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왼쪽 다리를 잃고 사이클 선수가 되었다

[인터뷰]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박찬종 장애인 사이클 선수

2024. 04. 26 (금) 16:11 | 최종 업데이트 2024. 05. 02 (목) 11:03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저자 박찬종 유튜버 인터뷰
 
"제 스타벅스 닉네임이 '은퇴한 해적'이에요. 바리스타분이 '은퇴한 해적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할 때 제가 다가가면 다들 말꼬리가 떨리시더라고요(씨익) 아, 그런데 얼마 전에 음료를 받으러 갔는데 음료가 여러 개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가니까 바로 제 음료를 주시더라고요...아니 이런?!"

개인적으로 뽑은 최고의 암살 개그를 묻자, 커피숍 테이블 한쪽에 길쭉한 의족을 곱게 벗어 내려놓은 이 남자,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암살 개그가 주특기라더니 이 정도면 가히 콩고 왕자 조나단을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래서 이 남자 누구냐고?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의 저자 그리고 장애인 사이클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원래는 화학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2022년 9월 23일에 일어난 사고로 인해서 다리를 절단하고 지금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박찬종 장애인 사이클 선수다. 

2022년 9월23일 금요일 오후 5시 40분경,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퇴근길, 2차선에 있던 5톤 트럭이 3차선 도로 끄트머리를 달리던 그를 덮쳤다. 사흘 뒤인 9월26일, 그의 왼쪽 다리는 잘렸다. 

사고 일주일 뒤, 그는 '저는 괜찮습니다'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담담하게 사고 상황을 전하며 "보너스 인생"이라 생각한다며, "힘들지만 건강히 회복해 내년 5월 결혼식장에 당당히 걸어서 들어갈" 거라며, "웃는 얼굴로 만나"자는 그의 글에 수천 개의 좋아요와 수백 개의 응원 댓글이 달렸다.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했습니다…
나중에 사고 당시 사진을 보니까 무릎 아래부터 발가락 위까지 토마토피자더라고요.
저는 괜찮습니다.
생의 끈을 놓치기 직전 목숨을 구해주셔서 보너스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는 얼굴로 만나요."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중-
 
그리고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니, 아직 회복도 되기 전, 다시 자전거를 타겠다며 새로 산 자전거 위에 올라탄 사진과 함께 '내가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는 글을 SNS에 올렸다. 심지어 장애인 사이클 선수가 되겠다더니, 사고 바로 다음 해 전국체전에 참가 4개의 은메달을 따냈다. 

사고 112일 후, 그는 의족을 차고 다시 걷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을 담은 영상 <다시 걷게 되던 날>은 무려 221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안타깝게도(?) 배경 음악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라는 지금 상황과 찰떡인 노랫말이 담긴 디즈니 <겨울왕국>의 OST를 넣으면서 유튜브 수익은 포기했지만 말이다. 이 영상에서 나온 수익금은 모두 음악 저작권을 가진 디즈니로 간단다. (디즈니 보고 있나?) 
 
내가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 박찬종 사이클 선수
이 모든 이야기를 모으고 추려 <내 다리에는 한계가 없다>라는 책으로 엮어냈다는 소식에, 이제는 작가로 데뷔한 그를 송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184㎝의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이 남자, 바지 왼쪽 다리 절반을 뚝 잘라 의족을 훤히 드러내고 성큼성큼 걸어오는데, 한눈에 '이 사람이구나' 알아볼 수밖에. 그렇게 걸어온 그는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의족을 분리해 테이블 한쪽에 조심스럽게 세워놓고, 실리콘 라이너를 벗어 의족 안에 잘 넣어뒀다. 

"다들 의족을 가리고 다니잖아요. 의족 생활을 해보니까 그렇게 가리는 게 본인에게 안 좋아요. 보통 의족에 살색 실리콘을 덧씌우고 스타킹을 입고 긴바지를 입어서 가려요. 그러면 움직임이 안 좋아지고 자연스러운 걸음이 안 나오죠. 필요할 때 벗을 수도 없고요. 

의족을 계속하고 있으면 공기가 안 통하고 땀이 차서 살이 짓무를 수 있어요. 절단 부위는 피부가 얇고 예민하거든요. 그러면 나을 때까지 몇 주 동안 의족을 못해요. 잘못하면 추가 절단을 해야 할 수도 있고요. 병원에 있을 때, 절단 선배님이 '여름에는 작은 가방에 응급처치 도구를 챙겨 다니라'는 조언을 주셨어요. 의족 안이 언제 피로 차 있을지 모르니 붕대 같은 걸 가지고 다니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앉아 있을 때는 의족을 분리하고 있어요. 바지를 자르는 이유도 의족을 쉽게 벗고 착용할 수 있어야 해서죠. 관종이라 노출하려는 게 아니라 제게 도움이 되니까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전 모든 의족 생활자가 의족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의족을 쳐다보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잖아요. 아마 대부분 의족을 본 적조차 없을 거예요. 그러니 쳐다보게 되고요. 전 저를 최대한 노출해서 의족을 사람들이 덜 낯설어하게 만들고 싶어요."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시작은 의족이 됐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장애 극복 스토리나 놀라운 회복탄력성에 찬사를 보냈지만,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장애 그 이후, 장애와 함께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듯했다.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책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요? 

"장애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은 장애인이야'라고 할 때 꼭 사람을 강아지 보듯 나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장애인도 뭐든 하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최근에 다큐 촬영을 했어요.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이 있는데요. 장애인도 놀이공원에 가고 싶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을 수 있잖아요. 혹시 롤러코스터 안전 규정에 '두 다리가 있어야 한다'는 표현이 있었던 것 아시나요? 어떤 분이 몇 년 동안 소송을 해서 '다리가 하나 이상 있어야 한다'로 바뀌었대요.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의족을 한 사람은 롤러코스터를 탈 수 없었던 거예요. 그 분이 몇 년 동안 소송을 해 규정을 바꿔 저는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게 된 거죠. 그 덕을 제가 본 거예요. 저도 뭔가 그런 변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실 자전거 선수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요. 너무 힘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의족 회사에서 의족을 후원해주시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 의족이 얼마인지 아세요? 5000만 원이에요. 좋은 건 1억 원이 넘기도 하고요.

절단 장애인들이 일어서고 걷는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불한 피 같은 돈이 제게 지원되는 거죠. 그에 대한 부채감이 컸어요. 그런 지원을 받으면서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건 나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나를 최대한 알려서 사람들에게 절단 장애인도 뭐든 할 수 있고, 잘 걷고 잘 뛰고 자전거도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 그러면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5000만 원이라고? 차 한 대 값이다. 심지어 수명은 5~6년 정도. 그러니까 5~6년마다 5000만 원짜리 의족을 사야 한다. 물론 성능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현재 의족 구입을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5년마다 270만원 가량을 절단 장애인에게 지원해 준다. 이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의족은 서있기, 아주 천천히 걷기 정도가 가능하단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절단 장애인의 일상에 기대하고 지원하는 수준은 서 있기, 천천히 걷기 정도인 셈이다. 절단 장애인이 그 이상의 활동을 하는 걸 우리 사회는 일종의 사치의 영역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모든 절단장애인이 더 나은 의족보행을 할 수 있게 하여
그 주변 사람들도 양질의 의족보행을 볼 수 있게 하자.
그 중 몇명이라도 올바른 걸음걸이를 되찾고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다면
내가 지금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도움을 돌려주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사회가 나를 도와준 이유가 될 것이다.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늘었다."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중에서-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박찬종 저자
"유럽은 재해자의 활동량에 맞는 수준의 의족을 지원한다고 해요. 의사가 판단해서 사회생활에 복귀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수준에 맞는 의족을, 몸이 약해서 걷는 게 힘든 분이면 간단한 기능의 의족이나 휠체어를 제공하고요. 가치판단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저마다 상황에 맞는 지원이 이뤄지면 어떨까 생각해요. 

저희 할아버지도 의족을 하셨어요. 마네킹 다리 같은 의족이라 생활에 제약이 많았는데 평생 하나로 쓰셨어요. 할아버지는 무릎이 있으셔서 지원을 받으면 큰 부담 없이 더 나은 의족을 쓸 수 있으셨을 텐데 왜 안 그러셨을까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제 영상을 보고 종종 '가족이 마네킹 같은 의족을 쓴다. 어디 가면 좋은 걸 구할 수 있냐'는 메시지를 보내는 분들이 계세요. 몰라서 못 쓰는 분들도 많은 거예요. 정부 지원도 모르는 분들이 많고요. 몰라서 불편하게 사는 사람이 많구나 알게 됐죠. 절 보고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삶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면 좋겠어요. 

두 번 메시지를 받았는데요. 저는 간 적 없는 장소에서 저를 봤다는 거예요. 마트에서 의족을 드러내고 쇼핑하는 분을 봤는데, 저 아니냐고요. 이렇게 의족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장애나 의족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함께 해주는 분들이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뿌듯하더라고요. 그분이 절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렇게 한명 한명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장애인들도 이렇게 생활하고 싶어요' '이런 것들 할 수 있어요'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좀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세상에 나를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올림픽에 나가자, 자전거 선수가 되어서 올림픽 무대에서 달려야겠다고 결심했고요. 그래서 장애인 사이클 선수가 되기로 했어요."

그의 이야기가 온라인에 퍼지면서, '관종'이라는 오해와 편견, 혐오 표현이 담긴 메시지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을 노출하는 이유는 낯섦에서 오는 장애인을 향한 가시 돋친 시선을 없애고, 더 나은 삶을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새로 얻은 두 번째 삶에서 그에게 부여된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세상을 조금 더 살만하게 바꾸고 싶다는 이야기다. 
"장애가 있어 불편한 건 내가 부지런하면 돼요.
아픈건 낯섦에서 오는 무례한 시선이죠."
 
-정부 지원 같은 건 행정 시스템적으로 이뤄질 것 같은데 그게 아닌가 봐요? 

"다 직접 알아보고 해야 하더라고요. 동사무소에 장애인 등록을 하러 갔는데, 등록 후에도 다른 기관 등에는 제가 다 따로 연락해야 했어요. 행정적으로 일괄 등록되는 시스템이면 좋을 텐데 아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놓치면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거죠. 

저 얼마 전에는 민방위 통지서를 받았어요. 유튜버로서 카메라 들고 한번 가보려고요...! 아, 예비군이었으면 영상이 더 재미있게 나왔을텐데..."

진심으로 아쉽고 아깝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노출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잖아요. 그럴 때 찬종 님 마음은 괜찮은가요?

"흘깃 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이질감을 느끼고 쳐다보게 되니까요. 가끔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땐 같이 쳐다보기도 해요. 그게 좋은 건 아닌데 대처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뿐이라는 얘기 많이 하는데요. 장애가 있어서 불편한 건 내가 부지런하면 돼요. 와이프가 음식물쓰레기 좀 버려달라고 하면, 의족 끼고 나가면 돼요. 제가 다리가 없어서 못 하는 건 아니거든요. 신체가 불편한 건 부지런함으로 커버할 수 있는게 진짜 많아요. 

사실 불편한 건 사람들의 시선이죠. 한번은 병원에 있는데, 절단 장애인이 할아버지가 진심으로 '장애인과 살아주는 게 고마운 거다. 가족에게 잘하고 살아라'고 하시는데, 진심이어서 더 마음이 무거워지더라고요. 아무 맥락 없이 갑자기 '대단하다' 말하고 사라지는 분들도 있어요. 처음에는 이런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게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지금은 이 사람들이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하는 말이 아니구나, 순간 '어?'하고 지나갔겠지, 그냥 순간의 마음으로 한 말이니까 나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그만큼만 받아들이자고 생각해요. 

사실 전 많이 다져져서 괜찮은데 정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다른 점이 없어도 누가 빤히 쳐다보면 기분 나쁜데 장애가 있거나 의족을 신고 있거나 다른 점이 있다면 큰 상처가 될 수 있죠. 그냥 시선을 거둬주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박찬종 저자
 
-찬종 님 글을 읽으며 '회복탄력성'에 놀라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 역시 찬종 님 이야기를 들을수록 참 단단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면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가 들 것 같거든요. 이런 마음은 없었나요? 

"트럭 기사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가 없었던 게 제가 빨리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사고가 났을 때 순간 '이 기사가 나를 친 걸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그랬고요. 트럭 밑에 깔렸는데 기사가 트럭 밑으로 기어들어 와서 제 손을 잡고 엉엉 울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때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이제 정말 죽는구나 싶었거든요.

그분이 손을 잡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해줬을 때, 저는 그분을 용서할 수 있었어요. 가끔 이런 얘기를 하면 기독교냐고 물어보시는데 그건 아니고요(웃음) 그 순간 제게는 큰 힘이 됐거든요. 덕분에 원망이나 분노에 매몰되지 않고 빨리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만나본 적은 없어요. 몇 번 찾아오고 메시지도 보내셨는데, 얼굴을 보면 원망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알지 못하는 존재로 두고 싶었어요." 
 

"트럭 기사가 트럭 밑으로 기어들어 왔다.
절규하면서 그의 따뜻한 손을 뻗어 나의 차가운 왼손을 잡아주었다…
따뜻한 손은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주었고 죽을 사람을 눈앞에 둔 그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느껴졌다.
이 사람도 평생 죄책감이 크겠구나. 우리가 오늘 여기서 잘못 만났네요.
괜찮아요. 손잡아 줘서 마지막에 힘이 됐어요."
(CJPARK의 블로그, <사고의 순간> 중)

 

사고 순간 전해진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가 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작점이 된 셈이다. 물론 생사의 기로라는 절박한 순간에서도, 사과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그의 공감 능력 역시 그의 빠른 회복에 한몫을 했을 터다. 

그는 사고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트럭에 깔려 숨을 쉴 수 없어 정신이 아득해지던 순간, 극적으로 구조를 받아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부터 다리 절단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그 모든 순간을 그는 기억한다. 아... 정말 아팠을 텐데. 

"제 글을 보고 어떻게 이 모든 순간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냐고 놀라는 분들이 많은데요. 제 입장에선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나 싶죠. 

눈을 뜨면 트럭 바퀴만 보이고, 눈 감으면 와이프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있었어요. 아프고 무서운 것보다 아직 너무 젊은데 아깝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가치 있는 일이었나, 내가 해왔던 모든 것들이 내 삶을 바쳐서 할만한 일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박찬종 저자
 
-사고 후 가장 달라진 점은 뭔가요? 

"일상의 모든 것이 달라졌죠. 제가 키가 큰 편이라, 여기 맞춰서 신혼집을 꾸며놨는데, 당장 입구에서 의족을 벗기도 불편하고, 싱크대도 테이블도 너무 높고, 아파트에는 장애인 주차 구역도 없어서 한동안 와이프가 주차를 대신 해줘야 했고요. 집에 들어간 첫날 정말 우울했어요. 

그래도 사고 전후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를 느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차가운 로봇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더 표현하려고 해요. 생일에 선물 하나를 보내도 '뭘 좋아할까' 고민하며 보내고요. 

조금 더 행복을 좇는 결정을 하는 경향도 생겼어요. 무리 되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걸 선택하고, 좋아하는 걸 해보자, 그럼 삶이 더 풍요롭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고 순간을 기록한 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당시 여자 친구, 지금 아내의 이름 '영지'다. 그의 정신을 붙잡은 한 문장은 '영지랑 결혼해야 된디'였단다. 개인적으로 굳이 이 책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로맨스판타지에 가깝지 않은가 싶을 정도랄까? 

-회복탄력성의 비결로 '유머, 사랑, 취미'를 꼽으셨어요. 나를 사랑해 줄 가족과 영지, 좋아하는 취미가 있었다고요. 책을 보니 가히 찐사랑이라 할만하더라고요. 어떻게 만나셨어요? 

"스터디 모임에서 만나 연락처만 교환했는데, 정작 스터디 모임은 취소됐거든요. 같은 학교였지만 졸업 때까지 몰랐어요. 아내가 제가 들었던 수업을 이듬해 들은 거예요. 그때 제가 제출한 과제를 조교가 샘플로 공개한 거죠. 이름도 안 지우고요. 아내가 그걸 보고 과제에 조언을 달라며 연락했어요. 개인정보를 소홀히 하신 조교님 덕분에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했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캬, 이런 게 인연인 걸까. 사고 일주일 후 SNS에 올린 글대로, 그는 5월의 결혼식에 두 발로 걸어 입장했다. 그는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던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가는 중이다. 가능과 불가능 사이를 얼마나 많은 의지와 노력으로 채워 넣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그의 다음 목표는 뭘까? 

"지금 목표는 2026년 아시안게임이에요. 2028년에는 LA올림픽이 목표고요. 개인적으로는 사고 전의 나보다 자전거를 잘 타는 게 목표에요. 그다음은 철인 3종 경기를 나가보고 싶어요. 올해 마라톤 10㎞를 신청해놨습니다. 완주가 목표고요.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 안하는 비장애인보다 운동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철인 3종 경기요? 그럼 자전거, 달리기, 수영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거 아세요? 다리가 없으면 수영을 더 잘한대요. 몸이 가벼우니까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철인3종 꼭 할 겁니다." 


-<컴퍼니타임스> 독자분들께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제가 취업 준비를 오래 했어요. 졸업하고 1년 동안 취업이 안 돼서 고민도 많이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요. 그 취업 준비하는 시간이 뭘 해도 죄책감이 드는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언젠가는 취업이 됩니다.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너무 죄책감을 가지고 그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나고 보니 그때도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들인데 너무 초조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취업 준비생이라도 조그만 취미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다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한 강연에서 '취미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취미를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시는 거죠. 취미를 갖는 데도 조금의 노력은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요? 그런 시간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나는 지금도 '추가 절단'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산다…
하지만 나는 추가절단을 걱정하며 살지는 않는다.
이렇게 의연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상황에 빠지더라도
행복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사고와 소생의 경험은 살아 있음 그 자체에 감사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행복을 높치지 않는 인생관을 만들어주었다.
열심히 달리다 넘어져도,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 멈추어 있는 그 시간도 행복하면 되니까."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중에서-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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