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밥은 내가 SAP니다"에서 찾은 장기근속의 비밀

[잡플래닛어워드] SAP코리아 안상원 CFO

2023. 09. 18 (월)
잡플래닛 컴퍼니타임스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구성원들이 남긴 평가를 토대로 일하기 좋은 회사를 선정한다. 익히 알려진 좋은 기업이 계속 좋겠지 싶지만 결과를 보면 의외인 경우가 많다. 시기별로 평가가 이뤄지는 터라 회사 내외부적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구성원들의 평가가 바뀌기 때문에, 반짝 일하기 좋은 회사로 떠올라 주목을 받더라도, 이를 꾸준히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지난 2022년 상반기와 하반기 일하기 좋은 회사로 뽑힌 데 이어 2023년 상반기 또다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이 회사, 눈길이 갈 수 밖에. 어디냐고? '독일의 삼성전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SAP코리아다. "우리 회사 친구에게도 추천한다"(기업추천율)는 이들이 85%에 달한다. 잡플래닛 총만족도 3점만 넘어도 '괜찮은 회사'라 평가를 받는데, 2021년부터 꾸준히 4점을 넘기는 중이다.  

"수평적인 문화. 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의 자율성이 보장됨" 
"자신이 노력한 만큼 얻어가고 보상받는 회사"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훌륭했음"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문화,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 훌륭한 동료들까지. 이쯤 되면 더 궁금해진다. SAP코리아는 어떻게 구성원들에게 이런 평가를 받는 조직 문화와 업무 환경을 만들었을까?  

2012년 SAP코리아에 합류,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11년째 SAP와 함께하고 있는 안상원 CFO를 만났다. 경영진이지만 그 역시 직장인이다. 퇴사와 이직이 수시로 이뤄지는 21세기, 11년간 이 회사와 함께하고 있는 건 단지 '임원이니까'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글쎄, 그 역시 분명 이유가 있을 터다. 그 이유 속에 일하기 좋은 회사의 비결이 있지 않을까? 이유를 찾아봤다. 
 
 
-SAP는 ERP로 대표되는 업무용 소프트웨어 분야 1위 기업으로 꼽힙니다. 포브스 선정 500대 기업의 97%가 SAP의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고요. 본사가 있는 독일에선 시가총액 1위 기업이라 한국에선 '독일의 삼성전자'라 불리기도 해요. 다만 주요 고객이 기업이다 보니 사회 초년생 분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분들께 SAP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SAP가 잘 알려진 것 같지만 잘 안 알려진 회사이기도 해요. 사실 제가 초등학생 아들에게 회사를 설명할 때 힘들었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 제 나름대로는 이렇게 설명했어요. 

세상에 수많은 조직들이 있잖아요. 회사, 정부, 비영리 기관일 수도 있죠. 이런 수많은 조직들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하는 회사다. 회사에는 구매, 생산, 영업 등 다양한 프로세스가 있는데, 우리의 솔루션을 이용해 이런 프로세스가 효과적으로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시작한 회사라고요. 이렇게 설명했더니 초등학생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는 척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지금의 SAP는 그때와는 더 다른 모습으로 확장하면서 변화하고 있어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세계의 모든 조직이 이 지속가능성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잘 다룰 수 있도록 솔루션을 확장해 가고 있어요. 

SAP의 비전이 'Helping the world run better and improving people's lives'(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돕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한다)예요. 요즘처럼 제가 그 미션을 제대로 이해하고 동의한 적이 없을 정도로,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어요. 특히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을 위한 서비스까지, 접근성이 좋아졌죠. 
-SAP코리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일하기 좋은 회사로 선정됐어요. 반짝 좋은 회사로 떠오른 곳은 많지만 지속적으로 순위에 오르는 회사는 많지 않거든요. 특히 '친구에게 우리 회사 추천한다'는 분들이 85%나 됐어요. 이유가 뭘까요? 아니 그 전에 CFO님이 이 회사에 11년이나 다니고 계시는 이유는 뭔가요? 

아, 내년에도 올라야 할 텐데 조금은 부담이 생기는데요(웃음) 내가 좋아하고 남들에게 추천까지 하려면 다양한 요소들이 만족돼야겠죠. 급여나 복지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문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같이 일하는 동료예요. 회사를 떠나는 이유를 들어보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개인적으로 SAP를 11년간 다니며 느낀 것, 제가 회사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래요. 뛰어난 분들과 같이 일하면서 저 스스로도 성장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 동료들이 정말 뛰어나구나, 같이 일하며 내가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있구나, 이런 게 만족도의 가장 큰 요소가 아닐까 싶어요.


- "구성원들이 뛰어나다"는 리뷰가 많은 회사 중에는 "그래서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해요. 뛰어난 구성원은 어떤 조직에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복지"로 평가되지만, 어떤 조직에선 "날 압박하는 두렵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조직 문화적 특성이 반영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부적으로 경쟁을 많이 하는 회사들이 있어요. 그런 회사들은 뛰어난 동료를 보면 경쟁자나 날 압박하는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겠죠. 

SAP 경영진들이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가 '안전한 환경(safe Environment)을 만든다' 인데요. 우리 회사, 나의 팀,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 이 공간을 '안전한 환경'이라고 표현해요. 

내가 어떤 위험을 감수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실수를 해도 되고, 내가 실수했을 때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있고, 또 내 실수를 누가 손가락질하는 게 아니라 함께 배워보자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거죠. 우리 회사는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문화가 바탕이 돼서 뛰어난 동료를 보며 부담스럽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이런 걸 배울 수 있구나, 내가 성장할 수 있구나'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SAP 리뷰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직원들에게 많은 기회와 성장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리뷰였어요. 외국계 기업의 경우 단점으로 '아무래도 본사가 외국에 있어 한국에선 성장에 제한이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거든요. SAP는 구성원의 성장을 어떻게 지원하는지 궁금합니다. 

외국계 회사들이 조직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SAP에는 이미 한국에 있지만 글로벌 소속으로 일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성장의 기회는 공정하게, 모두에게 열려있어요. 

저도 SAP코리아에 입사하고 5년쯤 일하고 나니 다음 커리어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때 일본으로 갈 기회를 얻었어요. 5년간 일본에서 근무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기회를 얻었고요.  
 
저희는 사내 공모로 기회가 주어져요. 한국이건 외국이건 어떤 포지션이 열리면, 모두에게 공개되고,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요. 그다음은 회사가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돼죠. 인사팀의 일방적인 발령을 받아 커리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커리어를 가지고 가야겠다는 의지에 따라 기회를 찾아갈 수 있다는 애기예요. 

성장의 기회는 '성장의 주도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회사가 이를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어떤 포지션이 열렸는데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문화라면 이런 시스템은 지속될 수 없겠죠. 하지만 저희는 기회를 공개하고 지원하는 과정을 통해 최적의 적임자를 뽑는 프로세스를 확실하게 지키고 있어요. 제가 일본으로 갈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서로 알음알음 정해졌겠지 생각하는 사람들 있는데, 저희는 정말 그렇게 안 돼요.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10년 만에 임원급으로 성장하신 분도 있어요. 그만큼 본인의 노력에 따라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평하게 열려있어요. 


-기회가 열렸을 때 구성원이 목표와 의지에 따라 지원할 수 있다는 건 그게 가능한 문화이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직 분위기에 따라 원하는 포지션의 공고가 올라와도 상사가 '안돼'하면 지원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실제 SAP 리뷰를 보면 '수평적 문화'를 장점으로 언급한 분들이 많았어요. 사내문화에 대한 만족도 점수도 높은 편이고요.

많은 회사가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제도를 만들고 시도하곤 하는데요. 구성원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수평적 사내 문화를 지향한다는 회사 중에는 '수평적인 듯 보이지만 수직적이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요. 


맞아요. 직원들 입장에선 경영진들은 사무실도 다른 층을 썼으면 좋겠고, 엘리베이터도 따로 이용했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나요?(웃음) 저희는 경영진 방이 따로 없는데, 구성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글쎄요, 제가 다 알지는 못하겠죠. 

다만 전 호칭이나 언어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해요. 예를 들어 직원이 상사를 부를 때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관계는 결정이 된 거나 다름없죠. 그 호칭 하나로 상하관계는 결정이 되고 다음 대화는 수평적일 수가 없잖아요. 특히나 한국에는 존댓말 문화가 있기도 하고요. 

저희는 호칭을 파트너로 통일해서 불러요. 인턴부터 사장까지 모두 파트너예요. 이런 호칭을 통해 상하 관계가 아니라 동료 관계, 서로 위치나 나이와 상관없이 시작점이 평등하게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자리 잡아 가고 있고요.

그럼에도 부족한 점이 있을 거예요. 사내 문화를 담당하는 파트너가 계세요. 경영진은 생각하기 힘든 신선한 아이디어를 수시로 제안해 주세요.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거나, 구성원들의 여론이나 의견을 경영진과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도 해주시고요. 덕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가는 기회를 얻기도 하죠.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독일'의 삼성전자"…사실 이 배경만으로 SAP는 뭔가 잘 나가지만 딱딱한 회사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밥은 내가 SAP니다. Rice with SAP" 라니…독일에서 왔을리 없는 이 개그 코드라니! 사내분위기가 보이는 듯 하다 (사진=SAP코리아 제공)
 
-경영진에게 '우리 회사 워라밸 좋다'는 말은 좋기만 한 평가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워라밸 좋다'를 업무량이 적다거나,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러니 워라밸과 기업의 성장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조직은 구성원들의 워라밸 만족도는 지키면서도 어떻게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워라밸은 저한테도 중요해요. 워라밸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워라밸을 '일'과 '휴식' 이렇게 둘로 나눠서 보는 건 제가 생각하는 워라밸은 아니에요. 그렇게 구분해서 보면 '일' 아니면 '노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삶에는 휴식뿐 아니라 여러 요소가 섞여 있잖아요. 

삶의 주기에 따라 삶의 중심에 육아가, 자녀 교육이 있는 분도 있을 거고요. 이건 시시각각 바뀌는 거거든요. 삶의 다양한 요소를 아우르는 관점으로 워라밸을 논의해야 할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동료의 우선순위가 삶의 주기에 따라 바뀌고 있는데, 이걸 잘 관리하고 다루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저한테도 마찬가지라서, 이게 맞지 않는 회사에서는 저도 일하기 힘들어요.  

이런 균형을 맞추는 것은 장기적으로 회사에도 분명 장점이 더 많을 겁니다. 단기적으로 삶의 주기상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회사를 떠난다면 회사에도, 사회에도 손실일 수밖에 없어요. 단순하게 생각해도, 일하러 왔는데 다들 번아웃되서 생기 없는 동료들이 있는 회사와 적절한 워라밸을 통해 생기 넘치는 동료들이 있는 회사, 어떤 회사의 퍼포먼스가 좋을지, 어떤 조직이 혁신을 이뤄낼지 짐작이 되지 않나요? 


-워라밸 만족도가 높은 배경에는 원격근무 가능한 업무 환경이 있는 것 같아요. 실제 리뷰에서 재택근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거든요.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종료, 사무실 복귀를 진행 중인 회사들이 많아요. 구성원들의 유대감과 업무 효율성 때문이라고들 해요. SAP코리아는 이런 문제는 없나요? 

저희는 재택근무가 아닌 리모트 근무라고 표현하는데요. 저희도 시작은 코로나였죠. 구성원들의 안전을 위해 글로벌 모두 재택근무를 시행했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회사가 일하는 방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어요. 

저희는 'future of work'(미래의 일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회사는 '지금 세대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졌고, 사람마다 다양한 니즈가 있다. 미래의 일하는 형태는 다를 것이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저희는 신뢰에 기반한 완전 자율 형태의 근무 방식을 추구합니다. 정해놓은 규칙은 없어요. 전제는 신뢰 관계에요.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우리는 이렇게 일을 하자' 합의하고 진행합니다. 그래서 팀마다, 부서마다, 업무에 따라 일하는 방식은 달라요. 이게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이에요. 나름대로 잘 안착해 나가는 것 같아요. 

당장 저도 지난주 사무실 출근은 하루만 했어요. 서로 근무 형태나 출퇴근 때문에 눈치를 본다거나 하지 않아요. 

물론 어려움도 있죠. 구성원들의 유대감, 특히 신규입사자의 어려움이 클 거예요. 회사도 인지하고 있고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알아갈 수 있는 이벤트나,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함께 하는 기회를 만들기도 해요. 


-신뢰 관계가 전제된다고 하셨어요. 말씀하신 대로 회사와 구성원, 또 구성원들끼리 서로 믿지 않으면 이런 형태의 근무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이런 조직 내 신뢰관계는 어떻게 만들 수 있나요?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예측된다는 게 반복적으로 나오면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예측이 된다는 거죠. 저도 SAP에 입사해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까 조직을 신뢰할 수 있게 된 거거든요. 저는 이게 SAP의 DNA라고 생각해요. 
 
-후배 직장인들을 위한 질문 드릴게요. 도대체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 고민인 분들 많으시거든요. CFO님이 생각하는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제가 생각하는 일을 잘한다는 것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저마다 자기 업무가 있는데요. 그 업무는 큰 프로세스 안에 있을 거거든요. 내 업무뿐 아니라 내 업무의 앞과 뒤에 있는 다른 일들까지 볼 수 있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기르는 게 중요해요. 

내 업무만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내가 하는 A라는 업무가 다른 조직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이해하고 그 사람들이 가진 미션과 결과를 이해하고 있으면, 내가 하고 있는 A업무를 통해 만들어 낸 결과의 임팩트가 달라집니다. 이런 능력은 팀원뿐 아니라 팀장이나 관리자, C레벨까지 계속 필요하고요. 


-이런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관심과 호기심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단순히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이런 시야는 저절로 길러지지 않아요. 내가 이 일을 왜 할까, 이걸로 저 사람은 뭘 할까, 뭘 하고 싶은 걸까, 뭘 다르게 해주면 저 사람은 더 좋아할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까지 시선이 가요. 남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내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우리 직장인들은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회사 내 다른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해요. 오히려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어요. 그 과정에서 성장하게 되고요. 제가 일본에서 5년간 일했는데요. 사업 환경부터 모든 것이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였으니 물론 쉽진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환경에서 다른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같은 CFO로 일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일하기 전과 후, 일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요. 그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하고요. 


-구성원들의 성장을 위한 회사의 역할도 궁금합니다. 우리 구성원들이 성장했으면 좋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거든요. 

10년 이상 C레벨로 일하며 느낀 건데요. 조직 구성원들이 정말 바빠요. 일이 정말 많아요. 사실 '너는 실무 안 하니까 전후좌우를 살필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누가 제게 말해도 할 말이 없어요. 실무자들은 바빠서 두루 살피기가 힘들죠. 

그러니 경영진, 관리자들이 실무자들이 넓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필요해요. 지금 하는 일에만 너무 좁게 빠져있지 않도록 이요. 경영진이기 때문에 보이는 시야가 있거든요. 회사의 전략을 이해하고 공유해 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구성원들의 경력 관리에도 시간을 투입해야 하고요. 같이 일하는 직원이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목표는 무엇인지, 커리어 이동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구성원들의 업무 몰입도 올라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구성원들이 성장하면 회사 전체의 능력치도 올라가겠죠.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요. 관리자들 역시 눈앞에 떨어진 업무가 급급하고 당장 성과를 내야 할 때가 있어 쉽지 않죠. 하지만 구성원들의 커리어 니즈를 이해하고 돕는 건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 커리어 관리 잘 해줬더니 이직하더라"는 토로가 들리는 듯한데요? 

회사가 성장한 구성원에게 더 이상 기회를 못 주는 상황에서, 뛰어난 구성원이 다른 곳에서 기회를 찾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SAP 입사 전 다른 회사에서 후배에게 경력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정말 뛰어난, 함께 일하면서 좋았던 친구였는데요. 어느 날 정말 헤드헌터에게 좋은 기업을 추천받았다는 거에요. 너무 놀라서 생각 좀 해보고 얘기하자고 했어요. 그리고 주말에 생각을 해보니, 그 친구의 커리어 성장을 생각해 보면 이직하는 게 맞겠더라고요. 그렇게 얘기해줬어요. 지금 그 후배는 국내 대기업의 임원으로 성장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최고죠.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좋은 성장의 기회를 찾은 사람을 박수치며 떠나보내 주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조직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요. 나와 같이 일하는 상사가 진정으로 내 경력 개발에 관심이 있구나, 함께 일하며 성장할 수 있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의 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건 곧 회사에도 이익이죠. 


-회사 입장에선 구성원이 회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회사 안에 성장의 기회가 충분하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을 테니까요. 

직장이라는 것 자체가 구성원이 당장 필요한, 예를 들어 재정적인 필요를 공급해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업무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야 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AP코리아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SAP는 ERP로 시작한 회사지만 더 이상 ERP 회사는 아니에요. 조직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전환)을 도와주는 파트너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됐어요. 그런데 아직 한국 시장에서는 그만큼의 위상을 갖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양한 조직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할 때 SAP코리아가 같이 일하고 싶은 파트너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에요. 그 과정을 통해서 SAP코리아도 성장할 거고, 그 성장을 통해서 저와 동료들도 성장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거고요. 

변화는 이미 시작됐어요. 고객들과 나누는 논의 자체가 예전과 다른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예전에 단순히 ERP라는 소프트웨어 패키지 밴더로서의 위치였다면, 요즘은 SAP가 포춘 500대 기업 중 97%가 쓰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란 말이죠. 한국에 있는 고객들도 저희를 통해 다른 글로벌 기업들은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 SAP가 우리 프로세스를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세요. 


-이쯤 되면 SAP에서 일하고 싶다!는 분들 많으실 것 같습니다. SAP와 '핏'이 잘 맞는, 찾고 있는 인재라면 어떤 분일까요? 

잘 맞는 인재라는 표현이 사실 공감은 잘 안 가요.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함께 일하는 곳이고 싶어요. 저희끼리는 '똑같은 사람들만 모여서 일하면 사고 난다'고 얘기해요. 조직에는 서로 다른 성향의 분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1+1=2'가 아니라 다른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으니까요. 다양한 분들이 많이 와서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다만 한가지, 적극적일 필요는 있어요. 외국계 다국적 기업의 특성으로 매트릭스, 사일로 조직 같은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조직 구성은 그럴지 몰라도 일하는 방식은 그렇지 않아요. 조직 구조와 상관없이 내가 일하기 위해 회사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같이 일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분이 오시면 적응하기 수월할 겁니다. 

또 호기심 많은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거예요. 저희가 제품도, 고객도 재미있는 분들이 많으세요. 저 역시 우리 제품을 도입한 고객들이 어떤 식으로 쓰고 있나, 어떤 밸류를 느끼고 있나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데요. 재미있어요.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는 것을 느껴요. 그런 호기심 가진 분들 오시면 즐겁게 회사 생활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