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외할머니 장례는 휴가 없다니…차별 아닌가요?

[혼돈의 직장생활] '친가·외가 상조복지 차별' 여전…"노사 합의 문제"

2021. 08. 19 (목)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경조휴가 관련해서 회사에 물어봤더니, 친조부모상은 3일의 휴가가 있는데 외조부모상은 휴가가 없답니다. 경조금도 당연히 없다고 하네요. 장례를 끝까지 치르려면 개인 연차 휴가를 써야 한다는 건데요. 가족을 잃은 슬픔이 외가라고 달라진다고 보는 건지… 답답하고 슬프네요."

'아직도 이런 회사가 있나'라고 의문하실지 모르지만, 아직 이런 회사들이 있습니다. '친가·외가 상조복지 차별'은 각종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단골 소재로 거론되는 주제 중 하나인데요. 친가와 외가의 상조복지에 차이가 있는 회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심하면 외가는 아예 장례 휴가를 주제 않는 곳도 있습니다. 이 논의는 사실 호주제가 폐지될 무렵부터 이야기된, 아주 오랜 논의이기도 합니다. 일견 성차별로 보이는 이 문제, 법적으로는 문제 없을까요?
◇ '경조사 휴가', 법으로 보장된 제도 아니다
우선, 익히 말하는 '경조사 휴가'는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가 아닙니다. 노사 협의하에 부여되는 '약정 휴가'이기 때문에 휴가 자체를 부여하지 않거나 무급으로 부여하더라도 불법이 아닌 건데요. 회사마다 상세한 기준이 다른 건 이 때문입니다. 그래도 대부분 회사는 관례상 경조휴가나 경조금 관련 규정을 따로 마련하고 있을 텐데요. 문제는 위 사례와 같이 친가와 외가에게 지급되는 휴가나 경조금 수준이 다른 경우가 꽤 많다는 겁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3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주요 계열사 62곳과 중견기업 67곳 중 외조부모 경조사에 친조부모의 경우보다 휴가와 경조비를 더 적게 지급하는 기업은 61%(41개)에 이르렀습니다. 너무 옛날 조사 아니냐고요? <동아일보>의 2018년 조사 결과도 이와 비슷합니다. 10대 그룹(매출 기준) 중 6곳이 상조복지 제도에서 친가와 외가에 차이를 두고 있었습니다.
◇ '상조복지 차별 근절해달라' 청원까지…아직은 '노사 합의'에 맡길 수밖에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친가·외가를 나누어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기업의 행태를 근절시켜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청원인은 "현행법에서도 '본인이나 가족의 경조사를 위한 휴가'에 관한 별도 규정이 없다"고 지적하며 "성차별적인 사회적 가치를 그대로 답습하여 무려 '복지'라는 영역까지 성차별로 고통받게 하는 일부 기업들의 행태를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썼습니다. 이 청원에는 3만 1500여명이 동의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9월, 외조부모가 사망한 직원에게 청원 유급휴가 2일을 주지 않은 한 운수회사 대표에게 "친가와 외가 등 가족 상황 및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며 개선을 권고한 바 있는데요. "법률상 '조부모'는 '외조부모'와 '친조부모' 모두를 의미하고 동등한 지위에 있다"며 "회사는 이 행위가 단체협약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부계혈통주의 관행에 따른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해결 방안은 없는 걸까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은 지난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관련된 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친가·외가 여부에 따라 휴가 기간을 다르게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사업주에게 벌칙이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발의한 건데요. 이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1년째 계류 중입니다. 

물론 "기업의 경조휴가 문제는 노사 합의를 거쳐 자체적으로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이 같은 제도를 법적으로 정하면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여기에 과태료까지 부과하면 기업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유입니다.

법으로 보장된 제도가 아니고, 노사 합의에 의해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경조휴가 문제는 임금 문제 등에 밀려 우선적으로 논의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노조 대표가 대부분 남성(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국노총·민주노총 가입 사업장 441곳 대상 조사 결과)이라는 점도 한계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차이가 죽음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는 듯해 아쉬움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딸을 가진 부모의 심정도, 아들을 가진 부모의 심정도, 외할아버지를 가진 손자의 심정도, 친할아버지를 가진 손자의 심정도 모두 같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호소할 일이 없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장명성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