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직무와 무관한 업무 지시...퇴사하고 싶은데 어쩌죠

[별별SOS] 116. 큐레이터로 입사했는데 영업 업무까지 시켜요

2024. 08. 23 (금)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다보면 별별 일들이 다 있죠. 퇴근하고 혼술 한 잔, 운동이나 명상 10분에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일이 있나 하면, 편히 쉬어야 할 주말까지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나요? 혼자 판단하기 어려워서, 다른 직장인들의 생각은 어떤지 조언을 들어보고 싶나요? <컴퍼니타임스>에게 별별 SOS를 보내주세요. <컴퍼니타임스>의 에디터들이 직장인들에게 대신 물어보고, 더 나은 직장생활을 위한 방향을 함께 고민합니다.

 

별별SOS

전시기획 및 전시 운영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로 현 직장인 갤러리에 경력직으로 입사했어요. 채용 과정에서도 관련 직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들었고요.

 

그런데 막상 입사하니 생전 해보지도 않은 영업 업무를 시키더군요. 사수도 없고 대표님도 이쪽으로 아무것도 모르셔서, 뭐든 다 제가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럼에도 대표님은 매일 월세 얘기를 들먹이며, 적자를 내는 게 관람객을 못 끌어온 제 책임이라는 듯 윽박 지르세요.

 

저도 노력은 하지만 생전 해보지도 않은 일인 데다, 업무 팁을 주는 사람도 없으니 쉽지 않거든요. 지금 갤러리 내에서 진행하는 모든 전시는 A to Z 저 혼자 하고 있고, 심지어 전시가 한 달에 2~3개예요. 이제 대표님 차 엔진 소리만 들려도 무서워서 울컥하고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퇴사하려 하는데, 근로계약서에 근무 종료일이나 퇴사 절차에 관한 내용은 없습니다. 퇴사 열흘 전 회사에 통보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지, 이렇게 회사가 채용 당시 협의한 것과 다른 직무를 요구해도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퇴사 통보 열흘 전에 해도 괜찮을까요?
 

⭐8년 차 직장인
#T와 F의 4:6 황금비율을 자랑하는 ENFP
#JPHS '컨트롤타워' 유형 (JPHS 테스트가 궁금하다면?)
#Z세대와 멀지 않은 M세대

입사 과정에서 설명 들었던 것과 다른 업무를 맡게 되셨다니, 고충이 크셨을 듯합니다. 과도한 업무량과 성과 압박은 누구에게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만한 문제죠. 오늘 별별이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질문하신 2가지 법률적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아봤어요.

먼저, ‘회사가 채용 당시 협의한 것과 다른 업무를 시켜도 되는지’에 관한 부분인데요. 채용절차법 제4조 3항에 따르면, 회사는 구직자를 채용한 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에서 제시한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해선 안 됩니다. 이를 위반했을 땐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죠. 다만, 채용절차법은 종업원 수가  30인 이상인 사업장에 한해 적용되고 있어요.

재직 중인 회사가 30인 미만 사업장이라면 근로기준법을 토대로 위법성을 따져보아야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17조와 19조에 의하면, 회사는 근로자가 담당하게 될 업무를 서면에 명시해야 해요.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 근로조건 위반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보아야 할 점은 ‘명시된 근로조건’과 실제 업무가 다르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인데요. 근로계약서에 업무 내용이 포괄적으로 적혀있다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울 확률이 높아요. 회사의 지시가 사회 통념상 근로계약서상 명시된 업무에 포함된다고 해석되는 경우에는 부당 지시로 볼 수 없거든요. 대법원 판례 등을 살펴보면, 업무상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인사권자의 상당한 재량을 인정하기도 하고요.

그러니,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는 업무 내용 등의 근로조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적혀있지 않은 지 미리 꼼꼼하게 살펴보세요. 필요하다면 적절히 수정을 요청하시고요.

회사가 근로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업무를 부당하게 추가로 지시할 때는 즉시 문제를 제기하세요. 고용노동부는 ‘근로자가 사용자의 업무 지시를 상당한 기간 동안 이의 없이 수행하였다면 사용자의 업무 지시에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행정해석을 내린 바 있어요. (근로기준팀-697, 2005. 10. 21.)

2번째 질문, ‘퇴사 열흘 전 회사에 통보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지’에 대해 살펴볼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퇴사 열흘 전에 얘기해도 법적으로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조에서는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못 박고 있거든요. 근로자의 퇴사 의지에 반해 업무를 지시한다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셈이 되는 거죠.

민법 제660조에도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요. 다만, '상대방이 해지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1개월이 경과해야 해지 효력이 생긴다'고 정해두었어요.

만약 회사가 별별이님의 퇴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계약해지 효력이 발생하기 전까지 최대 1개월간 무단결근으로 처리될 수 있다는 의미예요. 이렇게 되면 급여 및 퇴직금 정산 시 문제가 생길 수 있겠죠. 이점 유념하셔서 회사와 원만하게 퇴사일을 협의해 보시기를 바라요. 더 좋은 기회를 찾아 훨훨 날아가시길 응원할게요!

 
지금 하는 일이 커리어의 J커브에 도움이 될지 판단해 보세요
 
⭐18년 경력 경영자
#P와 J를 오고 가는 ENFP
#JPHS '컨트롤타워' 유형 + 서브 유형은 ‘불도저’ (JPHS 테스트가 궁금하다면?)
#Z세대와 묶이기 미안한 초기 M세대

법적인 부분은 앞서 충분히 검토된 것 같으니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게요. 경력직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경력직에게 주어지는 이직 기회는 크게 2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더 안정적이고 긴 호흡으로 경력이 성장할 수 있는 회사예요. 대부분 업력이 긴 회사로, 승진이나 잡레벨 같은 인사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업계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성장의 속도감을 느끼긴 어려워도 길게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에요.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경력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경력기술서 및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는 회사예요. 전문 분야가 있는 중소기업일 확률이 높고, 때로는 아직 벤처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스타트업일 수도 있습니다. 체계나 동료들의 맨파워는 약하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책임이 확실하죠. 내가 해낸 만큼 성과를 얻어 갈 수 있기 때문에, 흔히 큰 회사에서 나타난다는 선배나 상사에게 ‘성과 뺏기기’를 당할 위험은 적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룬 성과에 합당한 처우 조건을 받기는 어려운 환경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회사와 함께 성장하여 스톡옵션 등을 활용한 후불제로 받거나, 여기서 만든 성과를 가지고 더 좋은 처우를 제공해주는 곳으로 이동해야 해요.
별별이님은 후자입니다. 경력을 가지고 있고, 이를 발휘할 수 있는 회사와 직무로 이직하신 거죠. 우선은 책임만큼이나 권한도 커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이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건 ‘커리어의 J커브’, 그러니까 경력의 급성장이 담보될 때입니다. 우리는 이걸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을 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말씀하신 것처럼 대뜸 해본 적도 없고 합의되지 않은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오히려 커리어의 성장을 헤치는 일이에요. 물론 큐레이터로서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더 큰 성장을 위해 영업 업무가 필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업무에 별별이님이 물음표를 붙이신다는 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죠.
어차피 퇴사를 결정하셨으니 마음 편해지실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볼까요? 별별이님이 퇴사하시려고 하는 것은 도망가는 게 아닙니다. 생뚱맞게 영업을 시켜서도 아니고, 도와줄 사람 없이 혼자 모든 일을 해서도 아니에요. 실적 압박이 무서워서 숨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별별이님은 해야 한다면 영업도 할 수 있고, 도와줄 사람 없어도 전시 2~3개쯤 빡세게 돌릴 수 있습니다. 실적? 모객? 해야 한다면 해야죠. 
그런데 이럴 거면, 대표님께서 별별이님이 납득 가능하고 합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근무 조건을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 연봉과 별도로 매출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는게 좋겠군요. 이익이 누적되면 배당금 형태로 나눌 수 있도록 지분을 함께 주시는 것도 적절해 보입니다. 연봉은 어차피 포괄임금제니까 업무 강도 고려해서 지금 받는 것의 1.5배 정도로만 합의해 주시는 걸로 진행하죠.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금 갤러리에는 전문성과 기동력을 갖춘 사람이라고는 별별이님이 유일하니까요.
근데 안 해주시겠죠? 일은 시키고 싶지만, 딱 거기까지이신 거죠? 우리는 그래서 퇴사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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