있고.(웃음) 또 편집자를 단순히 ‘오타를 찾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는 친구도 많아요. 이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도 크진 않더라고요. 출판이 콘텐츠 업계 안에서도 작은 부분이니까요.
- 출판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아직 모르는 분들께 설명해 주신다면?
출판사는 투고나 광고를 받기도 하지만, 편집자가 직접 기획해서 책을 내기도 하는데요. 서점에서 보는 책 종류 중에 국내서가 있죠. 그중 소설 같은 문학은 작가가 출판사에 먼저 투고하지 않는 이상, 저희가 기획하긴 어려운 분야예요. 당연히 작가가 주제와 등장인물, 소재 등을 직접 짜고요. 하지만 문학 작품이 아닌 국내서는 출판사 내부에서 주제부터 제목, 내용까지 편집자가 기획한 뒤에 저자를 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예전엔 단순히 편집자라고 했다면 지금은 북에디터라고 부르거나, 기획 편집자라고 부르는 곳도 있더라고요. 영화감독이 영화 한 편을 기획하듯이, 출판사 편집자 손에서 책 한 권이 나오는 거예요.
출판 편집이라고 하는 일도 대학교 앞에서 제본을 맡기는 정도로 바라보시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책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하시는 분도 있고요. 책을 A4용지 가격 정도로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사실 책 한 권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고, 각 단계에서 전문가의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편집자와 디자이너, 마케터의 월급도 들어가고요. 사무실 유지비와 종잇값, 인쇄비, 유통비까지 다 포함돼 책이 세상에 나오는 거죠.
- 10년 이상 출판업계에서 일하다가 커리어 전환을 하셨다고요. 연차가 쌓일수록 이직이 쉽지 않은데 정말 용기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출판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셨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처음부터 출판에 뜻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고요.(웃음) 책을 좋아하지만, 신문기자를 꿈꾸던 대학생이었어요. 전공이 신문방송학과였거든요. 그러다 제일 먼저 취업한 곳이 출판사여서, 편집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엉겁결에 이 일을 시작했죠.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지금은 세종서적이라는 회사에서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단행본이라 부르는, 서점에서 보는 일반적인 국내서와 번역서를 다 만들고 있고요. 편집팀장은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까지 다 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편집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다고 하셨잖아요. 출판사에 대해서도, 편집자의 일도 모르고 시작했던 첫 직장생활은 어땠나요?
20년 전 제 첫 월급이 80 몇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나이대별로 그 세대를 나타내는 별명이 붙고는 하잖아요. 저는 ‘88만 원 세대’라고 불렸거든요. 비정규직으로 살거나 살 예정인 청년세대를 일컫는 표현이죠. 출판 자체가 워낙 규모도 작고 영세한 업종이고, 소규모 회사가 많아서 10명만 넘어가도 중견으로 불렀는데요. 사회적으로도 근로기준법이 지금보다 잘 지켜지던 때도 아니었어요. 그래서인지 사회초년생 시기에 출판사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기도 했던 것 같아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도 많았고요. 경영난을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해보기도 했죠.
- 20년이 흐른 지금도 다시 출판업계에 계시잖아요. 분위기가 어떤가요? 그때와 달라졌나요?
많이 나아지긴 했죠. 그렇지만 인식이 변한 것 같진 않아요. 제 고향 친구들은 출판사와 인쇄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옛날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처럼 난롯불에 손 녹이는 열악한 환경이나, 윤전기 소리 나는 곳에서 일한다고 생각한 분도 있고.(웃음) 또 편집자를 단순히 ‘오타를 찾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는 친구도 많아요. 이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도 크진 않더라고요. 출판이 콘텐츠 업계 안에서도 작은 부분이니까요.
- 출판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아직 모르는 분들께 설명해 주신다면?
출판사는 투고나 광고를 받기도 하지만, 편집자가 직접 기획해서 책을 내기도 하는데요. 서점에서 보는 책 종류 중에 국내서가 있죠. 그중 소설 같은 문학은 작가가 출판사에 먼저 투고하지 않는 이상, 저희가 기획하긴 어려운 분야예요. 당연히 작가가 주제와 등장인물, 소재 등을 직접 짜고요. 하지만 문학 작품이 아닌 국내서는 출판사 내부에서 주제부터 제목, 내용까지 편집자가 기획한 뒤에 저자를 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예전엔 단순히 편집자라고 했다면 지금은 북에디터라고 부르거나, 기획 편집자라고 부르는 곳도 있더라고요. 영화감독이 영화 한 편을 기획하듯이, 출판사 편집자 손에서 책 한 권이 나오는 거예요.
출판 편집이라고 하는 일도 대학교 앞에서 제본을 맡기는 정도로 바라보시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책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하시는 분도 있고요. 책을 A4용지 가격 정도로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사실 책 한 권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고, 각 단계에서 전문가의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편집자와 디자이너, 마케터의 월급도 들어가고요. 사무실 유지비와 종잇값, 인쇄비, 유통비까지 다 포함돼 책이 세상에 나오는 거죠.

푸른숲 출판사 편집부 재직 당시 업무 모습 (자료=이다희 님)
13년 차 편집자, 신입 연봉으로 이직한 이유는
- 사연을 읽어보니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활성화되며 출판 편집자로서 두려움이 있으셨다고요. 어떤 두려움이었나요?
코로나19로 인해 원격근무가 순식간에 활성화됐어요. 원격근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요. 당시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시작했는데요. 출판이라는 업종 자체가 아날로그 정서가 강해요. 요즘은 워크스페이스를 쓰는 회사가 많잖아요. 출판업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요. 사용하는 문서 툴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이 90%, 워드가 10%를 차지하니까요. 사내 메신저라고 해봤자 카카오톡을 쓰는 경우가 많았고요.
출판업계 대표님 중에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 운동권 출신이 많으세요. 나이대가 있으시다 보니 새로운 업무 방식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기회가 없으셨겠죠. 또 출판업계 사람들도 IT업계 사람들보단 기술적인 발전에 민감하지 않으시고요. 예를 들어 노션 같은 업무 툴을 잘 모르는 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업계인 거예요.
저 역시 비슷했어요. 다른 사람보다 유튜브도 늦게 보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됐어요. 그런데 TV보다 유튜브를 더 보게 되더라고요. ‘이상하다. TV 화면이 더 넓고 큰데, 왜 유튜브를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하게 됐죠. 그때쯤 책을 읽는 것도 점점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원격근무를 시작하며 아날로그 정서가 만연한 출판업계를 마주하게 되고, 저조차 온라인 콘텐츠 소비를 더 즐기게 되면서 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게다가 요즘 전자책 시장도 활성화 됐잖아요. 밀리의 서재나 리디 같은 전자책 플랫폼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출판계에서 반기지 않았어요. 그러다 전자책 시장이 커지고, 웹툰이나 웹소설까지 들어오면서 시장 규모 차이가 어마어마해진 거죠. 종이책은 10만 권 팔리면 대박인데, 전자책 시장에서는 몇천만 뷰, 몇억 뷰가 나오니까요. 또 한 작품이 잘 되면 드라마도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지죠. 이런 콘텐츠 업계의 변화를 2020년 한 해 동안 목격하면서 고민이 깊어졌어요.
-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느끼셨군요.
그렇죠. 저부터 책 보는 시간보다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많았으니까요. 책을 소비하는 방식도 예전에는 서점, 중고책방, 도서관 중 한 곳에 가야 했는데, 이제는 유튜브 영상부터 찾아봐요. 읽기 전에 책 내용을 대강 파악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출판 시장이 언제까지 갈까’하는 두려움이 생겨났어요.
또 다른 두려움은요. 과거엔 제 라이벌이 ‘다른 출판사의 다른 편집자’였어요.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고, 저와 비슷한 기획을 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같은 사람을 저자로 모시고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 연락해서 책을 먼저 내는 게 저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젠 같은 저자와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온라인에서 볼 수 있게 기획하면 확산력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잖아요. 종이책으로 만드는 거랑 웹으로 화면에서 보기 좋게 편집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에요. 섬네일도 만들어야 하고 사진 배치도 달라지죠. 이렇게 세상이 변화하는데, ‘종이책 만드는 출판 일만 계속 하는 게 맞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했죠.
- 두려움이나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사실 인생에서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약 스물아홉이었다면 학교도 다시 들어가 보고, 인턴도 여러 가지 하면서 인생의 방향성을 정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시절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39살에서 40살로 앞자리가 바뀌는 시기를 마주했는데요. 이젠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도전이나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든 산업이 온라인화되는 게 체감되는데, 직업적인 부분에서 온라인화할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에 저는 두려움이 컸으니까요.
직장인에게도 수명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있으면 오래 일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앞자리가 4로 바뀌며 직업 수명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일하는 자아’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는 걸 느끼면서도 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불안한 거예요.
제가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될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200년 된 우동집 장인이 될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 커리어를 한 번쯤 바꿔본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40살에 못 하면 45살, 50살에는 가능성이 더 줄어드니까요.
- ‘지금 하지 못 하면, 몇 년 뒤에는 시도할 가능성이 더 줄어든다’는 모든 직장인에게 필요한 조언이라 생각해요. 그럼 이직을 결심하고 어떤 일을 선택하셨나요?
지금은 컬리에 인수된 여성 커리어 플랫폼 ‘헤이조이스’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했어요. PM을 맡으며 콘텐츠 기획을 주로 했습니다. 저는 입사 전 헤이조이스 커뮤니티 멤버이자 헤비 유저였어요. 커뮤니티에 빨리 가입한 축에 속했고요. 커리어 고민이 짙어졌던 어느날, 헤이조이스 대표님 인스타그램에 채용공고가 뜨더라고요. 그 공고 속에 “이런 경험이 있으면 좋다”는 내용 중 출판이 있었는데요. 그걸 보곤 대표님께 “나이 제한 있나요?”라고 메시지를 직접 보냈죠. 없다는 답을 듣고 지원하게 됐어요.
- 다른 업계로 이직을 준비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졸업 직전에 출판업계로 들어와 10년 이상 계속 같은 업계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이력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부터 막막하더라고요. 또 사람이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하면, 마음속에서는 시도를 막는 핑계의 말이 올라오잖아요. 이런 점도 힘들었죠.
제가 헤이조이스 커뮤니티 멤버로 활동할 때 ‘네카라쿠배’에 다니는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났었거든요. 그런 친구들도 이 채용 공고에 많이 관심을 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뽑힐 거라고 큰 기대는 안 했어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작은 스타트업에서 저와 같은 헤비 유저 1명을 잃으면 고객이 한 명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 합격 여부에 대해 논의를 많이 하셨대요. 그래도 그만큼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핏이 잘 맞을 거라 생각해서 함께하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 사연을 읽어보니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활성화되며 출판 편집자로서 두려움이 있으셨다고요. 어떤 두려움이었나요?
코로나19로 인해 원격근무가 순식간에 활성화됐어요. 원격근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요. 당시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시작했는데요. 출판이라는 업종 자체가 아날로그 정서가 강해요. 요즘은 워크스페이스를 쓰는 회사가 많잖아요. 출판업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요. 사용하는 문서 툴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이 90%, 워드가 10%를 차지하니까요. 사내 메신저라고 해봤자 카카오톡을 쓰는 경우가 많았고요.
출판업계 대표님 중에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 운동권 출신이 많으세요. 나이대가 있으시다 보니 새로운 업무 방식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기회가 없으셨겠죠. 또 출판업계 사람들도 IT업계 사람들보단 기술적인 발전에 민감하지 않으시고요. 예를 들어 노션 같은 업무 툴을 잘 모르는 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업계인 거예요.
저 역시 비슷했어요. 다른 사람보다 유튜브도 늦게 보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됐어요. 그런데 TV보다 유튜브를 더 보게 되더라고요. ‘이상하다. TV 화면이 더 넓고 큰데, 왜 유튜브를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하게 됐죠. 그때쯤 책을 읽는 것도 점점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원격근무를 시작하며 아날로그 정서가 만연한 출판업계를 마주하게 되고, 저조차 온라인 콘텐츠 소비를 더 즐기게 되면서 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게다가 요즘 전자책 시장도 활성화 됐잖아요. 밀리의 서재나 리디 같은 전자책 플랫폼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출판계에서 반기지 않았어요. 그러다 전자책 시장이 커지고, 웹툰이나 웹소설까지 들어오면서 시장 규모 차이가 어마어마해진 거죠. 종이책은 10만 권 팔리면 대박인데, 전자책 시장에서는 몇천만 뷰, 몇억 뷰가 나오니까요. 또 한 작품이 잘 되면 드라마도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지죠. 이런 콘텐츠 업계의 변화를 2020년 한 해 동안 목격하면서 고민이 깊어졌어요.
-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느끼셨군요.
그렇죠. 저부터 책 보는 시간보다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많았으니까요. 책을 소비하는 방식도 예전에는 서점, 중고책방, 도서관 중 한 곳에 가야 했는데, 이제는 유튜브 영상부터 찾아봐요. 읽기 전에 책 내용을 대강 파악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출판 시장이 언제까지 갈까’하는 두려움이 생겨났어요.
또 다른 두려움은요. 과거엔 제 라이벌이 ‘다른 출판사의 다른 편집자’였어요.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고, 저와 비슷한 기획을 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같은 사람을 저자로 모시고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 연락해서 책을 먼저 내는 게 저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젠 같은 저자와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온라인에서 볼 수 있게 기획하면 확산력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잖아요. 종이책으로 만드는 거랑 웹으로 화면에서 보기 좋게 편집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에요. 섬네일도 만들어야 하고 사진 배치도 달라지죠. 이렇게 세상이 변화하는데, ‘종이책 만드는 출판 일만 계속 하는 게 맞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했죠.
- 두려움이나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사실 인생에서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약 스물아홉이었다면 학교도 다시 들어가 보고, 인턴도 여러 가지 하면서 인생의 방향성을 정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시절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39살에서 40살로 앞자리가 바뀌는 시기를 마주했는데요. 이젠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도전이나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든 산업이 온라인화되는 게 체감되는데, 직업적인 부분에서 온라인화할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에 저는 두려움이 컸으니까요.
직장인에게도 수명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있으면 오래 일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앞자리가 4로 바뀌며 직업 수명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일하는 자아’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는 걸 느끼면서도 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불안한 거예요.
제가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될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200년 된 우동집 장인이 될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 커리어를 한 번쯤 바꿔본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40살에 못 하면 45살, 50살에는 가능성이 더 줄어드니까요.
- ‘지금 하지 못 하면, 몇 년 뒤에는 시도할 가능성이 더 줄어든다’는 모든 직장인에게 필요한 조언이라 생각해요. 그럼 이직을 결심하고 어떤 일을 선택하셨나요?
지금은 컬리에 인수된 여성 커리어 플랫폼 ‘헤이조이스’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했어요. PM을 맡으며 콘텐츠 기획을 주로 했습니다. 저는 입사 전 헤이조이스 커뮤니티 멤버이자 헤비 유저였어요. 커뮤니티에 빨리 가입한 축에 속했고요. 커리어 고민이 짙어졌던 어느날, 헤이조이스 대표님 인스타그램에 채용공고가 뜨더라고요. 그 공고 속에 “이런 경험이 있으면 좋다”는 내용 중 출판이 있었는데요. 그걸 보곤 대표님께 “나이 제한 있나요?”라고 메시지를 직접 보냈죠. 없다는 답을 듣고 지원하게 됐어요.
- 다른 업계로 이직을 준비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졸업 직전에 출판업계로 들어와 10년 이상 계속 같은 업계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이력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부터 막막하더라고요. 또 사람이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하면, 마음속에서는 시도를 막는 핑계의 말이 올라오잖아요. 이런 점도 힘들었죠.
제가 헤이조이스 커뮤니티 멤버로 활동할 때 ‘네카라쿠배’에 다니는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났었거든요. 그런 친구들도 이 채용 공고에 많이 관심을 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뽑힐 거라고 큰 기대는 안 했어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작은 스타트업에서 저와 같은 헤비 유저 1명을 잃으면 고객이 한 명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 합격 여부에 대해 논의를 많이 하셨대요. 그래도 그만큼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핏이 잘 맞을 거라 생각해서 함께하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헤이조이스에서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 윤여순 님과 (자료=이다희 님)
- 사연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게 있어요. 13년 차 경력이 있음에도 신입사원 연봉으로 가셨다고요! 연봉이 크게 깎이는 걸 감수할 정도로 커리어 전환에 대한 마음이 크셨던 건가요?
저도 물론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웃음) 그때 전세로 집을 얻게 되면서 다달이 내던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됐어요. 또 결혼을 하지 않았었고, 부양할 가족도 없었기 때문에 저만 감당하면 됐죠. 생활 방식을 이리저리 빠르게 바꿔봐도 괜찮은 상황이었어요.
당시 저는 온라인 플랫폼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고 싶었어요. 이걸 어디 가서 돈을 지불하고 배우면 큰 비용을 써야 할 텐데, 회사에 들어가면 직접 현장 속에 들어가잖아요. 뒤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다 보게 되고요. 그래서 따로 배울 비용을 연봉에서 깎았다고 여겼어요.
이직한 후 개발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일하는 경험도 처음이었고, 슬랙이나 지라 같은 업무 툴도 처음 써봤어요. 또 생방송으로 유튜브에 송출하거나, 댓글 반응을 체크하는 일도 생소했고요. 출판업계에만 머물러 있으면 온라인 콘텐츠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도 몰랐겠죠?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일을 하는데, 돈까지 받네’라고 생각했어요.
- 새로운 경험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셨네요. 출판업계랑 일의 속도가 달라 힘든 부분은 없으셨나요? 종이책에 비해 웹에서 일어나는 일은 호흡이 진짜 빠르잖아요.
재미있었지만, 말 그대로 힘들긴 힘들었어요. PM을 맡고 나서 실시간으로 마음 졸이는 일이 많았거든요. 조회수는 몇인지, 댓글은 몇 개가 달렸는지 매일 신경 써야 하니까요. 유튜버가 왜 “좋아요, 구독, 알람설정”을 외치는지 알았다니깐요.(웃음)
‘사람이 24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야근과 주말 근무는 당연했고요. 벚꽃이 피든, 선거일이든 상관없이 늘 바쁘게 지냈던 것 같아요.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샴푸로 양치할 뻔 했다니까요.
저는 출판이 그렇게 느린 산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거든요. 하지만 월 단위로 움직이는 것과 일 단위로 움직이는 건 비교가 안 되더라고요. 또 고객이 저보다 훨씬 어린 분들이라 신조어도 찾아보고,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는 콘텐츠도 의무적으로 챙겨봤어요.
- 몸이 남아나지 않았겠는데요? 1년 후 그만두신 이유도 너무 바빠서였나요?
다행히 체력은 좋은 편입니다.(웃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배움이 주는 효과가 딱 1년이더라고요. 이 나이에 이 월급을 받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딱 1년이라고 느꼈어요. 온라인 플랫폼이 굴러가는 시스템도 어느 정도 알겠더라고요.
한 해가 지나고, ‘계속 이 업계에 정착하는 게 더 좋은가?’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었어요. 출판업계를 1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간다고 큰일이 생기거나 일이 아예 없을 것 같지도 않았고요. 10년 이상 탄탄하게 쌓아온 커리어가 있었으니까요.
- 아날로그 성격의 출판업계에서 온라인 콘텐츠 업계로 이직한 후 얻은 교훈이 있나요?
콘텐츠 기획이라는 게 분야는 다를 수 있어도 일의 본질은 같다는 거였어요. 담아내는 그릇이 다르니까, 그릇의 특성에 맞는 편집법을 고민하면 되는 거죠. 두 업계를 경험하며 종이책을 만드는 거나, 라이브 강연을 만드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서로 다른 업계에서 경험한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고 유튜브가 활성화되면서, 출판업계에서 영상 콘텐츠 제작 경험을 우대사항으로 뽑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는 종이책도, 영상 콘텐츠도 기획했다 보니 두 경력 시너지를 낸 거죠. 이 나이에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졌어요.
이 포트폴리오를 살린 덕분에, 지금 다니고 있는 출판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유튜브 채널 ‘MKTV’를 운영 중인 김미경 작가님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어요. 유튜브가 메인 콘텐츠인 회사 안에서 출판사 신고부터 로고 제작, 거래처 뚫기 등 모든 과정을 다 겪었고 출판 업무를 책임졌어요. 제가 맡은 ‘김미경의 마흔 수업’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까지 올라간 걸 봤고요.
저도 물론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웃음) 그때 전세로 집을 얻게 되면서 다달이 내던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됐어요. 또 결혼을 하지 않았었고, 부양할 가족도 없었기 때문에 저만 감당하면 됐죠. 생활 방식을 이리저리 빠르게 바꿔봐도 괜찮은 상황이었어요.
당시 저는 온라인 플랫폼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고 싶었어요. 이걸 어디 가서 돈을 지불하고 배우면 큰 비용을 써야 할 텐데, 회사에 들어가면 직접 현장 속에 들어가잖아요. 뒤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다 보게 되고요. 그래서 따로 배울 비용을 연봉에서 깎았다고 여겼어요.
이직한 후 개발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일하는 경험도 처음이었고, 슬랙이나 지라 같은 업무 툴도 처음 써봤어요. 또 생방송으로 유튜브에 송출하거나, 댓글 반응을 체크하는 일도 생소했고요. 출판업계에만 머물러 있으면 온라인 콘텐츠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도 몰랐겠죠?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일을 하는데, 돈까지 받네’라고 생각했어요.
- 새로운 경험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셨네요. 출판업계랑 일의 속도가 달라 힘든 부분은 없으셨나요? 종이책에 비해 웹에서 일어나는 일은 호흡이 진짜 빠르잖아요.
재미있었지만, 말 그대로 힘들긴 힘들었어요. PM을 맡고 나서 실시간으로 마음 졸이는 일이 많았거든요. 조회수는 몇인지, 댓글은 몇 개가 달렸는지 매일 신경 써야 하니까요. 유튜버가 왜 “좋아요, 구독, 알람설정”을 외치는지 알았다니깐요.(웃음)
‘사람이 24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야근과 주말 근무는 당연했고요. 벚꽃이 피든, 선거일이든 상관없이 늘 바쁘게 지냈던 것 같아요.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샴푸로 양치할 뻔 했다니까요.
저는 출판이 그렇게 느린 산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거든요. 하지만 월 단위로 움직이는 것과 일 단위로 움직이는 건 비교가 안 되더라고요. 또 고객이 저보다 훨씬 어린 분들이라 신조어도 찾아보고,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는 콘텐츠도 의무적으로 챙겨봤어요.
- 몸이 남아나지 않았겠는데요? 1년 후 그만두신 이유도 너무 바빠서였나요?
다행히 체력은 좋은 편입니다.(웃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배움이 주는 효과가 딱 1년이더라고요. 이 나이에 이 월급을 받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딱 1년이라고 느꼈어요. 온라인 플랫폼이 굴러가는 시스템도 어느 정도 알겠더라고요.
한 해가 지나고, ‘계속 이 업계에 정착하는 게 더 좋은가?’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었어요. 출판업계를 1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간다고 큰일이 생기거나 일이 아예 없을 것 같지도 않았고요. 10년 이상 탄탄하게 쌓아온 커리어가 있었으니까요.
- 아날로그 성격의 출판업계에서 온라인 콘텐츠 업계로 이직한 후 얻은 교훈이 있나요?
콘텐츠 기획이라는 게 분야는 다를 수 있어도 일의 본질은 같다는 거였어요. 담아내는 그릇이 다르니까, 그릇의 특성에 맞는 편집법을 고민하면 되는 거죠. 두 업계를 경험하며 종이책을 만드는 거나, 라이브 강연을 만드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서로 다른 업계에서 경험한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고 유튜브가 활성화되면서, 출판업계에서 영상 콘텐츠 제작 경험을 우대사항으로 뽑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는 종이책도, 영상 콘텐츠도 기획했다 보니 두 경력 시너지를 낸 거죠. 이 나이에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졌어요.
이 포트폴리오를 살린 덕분에, 지금 다니고 있는 출판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유튜브 채널 ‘MKTV’를 운영 중인 김미경 작가님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어요. 유튜브가 메인 콘텐츠인 회사 안에서 출판사 신고부터 로고 제작, 거래처 뚫기 등 모든 과정을 다 겪었고 출판 업무를 책임졌어요. 제가 맡은 ‘김미경의 마흔 수업’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까지 올라간 걸 봤고요.

최인아책방에서 저자와 함께 진행한 북토크 현장 (자료=이다희 님)
“원하는 삶이 있다면 일단 떠들어 보세요!”
- 다시 출판 업계로 돌아오기 전 다양한 경험에 도전하셨네요. 다희 님은 일뿐만 아니라, 삶에서 도전을 즐기는 편인가요? 커리어 전환이 모두에게 쉬운 도전은 아니잖아요.
원래 성격은 부모님이 “너는 공무원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매뉴얼대로 하는 걸 좋아해요. 창의력이 있거나 꽂히면 도발적으로 시도하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다른 업계로 이직했던 시기가 가장 과감한 도전이었고요.
그런 성격이던 제가 이렇게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사실 방탄소년단 덕분인데요.(웃음) 제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방탄소년단에 푹 빠져서 성격이 엄청나게 바뀌었어요. 세상 모든 게 다 열정적으로 보였거든요.
당시에 방탄소년단이 잘 되면서, ‘하이브’의 전신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규모가 커지고 있었어요. 그럼 저와 유관한 출판 업무도 언젠가 뽑지 않을까 예상했고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채용공고를 자주 들여다봤죠. 그런데 정말로 채용공고가 난 거예요! 그날 바로 이틀 연차를 내고 이력서랑 포트폴리오를 열심히 썼습니다. 5차가 최종 단계였는데 4차에서 아쉽게 떨어졌네요.(웃음)
그렇지만 전 엔터테인먼트 업계 경험도 없었고, 아무리 출판 업무라고 해도 제가 쌓아온 경력과는 업무가 다를 거란 말이죠. 그럼에도 무대포로 지원했더니 합격 연락이 오고, 4차까지 통과되니까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싶었어요. 저는 원래 내향적인 성격인데요. 그때 생각했죠. 이제는 ‘되고 싶은 게 있거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떠들고 다니자’라고요. 그럼 그 근처까지는 가는구나 느꼈어요. 저는 방탄소년단이 있는 사옥에 들어간 거잖아요?
- 다시 출판 업계로 돌아오기 전 다양한 경험에 도전하셨네요. 다희 님은 일뿐만 아니라, 삶에서 도전을 즐기는 편인가요? 커리어 전환이 모두에게 쉬운 도전은 아니잖아요.
원래 성격은 부모님이 “너는 공무원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매뉴얼대로 하는 걸 좋아해요. 창의력이 있거나 꽂히면 도발적으로 시도하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다른 업계로 이직했던 시기가 가장 과감한 도전이었고요.
그런 성격이던 제가 이렇게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사실 방탄소년단 덕분인데요.(웃음) 제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방탄소년단에 푹 빠져서 성격이 엄청나게 바뀌었어요. 세상 모든 게 다 열정적으로 보였거든요.
당시에 방탄소년단이 잘 되면서, ‘하이브’의 전신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규모가 커지고 있었어요. 그럼 저와 유관한 출판 업무도 언젠가 뽑지 않을까 예상했고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채용공고를 자주 들여다봤죠. 그런데 정말로 채용공고가 난 거예요! 그날 바로 이틀 연차를 내고 이력서랑 포트폴리오를 열심히 썼습니다. 5차가 최종 단계였는데 4차에서 아쉽게 떨어졌네요.(웃음)
그렇지만 전 엔터테인먼트 업계 경험도 없었고, 아무리 출판 업무라고 해도 제가 쌓아온 경력과는 업무가 다를 거란 말이죠. 그럼에도 무대포로 지원했더니 합격 연락이 오고, 4차까지 통과되니까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싶었어요. 저는 원래 내향적인 성격인데요. 그때 생각했죠. 이제는 ‘되고 싶은 게 있거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떠들고 다니자’라고요. 그럼 그 근처까지는 가는구나 느꼈어요. 저는 방탄소년단이 있는 사옥에 들어간 거잖아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서 받았던 합격 문자 (자료=이다희 님)
- 덕질이 인생의 큰 교훈을 가져다준 거네요?
그렇죠. 이 경험이 다른 업계로 이직할 때 큰 힘이 됐어요. 저는 대구에서 대학교를 졸업했는데요. 서울에는 인서울 출신이 많잖아요. 또 유학파도 얼마나 많아요. 저는 20대 때 지방대고, 유학도 안 다녀오고, 어학연수 경험도 없고, 자격증도 하나 없어서 섣불리 ‘난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포기한 적이 많았어요. 그러다 늦은 나이에 도전을 해봤는데 “이게 되네?”라는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도전하면 이뤄지는 경험을 하니까 어렸을 때 하고 싶던 일을 찔러보기라도 할 걸 후회가 되더라고요. 제가 인지도 못 하고 있던, 놓친 기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원하는 게 있으면 아무리 커 보여도 일단 떠들어보자’라고 결심한 거예요. 그럼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다가 소개라도 해줄 수 있고, 대신 전달이라도 해줄 수 있잖아요?
편집 일을 할 때도 예전 같으면 누구나 탐낼만한 저자를 섭외할 때 ‘우리가 제안한다고 되겠어?’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어차피 안 된다는 생각이 거의 99%였죠. 그래서 시작도 하기 전에 김이 빠지고, 해봤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알아서 포기한 일이 많아요.
전 이게 잘못된 생각이었단 걸 너무 늦게 의식화했어요. 이제는 되거나 안 되거나 결국 5:5의 확률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이후론 일단 시도해서 큰 저자 섭외도 하게 됐고요. 회사에서 인턴이나 주니어 친구들에게 쫄지 말라고, 실무는 일을 못 배웠으니 못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줘요. 이런 생각을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으면 그렇게 소극적으로 살지 않았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뻔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원하는 게 있으면 마음껏 말하고 다니세요! 어디서 어떻게 연결될지 몰라요. 정말로요.
그렇죠. 이 경험이 다른 업계로 이직할 때 큰 힘이 됐어요. 저는 대구에서 대학교를 졸업했는데요. 서울에는 인서울 출신이 많잖아요. 또 유학파도 얼마나 많아요. 저는 20대 때 지방대고, 유학도 안 다녀오고, 어학연수 경험도 없고, 자격증도 하나 없어서 섣불리 ‘난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포기한 적이 많았어요. 그러다 늦은 나이에 도전을 해봤는데 “이게 되네?”라는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도전하면 이뤄지는 경험을 하니까 어렸을 때 하고 싶던 일을 찔러보기라도 할 걸 후회가 되더라고요. 제가 인지도 못 하고 있던, 놓친 기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원하는 게 있으면 아무리 커 보여도 일단 떠들어보자’라고 결심한 거예요. 그럼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다가 소개라도 해줄 수 있고, 대신 전달이라도 해줄 수 있잖아요?
편집 일을 할 때도 예전 같으면 누구나 탐낼만한 저자를 섭외할 때 ‘우리가 제안한다고 되겠어?’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어차피 안 된다는 생각이 거의 99%였죠. 그래서 시작도 하기 전에 김이 빠지고, 해봤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알아서 포기한 일이 많아요.
전 이게 잘못된 생각이었단 걸 너무 늦게 의식화했어요. 이제는 되거나 안 되거나 결국 5:5의 확률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이후론 일단 시도해서 큰 저자 섭외도 하게 됐고요. 회사에서 인턴이나 주니어 친구들에게 쫄지 말라고, 실무는 일을 못 배웠으니 못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줘요. 이런 생각을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으면 그렇게 소극적으로 살지 않았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뻔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원하는 게 있으면 마음껏 말하고 다니세요! 어디서 어떻게 연결될지 몰라요.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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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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