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사수가 후임도 있는데 저만 같이 과일 깎자고 해요

[별별SOS] 87. 잘 못해도 막내일 땐 당연하게 했는데…

2023. 11. 24 (금)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다보면 별별 일들이 다 있죠. 퇴근하고 혼술 한 잔, 운동이나 명상 10분에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일이 있나 하면, 편히 쉬어야 할 주말까지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나요? 혼자 판단하기 어려워서, 다른 직장인들의 생각은 어떤지 조언을 들어보고 싶나요? <컴퍼니 타임스>에게 별별 SOS를 보내주세요. <컴퍼니 타임스>의 에디터들이 직장인들에게 대신 물어보고, 더 나은 직장생활을 위한 방향을 함께 고민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중간직급인 8년 차 직장인입니다. 제 고민은 같은 부서에 있는 여성 사수 때문인데요. 같은 여성인 저에게만 부담스러운 심부름을 시켜요. 후임이 2명이나 있는데도요.

최근 회사 거래처에서 선물로 과일을 주셨는데 저를 부르더니 같이 과일 깎자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막내일 때야 당연히 제가 할 일이라 생각해서 묵묵히 했는데 그때 하필 후임이 제게 검토 요청한 파일이 있어서 함께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굳이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자존심도 상할 뿐더러 직장을 계속 다녀야할지도 고민하게 됐어요. 과일뿐만 아니라 소분해야 하는 쿠키 등 탕비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을 저와 함께하길 원하시는 것 같아요.

팀장님께 보고드리자니 고자질하는 것 같고, 사수께 항의하면 관계가 어색해질 것 같아서 못하는 칼질을 어렵사리 하면서 사무실 직원들에게 손질한 과일을 나눠주고는 괜한 괴리감에 빠져서 일에 집중하지도 못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참고로 회사 조직문화는 다소 수직적이지만, 남녀 차별없이 기회가 동등하게 부여되는 조직입니다.
⭐10+년 차 에디터
#평점 2점대 회사 여럿 경험한 직장인
#JPHS 애널리스트 유형  (JPHS 테스트가 궁금하면 ▶여기◀) 
#Z세대와 조금 멀리 있는 M세대


고민이 정말 많으실 것 같아요. 경우의 수도 많고, 괜히 이런 일 잘못 말했다가 오히려 맞는 말 하는 사람이 이상한 쪽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우선 해당 사수가 어떤 분인지, 전후 배경상황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후배들도 많은데, 그 사수는 왜 지금까지도 과일깎기를 주도하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사수 본인이 과일 깎는 일을 즐기는지, 혹은 즐기진 않지만 그 일을 함으로써 인정받고 싶어하는지, 혹은 관습적으로 여성이 해 왔으니 하게 된 건지를요. 거기에 모든 답이 있을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이런 잡무는 위에서 정리를 해주지 않거나, 담당자나 원칙이 없으면, 막내 혹은 꼭 하는 사람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센스있는 누군가가 ‘이번에는 제 차례인 것 같아요’하고 나서줬다면 참 좋았을 텐데 싶기도 하고요. 거꾸로 말하면 누구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일이기도 해요. 챙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이상에는요.

사실 전 이런 의문도 듭니다. 회사에서 왜 과일을 깎고, 먹어야 하는가? 문제없이 맛있게 먹고 끝나면 좋겠지만, 누군가의 잡일이 된 상황이라면, 분명 문제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해요. 다들 앉아서 주는 걸 당연한듯 먹고 있다면, 거기에 익숙해진 상태인 것 같고요. 누구 하나 '왜 저분들이 하지?' 라는 생각을 안 해봤을 거예요. 그냥 이렇게 흘러와 버린거죠.

어떤 문제나 그렇듯 일단은 사수와 대화부터 나눠보시는게 어떨까 싶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세요. 사실 (곰손이라) 이런 일을 잘 못한다고, 잘 깎는 사람이나 원하는 사람 있는지 물어보고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기는 혹시나 상사 기분이 상할까,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되기도 하잖아요. 

다소 꼰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방법을 추천드려보자면, 다음 과일 깎거나 간식 준비하는 상황을 노려보세요. 모두가 있으면 좋습니다. 눈은 팀장님을 향해서, 목소리는 후임들 쪽을 향해서 내는 건데요. '매번 선배가 챙겨주시는데 죄송하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같이 해보자'는 말을 넉살 좋게 해보시면 어떨까 해요.

그래서 오히려 다같이 준비하는 상황이 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 같이 준비하거나, 먹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챙겨먹는 문화가 자리 잡을 테고요. 물론 '취향 존중' 차원입니다. 식단 관리 중이거나 글루텐 프리를 원하거나, 싫어하는 간식이거나 배부를 수도 있잖아요. 모두가 간식 좋아할 거란 것도 편견이거든요.

팀장님께 말씀드리는 건 (사수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최후의 수단으로 권장드려요. 대신 관점은 바꿔주세요. '사수가 곤란하게 한다'는 고자질하는 뉘앙스가 아니라, 사수가 매번 간식을 챙기시는 게 죄송한데 다 같이 준비하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식으로요. 이렇게 했는데 팀장님도 심드렁, 팀원들도 심드렁하다면, 바뀔 여지가 0%니, 이후 별별이님의 안녕한 직장생활과 커리어를 잘 고려하셔서 다음 판단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7년 차 직장인
#T와 F의 4:6 황금비율을 자랑하는 ENFP

#JPHS '컨트롤타워' 유형 (JPHS 테스트가 궁금하면 ▶여기◀) 
#Z세대와 멀지 않은 M세대 


매번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면 회사 생활을 버겁게 만드는 큰 걸림돌이 되곤 하죠. 그게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요.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문제라면 더 이상 참는 것은 별별이님 자신에게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닐 거예요.

사수가 별별이님에게만 '사무실 집안일'을 함께 하자고 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 정도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성역할 고정관념으로 인한 것일 수 있고요. 두 번째로는 순수하게 별별이님을 더 친하게 느껴서일 수도 있죠.

잔심부름을 별별이님에게만 떠넘기는 상황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첫 번째 이유라고 여길 텐데, '사수가 저와 함께하길 원한다'고 하시니, 친밀감에서 비롯된 행동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데요. 여성 상사분이시라 매번 남성 후배를 불러 같이 간식 준비를 하자고 하는 것이 괜한 말이 나올까 부담스럽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별별이님은 실제 상황에 놓여 계시니, 둘 중 어떤 이유인지 아마 짐작하실 듯합니다.

만약 후자라면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함께 티타임을 갖거나 다른 방법으로 친밀도를 다져보세요. 사수가 별별이님에게 충분히 호감을 느끼고 있다면, 잔심부름 정도는 넉살 좋게 거절해도 크게 밉보이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성역할 고정관념인데요. 이 경우에는 머릿속에 '이런 일은 당연히 능숙한 여자가 하는 게 맞지'라는 생각이 깔려 있어서,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고정관념은 차츰 경험의 폭을 확장시키면서 경계의 벽을 허무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그러니, 사수의 편견이 무너질 수 있도록 팀원 모두의 동참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때, 사수의 입장에서 '나를 배려해 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보세요.

예컨대, "○○님(사수)께서 저희가 먹을 과일이랑 간식거리를 항상 챙겨주시느라 너무 고생이 많으신 것 같아요. 팀원들끼리 매달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일을 맡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는 거죠. 만약 당번을 정하는 게 어렵다면, 다른 팀원들에게 손을 거들어달라고 요청하면서 자연스레 동참을 유도하는 방법도 있고요.

담당 직무에 탕비실 관리와 다과 준비 등이 포함돼 있지 않은 이상, 이런 일들을 반드시 누군가가 도맡아서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별별이님 뿐만 아니라 사수도 마찬가지이고요.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되, 사무실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잡일에 대해서는 모두가 책임을 나눠 갖는다는 인식을 가져야 해요.

팀원들 모두가 동참하도록 유도했음에도 변하는 게 없다면, 사수에게 별별이님의 생각을 솔직히 얘기해 보시길 바라요. 사수는 잔심부름이 별별이님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 전혀 모르고 있을 거예요. 말하고 나면 별별이님의 걱정이 무색하게 이해해 주실 수도 있고요.

갈등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갈등에 대한 두려움은 'No'를 말할 수 없게 만들고, 이는 결국 자신이 모든 괴로움을 감당해야만 하는 결과로 이어져요. 건강한 갈등은 인간관계를 튼튼하고 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삼성물산, 애경 등에서 25년간 근무한 여성 임원 출신이자 소통·리더십 전문가인 유세미 씨의 저서 <나는 왜 회사만 가면 힘들까?>에서는 '잘'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별별이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부분을 소개해 드리면서 글을 마칠게요.
'순해 보이는 직원에게 개인적인 일을 떠맡겼더니 불만 없이 대신해주는 걸 본 직장 상사. 그가 사리 분별 못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또다시 그 직원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고 이후 이런 부조리한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맘 착한 직원 입장에서야 ‘내가 바쁜 거 우리 상사가 알겠지’, ‘내가 이런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상사가 설마 모를까’라고 생각하지만, 상사는 절대 모른다.

그래서 표현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정중하게 상대에게 잘 표현하는 연습을 시작하자. 혹시 이렇게 대놓고 표현하면 나를 미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은 갖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때 내가 지속적으로 받게 될 불이익을 불안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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