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을 믿으십니까? 전 시간 여행을 믿어요. 이미 매일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걸요. 매일 아침 출근을 할 때마다 1980년대로 되돌아가는 것 같죠. 가끔은 진짜 내가 과거로 돌아가 과거인들과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헷갈릴 때도 있어요.
우리 회사는 건설사예요. 집도 짓고 아파트도 짓고 빌딩도 짓고, 각종 건물을 짓죠. 아무래도 건설사니까 그렇게 '트렌디'하게 움직이는 회사는 아니에요. 좀 더 전통에 충실하다고나 할까요.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도 그래요. 법은 바뀌었지만, 우리 회사는 여전히 80년대에 살고 있죠. 근로기준법도, 일하는 분위기도 굉장히 '레트로'해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오히려 트렌디한 느낌이 나네요. 요즘 레트로가 유행이라잖아요.
일단 한번 출근하면 집에를 못 가요. 예전 1970~1980년대 공장들이 그랬다면서요. 하루에 12~15시간씩 일하고, 쉬는 시간도 없고, 휴가도 못 쓰고요. 지금 우리 회사가 그래요.
입사 전부터 야근을 많이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면접 때 물어보니 가끔 저녁 8~9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입사 첫날부터 밤 11시까지 야근을 했어요. 그 다음날은 새벽에 퇴근을 했죠.
그리고 맞은 첫 주말,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더라고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 '빨간 날'에도 출근해야 하고요. 옛날에는 토요일에도 일했다면서요. 역시 레트로하죠? 그런데 우리는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니까 이건 도대체 얼마나 더 과거로 돌아가는 거지…. 아니 일요일은 2020년 전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도 쉬는 날 아니었나요? 모르겠네요.
여튼 그렇게 1주일 내내 일을 하니까 1주일에 기본 100시간씩은 일하게 되더라고요. 법으로 정해진 근무 시간이 1주일에 52시간이라는 얘기를 듣고 제가 얼마나 깜짝 놀랐게요. 물론 일이 있으면 연차를 쓸 수 있죠. 우리 회사 그렇게 꽉 막힌 회사는 아니에요. 그런데 연차를 썼다고 월급에서 휴가비가 까이더라고요. 옛날에도 이랬나요?
물론 야근 많이 하고, 휴가를 계속 안 쓰면 인사팀에서 연락이 와요. 어서 퇴근하고, 휴가 사용하라고요. 그런데 이 말 믿고 퇴근했다가 아휴, 제가 얼마나 쌍욕을 먹었게요. 정말 쌍욕에 주먹을 날리시더라고요. 정말 '주먹'이요. 옛날에도 일 안 하면 막 때리던 시절이 있었다면서요.
제가 1년 다닌 이곳을 그만두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직원에게 상사가 "고작 부모가 죽은 걸로 퇴근이냐"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나서예요. 이건 정말 인류애가 바사삭 바스라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이가 아파서 반차를 쓰겠다는 직원에게 "애가 아프면 더 열심히 일해야지"라고 말하는 것을 봤을 때도 충격이었는데 부모상을 당한 직원에게 '고작' 운운하다니….
대표님. 직원들이 자꾸 그만두는 게 고민이라고 하셨죠? 직원들이 눈이 높아서 그만두는 게 아닙니다. 직원을 사람 대우를 안해주니까 나가는 거예요. 이것만은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대표님 가족이 소중한 만큼 직원들 가족도 소중하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