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합격을 알리는 전화부터 묘한 느낌이 드는 회사였다. 면접 시간에 절대 늦으면 안 된다는 칼 같은 말투에 수화기 저편에서부터 긴장감이 느껴졌다.
면접 당일, 절대 늦으면 안 된다는 인사 담당자의 말에 일찌감치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는 조용했다. 20대로 보이는 직원들이 많이 눈에 띄었지만, 그들의 얼굴 위로 칙칙한 회색 필터가 내려앉은 듯했다.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섞인 공기를 뚫고 인사 담당자가 안내한 면접 장소로 갔다. 면접장이라고 할 것도 없이,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한편에 가림막을 설치해 논,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인 공간이었다.
"쾅!"
갑자기 사무실 저편에서 테이블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회의 중, 아마도 팀장쯤 됐을 법한 사람이 테이블을 내리치고 소리를 지르며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깜짝이야…'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면접관을 만날 수 있었다.
"혈액형이 뭐예요? 술, 담배는 해요? 가족 관계는? 부모님 직업과 나이는?"
신상에 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업무를 하는데 혈액형이 무슨 상관인지, 회사와 직원의 혈액형 궁합이라도 보려는 건지, 사주를 보는 회사도 있다고 들었으니 혈액형 궁합 정도는 괜찮은 건지, 부모님 직업과 나이는 또 무슨 상관인지, 다른 가족 관계는 왜 궁금한지 알 수 없었지만,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면접을 보러 온 것은 나였으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왜? 본인은 뭐 지병이 있나?"
사무실에 한쪽에 얇은 칸막이로 구분된 공간, 시선은 가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리까지 막아줄 수 없는, 모든 직원이 면접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공간에서, 부모님이 어떤 병으로 돌아가셨고 개인적으로 어떤 지병이 있는지까지 물어보는 면접은 불편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결혼은 했어요? 아 이혼을 했구나…이혼은 왜 했지? 결혼은 다시 할 거에요?"
백번 양보해 결혼 여부까지는 궁금할 수 있다고 치자. 왜 전 직원 앞에서 이혼 사유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가. 지금 결혼정보회사 회원 면접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일하고 월급 받는 직원 면접을 보러 와서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왜 이혼을 했고, 그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구구절절 말해야 하느냔 말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점점 뒷골이 당겨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점을 찍은 것은 그다음 질문이었다.
"애는 없죠?"
"아이가 있는데요."
애가 있다고 답을 하자, 면접관은 갑자기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애 있는 사람은 안 뽑는데, 이력서에 왜 애 있다는 얘기를 안 썼어?"
면접관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이 사람 누가 서류 합격시켰어? 누구야?!"
인사 담당자가 불려 왔고, 내 이력서를 뽑아 면접을 잡았다는 그는 면접 자리로 불려와 혼이 나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나 때문에 누군가 내 눈앞에서 '탈탈' 털리고 있는 것을 보자 혼란스러웠다. 입사 지원을 하면서 이력서에 애 있다는 얘기를 적었어야 했단 말인가? 아니 어느 항목에? 이력서에 '자녀 유무'를 적는 항목이 있었는데 내가 놓쳤단 말인가? '학력'이나 '경력', 아니면 '자격증' 사이 어딘가에 적어 놓아야 할, 서류 합격 여부를 결정지을 중요한 사안이었는데, 내가 놓쳤단 말인가?
내가 무슨 국정원에 취업하거나 해외 전쟁터에 파병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직원 수십여 명 남짓의 중소기업에 입사하는데, 애 있다고 미리 적어 놓지 않은 것이 합격 여부를 떠나서, 사람 하나가 '탈탈' 털릴 만한 잘못을 한 것이란 말인가? 내 아이의 존재 여부가 다른 누군가를 '탈탈' 털릴 만큼 잘못한 일이라는 것인가?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아니, 부모님 사망 원인을 물어봤을 때 벌떡 일어나 나갔어야 했다.
40년 같은 40분의 면접이 끝나고 회사 밖으로 나오자, 밝은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집에 가는 길, 아이에게 줄 간식이라도 잔뜩 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