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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내파 개발자, 빅테크 '메타'로 해외 이직한 비결은
[커리어체인저] "해외 빅테크 기업문화 경험해보니, 가치관 달라졌어요"
2024. 09. 03 (화)
‘지금 걷는 이 길이 과연 내게 잘 맞는 길일까?’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커리어 고민을 겪습니다. 누군가가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의문과 갈증을 조용히 덮어둘 때, 또 다른 누군가는 과감히 방향키를 꺾어 완전히 새로운 길을 탐험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커리어를 주체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거죠.
거침없이 ‘변화’를 택한 이들을 우리는 이제부터 커리어체인저(Career Changer)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낯선 업무 환경,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않았던 직무…용감한 도전에 나선 커리어체인저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도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을 발견하기를!

여러분의 세계는 얼마나 크고 넓은가요? 우린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알고보면 자신이 쳐놓은 울타리의 크기만큼 내가 누릴 세상의 넓이가 정해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이직할 회사를 찾아볼 때 ‘집에서 n분 내 출퇴근이 가능한 곳’으로 기준을 세워두는 것만 해도 그렇죠. 지구는 80억 명이 동시에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데 말입니다.
오늘 만나볼 커리어체인저는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세상 바깥으로 자신을 던지는 모험가였어요. 10년간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거치며 개발자로 커리어를 쌓다가, 글로벌 빅테크의 기업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바다 건너 해외로의 이직을 결심했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운영하는 메타(Meta)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헤드쿼터인 싱가포르 법인에서 더 넓고 깊은 경험을 쌓고 돌아온 그는 ‘메타에서의 시간이 일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사고방식을 확장해줬다’고 말하는데요.
현재는 국내 기업에서 개발팀을 직접 빌딩해 이끌고 있는 글로벌 모험가, 한빛앤 개발팀장 김민혜 님의 종횡무진 커리어 스토리를 하나하나 함께 되짚어 봤어요.
개발자 커리어의 시작은
쓸모를 증명하는 것에서부터
반갑습니다. 민혜님은 대학에서부터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이후 십수년간 개발자로 쭉 커리어를 쌓아오셨다고요. 원래부터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꿈이 있으셨던 건가요?
사실 전 개발자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고등학생 땐 디자이너가 꿈이었거든요.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하려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차선책으로 공과대학에 입학했어요. 전공을 뭘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1학년 때 컴퓨터 그래픽스 관련 세미나를 듣고 디자인이랑 조금이나마 관련이 있을 것 같단 생각에 컴퓨터 전공을 골랐죠. 어릴 때부터 게임을 많이 해서 나름 컴퓨터와 친하다고 생각해 선택한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전공 공부를 하면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웃음)
막상 과에 진학하고 보니 특기생이나 천재 같은 학생들이 많아서 좌절감을 느꼈어요. 매일 프로젝트하느라 밤새는 일도 태반이었고요. 당시에만 해도 지금처럼 개발이 인기 있는 직군은 아녔어요. 3D 업종이라는 말까지 있었으니까요. 개발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서 다른 쪽으로 취업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막상 그동안 배운 걸 못 써먹는다 생각하니 아깝더라고요. 도망치는 느낌이 드는 게 싫어서 게임 개발자로 취업했어요.
그렇게 해서 들어간 첫 직장은 어떤 회사였나요?
크래프톤에 신입으로 입사했어요. 지금은 크래프톤이 굉장히 큰 회사이지만, 제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블루홀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벤처였어요. 직원 수가 100-200명 규모였고 당시에 신입을 저 포함 2명 뽑았어요. 제가 같이 일했던 분들은 모두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개발자였는데, 회사에서도 신입을 처음 받는 거라 온보딩이랄지 교육 체계랄 게 별로 없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각 대학 졸업한 신입 개발자한테 뭘 시켜야 하나, 선배들도 막막하셨을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일해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일을 시키는 것도 일이잖아요. 다들 바쁜데 괜히 짐이 되는 것 같고, 모르는 건 너무 많고, 선배들과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한데도 자꾸만 비교하면서 마음이 조급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선배들이 언급했던 책들은 다 읽어보고, 주말마다 스터디 모임에 나가면서 열심히 공부 했어요.
제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잘한 버그를 수정한다든지, 내부에서 쓰는 툴을 자진해 개발한다든지,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했죠. 그러면서 차츰 비중있는 작업들을 맡게 되고, 게임에서 실제로 쓰는 기능을 개발하고…조금씩 역할이 늘어났어요.
신입이 주체적으로 일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대단하신 걸요. 그런데 다음 직장은 게임 회사가 아니었다면서요.
새로운 게임 하나가 출시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요. 모바일 게임 이후부터는 주기가 짧아지긴 했는데, 제가 개발했던 건 ‘테라' 라는 MMORPG 게임이었고 출시까지 4년이 넘게 걸렸어요. 저는 개발 중간 단계에 입사해 운 좋게 출시까지 경험하긴 했지만, 현장에서는 개발 도중 출시가 무산되는 게임도 무척 많아요. 운이 나쁘면 경력이 10년인데 출시한 게임이 하나도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거죠. 물론 이런 케이스가 흔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요.
사이클이 더 빠른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스티브잡스의 애플이 세상에 아이폰을 선보였고, 우리나라에도 아이폰이 출시됐어요. 구글에서도 안드로이드라는 모바일 운영체제를 선보였죠. 모바일 개발 붐이 일기 시작한 거예요. 더 많은 기회가 열리겠다는 직감이 들었고,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으로 이직했어요. 새 직장에선 애드테크(AD-Tech, 광고 기술) 개발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새로운 도메인에서 개발 업무를 맡아보니 어떠셨나요?
처음엔 너무 어려웠어요. 광고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진입 장벽이 꽤 높거든요. 모든 단어가 생소하니까 회의에 들어가면 반 이상은 못 알아듣는 얘기였어요. 도메인 측면에서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죠.
하지만 개발 측면에서는 게임 회사에서 베테랑 개발자들에 둘러싸여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열심히 공부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사용하는 개발 언어도 다르고 프로그래밍 환경도 달랐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습득이 되더라고요. 이전까지 기라성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으려 공부했던 것들이 빛을 발한 시기였던 거 같아요. 당시에 모바일 개발 초창기라서 참고할만한 자료도 별로 없던 시기였는데, 안드로이드와 iOS 모바일용 광고 SDK(Software Development Kit,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 키트)를 맡아서 개발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Casual Connect Asia 행사 부스에서 우리가 만든 솔루션을 소개 하는 모습
그럼 민혜님이 주니어 단계를 넘어 주도적으로 본인의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게 된 시점은 대략 언제부터였나요?
스타트업 공동창업 때부터라고 볼 수 있을 듯하네요.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사내벤처를 만들었거든요. 당시 서버 개발로 직무를 옮겨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서비스에 적용되는 신규 광고 서버 개발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한 시점이었어요. 어느날 팀장님이 ‘경영진 직속으로 글로벌 사업을 펼칠 사내벤처를 같이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 주셨죠. 글로벌 사업을 한다는 것만 정해져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는데, 덜컥 하겠다고 했어요.
진짜 ‘창업’을 하셨네요.
그쵸. 회사명과 제품명도 제가 지었어요. 정해진 것은 ‘글로벌 환경에서 회사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뿐이었거든요.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유저 리서치하고, 모든 작업들을 밑바닥부터 경험했어요. 그렇게 사내벤처가 착실히 성장해서 카카오와 합병 후에는 별도법인으로 독립까지 하게 됐죠. 물론 모회사에 남겠다고 한 인원도 많았어요. 사내벤처 때부터 시작해 나와서까지 계속 함께 한 사람은 저랑 팀장님 밖에 없었죠.
대기업의 든든한 지붕을 벗어난다는 게 두렵진 않으셨어요?
그때는 일에 굉장히 몰입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회사의 이름값이나 복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았어요. 제로 투 원(Zero to One)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 글로벌 비즈니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더 초점을 맞췄어요. 별도 법인으로 나오면서 사무실을 구하고, 인테리어도, 회사 집기를 구매하는 것도 모두 제가 직접 했는데, 저는 그 모든 과정이 정말 재미있고 새로웠어요. 하나의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됐죠. 글로벌 비즈니스 제품을 만드는 경험을 하면서, 그 전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다양한 요구사항들과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글로벌 빅테크 기업,
해외이직으로 꿈을 향해 다가가다
민혜님의 커리어 여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죠.
맞아요.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시기에 동남아 지역 고객사 기술지원을 위해 싱가포르로 1년 반 동안 파견을 가게 됐어요. 외국에서 살아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고, 사실 그다지 풍족한 여건으로 간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저 좋더라고요. (웃음) 매순간 맞닥뜨리는 문화 차이가 무척 흥미로웠고, 다양성이 훨씬 존중 받는 분위기도 좋았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다시 싱가포르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싱가포르엔 글로벌 기업들의 아시아 지역 헤드쿼터가 상당수 자리잡고 있거든요.
당시 제가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도 이미 좋은 회사였기 때문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아니면 회사를 반드시 옮겨야 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이직 목표를 글로벌 빅테크 기업으로 잡아두고 있었죠. 사실,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꿨던건 3년 차 때부터였어요. (웃음) 그런데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10년이 흘러버린 거예요.
더 늦기 전에 도전해야겠다, 생각하던 찰나에 페이스북 피드를 보다가 메타 싱가포르 법인 팀에서 사람을 뽑고 있다는 글을 봤어요. 공고를 살펴보니, 제가 그동안 했던 경험들을 되게 잘 써먹을 수 있는 포지션이더라고요. 곧장 지원했죠.
어떤 포지션이었나요?
‘파트너 엔지니어'라고, 순수 개발 직군이 아닌 하이브리드 개발 직군이었어요. 비즈니스와 개발을 둘 다 잘 알아야 하는 포지션이었죠. 게임 관련 도메인이었고요.
글로벌 디지털 광고계의 핵심 플랫폼인 페이스북에서, 게임과 관련된 포지션에, 여러 비즈니스적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일! 딱 저를 위한 자리 같았어요. 전 게임 개발 경험도 있고, 스타트업에서 게임 회사를 대상으로 한 B2B 분석 마케팅 솔루션을 만들었거든요. 업무 범위가 방대한 스타트업에서 개발은 물론이고 기술 영업과 지원까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고요. 메타에서 채용중인 포지션은 이전까지의 제 커리어를 모두 녹일 수 있는 역할이었던 거죠.
신기할 정도로 적합도가 높았네요! 민혜님이 경험한 메타의 채용 프로세스는 어땠나요? 입사 문턱이 어느 정도로 가파른지 궁금해요.
서류 지원 후 1차 스크리닝 인터뷰를 하고요. 2차부터는 비행기표와 호텔을 잡아줘요. 그리고 현지에서 하루 종일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한나절 동안 5~6건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걸로 기억해요. 알고리즘 코딩 인터뷰, 시스템 디자인 인터뷰, 프레젠테이션, 팀 인터뷰 등 종류도 다양해요.
채용 과정 중 어떤 단계가 가장 어렵게 느껴지셨어요?
알고리즘 코딩 인터뷰가 가장 큰 부담이었어요. 제일 자신 없는 부분이었거든요. 퇴근 후 그 어떤 약속도 잡지 않고 매일 인터뷰 준비에 몰입했어요. 모의 테스트 플랫폼을 활용해 꾸준히 연습하니까 점차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알고리즘 코딩 인터뷰에 대한 압박을 느끼는 개발자분들이 많으실 텐데, 연습만이 살 길인 듯합니다. (웃음)
또 한 가지 긴장됐던 부분은 프레젠테이션이었어요. 메타에서 제시한 주제에 대해 비즈니스 제안을 하는 거였는데요.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데, 제가 평소 영어에 자신 있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인터뷰를 준비하는 기간동안 프레젠테이션 연습 장면을 녹화해 모니터링하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입사 후 진행되는 Bootcamp 참여 차 방문했던 Meta 실리콘밸리 본사에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입사하셨는데, 메타에서의 직장생활은 어떠셨어요?
너무 좋았어요. 왜 더 일찍 도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만큼요. 세계 각국에서 모인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이 정말 특별했어요. 일하는 문화도 국내 회사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어요. 굉장히 주도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어요. 큰 틀에서의 목표는 있지만, 골(Goal)을 달성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지는 모두 본인이 직접 정하는 거예요.
매니저는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이라기보단, 팀원의 성장을 이끌어내고 성과를 잘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에 더 가까워요. 우리 부서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것 같은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먼저 매니저와 논의해요. 실제로 얼만큼의 임팩트가 있을지, 다른 업무에 비해 우선순위가 어떤지 등을 파악하고 협의하는 거죠. 그 다음부턴 전적으로 제가 책임지고 그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처음엔 이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이거 해도 되냐 저거 해도 되냐 매니저에게 물어봤는데, 자꾸 허락받으려 하지 말라더군요. 매니저에게 ‘이 일을 해도 되나요?’ 라고 허락 받기 보다는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은데 관련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 해야 하는거죠.
일하는 방식의 차이가 민혜님 개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제가 한국에서 일하던 시기에는 개발팀 내부에서 제가 거의 유일한 여자일 정도로 남초 문화였고, 대학 때부터 개발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별로 없었어요. 늘 부족하다고 느껴서 더 열심히 했지만 ‘난 개발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라는 회의감에 자주 빠져들곤 했죠.
그런데 메타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각자의 방식이 충분히 존중받고 있더라고요. 개발자라고 해서 꼭 ‘전형적인 개발자다움’을 갖춰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방식으로 회사에 적응해 성과를 인정 받고 승진까지 해보니, 뭐든지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시야가 넓어졌어요.
메타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뭔가요.
모든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데,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일을 얘기해보고 싶네요. 메타에 입사하고 보니, 저처럼 한국에서 10년 동안 일하다 해외로 이직한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최소 대학교나 대학원을 미국에서 나온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10년 했으니 아는 건 많은데, 영어로 말이 잘 안 나오니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그 답답함 때문에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죠.
어느 날, 회사 행사를 통해 알게된 다른 팀 동료에게 답답함을 토로했는데, 그 친구도 영어로 업무와 생활을 하는 건 메타가 처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느끼기에 그 친구는 정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고, 최근에는 매니저로 승진까지 하며 멋지게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죠. 그 친구가 자기도 처음에 입사해서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시기가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주는데 무척 위안이 되고 용기가 샘솟더라구요.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비영어권 출신 직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이 일을 계기로, 비영어권 출신 직원들이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도록 사내에 ESL(English as my Second Language)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비영어권 출신으로 임원까지 성공적으로 승진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게재하기도 하고, 동기부여가 될 만한 다양한 활동·프로그램을 운영했죠. 이런 프로젝트를 전개하면서 동기부여, 매니징 분야에 대한 관심도 커졌어요.

Thailand Game Show에 출장 갔을 때 회사 로고로 커스텀한 툭툭에 앉아
내가 원하는 길을 찾아,
커리어 패스를 다시 쓰다
메타에서의 직장생활을 마치게 된 건 언제쯤의 일인가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지난 22년 11월에 실리콘밸리에서 대규모 정리해고 바람이 일었어요. 저도 그때 조직을 떠나야 했죠. 제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준 사건 중 하나예요. 그간 저는 늘 회사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왔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직장생활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거든요.
이 일을 겪고 나서는 커리어에 대한 생각이 재정립됐어요.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좀 더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정말 심경이 복잡하셨을 것 같아요. 이후에는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취업 비자로 싱가포르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3개월 안에 새 직장을 구해야 했어요. 그게 아니면 싱가포르를 떠나야 했죠. 당시 같이 메타를 떠나게 된 매니저가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첫 번째 직원으로 제게 오퍼를 주셨어요. 그는 메타에서 저를 채용한 매니저이기도 했는데,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다시 한 번 인정 받은 것 같아 기뻤죠. 그곳에서 1년간 AI 기술 응용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그 무렵 챗GPT가 등장하면서 불과 1년 새에 AI분야에 거대한 변화가 일었어요. 매일 자고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했을 정도니까요. 워낙 흐름이 빠르다보니 제가 몸담고 있던 스타트업도 여러 차례 피벗을 했어요. 많은 스타트업이 그렇듯, 투자 이슈가 생기면서 다시 잡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어요.
계속해서 AI와 관련된 일을 할 지, 싱가포르가 아닌 다른 나라로 갈 지, 매니징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에 합류할 지, 여러 옵션을 두고 고민하다가 지금 회사로부터 개발팀을 처음부터 세팅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메타에 있을 때부터 매니저 경험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고, 제가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좋은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현 직장에 합류하신 지 5~6개월 정도 되셨다고요. 한동안 해외에서 일하다 다시 국내로 오신 거라, 새삼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와 분위기나 환경이 달라서 오히려 외국에 와 있는 느낌이에요. (웃음) 저는 지금까지 계속 디지털 기반의 IT기업에서 일했는데, 한빛앤은 모회사가 출판 기업이라 제가 그간 겪어본 회사들보다는 전통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 회사 분위기에 잘 녹아들면서도 우리에게 적합하고 효율적인 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제법 재미있어요.
한빛앤에서 현재 어떤 일들을 진행하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얼마 전 공개채용을 진행해 팀 빌딩을 마무리했어요. 채용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도맡아서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우리 회사의 현상황에 잘 맞으면서, 제가 시도해보고자 하는 방식을 잘 따라와 줄 수 있는 분들, 그리고 서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분들을 모시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죠.
하반기 중에는 본격적인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은 기존 레거시를 정리하면서 앞으로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기반을 쌓는 작업들을 하려고 합니다.

©컴퍼니타임스
민혜님의 지난 커리어 여정을 쭉 따라와보니, 정말 치열한 시간들을 보내오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커리어 생애 그래프를 그리면 꽤나 다이나믹한 굴곡이 그려질 것 같은데요. 모든 시간을 통틀어 민혜님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은 뭘까요?
모든 사건, 모든 선택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서 하나만 꼽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래도 메타에 입사했던 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 회사에 다니면서 제 자신이 크게 바뀌었거든요. 커리어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이 달라졌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제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었어요. 이전의 저는 부족한 자신감을 유명한 회사의 간판으로 가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동료들에게 인정 받고, 굵직한 성취를 많이 이루었는데도 자꾸 제 부족한 부분만 보였거든요.
메타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너는 어떤 사람이야?’라는 거였어요. 저는 그동안 그저 맡은 일을 열심히 해왔지, 제가 어떤 사람이고 뭘 잘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죠. 메타에서 일하는 동안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개개인 모두 자신만의 특별함과 강점으로 팀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커리어와 인생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영감과 용기를 얻었고요.
돌이켜보면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과감한 선택도 참 많이 했는데요. 그 모든 선택과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된 거니까, 후회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성장할 지는 결국 본인이 결정하는 거잖아요. 남들이 모두 훌륭하고 입을 모을 만한 선택지를 고른대도, 그 선택에 나의 의지가 없었거나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선택이 아니게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이직 시장에서 개발자 채용 붐이 꺼지고, 이제는 채용 한파가 불고 있단 얘기가 많아요. 민혜님은 ‘개발자가 3D 업종으로 분류되던 시절’과 개발자 황금기, 대량 정리해고라는 어려운 시기까지 모두 겪어보셨는데요. 지금과 같은 채용 한파를 개발자들이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 지 조언해주실 수 있을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개발자가 유망직종이 아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15년간 계속 개발자로 일해왔어요. 그동안 개발자라는 직종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계속 달라졌죠. 외부의 평가에 흔들릴 필요 없어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내 강점은 무엇인지를 계속 강화해 나가는 게 중요하죠.
개발 분야는 갈수록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잘 하는건 불가능해요. 대신 내가 했던 일에 대해서 만큼은 정확하게 알아야 하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단순히 이력서를 채우기 위한 프로젝트를 하기 보다는 내가 정말 관심이 있는 분야를 파고드는 것이 좋아요. 면접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본인이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일,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눈빛이 벌써 다르거든요.
꼭 유명한 회사에 가야지, 더 높은 연봉을 받아야지, 이렇게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성장하기 위해 어떤 경험을 쌓아야 할 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제가 메타에 입사할 수 있었던 건, 제가 누구보다 뛰어난 인재여서라기 보다는 그 자리에 잘 맞는 경험과 커리어를 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쌓은 경험과 능력을 잘 연결 지어서 본인만의 강점으로 그려나가 보시길 바라요.
앞으로 민혜님의 커리어 목표는 무엇인가요?
팀장을 맡은 지 얼마 안 됐으니, 우리 팀을 강력한 팀으로 만들어서 성과를 내는게 1차 목표예요.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으로 개발자들의 일하는 방식도 앞으로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업계에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도록, 혁신적이면서 즐겁게 일하는 팀을 만들고 싶어요.
박지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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