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주말에 왜 놀기만 하니? 일해"라고요?

[논픽션실화극]"'주말 근무 없음'이 장점이라고? 주말에는 좀 쉽시다"

2021. 05. 24 (월) 19:38 | 최종 업데이트 2021. 11. 16 (화) 12:36
※ 다음 글은 잡플래닛에 남겨진 리뷰와 못다 한 이야기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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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입사하게 되면 수습기간을 보내게 되죠. 저 역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회사'에 입사했을 때 수습으로 3개월의 시간을 보냈어요.

수습이라고 쓰고 잡일꾼이었던 제가 주로 하는 일은 파쇄된 문서를 옮기는 일이었어요. 한 주동안 상자에 가득 쌓인 파쇄지를 끌어 안고 일층에 가져다 놔야 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모든 박스를 처리하고 나면 자리에 앉아 전표에 영수증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하나하나 공을 들여 붙이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었죠.

이 외에도 저에게 주어진 업무가 몇 가지 있었는데요. 사실 다들 기피하는 잡무라고 해도 수습 시기였으니 웬만하면 참았을 거예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막내란 원래 그런 거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요.

그런데 제가 그 회사를 일찍이 탈출한 이유는 따로 있어요. 이 모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제 소중한 토요일을 제물로 바쳐야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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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랜만에 '그 회사'의 잡플래닛 리뷰를 보니까, 장점으로 "주말 근무 없음"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주말 출근이 없어진 건 박수를 치고 싶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옛 동료들이 주말 동안 평화롭게 쉴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그 회사'는 주말에도 업무 메일이 쌓이거든요. 그냥 쌓이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상식적인 회사라면 주말에 쌓인 메일은 월요일에 출근해서 답변하는 게 보통이겠지만, ‘그 회사'는 보통이 아니었어요. 바로바로 회신해야 했죠.

답변을 제때 하지 않으면 상사가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어요.

"주말에 쉬고 놀기만 하냐?"

쉬고 놀기만 하는 게 주말 아닌가요? 근로 시간은 계약서에 적혀 있잖아요. 계약서에 따르면 주말은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쉬는 날이라고요. 안 그래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데, 추가 근로수당 없이 주말 근무를 시키는 건 부당한 일이라는 걸 왜 모르시는 걸까요.

메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그 회사'는 보고를 할 때 무조건 메일로 해야 했어요. 메일 본문에 첨부 파일을 넣거나 표를 넣으면 안 돼요. 무조건 줄글로만 해야 합니다. 메일의 양식이 전부 정해져 있고요. 띄어쓰기 하나하나까지 틀리면 안 됩니다. 제목이나 영어 표현, 영어 대문자와 소문자…. 정말 사소한 것 하나까지 사장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써야 돼요.

심지어는 사장님이 정한 금지어도 있어요. 매일 정해진 틀대로 키보드를 토독토독 두드리며 메일을 쓰고 있으면 어휘력이 퇴행하는 기분까지 들었죠. 맞춤법은 당연히 틀리면 안 됐고요. 정작 맞춤법은 제 상사들이 그렇게 틀렸는데, 본인들은 틀린 걸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어요.

다시 돌이켜봐도 '그 회사'의 꼰대력은 파도파도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사원의 메일 띄어쓰기 하나까지 집착하는 회사가 과연 다니기 좋은 회사일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상식적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생각난 김에 '그 회사' 리뷰라도 하나 적어볼까봐요. 장점은 이렇게 적도록 할게요.

"여길 버티면, 다른 곳에서 일하기가 쉽습니다."

모두들 안전 퇴사하세요.
홍유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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